시선의 변화, 가족 뮤지컬의 행보
–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
정명문
작 작사 연출 : 오미영
작곡 : 조선형
공연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공연 일시 :2014.1.15~2.2
– 외로운 이들의 식구 찾기
‘먹는 것(밥)’은 인간에게 생명 연장의 도구인 동시에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희의 대상이다. 우리는 ‘무엇을 누구와 먹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 맛과 분위기를 누군가와 공유하길 바란다. 또한 같은 음식도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풍미가 달라지기는 걸 경험하기도 한다. 이렇게 ‘함께 먹는 누군가’는 참으로 중요하다. 지속적으로 함께 먹는 누군가가 한집에 함께 살게 되면, 식구(食口)가 된다. 식구의 사전적 정의는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다.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는 이렇게 ‘밥’이란 인연으로 모여 살게 된 이들의 ‘식구 되기’를 그린 작품이다.
극은 박복녀 할머니와 개(몽), 고양이(냥), 닭(꼬)이 함께 사는 집에 지화자 할머니가 들이닥치면서 시작된다. 박복녀는 지화자와 아들 찾기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날이 따스해질 때까지만 함께 살기로 한다. 등장 인물들은 발랄하고 유쾌하게 투닥거린다. 하지만 이들은 ‘버려지거나 잊혀진’ 여성들로 누군가를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떠나보내야 했다. (지화자는 양아들이 요양원에 버렸고, 박복녀는 딸이 죽었다. 몽은 개장수 때문에 주인과 헤어졌고, 냥은 임신한 주인이 유기한다.)
이 작품은 ‘현대판 고려장’과 ‘유기동물’이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버려짐’과 ‘상실’의 아픔을 뻔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지화자와 박복녀의 상처는 매개체(박복녀 딸의 유품, PD의 전화)를 통해 알려진다. 시종일관 현실과 동떨어져 보였던 지화자가 사실은 자신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날 때쯤 극 분위기는 절정에 달하게 된다. 그리고 박복녀의 ‘음.. 그래.. 그렇지’란 담담한 추임새와 ‘넌 참 예뻐’라는 노래로 토닥임을 할 때 관객들은 예상치 못한 먹먹함을 느끼게 된다. 어떤 인연이든 서로를 기대고 의지하면서 삶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보편타당한 진리를 스리슬쩍 보여주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은 밥을 같이 먹으며 입맛을 맞춰가고, 비슷하게 옷을 입으면서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들이 각자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진정한 식구가 된 것이다. 두 사람은 혈연은 없지만, ‘저승에 함께 갈’ 친구와 식구를 찾았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 이런 낭만적인 결론은 생각을 바꾸면 실현가능하기에, ‘정’에 목마른 현대인들에게 희망을 준다.
– 창작 뮤지컬의 아날로그적 감성
기본 무대는 1자형으로 되어 있는 박복녀의 집이다. 집 양편에는 허름한 창고와 화장실이 있는데, 이 장치들은 배우들이 살짝 움직이면 마을로 가는 길, 산등성, 동네 길거리 등으로 바뀐다. 주민자치센터, 우체국, 경찰서는 소품 하나만으로 구현된다. 노래가 나오는 동안 빨랫줄에 걸린 흰 이불은 영상의 투사막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무대는 커다란 장치 없이 압축된 표현으로 소소하게 분위기를 표현한다.
몽(개), 냥(고양이), 꼬(닭)는 멀티맨이 되어 다양한 역할(경찰관, 치킨배달부, 동사무소의 여자 안내원, 휴대전화 판매원, 중국집 배달원, 사진사)을 하는데, 각각의 특징을 살려준다. 특히 동물들의 의상(패치스타일의 몸에 붙는 의상과 실 뜨개 두건)과 섬세한 동물들의 움직임, 소리는 코믹한 장면들을 배가시킨다. 출연자 5명이 다양한 역할을 넘나들으면서 연기를 하는 것도 소극장 무대에서 주로 발견되는 방식이다.
<식구를 찾아서>에는 총 12곡의 노래가 나온다. 여기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처럼 메인테마곡, 테마곡을 변형한 리프라이즈(reprise)곡, 극적인 순간에 감정을 폭발시키는 곡, 사랑의 듀엣곡과 같은 전형적인 형태의 곡은 나오지 않는다. 즉 반복된 리듬을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예고하고 주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노래가 활용되지 않는다. 대신 이 작품에서 노래는 ‘버려짐’이라는 키워드에 다양한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제시하는 방식을 취한다. 몽, 냥, 꼬의 현재와 과거를 통해 장면을 전환하고, 할머니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상황 속에 녹아드는 노래는 연극에 노래가 추가된 것으로 보이게도 한다. 이 노래들은 트로트, 민요, 동요, 컨트리, 락, 블루스, 보사노바처럼 다양하지만 익숙한 리듬을 사용하여 관객들에게 친근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역할도 한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두 번 나오는 “넌 아직 예뻐”라는 곡은 특이하다. 처음에는 지화자가 두 번째에는 박복녀가 부르는데, 이들의 노래는 말하는 듯 기교 없이 전달됨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감정 이입되기 때문에 이 노래에서 가장 많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식구를 찾아서>는 무대운영, 영상, 배우활용, 음악구성 등에서 대학로 소극장에서 진행되는 연극 방식과 닮아있다. 이러한 방식들은 이 작품의 제작 과정을 통해 쌓여진 것이다. <식구를 찾아서>는 창작 팩토리, 대구 뮤지컬 페스티벌, 창작뮤지컬육성사업과 같은 지원을 받고 워크숍과 쇼 케이스를 거치면서 수정, 보완 작업이 이루어졌다. 대극장 무대에서 공연되고 있음에도, 소극장 연극의 아날로그적인 색감과 톤이 유지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이 작품의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적 뮤지컬이라고 하면, 전통적인 소재를 활용하는 것만이 전부였던 시기가 있었다. 현재 뮤지컬시장은 화려한 무대의 대형 뮤지컬이 강세이다. 하지만 <식구를 찾아서>는 한국적 뮤지컬이 앞으로 지향해야할 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식구를 찾아서>는 소재, 무대, 음악을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면서도 주제를 훌륭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의 미덕은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위로나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았음에도 관객들은 작품을 통해 눈물과 웃음을 경험하게 된다. <식구를 찾아서>는 양식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관객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힘을 지녔다. 그리고 무수한 데이트 뮤지컬 속에서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가족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은 가족과 세대를 어우르는 작품으로 오래오래 공연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