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천만개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기술, 민주주의
– 연극 <데모크라시>
정일균
작: 마이클 프레인
연출: 이동선
단체: 몽씨어터
공연일시: 2014/03/06 ~ 2014/03/23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마이클 프레인의 2003년 최근작인 데모크라시를 들고온 극단 몽씨어터. 그들이 추구하는 서사방식 정치적 담론 연극.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는 한국과 북한의 분단 그리고 대치상황 그리고 통일에 대한 염원, 이념에 대한 극한 대립에 처해있는 대한민국
거의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었던 통일 전 독일, 이웃 공산주의 국가들과의 동방정책으로 독일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던 빌리 브란트의 성공과 좌절을 통해서
지금 우리나라에 있어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큰 물음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작품의 시작은 빌리브란트의 총리선출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는 시각은 그의 비서였던 귄터기욤 으로부터 출발한다. 왜 이야기의 화자가 빌리브란트를 실각시키게 된 핵심 요인이었던 기욤이었을까?
이 이야기가 극적인 흥미로운 구성을 갖는 이유는 빌리 브란트와 귄터기욤과의 공생관계의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나찌 당원으로 활동하다가 동독 정보부의 명령으로 서독으로 위장망명을 온 기욤은 사회민주당원으로 활동하면서 결국 수상이 된 빌리브란트의 관저 보좌역까지 올라가게 된다. 동독의 스파이로 적대국인 서독의 중앙정치의 핵심에 들어가서 총리를 감시하다가 그의 인간적인 내면과 동독을 향한 그의 진심에서 적대국 스파이로서의 삶에 심각한 혼란을 빠지면서 오히려 빌리브란트를 진심으로 돕는 자신의 역할의 변화에 극적인 흥미로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1막
빌리브란트의 총리임명으로 시작한다. 기욤은 연방총리실 직원이 되고. 이어서 총리의 당무비서가 된다. 기욤의 업무는 다른 직원과 함께 사민당 당대표를 겸직하고 있던 브란트 총리의 당내일정을 조직하고, 당 기관과 당원과의 문서유통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기욤은 이 업무를 통해 브란트의 최측근 그룹이 되었고, 동독은 빌리브란트가 추진하는 공산권과의 화해정책(동방정책)의 진심을 알고자 그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캐낼 것을 기욤에게 요구한다.
빌리브란트의 동방정책은 반동적인 보수야당의 탄핵발의로 위기에 부딪힌다. 그는 당내의 반대를 무릎 쓰고 의회를 해산하고 국민들의 재신임을 묻는 조기 의회 선거를 선언하며 경색된 정국을 정면으로 돌파하려 한다.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열차유세를 하고 빌리브란트의 신임을 얻게 된 기욤이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른다. 결국 폴란드 유태인 학살 위령탑에서 빌리브란트의 감동적인 헌화를 정점으로 사회민주당은 의회의 과반 석을 차지하게 되고 빌리브란트와 사회민주당의 인기는 절정에 다다른다.
2막
국가안보국의 무선교신 감청을 통해 총리관청에 동독 간첩이 침투해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고, 끝내 기욤의 정체는 탄로나게 되고 게다가 여성들과의 스캔들 등의 신문보도를 통해 정치공세에 휘말리는데 이 사건의 핵심적인 증인이 바로 브란트의 개인 경호원인 울리히였던 것인다. 브란트는 결국 사임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게 된다.
무대 가운데 벽에 투사되는 영상과 양 옆에 위치한 흑백텔레비전을 통해 가끔 보이는 이미지와 영상들, 브란트의 기차유세 영상 등은 독일의 시대적 상황과 정서들을 상상하게 하는 좋은 도구로 활용되어지고 있었다. 특히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의 나치정권의 희생자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은 배우의 재현의 연기의 도움을 받아 더욱 빛이 나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무대의 뒷벽은 복합적인 상징과 비유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1막에서는 반듯하게 맞춰진 벽이 2막에서는 앞뒤로 틀어진 형태로 세워지더니 마지막에서는 한쪽 벽이 들어 올려지면서 철거되어지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2막에서의 벽의 갈라짐이 나타내는 의미가 두 가지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의 의미가 서로 상충되어지는 것이어서 더욱 강렬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2막에서 무대 배경 벽이 서로 앞뒤로 맞지 않게 세워졌다. 이제 나타나게 될 빌리브란트의 앞날에 대한 예견적인 의미에서, 그의 인생에서의 벽이 틀어지고 있는 절망의 의미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동서독 분단을 가로막는 있는, 무너짐이 불가능해 보이는 벽이 비로소 갈라지기 시작했다는 희망의 의미를 동시에 주고 있어서 패러독스한 인생의 의미와 단면을 떠올리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정치라는 큰 회오리 속에 휘말려든 정치인들의 이야기는 마치 생사의 기로에 선 전쟁의 전사와도 같은 긴박함과 위태로움을 보는 남성적인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남성적이며 정치적인 인물들의 정치인생에서 축적된(고뇌, 핍박, 야망, 권모술수, 설득, 실패, 강인함, 결의에 찬, 속임, 등등) 연륜이 묻어나오는 남성성(性)의 표현이 이 연극의 묘미를 잘 살릴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의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빌리브란트와 총리시절 그와 함께한 정치인들의 특색과 성격 외모 등을 나타내주는 배우들은 대체적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빌리브란트 역활의 김종태는 독특한 자신만의 발음과 발성으로 대사전달에 있어 탁월했고 귄터역활의 이화룡도 매끄럽게 자신의 역할을 연기해주었다.
그러나 작품을 보고난 후 이 작품에 대해 깊은 애착이 들게 되었고, 다음에 재공연을 하게 될 기대감으로 말해보자면, 배우들에게 있어 역활의 인물들을 소화해 내기에는 아직 어린 듯 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신체적인 나이에서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인물들 내면의 깊이감과 존재감의 옅은 결핍은 다음 무대에서 더욱 강렬하게 채워지게 될 것을 기대하게 된다.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가 서사적형식의 내레이션과 함께 세 시간이 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삼분에 한 번씩 볼거리와 재미와 흥미로운 것들을 던져야하며 스피드해지고 더욱더 강렬한 것을 요구해지는 요즈음의 공연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공연의 형태일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관객들의 공연을 받아들이고 읽는 속도와 형태가 점점 빨라지고 더욱더 흥미로운 것들을 찾는 취향의 발전에 맞춰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긴 호흡의 연극을 감상한 후에 남는 묵직한 여운을 느끼게 해주는 이번 공연은 요즈음 같은 때에 더욱 그 희소성으로서도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공연과 함께 깊이 고민하고 의미들을 새겨보며 관객의 긴, 깊은 집중력으로 함께 공연을 완성해 가는 끈기 있는 연극들이 나온다는 것이 새삼 반갑게 맞아지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