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포/ 하형주

 

단순한 나열에 그쳐버린 기억 찾기: <전당포> 

 

                                                  하형주

작: 김아로미 (서울신문 신춘문예당선작)
연출: 박장렬
드라마터그: 김향
공연일시:
공연장소:

 

박장렬 연출에 의해 공연된 <전당포>의 등장인물들은 40대의 남자와 남자의 아내인 30대 후반의 여자, 그리고 전당포주인인 노인과 손님1, 손님2로서 설정되어있다. 이 익명의 등장인물에서 나타나듯이 이 극은 사실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극의 시작은 어두어지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 한 남녀가 길을 찾아다니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 한 노인이 불켜진 촛불을 들고 나왔다 사라진다. 극의 줄거리는 사실 몇 년 전부터 시력을 잃어가는 여자가 자신의 생일선물을 대신해 남편에게 어린 시절 문방구에서 팔았던 떡볶기를 먹고 싶다고 원하면서 그 문방구를 찾아가는 중이다. 문제는 여자가 시력이 좋지않아 남편의 도움을 받아 찾아가야만 하는데, 끊임없는 개발로 인해 이미 많이 변해버린 이 도시에서 과거의 남겨진 흔적을 찾아내어 그 문방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사실, 여자가 진실로 찾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그 떡볶기라기 보다는 떡볶기를 먹으며 가졌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그래서 여자는 어린이집 놀이터를 지나왔다는 남편의 말을 통해, 여자의 어린시절의 노란미끄럼틀과 같은 흔적을 찾으며 과거를 기억하고자 한다.

연출은 이 기억을 찾아가는 극의 초반에 원작의 지문에서 드러나는 전당포의 상황을, “그는 천천히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원작과는 달리 전당포의 이미지가 아니라 흐릿한 불빛과 연기 그리고 오래된 물건들 사이로 노인이 불 켜진 초를 들고 나왔다 사라지게 하면서 극을 환상적 신비로운 분위기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극에서 남자는 반복되는 배회에 지쳐 여자에게 그만 돌아가고자 하지만, 여자는 불빛이 비쳐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보자고 청하고 둘은 이 건물로 들어가게 된다. 이곳에서 그들은 기억을 사는 전당포의 주인을 만나게 되며 이 노인에 의해 이 거리가 보성당 골목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금·은방인 보성당은 여자에게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시계를 사준 곳임을 기억하게 되면서 이 전당포에서 자신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쉽사리 이곳을 나가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전당포 주인의 말을 들으면서 여자는 자신의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이곳을 방문했었던 기억을 하게된다. 여자는 당시 아버지가 맡기신 물건을 알고자 하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러 온 두 손님의 이야기는 이 남녀의 상황사이에 끼여지는데, 이 상황은 다만 전당포가 순수한 자신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물건만을 구입하는 곳임을 그려내는데 그친다. 그래서, 두 손님이 가져온 그 물건들, 토끼 알람시계와 사진기, 혹은 다양한 물건들은 우리 사회의 화려한 이면에 숨겨진 기호들을 드러내는데는 성공하지 못한다. 특히 여자가 노인이 준 장부를 보고 아버지의 물건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이어지는 장면은 기억의 흔적들이 살아 의미를 드러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직조되지 않는 단순한 문구들의 나열만이 있어 아쉬움을 자아내었다. 따라서 희곡은 단순히 여자가 찾고자 하는 기억을 통해, 바쁘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점점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기억을 그래서 점점 기계화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에 기억이라는 소박한 바램을 드러내는데 머문다. 결국, 단순히 기억찾기에 머무른 원작은 연출에 의해 구성된 교차된 대사들이 아무런 의미를 드러내지 못한채 그저 의미없는 소리로서만 존재하였다.

연출에 의해 드러난 오브제들의 무대는 극적 의미를 함축시키며 드러내는데 성공했지만, 여자배우의 인위적인 말투, 손님1의 과장된 말투, 그리고 극의 마지막에서 보여준 이들 배우들의 양식적 몸짓들은 볼거리는 제공했지만, 원작이 가지는 한계 안에서 그 의미를 드러내지 못한채 물위에 부유하고 있는 기름같이 극과 함께 살아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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