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신춘문예 단막극제/ 박정기

2014 신춘문예 단막극 잔치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박정기

1 조선일보 당선작, 김도경 작, 양기찬 드라마투르크, 반무섭 연출의 <사랑하기 좋은날>

심사 김윤철, 이병훈,

 

무대는 아파트의 거실이다. 정면 왼쪽에 출입문이 있고, 객석에서 바라다 보이는 무대 왼쪽에 욕실 겸 화장실, 그 앞쪽으로 옷걸이, 그 앞쪽에 화장대와 의자, 그 앞에 텔레비전 수상기가 대위에 놓여있다. 무대중앙에 긴 안락의자와 소파가 있고, 그 오른쪽 배경 가까운 곳에 침대가 가로 놓여있고, 베개가 두 개 나란히 놓이고, 큰 이불이 덮여있다. 그 오른쪽에 아파트 베란다와 난간이 보인다.

 

혼전 동거를 하고 있는 딸의 거소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불쑥 들이닥친다. 딸과 동거남은 부랴부랴 동거흔적을 지우느라 부산을 떨고, 동거남은 샤워 중 허둥지둥 겉옷만 챙겨 입고, 텔레비전 수상기 수리공 행세를 하기로 한다. 딸의 아버지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웬 늦은 밤에 남자가 있느냐고 의아해 하고, 어머니는 딸이 선을 볼 상대 남성들의 사진첩을 펴놓는다. 어머니의 요구대로 선을 보느냐 마느냐를 놓고 모녀의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벌어지고, 아버지는 일상적인 저녁 음주를 하면서 수리공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데 말이 수리공이지 수상기를 한 번도 해체해 본 적이 없는 남자의 수상기 분해가 서투른 것은 보나마나이다. 어머니는 연속극 볼 시간이 되었다며, 빨리 수리를 하라고 보채기를 시작한다. 아버지는 술 상 대로 남자에게 잔을 권하게 되고, 몸을 숙여 술잔을 받는 남자의 알몸을 겉옷 사이로 보고는 겉옷을 활짝 열어젖힌다…… 결국 딸의 동거가 밝혀지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지혜가 딸, 박상훈이 동거남, 어머니가 정의순, 오용택이 아버지로 출연해 독특한 성격창출과 맛깔스런 연기로 작품을 폭소로 이끌어 가면서 한편으로는 서글픔을 관객의 가슴 깊이 안겨주며, 김도경 작, 드라마트루크 양기찬, 반무섭 연출의 <사랑하기 좋은 날>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2, 서울신문 당선작, 김아로미 작, 김향 드라마투르크, 박장렬 연출의 <전당포>

심사 고연옥, 장성희,

 

무대는 전당포의 내부다. 무대 여기저기에 테이블보를 덮은 탁자가 보이고 그 탁자 위에 귀금속, 골동품, 수제품, 고급탁상시계, 제화 류, 고서화 등의 귀중품이 잔뜩 쌓여 있다. 너덧 개의 탁자 사이 길과 무대 외곽은 통로 역할을 하고, 배경에 있는 출입문은 전당포의 창고구실을 한다. 마네킹이 오른쪽에 세워져 옷가지를 걸쳐놓았다. 그런데 그 마네킹이 실제 사람인 것이 후반부에 드러난다.

 

비가 내릴 것 같은 으슬으슬한 날씨와 늦은 저녁 무렵, 중년부부의 나들이에서 연극이 시작된다. 눈 질환으로 머지않아 실명을 하게 되리라는 부인을 데리고 나들이를 하는 남편과의 도착지점이 전당포 부근골목으로 설정된다. 날씨가 서늘해지니, 남편은 부인의 목에 자신의 머플러를 풀어 감아준다. 부인은 고마워한다. 그리고 부인은 기억을 되살려 소시 적에 자신의 부친과 이 전당포를 방문한 적이 있다며 들어가 보자고 한다. 전당포 주인은 백발 옹으로 촛불을 켜들고 안내를 한다. 현재도 사업을 하는지, 젊은 처녀가 장식이 달린 자명종 탁상시계를 들고 찾아오고, 백발 옹은 감정을 한 후, 주인은 처녀가 기대하던 가격 이상의 금액으로 시계를 맡아준다. 처녀의 기뻐하는 모습은 다시 이를 것도 없다. 곧이어 한 청년이 카메라를 들고 찾아온다. 백발 옹을 청년의 통사정에도 불구하고, 사진기를 저당잡지 않고 내쫓는다. 청년은 원망하는 소리와 함께 퇴장한다. 이 광경을 보던 부인은 자신의 아버지의 수제화가 아직 여기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며 창고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백발 옹은 허락을 한다. 부인이 들어간 후 남편과 백발 옹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생전처음이라는 남편의 이야기에 백발 옹은 분홍색의 머플러를 탁자위에서 집어 올린다. 머플러를 남편에게 보여주며, 이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남편은 부정을 한다. 그러나 백발 옹의 재차 질문에 남편은 첫사랑의 여인을 기억해 내고, 그 머플러로 좀 전에 부인에게 해주던 모습처럼, 첫사랑의 여인의 목에 감아주었던 머플러였음을 기억해 낸다. 허우대 좋고 잘생기고 순정남으로 전달되던 남편의 위선적 모습이 충격으로 부각된다. 그때 부인이 아버지의 수제 화를 들고 창고에서 나온다. 구두는 당시 맡겼던 상태 그대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실명 직전의 부인이 부친의 제화를 찾아들고 와, 남편에게 보이며 기뻐하는 모습은, 모든 가식과 위선 앞에 눈이 먼, 우리 모두의 서글픈 모습을 보는 듯싶은 느낌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문창완과 권기대가 부부로 출연해 연극을 환상적인 분위기로 이끌어 간다. 백발 옹으로 전종훈이 전당포주로 출연해 탁월한 연기로 연극의 지주가 된다. 김진영, 이가을, 진종민, 김천 등 출연자들의 호연이 작품을 빛내는 요인이 되고, 연출자의 출중한 기량이 연극을 환상적인 분위기로 창출해 내며, 김아로미 작, 김향 드라마트루크, 박장렬 연출의 <전당포>를 원작 이상의 공연으로 탄생시켰다.

 

3, 한국일보당선작 김원태 작, 강수진 드라마투르크, 성준현 연출의 <오늘의 저격수는 딸기 맛 초코바를 먹는다>

심사 한태숙, 최치언.

 

무대는 배경 막에 도시의 고층건물의 영상이 투사되고, 무대 중앙의 건물옥상의 초소에서 관측병이 담요를 펴고 그 위에 엎드려, 데브그루도 7.62mm NATO탄을 사용할 수 있는 Mk11 반자동저격소총으로 도시를 향해 겨누고 있고, 그 옆에는 망원경을 총처럼 장착해 나란히 배치해 놓았다. 병사 한명은 그 옆에서 관측병의 지시를 따른다. 특이한 것은 두 사람 다 얼굴에 눈과 코와 입만 뚫린 구멍 난 헝겊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두 사람의 얼굴을 물론 나이도 알 수가 없다. 고참과 신참도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만 알 수가 있고, 후반부에 마스크를 벗은 후에야 얼굴모습과 연령을 알아차릴 수 있다.

 

연극은 도입에서부터 병사 한명이 도시를 향해 엎드려 쏴 자세로 있는 모습과 그 옆에 병사 한명은 조금 편한 자세로 있는 모습에서 시작된다. 두 병사의 대화를 통해 도시에 자주 출몰하는 테러집단에 대한 대비, 또는 돌발사태에 대한 대응과 상황보고가 주 임무로 소개가 된다.

 

현시국과 정치상황 권력쟁투가 대화의 내용이 되고, 중반부터 두 병사가 마스크를 벗으면서 모습이 드러나, 나이가 제법 들은 중년남성들이라는 게 밝혀진다. 무선전화기의 신호음이 계속 울리면서 상황변화를 알리지만, 별다른 사태의 진전이나 발생이 없이 두 병사의 일상적인 대화와 세태변화, 정치적인 견해로 잠시 티격태격하다가, 급기야 자신의 마스크를 벗고 상대의 마스크를 벗기는 동작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의 모습과 나이가 드러나면서 장면전환이 되고, 후반부에는 입장과 계급이 바뀐 두 병사의 정반대의 모습과 한 병사의 제대로 초소를 떠나고, 남은 병사가 주머니에서 딸기 맛 초코바를 꺼내 먹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하덕성과 김웅희가 두 병사로 출연해 듀엣으로 조화를 이루고, 무선전화로 상황 보고하는 목소리는 노수민이다.

 

김원태 작, 강수진 드라마트루크, 성준현 연출의 <오늘의 저격수는 딸기 맛 초코바를 먹는다>는 한편의 실험극을 보는 느낌의 공연이다.

 

4, 동아일보당선작 김경민 작, 오세곤 드라마투르크, 주용철 연출의 <욕조속의 인어>

심사 김철리, 배삼식.

 

무대는 화장실 내부다. 왼쪽에 변기, 중앙에 수도꼭지와 싱크대가 있고, 그 오른쪽에 욕조, 맨 오른쪽이 출입문이다.

각 칸마다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출입문으로 등퇴장이 이루어지고, 그 오른쪽으로 무대 뒤쪽까지 출연자들의 등퇴장 로가 된다.

 

연극은 도입에 나이든 부동산 중계사가 젊은 여인과 함께 등장해 화장실 내부로 들어온다. 여인은 어수룩한 티가 보이는 지방에서 상경한 처녀로 소개가 된다. 중계인은 얼렁뚱땅 월세 이십 만원에 화장실에 거처를 정하게끔 처녀를 설득시키고 계약을 치르자마자 잽싸게 자리를 피한다. 화장실에 거처를 마련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언뜻 보기에 내부가 청결한 편이라 처녀는 마음을 다지고, 짐을 풀기 시작한다. 인형과 꺼내 싱크대 위에 놓고, 옷 트렁크는 싱크대 아래 공간에 밀어 넣는다. 돌연 이웃에 사는 여인이 기웃거리고, 자리를 잘 잡았다며, 자신의 거주지에서는 12명의 세입자가 한 개의 화장실을 사용한다며 불평을 늘어놓고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하며 떠나  간다. 잠시 후 택배기사가 등장해 이 화장실이 배달장소라며 상자 곽에 든 배달물건을 처녀에게 전한다. 받기를 주저하는 처녀와 배달기사 간에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벌어지면서, 헬멧을 벗은 배달기사의 잘생긴 얼굴이 처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두 사람은 금세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며, 배달물품을 열어본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그것이 인어로 소개가 되고, 상자를 개봉하자마자 바로 물에 넣으라는 설명서를 읽게 된다. 처녀가 욕조에 물을 채우고 인어를 집어넣는 동작을 보인다. 배달원이 돌아가면서 처녀와 배달원은 상대에 대한 아쉬움을 가슴에 남긴다.

 

처녀는 화장실에 자리를 깔고 잠을 청한다. 잠이 한창일 무렵,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이웃여인이 등장하며, 열두 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자신 네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며, 급하다며 도움을 청한다. 처녀가 허락하자 그녀는 들어와 이를 닦고 화장실 사용을 한다. 잠시 후, 이웃에 사는 청년이 와 기웃거리고, 다른 여인들도 역시 다가와 화장실 안을 기웃거리면서, 배가 아프다는 둥 급작스런 생리현상을 보이며, 화장지를 가져와 용변을 보기 시작한다. 이들이 한동안 부산을 떨고 떠나가면, 흐트러진 뒷자리를 정리하면서 욕조속의 인어를 들여다보는 처녀의 모습이 아름답고 순박하게 느껴진다. 이웃의 화장실 사용이 거듭되면서 처녀는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잘생긴 배달기사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그 때 배달기사가 소포를 들고 찾아온다. 두 사람의 반기는 모습은 서로 연인을 대하는 듯하다. 소포를 뜯으며 두 사람은 욕조의 인어를 들여다  보며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욕조의 생물은 인어가 아니라 부화 직전의 거북이의 알로 소개가 된다.

 

장수희, 김진영, 김용운, 진성웅, 강양은, 정대용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이 관객을 극에 몰입시킨다.

 

김경민 작, 오세곤 드라마투르크, 주요철 연출의 <욕조속의 인어>는 비록 언짢은 처지나 최악의 경우에 처하더라도,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밝은 마음으로 살라는 복음 같은 연극으로 가슴속에 새겨지는 작품이다.

 

5, 한국희곡작가협회 당선작, 이은솔 작, 이주영 드라마투르크, 문삼화 연출의 <정말이야>

심사 홍창수, 최은옥.

 

무대는 배경으로 거실의 내부가 화폭에 그림으로 펼쳐져 있다. 소파, 싱크대 그릇장이 사실화로 그려지고, 무대 중앙에는 식탁이 가로 놓여있다.

 

연극은 도입에 식탁에 앉은 엄마와 딸, 그리고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고, 마침 그 날이 아빠의 생일이라, 아빠를 기쁘게 해 줄 방법을 3인이 의논을 한다. 그 방안으로 아빠의 생일이 지난달에 지난 것으로 하고, 아빠가 그런가보다 하고 믿게 되면, 바로 생일잔치를 벌려 아빠를 깜짝 놀라게 해주자는 계획을 세운다. 아빠가 귀가를 하고, 엄마와 딸이 생일을 모르는 체 아무 이야기를 않으니 아빠는 섭섭하다는 심정을 토로한다. 엄마가 당신생일은 지난달에 지나지 않았느냐며, 시치미를 떼고, 딸도 그 말에 동조를 하고 할머니까지 고개를 끄덕이니, 아빠는 가족들이 자신을 깜짝 놀라게 해서 기쁘게 만들 요량이 아니냐고 질문을 하고, 가족 3인이 그런 게 아니라고 부정을 하니, 아빠는 포기를 하고 외출을 한다. 아빠가 나가자 세 사람은 아빠 생일잔치를 마련한다. 그 때 아빠가 돌아오고, 가족들이 생일을 축하한다고 외치니, 아빠는 자신의 생일이 지난달에 지나갔다며 왜들 그러느냐고 정색을 한다. 가족들이 오늘이 생일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아빠는 믿지를 않는다. 결국 가족들의 계획은 소득 없는 결과가 된다.

광우병, 청성 산 도롱용, 천안 함 관련, 많은 사람들의 거짓이, 우리 사회를 거짓의 도가니로 몰아가듯, 여러 사람의 거짓이 한사람의 정신을 황폐화시키는 사례를 보는 듯싶은 연극이다.

 

남편 오민석, 아내 김지원, 딸 노준영, 어머니 한철훈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이 연극을 폭소로 이끌어간다.

 

이은솔 작, 이주영 드라마투르크, 문삼화 연출의 <정말이야>를 시의 적절하고 의미 심중한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6, 경상일보당선작 황석연 작, 이양숙 드라마투르크, 이양숙 연출의 <갑론을박(甲論乙駁)>

심사 전옥주

 

텅 빈 무대에 올가미가 달린 밧줄에 연결된 철제 직사각의 조형물을 출연자가 의자로 사용을 한다. 출연자는 가발을 쓴 채 가부좌를 틀고 의자형태 조형물에 앉거나 바닥을 헤매고 구르며, 같은 가발과 동일한 반라의 동년배 남성과 소위 갑론을박(甲論乙駁) 식의 선문답(禪問答)을 벌이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흑색착의(黑色着衣)의 인간형태의 군상(群像)과 얽혀 행동통일을 이루거나 보조를 맞춘다. 경전(經典)을 뇌까리기도 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지껄이며, 1인의 독백 시에도 비록 정좌의 자세로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고 부처의 형상으로 있기는 하지만, 그가 부처가 아닌 것이 명백하기에, 그의 가부좌는 금세 좌불안석(坐不安席)의 자세로 바뀐다. 2인이 1인인 것으로 행세를 하고, 2인이 2인인 것으로 분리되어 대립과 갈등을 구현하며, 의자의 밧줄로 상대를 묶거나 목을 조르고, 또는 흑색착의의 군상과 행동통일을 하며 불가(佛家)에서의 화두(話頭)를 객석에 던져보지만, 그것은 반향 없는 메아리처럼 무대 공간 어둠속으로 덧없이 사라져 버릴 뿐, 결국 무대 위에 나둥그러진 1인의 몸뚱이만 덩그러니 남아있게 된다.

이오네스토의 의자들이 불쑥 생각이 나고, 반 고흐의 외톨이 의자그림도 생각나고,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도 떠오르게 하는 독특한 공연물이었다.

 

이다일, 성도현, 김경덕, 이진성, 한아름솔, 김청순 등이 출연해 무대 위를 종횡으로 누비고 뛰고 뒹굴며 혼신의 힘을 쏟아, 황석연 작, 이양숙 드라마투르크, 이현정 연출의 <갑론을박(甲論乙駁)>을 이신전심(以心傳心)의 화두(話頭) 극으로 표현해 냈다.

 

7, 부산일보당선작 최보영 작, 장윤정 드라마투르크, 이윤주 연출의 <드라마>

심사 이윤택.

 

무대는 노부부의 거실이다. 장롱과 화장대, 그리고 라디오와 일상용품을 올려놓은 낮은 장이 있고, 바닥에는 이부자리가 깔려있다.

연극이 시작되면 75세의 노인이 이부자리에 가로 누워 손에 원거리 작동 기를 들고,  텔레비전 수상기를 쳐다보고 있다. 수상기는 객석 쪽에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가끔 천둥소리와 번개가 번쩍이는 걸 보면, 불순한 날씨에 노인이 집에 들어앉아 수상기를 들여다보는 것이 어디 이 노인뿐이랴?

잠시 후 부스럭거리며 노파가 이불을 젖히고 고개를 내민다. 노인은 더 자라는 듯 노파의 얼굴에 이불을 덮어씌운다. 이 광경은 한 두 차례 계속되어 객석의 웃음을 유발한다. 노파는 일어난다. 뇌성벽력과 함께 수상기의 화면이 보이지를 않게 되자 노인은 원거리 작동 기를 들여다보고, 노파의 권고대로 건전지를 찾아 가져다 준다. 그런데 노파가 건전지를 꽂는 게 여간 서투르지가 않다. 노인이 건전지를 제대로 꽂아도 수상기의 화면은 깜깜한 상태다. 노인은 수상기 수리공에게 전화를 한다. 마침 수리공은 그 직업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니, 유선방송사에 전화를 걸으라며, 번호를 알려 준다. 노인이 유선방송사에 전화를 한다. 일기가 불순해 지역 전체의 방송이 중단되었다며 곧 조처를 취하겠으니, 기다려 달라는 답변이다. 기왕에 전화기를 손에 든 김에 노부부는 자녀들에게도 안부전화를 한다. 자녀 중 한 명이 부모의 전화를 받고, 무슨 급변이 발생한 것으로 오인을 하고 노부부에게 자가용으로 모시러 오겠다는 답을 한다. 이들 노부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노인 가족이 자녀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기에, 자녀가 급작스레 온 부모전화에 놀라, 금세 달려오겠다는 의사표시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노인부부는 자녀에게 오지 말라고 거절을 한다. 노부부는 나들이를 갈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비가 쏟아지는 소리에, 그냥 주저앉아 집에서 소일거리를 찾기로 한다. 노파는 화장대 앞에 앉아 입술연지를 발라보고, 고개를 요리조리 갸웃해 보기도 하며, 노인에게 연속극을 못 보는 대신, 부부가 직접 연극놀이를 해보자고 한다.  노인은 소시 적에 배우노릇을 한 적이 있어, 노파는 노인에게 연극을 하자며 조른다. 노부부는 장롱에서 옷을 꺼내 입는다. 노인은 젊은 시절에 입었던 청색 윗도리에 청바지를 입으니, 여간 인물이 돋보이는 게 아니다. 노파도 젊은 시절에 입었던 주황색 나들이옷을 입으니 왕년의 영화배우 김지미 못지않게 예쁘다. 객석에서 탄성이 일고, 두부부의 연극놀이가 시작된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우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이 연출되고, 노부부가 젊은 시절 상대를 만나 사랑을 꽃피우던 시절이 재현되면서 관객은 저마다 자신의 첫사랑을 회상하며 극 속에 몰입하게 된다. 한동안 그러다가 수상기의 화면이 다시 들어오면서, 노부부의 연극놀이는 막을 내리게 된다.

 

김철영과 권수민이 노부부로 출연해 관객을 첫 사랑의 시절로 이끌어 가면서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최보영 작. 장윤정 드라마투르크, 이윤주 연출의 <드라마>를 따사롭고 감미롭고 감동이 이는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예술감독 김창화, 기획제작총괄 이정하, 무대감독 송훈상, 분장디자인 박팔영, 분장 김정현, 기획 임밀, 진행 주애리, 김주형, 백인주, 송우재, 촬영 김준호, 인쇄디자인 이후성, 무대 김인성, 음향 김동수, 조명 곽현주 등 스텝 진의 열정이 돋보여, 한국연극연출가협회(회장 김성노)의 제3회 신춘문예 단막극 잔치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3월 22일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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