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2014년 3월 공연총평
박정기
3월에는 새봄을 맞은 각 극단의 공연이 약동하듯 이어지고, 한국연극연출가 협회 주관 2014년 신춘문예 단막극제와 새 극단의 창단공연과 함께 기존극단의 세계명작공연이 대거 공연되었다. 그 중 특기할만한 공연을 평하고, 신춘문예 단막극제를 별도로 평한다.
1, 극단 광대무변의 톨스토이 원작, 마르크 로조프스키 각색, 김 관 연출의 음악극 <홀스또메르>
영등포 CGV 신한카드 아트홀에서 극단 광대무변의 톨스토이 원작, 마르크 로조프스키 각색, 김 관 연출, 조선아 음악감독의 음악극 <홀스또메르>를 관람했다.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1828 ~ 1910)는 남러시아의 야스나야 폴라나에서 니콜라이 일리치 톨스토이 백작의 넷째 아들로 출생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양친을 여의고 친척에 의해 양육되었다. 카잔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였으나, 대학의 교수법에 회의를 느끼고 자퇴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가 농민운동을 펼쳤으나 실패하였다. 1851년 군대에 입대하였으며 1855년 제대하였다. <유년시대>를 1852년 익명으로 발표하였고, <소년시대>, <세바스토폴 이야기> 등으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1962년 소피아와 결혼하고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등 러시아 문학 사상 불후의 대작들을 집필하였다. 그러나 정신적 고뇌와 방황 끝에 결국 종교에 귀의하고 <참회록>, <교회와 국가>, <나의 신앙> 등을 발표하여 독특한 톨스토이주의를 구축하였다. 그의 톨스토이주의는 현대의 기독교 대신 원시 그리스도교로 회귀하며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을 유지하고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복음서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을 공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폭력에 무저항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98년 <예술이란 무엇인가>, 1899년에는 대작인 <부활>을 집필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작품과 논문을 발표했다. 1910년에는 최후의 작품인 <인생의 길>을 발표하였고, 같은 해 여행 중에 객사하였다.
톨스토이는 종교와 인생관, 육체와 정신, 죽음의 문제 등을 작품 속에서 논하면서 나름대로 해답을 독자에게 제공하려 하였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으로 오늘날까지 우뚝 서 있으며, 오늘날 그의 대작 장편 소설들뿐만 아니라 <이반 일리치의 죽음>, <바보 이반> 등 단편, 중편 소설들도 유명하다.
<어느 말의 이야기 홀스또메르>는 가슴으로부터 생명의 소중함을 충격적으로 일깨우는 불행한 한 악대말의 이야기를 담은 톨스토이의 중편소설이다. 유명한 말(馬)의 목장주인 A.A. 스타호비치는 톨스토이에게 1860년경에 작가인 그의 형 M.A. 스타호비치가 쓰려고 생각했던 중편소설 『얼룩배기 말의 편력』의 슈줴트 이야기라고 회상하고 있다. 스타호비치는 1863년에 죽었기 때문에 그의 구상은 실현되지 않았고, 톨스토이가 슈줴트에 흥미를 갖게 되어 1861년에 이 중편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어느 여름날 저녁, 나는 마을에서 톨스토이와 만나 그의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방목장을 산책했다. 우리는 아주 볼품없는 피폐한 모습의 늙어빠진 말 한 마리가 방목장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말에게로, 이 불행한 악대말한테로 다가갔다. 그러자 톨스토이는 악대말을 쓰다듬으며 그저 지나가는 말로, 이 악대말은 틀림없이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려니 하고 들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 불행한 짐승의 처지가 될 뿐 아니라 나까지도 그런 처지로 끌어들였다. 나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그런데 말입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당신은 언젠가 말이었던 게 아닙니까. 그러시다면 어디 한번 말을 그려보지 않으시렵니까.” 」소설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홀스또메르>는 얼룩박이 늙은 말의 이름이다. 종자가 좋은 말이지만, 갈색이나 백색 말이 아닌, 얼룩무늬 말로 태어난 까닭에 마구간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신통치 않은 대접을 받는다. 게다가 홀스또메르가 몹시 좋아하는 암말 바조쁘리하 마저 백색 말 밀리에게 반해 정분을 나누니, 홀스또메르의 분노가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의 분노를 이해할 리 없는 주인은 홀스또메르를 거세시키고, 마구간지기에게 준다. 일꾼말로 전락한 홀스또메르의 기죽고 고달픈 생활이 펼쳐진다. 그러던 어느 날 홀스또메르는 공작 세르홉스끼의 눈에 띄어, 그의 소유로 되면서 경마장에서 경기마로 출전하게 되고, 거기서 우승을 해 일약 최고의 준마로 부상을 한다. 그런데 세르홉스끼 공작은 미모의 정부 마찌에의 육체에 빠져있었는데, 그녀가 공작이 경마에 몰두해 있을 때, 미남 장교의 유혹에 빠져 장교와 함께 도망을 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실을 안 세르홉스끼 공작은 홀스또메르를 몰아 두 남녀의 뒤를 쫓는다. 경기장에서 이미 체력을 다한 홀스또메르는 추적과정에 서 탈진해 불구가 된다. 공작은 홀스또메르를 홧김에 팔아버린다. 향후 홀스또메르는 여기 저기 팔려 다니다가 종당에는 자신이 태어난 마구간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싱싱하고 팔팔한 준마들 속에서 홀스또메르는 구박덩이가 되고, 몰매까지 맞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좋아했던 암말 바조쁘리하가 이 마구간에 들어옴으로써 그녀의 눈에 띄게 되고, 뭇 말들에게 홀스또메르의 내력이 소개된다. 마구간 주인이 된 장교와 공작의 정부였던 마찌에 앞에, 늙고 주정뱅이가 된 세르홉스끼 공작이 찾아온다. 공작은 자신의 말 감식안과 말에 대한 지식을 털어놓으며, 홀스또메르라는 전설마를 소개하지만, 정작 마구간 한편 구석에서 병든 몸으로 공작을 향해 계속 반가움을 표시하는 홀스또메르를 알아채지 못하고 돌아가 버린다. 낙담한 홀스또메르와 말의 최후인 늙은 말의 도살이 <어느 말 이야기>의 대미(大尾)가 된다.
무대는 상수 안쪽에 한단 높이의 연주석을 마련하고, 무대 여기저기에 굵은 각목으로 이십여 개의 기둥을 세워, 말을 붙들어 매놓는 장소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무대 좌우에 오래된 소달구지 원형을 장식처럼 세워놓고, 그 양쪽에 여물통을 놓았다, 무대 하수 쪽 여물통에는 물을 채워놓고, 그 옆에 숫돌과 도살용 칼이 보인다. 체격이 잘 갖춰진 남녀 이십 여 명의 출연자들이 검은색 의상과 벨트를 착용하고, 그리고 한 개씩 말의 꼬리를 흔들며, 마치 기계체조 선수 같은 동작으로 경기 말 역을 확실하게 연기한다.
홀스또메르만 백발에다가 허름하고 낡은 얼룩박이 의상과 절룩거리는 연기로 늙고 병든 말임을 객석에 전한다. 말 역 출연자의 동작과 율동, 그리고 합창이 마구간의 분위기를 절묘하게 묘사해 내고, 연주자들의 연주는 물론, 작중 인물들의 출중한 성격창출과 열연, 그리고 열창이 관객을 시종일관 공연에 몰입시킨다.
유인촌, 이경미, 서태화, 김선경, 김명수, 박원묵, 지대한, 이광열, 위 훈, 정주영, 김기분, 김정음, 마정석, 김지희, 김성진, 김진아, 이훈민, 김화랑, 엄준식, 박 진, 류 단, 하영진, 최윤정, 박용환, 편성찬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열창이 혼연일체를 이루어 음악극의 수준을 상승시키고, 고도의 예술적 경지로 몰아간다.
음악감독 조선아, 조명디자인 용선중, 의상디자인 조혜정, 무대디장인 김정란, 무대제작 함영규, 음향 정연복, 분장디자인 김유선, 제작감독 김연재 남지선, 프로듀서 신병훈, 제작 김명규 등 스텝진과 연주자들의 기량과 열정이 돋보여, 극단 광대무변의 레프 톨스토이 원작, 마르크 로조프스키 각색, 김 관 연출의 음악극 <홀스또메르>를 고수준 고품격의 예술적 공연으로 탄생시켰다.
2, 국수호 디딤무용단의 국수호 총 예술감독, 손진책 연출, 박범훈 음악감독의 <국수호 춤 50주년 춤의 귀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사) 국수호 디딤무용단의 국수호 총 예술감독, 손진책 연출, 박범훈 음악감독의 <국수호 춤 50주년 춤의 귀환>을 관람했다.
국수호(鞠守鎬 1948~)는 무용연구가·안무가 겸 대학교수이다.
서라벌예술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에 다시 입학하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5년 박금술(朴琴瑟), 송범(宋范)을 은사로 하여 한국무용을 사사 받고 1973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했다. 1985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무용학과 교수를 역임, 1988년 한국평론가협회에서 최우수 예술가로 선발되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서울예술단 예술감독, 1996년부터 1999년까지 국립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그 뒤 디딤무용단을 창단하여 이사장 겸 예술감독을 하고있다.
작품으로는 <농악>(1971) <무녀도>(1984) <대지의 춤>(1987)<봄의 제전>(1991) <명성황후>(1994) <티벳의 하늘>(1998) <한국환상>(2002) 그 외 다수다.
국수호의 춤은 기(氣)와 정(精), 신(神)과 백(魄)이 하나가 된 무용으로의 표현이다.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누비던 모습과 비교하는 고마운 평자도 있지만, 국수호의 춤은 일만 여 년 전 환인의 천부인(天符印) 사상과 오천년 전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 그 후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문무도, 신라의 화랑도의 정신을 계승하고, 고려의 불교사상, 조선의 유교사상, 그리고 조선후기 동학(東學)의 시천주(侍天主),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이어온 우리의 고유의 몸짓과 율동이지, 중국 위원(魏源)의 해동지지(海東地誌)를 확인하기 위해 그 궤적을 따라 답사(踏査)와 탐사(探査)를 한 몇 백 년 전의 고산자 선생의 행보(行步)라기보다는, 일만 여 년 전부터 이어온 기(氣)와 정(精), 신(神)과 백(魄)이 하나가 된 춤꾼 국수호의 예술적 표현이 비상(飛翔)의 동작으로 드러난 것이라 평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이번 공연에서 국수호의 춤은 천근만근의 무게로 관객의 뇌리와 가슴에 다가온다.
필자 같은 백발의 관객이 기억하는 1954년에 제작된 진 켈리와 스탠리 도넌이 공동감독한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진 켈리가 데비 레이놀즈와 사랑에 빠져,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는 날, 주인공 진 켈 리가 기쁜 마음에, 우산을 펼치지 않고 비를 온몸에 흠뻑 맞으며 물풍덩이 모습으로 벌이는 춤이나, 1955년에 제작된 진 네글레스코 감독의 영화 “키다리 아저씨(Daddy long leg)”에서 레슬리 캐론과 프레드 아스테어가 열과 성을 다해 벌이는 탭댄스의 산뜻 발랄 상쾌한 명장면과는 달리, 국수호의 은인자중(隱忍自重)하고, 선비정신이 춤사위에 실려 객석 맨 뒤까지 그 품격과 체취가 전달되는 듯싶은 느낌은, 그의 50년간의 끊임없는 노력과 연마, 그리고 창의력의 소산이리라. 또한 춘삼월과 어울리는 명무와 명창의 “춘향전”에서의 사랑장면이라든가, 동료국악인의 찬조출연과 연주를 하면서 그들도 흥에 겨워 벌이는 즉흥 춤사위, 그리고 “적벽대전”을 내용으로, 타악의 뇌성벽력(雷聲霹靂) 속에서 제자와 함께 벌이는 용호상박의 대결 춤에서, 제자 겸 후배 무용인이 돋보이도록, 한발 물러서서 양보와 배려를 아끼지 않는 대가의 모습은 콧날이 시큰거리는 감동적인 명장면이었다.
백발이지만 마무리를 사랑으로 매듭짓는 공연구성도 수준급이라 하겠다.
그러나 춤 구성 고독에서, 딸에게 버림받고 광야에서 방황하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의 고독을 연출했으나, 그 장면은 “리어왕”이라기보다는 천년 신라의 패망과 그 최후의 임금 경순왕의 비감어린 모습을 보는 듯했고, 대한제국을 송두리째 일본에 빼앗기고 황제 복을 벗은 고종의 비장 침울한 모습이 연상됨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끝으로 대궐전각과 연못에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고루거각, 그리고 꽃잎이 이리저리 흩날리는 정원, 탐스러운 대나무 숲속 풍경을 바라보면서, 자칫하면 고관대작이 고량진미를 잔뜩 차려놓고 기녀들과 벌이는 질탕한 놀이판으로 변질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 대중적이고 서민취향의 공연으로 이끌어 가, 고품격 고수준의 우수한 예술적 공연으로 승화시킨 연출가의 기량이 감지되고, 마당놀이 30년을 통해 획득한 손진책 연출가의 공연철학이 이번 국수호의 춤 공연을 통해 잘 드러난 것이라 평하겠다.
성기숙의 해설과 패널로 출연한 이어령, 최태지, 김성녀, 그리고 국악인 안숙선, 정하영, 김영재, 정덕화, 이정윤등의 기량과 열정이 돋보였고, 연주를 한 허윤정, 이용구, 유경화, 원나경, 김태영, 강민수, 문경아, 조성재, 이재하, 이호진의 타악과 현악, 목관악기의 연주, 그리고 열창도 수준급이었다.
총예술감독 국수호, 음악감독 박범훈, 작 편곡 이태백 한승석 조석연 강상구, 미술감독 박동우, 조명감독 이상봉, 영상디자인 김세훈, 영상제작 강재홍, 영상감독 소달영 이주언 김선용, 음향감독 도명호, 의상 이수동 이서윤 한진국, 분장 김종한 소인경, 사진 한용훈, 제작감독 채향순 전순희 김승일 노해진, 무대감독 이도엽, 표지사진 권혁재 등 스텝진의 노력과 기량이 하나가되어 (사)국수호 디딤무용단의 손진책 연출의 <국수호의 춤 50주년 춤의 귀환>을 명작무용공연으로 탄생시켰다.
3, 국립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김종환 역 이병훈 연출의 <맥베스>
명동예술극장에서 (재)국립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김종환 역, 이병훈 연출의 <맥베스>를 관람했다.
최초의 <맥베스> 영화는 1948년에 명배우 오손 웰즈가 감독한 <맥베스>이다.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하고 셰익스피어 원작의 줄거리를 따랐으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로 당시에는 혹평을 받았으나, 상징성과 기법에서 현재는 좋은 영화로 평가를 받는다.
1971년에 제작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스>는 세 명의 마녀가 아니라, 수많은 마녀와 마녀의 나신, 그리고 레이디 맥베스까지 몽유병 상태에서 나체로 출연을 시키는 등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이 많은 영화로 기억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극단 신협이 1950년대 초반 6 25 동란기간에 <햄릿> <오셀로> <맥베스>를 공연했다.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역사에서 취재한 작품이다. 주인공 <맥베스>는 국왕 덩컨(Duncan)의 사촌으로 귀족이며, 반란군을 진압하는 등 많은 전투에서 공적을 쌓은 훌륭한 장군이다. 인간성이 풍부하지만 연약한 성격에다 강렬한 시적 감수성을 지닌 그는 어느 날, 장차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리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 엉뚱한 야망을 품는다. 그의 아내 역시 그에게 왕이 되라고 부추긴다.
그는 덩컨 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르지만, 점점 많은 사람을 죽이는 폭군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맥베스 부부는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으로 공포와 불면의 나날을 보낸다. 마침내 부인은 몽유병의 발작으로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맥베스도 왕자 맬컴(Malcolm)과 함께 잉글랜드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쳐들어 온 맥더프(Macduff)의 칼을 맞고 죽는다. 권력의 욕망이 비극적 종말을 불러온 것이다. 이제 정당한 왕위계승자인 왕자 맬컴이 왕위에 오르고 스코틀랜드는 질서가 회복되어 안정을 되찾는 등 모든 비정상적인 것들이 바로 잡혀 제자리를 찾게 된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 비교적 짧은 작품이며, 사건이 신속하게 집약적으로 전개되는 특성이 있다. 작품의 구성을 보면 부차적 사건(sub-plot)이 없고 플롯은 오로지 주인공 <맥베스>에게 집중되고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주의는 <맥베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극은 주인공 한 사람에 대한 분석 이상의 그 무엇을 제공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맥베스>의 왕위 찬탈 과정에서 보는 것처럼 마녀들의 예언이 곧장 현실로 이루어지는 등 사건이 속도감 있게 집약적으로 전개되어 관객에게 강렬하고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셰익스피어 비극의 구조는 3부로 되어 있다. 제1부는 극의 갈등을 일으킬 사건을 설명하는 부분인데, 제시부분(Exposition)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짧은 소동과 혼잡이 일어나고 주인공은 화제에만 올라 관객을 긴장시킨다. 제2부는 갈등의 시초·전개·기복을 취급하는데 이것을 갈등부분(Conflict)이라 한다. 여기에서는 사건이 생장하고 절정(Climax)을 지나 전환점에 달한다. 제3부는 갈등의 결말이다. 여기에 이르면 흔히 전쟁이 벌어지고 사건이 자연스런 파국적 결말을 맞게 된다. 이것을 대단원(Catastrophe)이라 한다. <맥베스>는 이러한 전형적인 셰익스피어 비극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명동예술극장의 무대는 건설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멍 난 철판을 중간 막과 가리개로 사용을 한다. 안쪽의 철판은 구멍 대신 육각형의 문양이 들어가 있고, 그 두 개의 철판을 무대 좌우로 열고 닫아 장면변화에 대응한다. 철판에 출입문이 달려있어 출연자들의 등퇴장 로로 사용된다. 도입에 무대 바닥에서 새빨간 의상의 요염한 마녀 세 명이 뚜껑을 들치며 등장하고, 배경 막 가까이에 있는 무대좌우로 연결되는 긴 교량을 무대 상하로 이동시키거나, 좌우로 경사를 지도록 움직여 극적효과를 높이고, 무대 왼쪽에 레이디 맥베스의 침상을 마련해, 맥베스가 돌아와 레이디 맥베스와 벌이는 사랑장면을 열정적으로 다뤘고, <맥베스>가 왕좌에 오르는 장면은 무대 중앙에 삼단높이의 단을 계단식으로 쌓아놓고 그 위에 옥좌를 배치해 존엄성을 높였다. 대관식 직후의 연회장에서의 식탁과 의자의 배치도 무대 중앙에 마련하고, 극의 후반에 버남 숲의 이동장면은 배경 막에 숲의 영상을 투사해 일렬로 늘어선 병사들의 방패에도 숲의 영상이 투사되어 장관은 물론 명장면이 되었다. 맥베스와 맥다프의 칼싸움장면은 텅 빈 무대에서 펼쳐진다. 대단원은 철제 가리개가 닫히고, 무대바닥의 뚜껑이 열리면서 도입에서처럼 요염한 마녀 셋이 구멍에서 기어 나와 “좋은 것은 나쁘고, 나쁜 것은 좋은 것, 안개와 더러운 공기 속을 날아다니자”하며 퇴장하는 장면에서 극이 마무리가 된다.
<맥베스>로 박해수가 출연해 훤칠한 용모와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레이디 맥베스로 김소희가 출연해 독특하고 탁월한 성격창출과 관능적인 연기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곽은태, 남기애, 한갑수, 김현웅, 김선화, 한규남, 장재호, 김정환, 송영근, 한동규, 변유정, 이종무, 김수연, 이원희, 장원석, 김정훈, 홍아론, 정현철, 이승헌, 강대진, 허진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단련된 신체는 국립극단의 발전적 장래를 예측케 한다.
미술 신선희, 조명 김형연, 의상 이유숙, 음악 박소연, 음향 엄태훈, 소품 최슬기, 분장 안혜영, 영상 최용석, 움직임연출 유진우, 보이스코치 류미, 신체지도 이상철, 드라마투르기 이은기, 그리고 그 외 스텝진의 노력과 열정이 하나가 되어 (재)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김종환 번역, 최창근 윤색, 이병훈 연출의 <맥베스>를 세계 연극제에 출품해도 좋을 독특하고 탁월한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다만 무대장치에 지나치게 힘을 들이거나, 원작에도 없는 정사장면의 삽입이 국립극단의 공연으로 타당한지는 고려해 볼 문제라 하겠다.
4,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정종임 예술감독·음악감독, 박선희 각색 연출의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에서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정종임 예술·음악감독, 박선희 각색·연출의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를 관람했다.
<햄릿>을 판소리로 제작한 공연은 처음이다. 게다가 여성국악인 4인이 출연해 <햄릿>의 남녀 주요배역을 모두 연기해 낸다.
1950, 60년대에 진경여성국극단에서 남자 역을 김진경·김경수 자매가 남성보다 더 남성답고 출중하게 연기해 갈채를 받았고, 근자에는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에서 김성녀 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남성역을 멋들어지게 연기하는 것을 관람한 적이 있지만, <햄릿>의 전 배역을 4인의 젊은 여성국악인이 국악뮤지컬로 공연한 것은 최초가 아닌가 싶다.
음악감독의 연주와 함께 4인의 출연자가 단정한 미모와 균형 잡힌 몸매, 그리고 음전한 모습으로, 햄릿의 고뇌와 사랑, 그리고 복수를 호연과 열창으로 그려내며, 2시간 가까이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고 심취하도록 만들어, 공연을 성공으로 이끌어 간다.
무대는 중앙에 축소된 목조건물이 비스듬히 자리를 잡았다. 중앙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마루방 형태의 작은 공간이 있고, 벽에는 트로피형태의 조형물 몇 개와 철가면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방의 오른쪽 계단을 올라가면 이층의 마루방이 되고, 올라가는 계단 위로 굴뚝모양의 뾰족한 지붕이 보이고, 흰 밀가루 반죽 같은 긴 조형물을 기와대신 지붕 위에 얼기설기 얹어놓았다.
이층은 아래층보다 넓고, 그 오른쪽 끝에 아래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고, 그 반대쪽에는 사다리를 걸쳐놓아 무대에서 기어오르도록 기대놓았다. 이층방의 객석과 가까운 모서리에는 두꺼운 책 위에 사람의 머리 부분의 해골을 얹어놓았고, 그 오른쪽 방을 바닥 난간에 검을 두 개 걸어놓았다. 건물의 벽 대신에 광목 같은 흰 천을 벽처럼 늘어뜨려 놓고, 극의 오필리어의 죽음장면에서 천을 길게 풀어, 슬픔을 상징적으로 연출해 내기도 한다.
건물 하수 쪽 객석 가까이에 “ㄴ”자 형태의 나무조형물을 놓아 의자구실을 하고, 그 위에 인형을 얹어놓았고, 건물 상수 쪽으로는 음악감독이 직접 연주와 기계를 작동할 수 있도록 타악기와 피리, 그리고 컴퓨터와 음향기기를 비치해 놓았다.
연극은 도입에 어둠 속에서 4인의 여배우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16세기의 남자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검은색 의상으로 초상화의 고동색과는 색깔만 다를 뿐이다.
4인의 여배우는 주요남녀등장인물 전부를 연기한다. 부왕의 망령이 등장할 때에는 말머리 형태의 탈을 쓰고 연기한다. 망령으로부터 독살 당했다는 소리를 들은 <햄릿>은 그 진위를 가리기 위해 연극을 꾸미고, 관극을 하던 숙부가 허둥지둥 자리를 피하자, 망령의 이야기가 진실임을 알게 된다. 숙부인 왕이 괴로워하는 장면에 <햄릿>이 칼을 겨누고 등장하지만,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모습에 <햄릿>은 칼을 거두기도 하고, 어머니를 일깨워주기 위해 <햄릿>이 어머니에게 찾아갔을 때, 모자와의 대화를 누가 엿듣는 낌새를 알아차린 <햄릿>의 칼이 번쩍이자, 햄릿이 사랑하는 오필리어의 부친이 쓰러진다.
아버지의 죽음을 안 오필리어가 죽기 직전에 미칠 듯한, 심정으로 부르는 노래는, 관객의 가슴깊이 아로새겨지듯 스며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원작대로 <햄릿>의 줄거리가 이어지면서, 후반부에는 등장인물 전원이 북과 꽹과리를 두드리며 판소리로 <햄릿>의 결투장면과 왕비의 독배마시는 장면, 레어티즈가 자신이 바른 독 묻은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 모든 것이 숙부왕의 흉계임을 밝히고, <햄릿>도 독으로 죽어가며 마지막 힘을 다해 숙부의 가슴을 찌르는 대단원까지 4인의 판소리는 관객을 완전히 공연에 심취토록 끌어들인다.
공연을 마친 4인은 의상과 단발머리 가발을 벗어 무대 위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본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가 극장 출입문을 향해 퇴장하면, 이층마루 위의 해골바가지에 조명이 집중되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송보라, 조엘라, 이원경, 최지숙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소리, 그리고 노래는 관객을 시종일관 공연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갈채를 받는다.
다만 남자 역과 여자 역의 구별이 확실치가 않아, 남성배우 역의 연구와 연습이 보강되어야 하겠다.
무대디자인 김대한, 조명디자인 김성구, 의상디자인 이재희, 음향디자인 빈동준, 분장디자인 안혜영, 무대감독 명종환, 조연출 이혜원, 그 외 스텝 모두의 노력과 열정이 잘 드러나,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정종임 예술·음악감독, 박선희 각색·연출의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를 독특하고 창의력이 돋보이는 국악뮤지컬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5, 극단 프랑코포니의 빅토르 아임 작, 김보경 역, 까띠 라뺑 연출의 <무대게임>
게릴라극장에서 극단 프랑코포니(대표 임혜경)의 빅토르 아임(Victor Haim) 작, 김보경 역, 임혜경 드라마 트루기, 까띠 라뺑(Cathy Rapin) 연출의 <무대게임(Jeux de scène)>을 관람했다.
빅토르 아임(VICTOR HAIM 1935년~)은 프랑스 오드센 지방에 있는 아니에르에서 1935년 유대계 그리스인과 터키인 부모 사이에서 출생했다. 극작가, 영화와 텔레비전 시나리오 작가, 배우, 연출가로 활약하고 있다. 작품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현재까지 5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대부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유머로 세태를 꼬집는 현실 참여 작가로 알려져 있다. 사르트르, 브레히트, 골도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현재까지 꾸준히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작품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등장시켜 인간의 비극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럽고 초라한 모습을 그린다. 뿐만 아니라, 사회와 권력의 모순과 폐해, 부조리를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문체로 비틀어 풍자하고 꼬집는다. 모든 작품이 ‘인간에 의한 인간의 굴욕’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으며 대부분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본질은 비극적이다. 이런 이유로 아임은 자신을 ‘인간적인 인간 혐오자’라 부르기도 한다. 1983년부터 1994년까지 교육자로서 여러 연극 학교와 대학에서 공연 예술, 연기를 지도하며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또한 ‘극예술작가ㆍ작곡가협회(SACD)’ 이사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극예술인들의 권리 보호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한편 프랑스연극센터 사무국장직을 맡아 연극 진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역자 김보경은 프랑스 스탕달그르노블3대학에서 언어학 학사, 석사 학위를 받고, 리옹2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프랑스어와 한국어 언어 문제에 대해 비교언어학 관련 연구 논문을 여러 편 썼고, ≪새한불사전≫(공저,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7)의 한불 대역 집필 작업에 참여했으며 ≪페로 동화로 배우는 프랑스어 I, II≫(공저, 도서출판 만남, 2007)를 펴냈다. 역서로는 ≪라팽 라팽≫(공저, 서울여자대학교 출판부, 2002), <나는 감자>(청어람 주니어, 2009), ≪뿡! 방귀 뀌는 나무≫(청어람 주니어, 2010), ≪톡! 쏘는 물고기≫(청어람 주니어, 2010) 등이 있다
무대게임은 여류연출가가 자신의 작품인 1인극을 공연하기 위해 그녀와 절친한 여배우와 극장에서 첫 대면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연습실에서 낭독을 하고, 공간이 넓은 연습실인 경우에는 그 장소에서 동선도 긋고, 공연이 임박해야 무대장치가 갖추어진 극장에서 조명, 의상, 음악, 대소도구 등을 포함해 총연습 과정에 들어가는데, 이 작품에서는 첫 연습부터 연습실이 아닌, 극장에서 하는 것으로 설정을 했다.
우리나라는 1세대 연출가들 시절부터 연출이 배우들과 작품분석을 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성격창출이나, 감정의 기복, 발성의 고저, 대사의 속도와 강약을 논하고, 창작물인 경우에는 작가를 초청해, 작의와 작품의 주제 및 배경, 작중인물의 성격을 들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작가 겸 연출가의 작품을 출연 여배우가 읽고 분석한 것으로 설정하고, 여배우에게 작품주제를 설명하도록 강요한다. 당황해 우물쭈물하는 여배우에게 다행히 휴대전화가 걸려와 거북스런 장면에서 벗어나지만, 사실주의 연극을 출발점으로 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반연극이나, 전위극이 난무하는 프랑스어 문화권에서는 작품의 해석이나, 무대표현에서, 작가의 의도대로 공연하게 되는가를, 이 연극을 통해 관찰할 수 있겠기에, 필자에게는 몹시 흥미로운 관극이 되었다.
당연히 연습과정에 연출가와 배우가 의견충돌을 하는 경우가 있으나, 우리나라의 1세대 연출가들은 대부분 뛰어난 연기자였고, 수많은 희곡을 읽고 공연을 관람한 인물들이었기에, 연출은 배우들의 대사영역까지 지도하는 능력이 있어, 원만한 상태에서 연습이 이어졌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1세대 텔레비전 연출가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연습장에, 평상복이나 작업복차림의 배우들의 모습이 일상화 되어 있는데, <무대게임>에서는 여배우가 나들이 복으로 출연한 것이 이채롭다. 프랑스에서 공연한 사진을 보면, 무더운 장소였는지, 여배우가 거의 나체나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등장을 하고, 후반부에 연출가와 배우가 다투는 장면에서, 두 여인이 얇은 상의만 걸친 채 하반신을 완전 나신으로 상대의 멱살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여, 충격적이기도 하다.
무대는 게릴라극장에 본래 있는 조명용 사다리 4개가 무대 왼쪽 벽면과 오른쪽 벽면에 세워둔 채 그대로 사용되고, 배경 가까이에도 계단형태의 조형물을 왼쪽 기둥에 기대어 놓았다. 무대 왼쪽에 긴 탁자와 의자를 비치해 두고, 그 탁자를 옮기거나 연출가와 배우가 밀고 당기며 승강이를 벌이기도 한다. 무대 오른쪽에는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남자의 나체의 조형물을 세워놓고, 두 여인이 조형물의 팔과 다리를 집어들고 흔들며 연기를 하기도 한다. 남자의 나체 조형물 옆으로 소형 피아노 한 대와 피아노의자가 있다. 여배우가 가끔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연주를 하지는 않는다.
연극은 도입에 연출가가 혼자 있는 무대에 여배우가 등장해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발성연습과 발음연습을 한다. 연출가가 인기척을 내면서 두 사람은 상면하고, 조명담당의 이름을 부르며, 불을 밝혀줄 것을 부탁한다. 조명담당에게 조명의 강도와 색감 등을 요구하는 모습이 후반부까지 이어진다. 일상적인 대화와 작품관련 이야기가 오고가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연습장에서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하거나, 꺼놓는데 반하여, 이 작품에서는 휴대전화의 벨이 최고음으로 작동된다. 친지들의 전화나 기자와의 통화가 거듭되고, 후반에는 여배우의 연인으로 설정된 국정원장의 통화가 이어진다. 무대게임이라는 연극의 제목처럼, 연출가와 배우의 작품의 주제와 내용을 놓고 티격태격하는 모습과, 후반부에는 긴 탁자를 서로 밀고 당기며 대결하는 양상을 보인 후, 출연을 하지 않겠노라는 여배우의 주장으로 다툼은 중단되지만, 다시 연출가에게 걸려온 기자와의 통화가 여배우와의 통화로 이어지면서, 여배우는 다시 출연할 결심을 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되지만,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작품이 과연 무슨 내용이고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가 않는 독특한 연극이다.
김시영과 임선희가 여배우와 작가 겸 연출가로 출연한다. 두 여배우의 열연과 호연은 한국연극의 발전적 장래를 예측하기에 충분하다. 연출을 한 까띠 라뺑 교수의 한국연극에 대한 이바지도 이번연극을 통해 평가할 수 있다.
무대디자인 심채선, 조명디자인 김철희, 분장디자인 장경숙, 무대장치 이정조, 철공 성호, 목공 장종오 김득문 윤영걸, 작화 이재성 김종덕, 조명오퍼 이현경과 그 외 조명팀, 분장 이선미, 조연출 김형용, 최현, 자막오퍼 신지현, 포스터 박재현, 공연자진 이지락, 연습사진 박지용 등 스텝진의 노력과 (주)쇼앤라이프 대표 권호성, 기획실장 이정민, 제작피디 임정숙, 홍보 이지은, 기획팀 신의주, 홍보지원 박지용, 티켓 김아영, 하우스매니저 김용문 등 기획진의 열정이 하나가 되어, 극단 프랑코포니(대표 임혜경 교수) 제작, 빅토르 아임 원작, 김보경 역, 임혜경 드라마트루기, 까띠 라뺑 (Cathy Rapin)연출의 <무대게임(Jeux de scène)>을 새 봄, 꽃망울이 새로 피어나, 서로 자태를 자랑하는 듯한, 예쁘고 향기로운 공연으로 탄생시켰다.
6, 극단 숲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신정옥 역, 임경식 연출의 <십이야>
스타시티 예술공간 SM에서 극단 숲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신정옥 역, 이송 예술감독, 임경식 연출의 <십이야(十二夜)>를 관람했다.
<십이야(The Twelfth Night)>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600년에 쓴 3막 희극이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희곡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전통 설화에서 소재를 땄다. 십이야(十二夜)란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째에 해당하는 1월 6일을 의미한다. 이 희극은 1601년 1월 6일 이탈리아의 오시노 공작을 환영하기 위하여 엘리자베스 여왕 궁정에서 초연되었다.
<십이야>의 줄거리는 모습이 서로 닮은 쌍둥이 남매 세바스챤과 바이올라는 일리리아 해안에서 선박의 난파로 헤어진다.
상륙한 누이 바이올라는 세사리오로 변장하고 오시노 공작의 하인으로 들어간다. 오시노 공작은 올리비아라는 이웃 여자영주를 연모하나 그의 청혼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인 세사리오가 실은 그를 사랑하는 바이올라라는 여인인 줄 모르는 공작은 세사리오를 처녀영주 올리비아에게 보내 계속 청혼의 뜻을 전한다.
심부름을 하는 바이올라는 무척 괴로운 것인데 더욱 난처한 것은 처녀영주 올리비아가 세사리오를 남자인줄 알고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처녀영주 올리비아의 집안에는 그녀의 집사 말볼리오, 그녀의 친척 토우비 경, 그녀의 어릿광대 페스테가 있다. 토우비 경은 앤드루 에이규치크 경과 더불어 주로 술로 소일한다. 부유하나 어리석고 용기 없는 앤드루 경은 올리비아를 소개해 준다는 말에 솔깃하여 토우비 경에게 계속 술을 사서 먹인다.
한편 익사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바이올라의 오빠 세바스챤은 안토니오란 선장의 구조로 목숨을 건져 선장과 더불어 일리리아에 온다. 안토니오 선장은 돈지갑을 세바스챤에게 주고 헤어진다.
처녀영주 올리비아는 이제 노골적으로 세사리오에게 사랑을 표시하게 된다.
앤드루 경이 실망하여 일리리아를 떠날까 염려한 처녀영주의 친척 토우비 경은 앤드루 경을 충동하여 세사리오와 결투하게끔 만든다. 겁쟁이 앤드루 경과 여자인 세사리오는 내키지 않는 칼을 뽑는데 이때 안토니오 선장이 달려들어 세사리오를 구한다. 그는 세사리오를 세바스챤인 것으로 착각한다. 안토니오는 이 나라의 적대국에 속한 사람이라 관헌에 붙잡힌다. 그는 세사리오에게 돈지갑을 달라고 했으나 세사리오는 당연히 안토니오 선장을 본 일조차 없다고 말한다. 우정을 맹세한 안토니오는 세사리오를 세바스챤으로 알고 당연히 분노한다.
세사리오가 아주 허약한 것을 눈치챈 앤드루 경이 그를 해치려 들지만, 이번에는 세바스챤이 나타나 앤드루 경을 부상시키며 친구를 도우러 달려온 처녀영주의 친척 토우비 경도 부상시킨다. 올리비아가 이때 등장해, 세바스챤을 세사리오로 잘못 알고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다가 신부의 주례 하에 결혼식을 올린다.
오시노 공작은 변장한 바이올라와 다른 수행원을 거느리고 처녀영주 올리비아의 집 앞에 나타난다. 이때 마침 공작의 관헌들이 안토니오 선장을 호송해 온다. 안토니오는 세사리오를 세바스챤으로 알고, 세사리오가 그에게 구조된 젊은이이며 자신의의 돈지갑도 갖고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세사리오가 당연히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하고, 세사리오의 말을 오시노 공작이 인정한다.
그러나 처녀영주 올리비아가 세사리오를 남편이라고 부르면서 신부를 불러 증언까지 시키자, 오시노 공작은 자신의 연서를 올리비아에게 전달하지 않고 공작대신 처녀영주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세사리오에게 배은망덕한 짓을 했노라고 몹시 화를 낸다.
이때 토우비 경과 앤드루 경이 상처투성이로 나타나서는 세사리오에게 당한 것이라고 함으로써 더욱 사태는 혼란에 빠진다.
마침내 바이올라의 쌍둥이 오빠 세바스챤이 나타나 남매가 서로를 알아봄으로써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게 된다.
오시노 공작은 그의 하인 세사리오가 실은 자기를 사랑해 온 아름답고 현명한 바이올라라는 여인이란 사실을 알고, 처녀영주 올리비아를 바이올라의 오빠인 세바스챤에게 양보하고, 두 쌍이 합동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하는데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위의 내용과 복선으로, 처녀영주 올리비아의 집사 말볼리오는 이집안 사람들에게 거만하게 처신해 모두의 미움을 산다. 올리비아의 시녀 마리아는 올리비아의 친척 토우비 경과 공모하여 말볼리오를 곯려 준다. 즉 올리비아의 필적을 위조한 편지를 말볼리오가 발견해 읽도록 한다. 편지 내용은 올리비아가 말볼리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고, 만약 이 고백에 답하려거든 노란색 양말을 신고, 대님을 십자로 매고, 자기를 보기만 하면 언제나 미소를 지으라는 내용이다. 이 계획은 성공을 하고, 올리비아는 말볼리오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그를 어두운 방에 수감시킨다. 마리아의 말을 듣고 페스테는 신부로 변장하고, 어두운 방에 나타나 말볼리오를 괴롭힌다. 토우비 경은 말볼리오를 함정에 빠뜨리는 데 수훈을 세운 마리아와 결혼하게 되고, “네놈들 모두에게 복수하고 말겠다”고 외치는 말볼리오의 부르짖음과는 달리, 다른 등장인물들은 행복한 결말로 연극은 막을 내린다.
무대는 조형예술품 같이 만들어 진 아치형의 출입문이 네 군데 세워진 고풍스러운 거실에서 연극이 진행되며, 조명의 변화로 장면변화에 대응한다. 음악은 도입에 요한스트라우스의 비엔나 숲 속의 이야기 같은 왈츠 음악으로 시작되면서, 중간에는 사랑의 기쁨과 세레나데 등으로 이어지고, 관객을 아름답고 오묘한 사랑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분장과 의상에서도 작품과 어울리도록 힘을 기울인 흔적이 여실히 드러난다.
김장호, 권용식, 권혁일, 정성원, 차용환, 서재형, 정구민, 임지환, 이준영, 김동화, 백송이, 김선진, 장성주, 김현진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이 돋보이고, 산뜻 발랄한 연기와 호연은 극단 숲의 발전적 장래를 예측케 한다.
기술감독·조명디자인 김명남, 무대디자인 김현정, 의상디자인 박은정·이지선, 제작감독 오경선, 무대디자인보 조승현, 무대제작 정준기·안준표, 조명디자인보 이주원, 조명오퍼 신의정·김소진, 음향오퍼 최승희, 의상제작 박자인·성다슬·정승희·신상아, 조연출 정가영, 조연출보 서지원·유은지, 진행 김태나·김효정 등 스텝진의 기량과 열정도 돋보여, 극단 숲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신정옥 역, 이송 예술감독, 장지연 드라마투르그, 임경식 연출의 <십이야>를 화창한 봄과 어울리는, 아름답고 발랄하며 꽃향기가 흩날리는 듯싶은 공연으로 탄생시켰다.
7, 극단 백수광부의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 작, 김알리사 역, 동이향 윤색, 이성열 연출의 <과부들>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극단 백수광부의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 작 김알리사 역 동이향 윤색 이성열 연출의 <과부들>을 관람했다.
이 연극은 군사 쿠데타로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를 무너뜨리고 17년간 집권한 피노체트 군사독재정부시절이 배경이다.
피노체트는 1915년 칠레의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나 1936년 산티아고에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직업군인이 되어 육군사관학교 부 교장을 지냈다. 1956년 미국 주재 대사관 무관에 이어 제6사단장, 1969년 육군참모장, 1973년 8월 대장으로 육군총사령관이 되었다. 같은 해 9월 육군·해군·공군 및 경찰군 총사령관으로 군사평의회를 결성, 쿠데타를 일으켜 아옌데 정권을 전복하고 군사평의회 의장에 취임하였다. 1974년 12월 대통령에 취임하고 1980년 9월 국민투표로 장기집권을 노린 신헌법을 통과시켜 1981년 3월 신헌법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 후 계속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시한 채 독재정권을 계속하다가 1986년 극좌단체에 의한 암살미수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988년 10월 대통령 집권연장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패배하여 1989년 12월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파트리시오 아일윈이 당선된 뒤 1990년 3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피노체트가 17년간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공식 보고된 숫자로만 3197명이 정치적 이유로 살해되었고, 수천 명이 불법 감금된 채 고문당하고 강제 추방되었으며, 1000여 명이 여전히 실종 상태로 남아 있는 등 독재자로 악명을 떨쳤다. 이로 인하여 1998년 10월 런던에서 영국 사법당국에 의하여 체포되었으나 2000년 3월 건강을 이유로 석방된 뒤 칠레로 귀국하였다. 귀국 후 가택연금 상태에서 인권유린 등의 혐의로 300여 건의 기소를 당하였으나 형사처벌을 받기 전에 2006년 12월 사망하였다. 장례는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고문으로 아버지를 잃은 바첼레트 대통령의 거부로 국장(國葬)으로 치러지지 못하고 군장(軍葬)으로 치러졌으며, 피해자들에 의하여 훼손될 것을 두려워한 피노체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은 화장되었다.
아리엘 도르프만은 유태계 아르헨티나 작가로 칠레로 이주해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에 종사하다가, 군사 쿠데타로 피노체트가 집권하자 미국으로 망명해 30년간 미국에 머물며 반 군부 활동을 벌였다. 미국의 9 11테러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고, 피노체트가 물러나자 귀국한 후에는 집필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작품 <죽음과 소녀>와 <경계선>이 1990년대와 2000년대 극단 미추에 의해 공연되기도 했다.
이 연극은 군 주둔지역에서 남성이 모두 차출되어 가거나, 강제 연행된 자의 아낙들이 강가에서 지아비나 동생 또는 자식을 애타게 기다리며 엮어가는 내용이다.
무대좌우에 강 언덕이 있고, 무대전면에 강이 흐르는 것으로 설정이 되었다. 배경 막 가까이 엄청난 크기의 나무를 두 세 그루 세워놓았고, 가지와 잎은 한 덩이가 되어 중압감을 느끼게 되고, 그 오른쪽으로 같은 색상의 덩이가 먹구름을 연상시킨다.
강 언덕은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남편이나 자식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망부석 같은 기다림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빨래터로 그녀들의 일상이 묘사되기도 한다. 장면이 바뀌면 언덕은 성당의 고해소(告解所)가 되는가 하면, 인질 구금(拘禁)장소가 되기도 한다.
2부에서는 십자가 상 앞 기도장소와 주둔군 막사로도 설정된다. 극 중간에 강 언덕이 무대 양쪽으로 들어가면, 드넓은 강의 도도한 흐름을 감지할 수도 있다.
대단원에는 여인들이 수레에 의자를 잔뜩 실어다 놓고 불을 강을 막아 둑처럼 쌓아놓은 장면과 그 앞에 일 열로 늘어서서 집단 사살당하는 장면은 충격적이고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연극은 도입에 주인공 과부가 강가에 앉아 남편을 기다리는 장면에 시작된다. 과부들이 떼 지어 등장하고, 과부들은 모녀(母女)도 있고, 고부(姑婦)간이기도 하고, 동서(同棲)지간이거나 자매(姉妹)관계거나 친척(親戚) 또는 친구, 그리고 이웃들이다.
과부들의 한결같은 염원은 부친 또는 남편이나 아들을 비롯해 남성가족들이 돌아오는 것이다. 이 연극에서는 남자들이 장기간 억류되고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묘사가 되니, 엄밀히 따진다면 <과부들>이라는 제목은 맞지가 않다.
시체가 한구가 강물에 떠내려 오면 주인공 과부는 자신의 남편이라는 주장을 하고, 주둔군 장교에게 시체의 장사를 지내겠다는 탄원을 한다. 주둔군은 주민의 뜻을 이해하려는 화합 형 대위와 묵살하는 강경파 중위로 대립을 한다.
그러나 주둔군은 죽음의 원인을 두고 자신들의 책임론이 대두되는 것이 불편해, 주인공의 탄원을 거절하고 강경파인 중위는 시체를 가져다 불태워버린다.
시체가 또 떠내려 오고, 과부들이 떼 지어 몰려와 저마다 자신의 남편이라는 주장을 한다. 이번에는 주둔군 대위가 연고자를 가려내고 대위의 인정 하에 과부들이 직접 시체를 거두고 매장토록 한다. 이로 인해 주둔군 대위와 중위와의 갈등이 증폭된다. 향 후 대위는 시체매장을 군주도하에 거행하기로 결정한다.
주둔군 중 한 병사와 미모의 젊은 과부와의 치정행각이 벌어진다. 젊은 여인의 끓어오르는 욕정이 도덕심을 극복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후반부에 강물에 빠져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다.
시체가 또 떠내려 오고, 또 과부들이 몰려드니, 군은 성당의 신부까지 불러들여 증언을 하도록 한다. 그러나 신부인들 부패한 망자의 신원을 어찌 구별하랴? 결국 시체는 군에서 끌어다 처리하고, 이로 인해 과부들은 강가에서 촛불시위를 벌인다. 그러나 바람이 거센 대서양과 태평양의 경계선에서 촛불시위라니….? 아마 횃불시위가 제격이리라.
억류되었던 남자들 중에 폐인이 되다시피 한 인물이 군의 배려로 귀가한다.
그러나 송장과 다름없는 남자가 어찌 남자구실을 하랴?
과부들의 기다림이 계속되고 이를 저지하려는 주둔군과의 마찰과 갈등이 이어지면서 대단원에서 수레 수레에 의자를 싣고 와 주인공 여인처럼 강둑에 앉아 기다리려는 여인들의 의지는, 주둔군의 집단 사살행위로, 무위가 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예수정이 주인공 과부, 한명구가 대위, 전국향이 주인공의 친구, 이지하가 주인공의 며느리, 김현영이 젊은 과부, 박완규가 중위, 박윤정이 치정녀, 김현중이 치정남, 김민선이 과수댁, 홍시로가 소년, 민병욱이 신부, 김준태가 의사, 그 외 이태형, 최원정, 김란희, 박미란, 김경회, 심아롱, 민해심, 박하영, 유시호, 이반석, 조재원, 김효중, 문법준, 양윤혁, 조현 등이 출연해 각자의 성격창출은 물론 절도 있는 움직임과 조화로운 열창, 그리고 안무에 이르기까지 단합된 호연으로 마치 명 오케스트라의 연주 같은 화음을 극에 부각시켰다.
손호성의 무대는 한 폭의 명화였고, 김창기의 조명역시 명화창조의 일익을 담당했다. 이동민의 분장, 김숙자 이수연 김주현 최정현 정현경의 분장팀, 조만수의 드라마투르그, 장영규의 음악, 장영규 김선의 작/편곡, 김동욱의 음향, 고재경의 움직임, 윤영철의 영상, 김혜지의 소품, 양은숙의 안무, 이은경의 사진, 노 운의 그래픽, 이명진 신동선의 조명어시스트, 김동경의 무대제작, 하동기 김은선 백정희의 조연출, 프로듀서 이희경, 기획 홍보 이정은 황진원 최자연 구슬 등 스텝진의 활약이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이루어, 극단 백수광부의 아리엘 도르프만 작, 김알리사 역, 동이향 윤색, 이성열 연출의 <과부들>을 한 편의 명화 같은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8, 극단 실험극장의 피터 쉐퍼 작, 신정옥 역, 이한승 연출의 <에쿠우스>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극단 실험극장의 피터 쉐퍼 작, 신정옥 역, 이한승 연출의 <에쿠우스>를 관람했다.
피터 쉐퍼(Peter Shaffer)는 1926년 잉글랜드의 리버풀에서 출생했다. 1935년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이사를 했으며, 쌍둥이 형제인 안토니 쉐퍼와 함께 영국 세인트폴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1944년 두 형제는 학교를 떠나 군징집 대신 모집한 탄광근무를 지원하여 3년간 켄트와 요크셔의 탄광에서 일했으며, 이후 고향에 돌아온 피터는 케임브릿지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54년 런던에 있는 ‘부지 앤 호크스’ 악보 출판회사에 근무하던 중 그의 작품 <소금의 땅(The Salt Land)>이 영국의 한 TV에서 제작되고, 라디오 드라마인 <돌아온 탕부(The Prodigal Father)>가 BBC에서 방송되었다.
이후 두 개의 미스터리 소설(쌍둥이 형제 안토니와의 공동 집필), TV 스릴러 한 편을 썼고, 주로 문학과 음악에 관한 비평을 런던의 잡지에 실었다.
그 후 1964년 에스파냐의 잉카제국 침략을 주제로 한 서사시적인 희곡 <태양제국의 멸망(The Royal Hunt of the Sun)>이 영국 국립극단의 치체스터 페스티벌의 오프닝 작품으로 선정되었고 국립극단의 정규 레퍼토리로 런던의 올드빅 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1965년 뉴욕에서도 공연되어 관객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피터 쉐퍼의 작품 중 최초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그 뒤에 쓴 <에쿠우스(Equus)>와 <아마데우스(Amadeus)>가 성공적인 공연을 거쳐 그의 대표작이 되었고, 쉐퍼에게 토니상을 연속으로 안겨 주었으며 두 작품 모두 영화화되었다.
<에쿠우스(Equus)>는 말(馬)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자신이 사랑하던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찔러 멀게 하고 법정에 선 17세 소년 알런 스트랑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피터 쉐퍼가 2년 6개월 동안 집필 1973년에 발표한 희곡이다. 이 작품으로 1975년 토니상 최우수 극본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에쿠우스>는 영국,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며 그때마다 장기 흥행을 이루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 9월 극단 실험극장에서 초연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아마데우스(Amadeus)>는 1981년 토니상 최우수극본상과 1985년 제57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각색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피터 쉐퍼가 음악계에서 떠도는 루머인 모차르트의 독살설에서 착안해 집필한 희곡이며, 이 작품은 연극보다도 영화가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외의 작품으로는 단막코미디 <블랙코미디(Black Comedy)>, <새하얀 거짓말(White Lies)>, <고해를 위한 전쟁(The Battle of Shrivings)>, <요나답(Yonadab)>, <고곤의 선물(The Gift of the Gorgon)> 등이 있으며, 현존 영국 극작가 중 가장 성공적인 작가로 꼽히고 있다.
신정옥(申定玉 1931~) 교수는, 과거 영미희곡이나 구주대륙의 희곡을 일본어판을 참고해 번역한 1세대 번역가들과는 달리, 원작을 직접 번역한 영문학자이다. 최근까지 영미희곡과 셰익스피어 전 작품을 번역 완간하는 등 한국연극계의 이바지한 공로가 지대하다. 현재 경향의 각 극단에서 신정옥 교수의 번역본으로 공연되는 영미희곡작품이 계속되고 있다.
<에쿠우스>영화로는 1977년에 시드니 루멧이 감독하고, 리처드 버튼과 피터 버스, 콜린 블레이커리, 조안 플로 등이 출연해 성공을 거둔바 있다.
금년이 말의 해라서, <에쿠우스>나 <홀스 또메르> 같이 말과 관련된 공연이 계속되고 있는데, 말을 주제로 한 세계명작소설은 테오도어 슈토름(Theodore Storm, 1817~1888)의 백마의 기수(Der Schimmelreiter, 白馬─騎手)이다.
소설 백마의 기수는 슈토름이 사망해인 1888년에 발표되었는데, 내용은 폭풍이 부는 어느날 밤 고로(古老)의 입을 빌어 회상이 펼쳐진다. 북해(北海)의 바람과 파도 그리고 고독을 벗 삼아 성장해 온 청년 하우케 하이엔은, 독학으로 수학과 측량술을 배워 제방(堤防) 감독관 밑에서 일하다가, 감독관의 딸 엘케와 결혼하게 된다. 그는 뛰어난 제방감독관으로서, 미신을 믿는 마을 사람들의 몰이해와 대결하면서 100년이 되어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제방을 구축한다.
그러나 격심한 해일이 몰려와 구(舊)제방을 끊어버린다. 하우케는 자연의 맹위(猛威)와 민중의 악의, 이런 것에 대한 자기의 역량의 한계를 느끼며 고민하다가, 사랑하는 처자와 격랑에 휩쓸려 죽고 만다. 그러나 하우케는 아직도 전설 속에 살아 있다. 즉 해일이 몰아칠 때마다 밤이면 백마를 타고 나타나 제방 위를 질주한다. <이멘제 Immensee>의 서정적 분위기에서 출발한 슈토름은 심리적 문제소설을 거쳐, 이 마지막 한 편에서 <백마의 기수>를 통해 인간의 의지와 불멸의 영혼을, 제방 위를 달리는 한 마리의 말로 표현해 냈다.
영화로는 1944년에 제작된 클라렌스 브라운 감독의 녹원의 <천사(National Velvet)>가 말과 관련된 영화다. 미키 루니와 당시 11살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한 영화로, 배경은 영국 런던의 교외이고, 내용은 말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한 소녀의 말과 우정을 그린 것으로, 말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성숙시켜가고, 인간관계도 원만해질 뿐 아니라, 전국경마대회에 출전해 우승의 영광을 안게 되는 소녀와 말의 이야기다. 자나 깨나 말 생각뿐인 소녀가, 침상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것 같은 동작을 취하는, 11세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말 그림으로는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 Gíuseppe1688~ 1766)의 군마도(群馬圖)가 걸작이자 명화다. 카스틸리오네는, 이탈리아 밀라노 태생으로 청나라에 귀화해 낭세녕(郞世寧)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땅에서 일생을 마쳤다.
궁중화가로서 강희(康熙) ·옹정(雍正) ·건륭(乾隆) 황제 밑에서 벼슬하였는데, 초기의 《취서도(聚瑞圖)》와 《백준도(百駿圖)》는 중국인들의 격찬을 받았다. 건륭제는 원명원(圓明園) 안에 여의관(如意館)이라는 화실을 지어주었는데, 그 화실에는 역대 황제가 그의 그림을 보러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서양의 재료 ·화법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고, 중국 고유의 재료를 사용, 황제나 황비 등의 초상화를 그렸고, 당대(唐岱) 등과 협력하여 <원명원전도(全圖)> 등을 그렸다. 이때 그가 사용한 음영법(陰影法)은 새로운 수법으로서 중국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옹정 ·건륭제때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있었는데, 기독교 신자인 그는 황제의 총애 때문에 화를 모면할 수 있었고, 말년에 베이징[北京]에서 사망했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과 동지사 일행을 따라 청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의 말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고, 서양미술에 눈을 뜨게 되었다.
피터 쉐퍼는 <에쿠우스>를 통해, 이성과 논리의 세계에 충실한 지적 인간의 모습으로 다이사트를 등장시킨다. 그러나 다이사트의 몽매함이, 알런을 치료과정에서 재현되는 말과의 관계에 의해, 서서히 그 윤곽이 드러난다. 알런에게 있어서 말은 신과 다름이 없다는 점, 그렇다면 알런의 반항심과 적개심은 어디로부터 창출되었는가? 그것은 인간의 도덕심과 종교적 신앙에서 영향을 받는다. 어머니의 과잉신앙과 아버지의 무신론적 사고가 가선(假善)과 진선(眞善) 구별하지 못하고, 혼돈의 세계로 유도한다. 알런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통념에 대한 거부감이다. 이러한 사고가 알런의 여자 친구인 질과 마구간에서의 최초의 성 접촉에서, 말들이 눈을 부라리며 자신의 행위를 질책하듯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 알런이, 신처럼 여기던 말들의 눈을 하나하나 모조리….. 그리고 알런은 법정에 서게 되고, 가정법원의 여판사 헤스터는 그녀의 경륜으로, 알런이 교도소가 아닌 정신병원에서의 치료가 우선임을 감지하고, 친지인 닥터 다이사트에게 안내한다. 처음에 다이사트는 알런에게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찾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치료과정에서 알런이 7세 어린아이시절 초원과 벌판을 달리는 말과 기수를 부러움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고, 기수가 자신을 말 등에 태웠을 때의 기쁨과 향후 말을 세상의 모든 것보다 사랑하게 되고, 신으로까지 여기게 된 사실을 알아내고는, 인간의 고정관념에 대한 지성인 다이사트의 참 고뇌가 극의 진행에 따라 깊어간다. 알런이 성숙해 가면서 이성에 대한 그리움과 성과 본능에 접근해 가는 과정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영화관에서 도색장면을 관람하게 되고, 자신 뿐 아니라 아버지까지 그 영화를…. 결국 중간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에게 끌려나오게 되는 골수에 사무치는 수치를 맛보는 알런…. 거리에서 아버지와 헤어지고, 그후 계속 남아있는 본능적 충동 감으로 해서, 알런은 여자 친구인 질과 어두컴컴한 마구간으로… 그런데 이번에는 영화관에서의 많은 사람들이 아닌, 많은 말들의 눈이 질과의 행위를 질책하는 눈빛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착각하고, 알런은 달려들어 말들의 눈을 모조리…..
알런에게 정상의 세계를 되찾아 주려는 임무를 맡은 다이사트의 딜레마는, 전문적 의료행위나, 도덕적, 또는 종교적 치료로, 알런의 정신상태를 여판사 헤스터의 요구대로 정상화시킬 수 있겠는가, 가선과 진선, 본능과 그 처리를 도덕적, 종교적 잣대로 측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등을 진정으로 고뇌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김태훈이 다이사트로 출연해 더할나위 없는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연극을 이끌어간다. 차유경이 여판사 헤스터로 출연해 작품의 중량감을 더하고, 품격높은 무대로 만들어 간다. 지현준과 이은주가 전라를 보이며 열연을 해 관객의 시선을 극에 몰입시킨다. 이양숙과 김상규가 알런의 부모로 출연해 호연을 보인다. 안석환, 전박찬, 유정기, 김지은이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한다. 노상원, 은경균, 김동훈, 장찬호, 신선관, 권형준, 김태완, 인규식, 김시유 등 말과 코러스로 출연한 출연자 전원의 매력적으로 다져진 몸매와 율동, 연기호흡 일치는 일품으로 박수 받을 만하다.
기획 제작 이한승, 미술 신종한, 음악 김태근, 의상 조문수, 조명 최은정, 안무 김윤규, 조안무 구선진, 가면디자인 정윤정, 분장 김선희, 사진 이강물, 공연진행 김용조, 극단 진행 윤나정, 조명오퍼 김소영, 무대감독보 음향오퍼 박수현, 조연출 오동식 등 스텝진의 기량과 열정이 일치되어, 극단 실험극장의 피터 쉐퍼(Peter Shaffer) 작, 신정옥 역, 이한승 연출의 <에쿠우스(Equus)를 예술성이 높은 걸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9, 극단 나비꿈 창단공연 이승비 작, 연출 주연의 <해이비>
대학로 배고파 시어터에서 극단 나비꿈의 창단공연, 이승비 작·연출·주연의 <해이비(奚哩悲)>를 관람했다.
해이비(奚哩悲)를 풀이하면 “어찌 슬퍼하리?”이다.
이 극은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의 일대기를 그렸다.
유관순은 1919년 3월 1일 3·1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화 여자 고등 보통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유관순은 공주 감리교회의 앨리스 해먼드 샤프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 학당에 입학하여 교비생[장학생]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촌언니인 유예도(柳禮道)도 샤프여사의 추천으로 유관순보다 먼저 이화 학당에 입학하여 당시 3학년 졸업반이었다. 한 집안의 두 자매가 이화 학당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지령리 주민들이 1900년대 초에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공주에서 관리하는 감리교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운동에 유관순은 친구 몇 명과 함께 학교 담을 넘어 합류하였다. 3월 5일 남대문역[현 서울역] 앞에서 학생단 주도하에 수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한 제2차 대규모 만세 운동이 있었다. 유관순은 이때에도 시위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경무총감부에 구금되었다가 풀려났다.
3월 12일 학교 선배가 유예도등 10여 명의 지방 학생들에게 고향으로 급히 내려가 독립운동자금을 모아 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3월 13일 유관순과 유예도는 고향 천안으로 내려와 마을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려 하였으나 가난한 동리라 모을 돈이 없었다. 이에 마을 어른들은 본인들이 직접 만세 운동을 벌이자고 의견을 모았고,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 숙부 유중무(柳重武), 동네 어른 조인원(趙仁元)[조병옥 부친] 등이 주동이 되었다. 그들은 음력으로 3월 1일이 되는 4월 1일 병천[아우내] 장날을 기해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4월 1일 각지에서 약 3천 명의 장꾼이 아우내 장터에 모여들었고, 유관순은 태극기를 들고 시위 대열에 앞장섰다. 유관순은 병천 일본 헌병 주재소의 헌병에 의해 주재소로 끌려가다가 도망쳤고, 약 1천 5백여 명의 군중과 주재소 입구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이 과정에서 유관순의 부모를 비롯한 19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유관순은 박종환의 집에서 2~3일 몸을 숨기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서 빠져나오던 중 헌병들에게 체포당했다.
공주 지방 법원은 아우내 만세 운동 주동자들인 유관순, 유중무, 조인원 세 사람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였다. 이에 경성 복심 법원에 공소를 제기하였고, 유관순 등은 징역 3년형으로 형이 확정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에 불복하여 다시 최종심인 고등 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유관순은 “삼천리강산이 어디인들 감옥이 아니겠느냐.”라며 상고를 포기했다.
서대문 감옥에 수감된 유관순은 감옥에서 계속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함께 수감되어 있던 이화 학당 박인덕 교사의 만류로 잠시 잠잠하게 있다가, 1920년 3월 1일 3·1 운동 1주년을 맞아 유관순은 또다시 감옥 안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때 갖은 고문을 받아 방광이 파열되었고, 결국 유관순은 1920년 9월 28일 서대문 감옥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무대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교실로 설정을 했다. 배경에 태극기를 영상으로 투사하고, 바퀴달린 등받이 의자 여러 개를 출연자들이 위치를 변동시켜가며 장면변화에 대처한다. 정면 오른쪽에 출입문이 있고, 객석 벽에 유관순 열사의 유언(遺言)이 적힌 전단이 부착되어 있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코와 귀가 잘리고.
내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연극이 시작되면 젊은 남녀가 등장해 배경에 영상으로 투사된 태극기의 흰색 바탕에 태극문양과 건곤감리(乾坤坎離)의 4괘를 설명한다.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나타내고, 태극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며, 우주만물이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발전하는 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고,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발전하는 모습을 효(爻)의 조합을 통해 구체화한 것이다. 그 중 건은 우주만물 중에서 하늘을, 곤은 땅을, 감은 물을, 이는 불을 각각 상징한다고 소개한다.
장면이 바뀌면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교실이다. 여학생들이 새 봄을 맞아 즐거운 마음으로 바퀴달린 의자를 타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회전을 하며 물기 오른 나뭇가지나 꽃망울마냥 청춘을 만끽하는 모습이다. 상 하급생 합 반인 듯, 한 여학생을 보고 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언니는 하급생들을 엄격하게 다룬다. 그 때 선생님이 등장하고 역시 여선생인데, 고아한 모습과 지성과 품격을 갖춘 듯싶고, 어딘지 모르게 서양풍을 일찌감치 받아들인 느낌이 든다. 선생님의 등장으로 학생들은 자리를 정돈하고 앉는다.
바로 그 때 사진사가 등장해 선생님과 학생들의 정돈된 모습을 촬영하면서 동시에 배경에 당시의 유관순 열사를 포함한 동료들과 선생님의 흑백사진이 영상으로 투사된다.
장면이 바꾸면서 미션스쿨이라 그런지 기독신앙과 관련된 기도와 찬송을 여학생들이 읊조리고, 당시 일제치하에서의 상황적 전개가 극의 진행에 따라 소개가 된다. 기미년이 1919년 3월 전후의 상황이 극에 간략하게 소개가 되면서, 경성 뿐 아니라, 목천과 천안에서의 유관순 열사의 주도하에 독립만세 운동이 무대에서 상징적으로 전개되고, 순사에게 잡혀가 옥에 갇히는 모습과 고문을 당하고, 대단원에서 젊은 나이에 피어나지 못한 채 떨어져 버린 꽃망울이 된다.
이승비, 조현숙, 최아름, 이헌주, 김범준, 박하은, 이우희, 안태원, 백지훈, 최다운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호흡의 일치는 관객을 감동으로 몰아간다.
조연출 김연진, 무대 박찬호, 영상 신해룡, 음악 윤드보라 구본춘, 액탱코치 조현숙, 안무 최아름 백지훈, 의상 윤현주단, 분장 임영희, 사진 신귀만 이진호, 홍보영상 권성민, 기획홍보 조현숙 윤드보라 홍보마케팅 오승아, 포스터 팜플릿 가지디자인, 포스터 제작 이기영, 음향 김연진, 영상 김연진, 조명 김용빈 등 스텝 진의 열정과 노력도 일치가 되어, 극단 나비꿈의 창단공연 이승비 장희진 작, 이승비 연출·주연의 <해이비((奚哩悲)>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극단 나비꿈이 3월을 맞아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의 일대기를 공연하는 것은 3.1운동과 애국선열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한국연극에 극단 나비꿈이 독립운동과 같은 자세와 심정으로 임하겠다는 굳건한 의지로도 받아들여져, 여간 흔쾌하고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운 게 아니다.
극단 나비꿈과 이승비 대표의 차기작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10,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작, 이윤택 대본구성 연출의 <피의 결혼>
명동예술극장에서 연희단거리패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작, 대본구성`연출 이윤택의 <피의 결혼>을 관람했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 1898년~1936년)는 스페인의 시인·극작가이다. 유럽 여러 나라의 연극의 영향 밑에 놓여 있었던 스페인 연극을 혁신시켰고, 외국의 극단에도 영향을 끼친 대작가 로르카는 가장 애도해야 할 스페인 내전 중의 희생자 중 한 사람이다.
그라나다 근처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총살된 이 시인은 미국을 여행한 후, 1931년에 극단 ‘바락카’를 조직하고 스페인 고전연극의 부흥에 분투, 이어 3대 비극 <피의 혼례>(1933), <예르마>(1913),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1934)을 완성했고, 시와 극이 융합하는 경지를 민족적인 소재 중에서 실현했다. 이것은 오늘날 세계 연극의 중요한 공연 종목이 되어 있다.
스페인의 전통적 서정을 현대적으로 표현했으며 향토인 안달루시아의 마을을 초현실주의 수법으로 드라마틱하게 노래했다. 최초의 <시의 책>(1927)에 이어 <집시시집>(1927)에서 그의 시는 성숙해졌다. 작품도 실험적인 시도를 구사했으며 항상 민중을 떠나지 않았다. 시는 주제나 그 형식과 수법이 잡다하고 음악적·연극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데 용어에 있어서는 어느 때는 철없이 보이고 어느 때는 신비한 베일에 싸여 있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의 일대기는 <데스 인 그라나다 (Death In Granada, Lorca, 1997)>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전국으로 확산될 무렵, 10대의 리카르도 페르난데(Ricardo: 에사이 모랄레스 분)와 호르헤 아길레는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 출신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Lorca: 앤디 가르시아)의 시와 희곡에 매료되어 있었다. 친구인 호르헤와 함께 로르카의 표현주의 연극 ‘예르마’를 보러 마드리드에 갔던 리카르도는 그곳에서 자신의 우상 로르카를 만난다. 이것은 어린 리카르도(Young Ricardo: 나임 토마스 분)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고 훗날 그를 다시 스페인에 오도록 만든다. ‘나를 잊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로르카는 얼마 뒤 시체로 발견된다.
1953년 푸에르토리코, 이제 31살이 된 리카르도는 샌 후안 대학에서 로르카의 작품을 가르치면서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8년 전에 있었던 스페인 내란 때 일어난 잊지 못할 사건들에 열중하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사랑했던 로르카의 죽음 뒤에 베일이 드리워져 있음을 발견하고 그 사건에 관심을 기울인다. 마침내 리카르도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로르카의 죽음에 관한 의문을 풀기 위해 프랑코가 지배하는 스페인으로 돌아간다. 로르카의 흔적을 뒤쫓다가, 인사차 들른 호르헤의 아버지 아길레 장군(Colonel Aguirre: 제로엔 카라부 분)의 집에서 리카르도는 어린 시절 함께 놀았던 호르헤의 여동생 마리 오헤냐(Mar? Eugenia: 마르셀라 월러스테인 분)를 만나게 된다.
이제 성숙한 여인이 된 그녀는 로르카의 죽음을 궁금해 하는 그에게 조금씩 실마리를 던져주지만,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경고한다. 진실에 가까워져 갈 수록 로르카의 죽음과 연계된 이들로부터 갖은 협박과 폭력을 당하게 되는 리카르도. 그러나 스페인 내전에 관한 과거를 묻어버리고 싶어 하는 프랑코 정권은 센테노(Centeno: 미구엘 뻬레 분)라는 인물을 통해 우회적으로 그에게 경고, 협박, 구타, 수감 등의 방법으로 압력을 가한다. 그러나 리카르도의 의지는 쉽게 꺾이지 않고 끝내 로르카를 죽인 살인자의 정체를 알아낸다.
스페인 내전 당시 의문사한 천재 시인 로르카의 죽음을 플레쉬백 형식으로 담고 영화로, 아일랜드계 학자 이안 깁슨(Ian Gibson)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코카 콜라의 CF 감독으로 유명한 마르코스 쥬리나와 남미 계열의 미국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작품이다.
영화는 로르카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도 위험한 일이었던 1965년에 그의 책들을 연구하러 스페인에 갔던 아일랜드계 학자 이안 깁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자신이 스페인에서 얻은 경험과 로르카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로르카의 죽음’이라는 전기를 출간했는데 이 책을 본 쥬리나가 감독이 로르카의 전기와 랜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영화화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연극 <피의 결혼>은 1933년 3월 8일 마드리드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희생물을 바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던 도구인 칼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신랑에게는 단지 포도를 자르는 도구이지만 그 칼에 남편과 큰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는 처음부터, 그리고 작품 전체에 걸쳐 사랑하는 남자의 몸을 잘라 버린 칼인 것이다.
“칼”은 그냥 칼이 아니라 “은으로 된” 칼이다. 손바닥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칼이기도 하다. 물론 칼은 희생양을 바칠 때 사용되던 도구다.
또한 이 연극에서는 말이 등장한다. 말이 생명력의 상징인 물을 마시기를 거부하고, 울기 시작했다는 내용은 우리에게 뭔가 비극적 사건을 예감하게 한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갖고 있는 레오나르도가 등장한다. 로르카 작품에서 늘 상징적으로 언급되는 ‘말’과 레오나르도는 항상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레오나르도가 “들판 저 끝”에서 “땀에 흠뻑 젖어” 있는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었고, 집에 돌아왔을 때 말은 세상 끝에서 온 것처럼 눈의 초점을 잃을 정도로 지쳐 있다.
1막 3장에서 하녀는 새벽 3시에 말을 탄 한 남자를 보았으며 그가 레오나르도라고 확신한다. 결혼식에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도 그였으며, 그가 말을 죽을 정도로 몰아 왔다는 하녀의 말에 그는 “죽을 땐 죽는 거죠!”라고 대답한다. 갓 결혼한 신부는 레오나르도에게 “자기 말을 갖고 있는 한 남자는 많은 것을 알고, 사막에 갇혀 있는 한 여자를 많이 옥죌 수가 있지”라고 이야기한다. 교회로 가기 위해 모두 집을 나섰을 때에도 그는 자기 부인과 함께 마차로 가기를 거부하고, 말을 타고 가기를 고집한다. “난 마차를 타고 다니는 남자가 아니야”라고 외치면서.
2막에서 레오나르도 부인이 그를 찾지만 발견하지 못하자 “레오나르도를 볼 수가 없어요. 마구간엔 그의 말도 없고요”라고 했고, 갓 결혼한 신부와 레오나르도가 도망간 것을 알았을 때 부인은 “도망갔어요! 도망갔어요! 그 여자랑 레오나르도가. 말을 타고, 서로 얼싸안고, 바람처럼 갔어요!”라고 사람들에게 알린다. 그들은 ‘말’을 타고 갔고 그 말은 ‘달’이 기다리는 을씨년스러운 숲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눈에 광기가 서린 이 말은 본능 세계의 상징으로서 레오나르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의 본능이 찾는 대상을 쫓아 달린다. 로르카의 세계에서 본능의 힘은 자연 세계의 일부인 파괴적 속성을 갖고 있다.
결혼식에 초대된 사람들이 신부의 집에 가까이 와 부르는 노래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즉, 앞으로 새신부가 꾸려 나갈 꿈이다. 새신부와 레오나르도의 의지에는, 그들의 이성에는 각자의 의무와 명예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다. 레오나르도는 고통스럽지만 다시는 새신부와 이야기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서로에 대한 적의가 한편으로는 그들 본능에 대한 치료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불변의 힘, 살을 함께 밀착시켰던 쾌감이 레오나르도와 새 신부를 잇도록 만드는 힘이 된다.
레오나르도 “자존심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고, 너를 보지 않고, 밤마다 너를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어! 내 위로 불을 끼얹는 일이었어! 넌 시간이 약이고, 별들이 덮어 준다고 믿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어느 누구도 끓어오르는 욕망을 어쩌지는 못해!”
3막은 1, 2막에 걸쳐 나왔던 모든 예언들이, 즉 신랑과 레오나르도 가문 간의 적대감으로 표현되는 칼에 대한 집착과 꺾어질 목숨을 대변하는 꽃의 이미지, 레오나르도의 불길한 광기가 서린 말을 언급하는 “말의 자장가”, 그와 대조적으로 레오나르도와 새 신부에게 긍정적이며 낙관적인 분위기를 던져 주는 꽃의 이미지들로 가득 찬 결혼 축하 시, 그리고 이것과 또 대조적으로 죽을 남자들과 혼자 남게 될 여자들의 가차 없는 운명에 대한 예언 등이 하나하나 풀어지는 곳이다.
3막은 인간의 법이 아닌 자연의 법, 인간의 순수한 본능만이 지배하는 세계다. 하지만 그 자연의 법을 좇는 데 대한 대가는 피, 달과 피와 성과 본능, 이어 벌어지는 혈투와 죽음의 세계다.
달빛 속에 새신부와 레오나르도가 등장한다. 그들은 이성을 되찾고, 다시는 만나지 말고, 각자 자신의 사람에게로 돌아갈 뜻을 밝힌다. 아쉬움 속에 새신부와 레오나르도는 헤어지려 한다. 바로 그때 달빛 속에 새신부와 레오나르도를 쫓아온 젊은 신랑이 등장한다. 새신랑을 신부에게 팔을 벌린다. 다가가는 신부를 레오나르도가 자신도 모르게 붙잡는다. 이 광경을 보고, 새신랑과 레오나르도의 결투가 벌어진다. 물론 작은 칼을 뽑아들고. 두 사람이 다 죽을 때까지 결투는 계속된다. 둘의 싸움을 말리는 새신부도 피투성이가 된다.
명동예술극장의 <피의 결혼>은 새신랑의 어머니가 연극을 이끌어 간다. 어머니로 시작해서 어머니로 끝이 나는 무대가 된다. 스페인 특유의 플라멩코 춤과 우리의 춤사위가 어우러지고, 음악도 서로 다른 악기로 두 나라 고유의 음률과 가락이 배경음악으로 연주된다. 의상과 신발에 이르기까지 이질적인 것이 동질적인 양 조화를 이루고, 한류와 스페인 류가 혼연일체를 이루는 무대로 연극에 구현된다.
도입에 가는 선으로 만든 나무조형물을 배경 가까이 세워놓으며 연극이 시작되고. 후반부에는 실제나무에 가는 선을 얼기설기 엮은 커다란 나무아래에서 극이 마무리가 된다. 또한 무대전체를 덮을 커다란 천을 사용해 출연자의 죽음을 덮기도 하고, 나이테처럼 보이는 문양이 들어간 커다란 가리개를 배경 앞에 늘어뜨려 숲의 정령들의 춤판이 벌어지는가 하면, 배경에 둥근 보름달을 영상으로 투사해 극적분위기를 상승시키기도 한다.
특기할 것은 출연자 전원의 훈련된 플라멩코 춤이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열정적이고 박력이 넘치는 춤은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김미숙, 이승헌, 김하영, 윤정섭, 이주영, 차 희, 이유신, 이재현, 김아라나, 신명은, 아승우, 김호윤, 방성혁, 양승일, 이은창, 최용림, 박아진, 변정원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무용, 그리고 열창은 관객을 시종일관 극에 몰입시키고, 예술적 세계로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한다.
VANN의 김시율, 윤현종, 김예슬, 김소미, 김수진, 이소연의 연주도 극적 분위기 상승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관객을 열정과 흥분의 도가니로 이끌어 간다.
무대디자인 윤시중, 조명디자인 조인곤, 음악감독 김시율, 작곡 미미, 안무 김은규, 플라멩코 구성`지도 송연희, 분장디자인 이하림, 의상디자인 김미숙, 무대제작 김경수, 조안무 김동희 무대감독 김한솔, 음향감독 이채욱, 음향오퍼 서민우, 그 외 스텝진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명동예술극장(극장장 구자흥)과 연희단거리패 제작,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원작, 이윤택 대본구성 연출의 <피의 결혼>을 고수준 고품격의 예술적인 공연이면서도 친대중적인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피의 결혼>은 2014년 아베로 아메리카노 국제연극제 공식 초청되어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공연이 된다고 하니, 연희단거리패의 성공적인 공연을 기대해 본다.
3월 31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