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의 인건비/ 오세곤

(제45호 편집인의 글)

 

연극인의 인건비

 

2012년 11월 예술인복지법이 탄생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법 일부가 개정되었다. 개정의 핵심은 불공정거래 금지와 처벌에 관한 내용이다. 예술에 불공정이라니?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그것은 있다. 사실 가장 커다란 불공정은 엄청난 공력을 들여가며 예술 행위를 함으로써 국가와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예술인들을 바로 그 가장 커다란 수혜자인 국가와 사회가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것이다. 대접은커녕 오히려 무시하고 핍박하지 않는가?

언제부턴가 예술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 고생을 하든 굶어죽든 자기 탓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좀 현명한 부모들은 자식이 예술을 한다면 펄쩍 뛰며 막는다. 물론 오래 전부터 귀족 문화로 인식돼 온 클래식 음악가나 서양화가들은 때로 부모의 경제적 뒷받침으로 아무 걱정 없이 예술 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분야의 권력자가 되어 돈과 명예를 거머쥠으로써 가난한 예술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영위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극은 그런 경우마저 거의 없다. 글쎄, 과거 일제 치하 부호의 자식들 중 일본 유학을 다녀와 연극인으로 활동한 예는 더러 있는 듯하다. 물론 그 소수도 배우보다는 대부분 극작가나 연출가일 뿐이다. 어쨌든 사정이 이러니 ‘연극’ 하면 바로 ‘가난’ 하는 식의 등식이 성립하고 말았다.

흔히 예술과 돈을 연결시키면 천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솔직히 돈 앞에 장사가 없다. 게다가 당장 삶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돈은 천박한 게 아니라 귀중한 생명줄이다. 그걸 누가 감히 비난한단 말인가?

대학로 소극장에서 한 달 공연하는 데 얼마가 들까? 보통 4-5천만원이 든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우선 대관료이다. 150석쯤 되는 극장이 1일 최소 50만원에서 70만원이다. 주말에 더 받는 경우도 있다. 결국 월 최소 1500만원에서 2000만원이다. 무대장치 등에 1000만원, 인쇄 홍보비에 1000만원, 연습부터 공연까지 진행비 1000만원을 더하면 4500만원에서 5000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 1회 평균 150만원 내지 200만원의 입장 수입이 있어야 수지를 맞출 수 있다. 그러려면 150석을 거의 유료로 꽉 채워야 한다. 결국 연극은 십중팔구 적자이다.

그런데 이 주장을 듣다 보면 이상한 게 하나 있다. 도대체 어디에도 참여자들의 인건비는 들어가 있지 않다. 물론 진행비가 있으니 하루 한 끼 정도 식사는 제공되었을 것 같다. 또 시파티니 쫑파니티 하며 회식도 몇 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말고 연극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재료라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비용은 전혀 책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까 십중팔구 적자라고 주장하지만 그 적자의 규모는 사람에 대한 비용은 빠진 채 계산된 것이다. 인건비를 계산하면 제작비는 2배 이상으로 치솟는다. 예를 들어 배우와 스태프를 합쳐 20명이 2달 연습과 1달 공연을 했을 때 월 평균 임금을 100만원만 잡아도 6000만원이 되니 제작비는 1억 500만원 내지 1억 1000만이 된다. 그런 회당 350만원 내지 400만원 정도의 수입이 들어와야 한다. 이 정도 되면 다들 농담이라며 웃고 말 것이다.

그러나 삶은 농담이 될 수 없다. 연극에서 돈을 못 받으니 소위 알바에 나선다. 천박하다는 비난을 받으며 돈에 집착하기도 한다. 때로 돈이나 돈을 가진 사람 앞에서 비굴해지기도 한다. 갈수록 연극은 멀어지고 처절한 생존 투쟁만 남게 된다. 결국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고 심지어 그렇게 좋아하던 연극을 미워하고 버리기까지 한다.

예술인복지법에 불공정거래에 관한 금지와 처벌 조항이 삽입되면서 그 불공정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첫 번째 단계로 ‘공연예술 전문인력 표준인건비 산출 연구’가 시작되었다. ‘공연예술’이라 하지만 무용과 음악은 아니고 뮤지컬을 포함한 연극에 국한한다. 물론 ‘표준’이 될지 ‘최저’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최초로 연극인의 인건비를 법적으로 규정하게 되는 일이니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은 그냥 정하면 되지 무슨 연구까지 하느냐는 반감 섞인 반응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계는 초저예산 공연부터 100억원대의 대형 뮤지컬까지 실로 다양한 제작형태가 섞여 있다. 또 많은 경우 소위 갑과 을이 모두 영세하여 자칫 규정을 잘못 적용할 경우 활동 자체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 세밀한 조사 분석과 연구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설령 제대로 인건비를 지급할 수 없는 열악한 조건이라도 참여자들 스스로 각자 작품 제작에 얼마만큼의 경제적 기여를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의기투합하여 작품을 생산하는 동인제 체제에서도 그것은 필요하다. 적어도 현금을 대는 제작자나 대표와 마찬가지로 배우나 스태프 역할을 하면서도 작품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그런 풍토가 형성되어야 한다.

또한 국가의 예술 지원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이 달라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엉터리로 계산된 제작비를 근거로 일부 보조를 하면서 그 엉터리 계획에 맞춘 엉터리 정산을 받고 엉터리로 평가하는 관행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이번 연극계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는 바로 예술계 전체에 대한 모델 제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매사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미리부터 뭐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며 자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앞으로 서너 달 동안 진행될 연구에 연극인 모두 나서서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또한 우리의 후배들에게 좀 더 나은 연극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결코 포기하지 말고 다 함께 꾸준히 노력할 것을 제안한다.

 

2014년 7월 1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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