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공연 총평/ 박정기

2014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공연총평

2014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은 극단 가변의 박미현 작, 이성구 연출의 <끔찍한 메데이아의 시>, 극단 드림플레이의 김재엽 작 연출 <알리바이 연대기>, 극단 뿌리의 한윤섭 작, 연출의 <성호가든>, 극단 아리랑의 오세혁 작, 고동업 연출의 <게릴라 씨어터>, 극단 루트 21의 오태영 작, 박재완 연출의 <엄마젖 하얀밥>,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신은수 작, 신동인 연출의 <거울속의 은하수>, 극단 백수광부의 윤영선 작, 최치언 재창작, 이성열 연출의 <죽음의 집 2>, 극 발전소 301의 김 원 작, 정범철 연출의 <만리향> 등 8개 작품이다. 이 8개 공식참가작과 기획초청작 중 부산연극제작소 동녘의 양효윤 작/연출의 <운악>을 평한다.

1, 극단 가변의 박미현 작, 이성구 연출의 <끔찍한 메데이아의 시(詩)>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2014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극단 가변의 송형종 예술감독, 박미현 작, 이성구 연출의 <끔찍한 메데이아의 시(詩)>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임신한 여인이 임산부인 자아(自我)와 작가인 자아로 분리된 인격체를 두 명의 출연자가 한 여인의 역을 하고, 부인보다는 태어날 아기에게 더 관심을 갖고, 매일 지나치게 임산부의 몸을 검사하는 남편과의 갈등을 그렸다.

무대는 배경전체를 벽면으로 하고, 그 벽을 좌우로 벌려 등퇴장 로를 만들어놓고, 그 앞으로 복도가 가로 놓여있다. 복도 오른쪽에도 등퇴장 로가 있다. 무대 바닥에는 여섯 자(尺) 폭과 20자 길이의 직사각의 조형물 세 개가 객석을 향해 나란히 놓여있다. 왼쪽의 조형물 머리 쪽으로 욕조가 놓여있고, 조형물 바닥에는 수영장처럼 물을 채워놓았으나 발목에 찰 정도다. 가운데의 조형물 중간에는 쌀로 보이는 흰색 입자를 정사각의 공간에 가득 채워놓았다. 오른쪽 조형물 머리 쪽으로 긴 소파가 있고, 객석 가까이에 어린이 옷가지와 기저귀를 쌓아놓았다. 수영장처럼 보이는 조형물 위에는 샤워 꼭지가 서너 개 천정에 매달려 있고, 연극의 마지막 부분에, 배경 전체가 좌우로 열리면서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해 낸다.

연극은 시작 전부터 백색 망사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장을 한 여인이 가운데 조형물의 중앙, 정사각의 공간 백색입자 위에 앉아 가위로 머리 숄 부분을 건드리면 백색입자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리는 광경을 몇 차례 해 보이고는 퇴장한다.

장면이 바뀌면, 무대 왼쪽 욕조 속 반라의 여인과 무대 오른쪽 소파 위 임산부복을 입은 여인이 눈에 들어오고, 욕조의 여인은 담배연기를 내뿜고, 소파의 여인은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가 바닥에 버린다.

잠시 후 남편이 등장해 소파로 다가가 부인을 일으켜 세우고, 음식물과 아기관련 질문을 하며, 마루 중앙으로 데려와 옷을 들쳐 팬티를 벗기고, 부인의 아랫도리를 들여다 본 후, 체중 저울에 올라서게 해 몸무게를 달아보도록 한다. 몸무게가 늘어나지 않았음을 알고는 매일 3, 4백 그램씩 증가해야 한다며, 음식물 섭취를 제대로 할 것을 지시하듯 언급한다. 그리고 몇 번을 실패한 출산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남편은 오디오를 켜 이탈리아 저널리스트인 페피노 투르코(peppino turco)가 가사를 쓰고, 작곡가 루이지 덴자(luigi denza)가 1880년에 작곡한 나폴리 민요 후니쿨리 후니쿨라(funiculi, funicula)를 틀어놓는다. 임산부는 바닥에 여지저기 널려있는 아기 옷을 하나하나 챙겨 차곡차곡 개면서 자신은 굵은 음성의 남성노래가 싫다고 심정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남편은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라며 계속 들려주다가 끄고 퇴장한다.

욕조의 여인과 소파의 여인이 대화를 시작한다. 아이와 글쓰기에 관해 대화다. 그러나 임산부은 아이보다는 글쓰기에 비중을 둔다. 욕조에 앉은 여인은 태어날 아이의 옷을 붉은색 실로 뜨개질을 한다.

재차 남편이 등장해 부인을 마루중앙에 앉히고, 부인의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디 미는 동작과 체중을 달아보는 동작, 그리고 음식물 섭취에 관해 이야기를 되풀이 하고, 또다시 후니쿨리 후니쿨라를 들려주다가 퇴장하면, 두 여인은 욕조와 소파에서 일어나 한 여인은 물속으로 다리를 내딛고, 한 여인은 또다시 바닥에 널려있는 아기 옷을 하나하나 챙겨 차곡차곡 개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남편의 지나친 간섭, 자신보다 아이를 챙기려는 이기심, 글 쓰는 임산부임을 고려치 않고, 마치 옛 이야기의 씨받이 같은 느낌으로 자신을 대하는 남편의 일방적이고 이기적 사고가 자신에게는 견딜 수 없는 요소로 성장하고 있음을 털어놓는다.

다시 남편이 등장해 부인의 아랫도리를 살피고, 체중을 이야기를 하며, 재차 부인보다 아기에게 관심을 쏟는 게 확연히 들어난다. 그러다가 부인이 피우지 않고 버린 담배를 소파 밑에서 주워들고 부인의 따귀를 사정없이 때린다. 아기의 건강을 생각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며 부인을 밀쳐 마룻바닥에 넘어뜨리고, 큰소리로 나무라는 모습이 자못 신랄하기까지 하다. 그러다가 남편은 곧 미안해하는 모습으로 아내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기도 하지만 아내에 대한 애정을 표시로는 어딘가 부족하다. 남편은 가운데 사각의 백색입자구덩이에 다가가 입자를 이리저리 파헤쳐 그 속에서 여인의 팬티나 브라자 등의 옷가지를 집어 들고 또다시 발작적인 분노 표시를 한다.

욕조에서 나온 반라의 여인이 다가가 남편의 따귀를 때린다. 아기에게만 관심을 갖는 남편에 대한 항의표시인 듯싶다. 두 사람의 옥신각신하는 모습과 다툼이 이어지고 남편은 분에 못 이겨 후니쿠니 후니쿨라 노래의 볼륨을 최대한 높게 틀어놓고 퇴장을 한다.

부인이 무대 왼쪽으로 가서 차가운 물속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그리고 자신의 고뇌와 고통을 작은 소리로 뇌까린다. 그러다가 임산부는 욕조여인이 갖고 있던 뜨개질 감을 집어 직접 자신이 뜨게 질을 한다. 뜨개질로 고뇌를 털어버리려는 심정인 듯싶다. 그러나 뜨개질을 하면서도 쌓인 응어리가 풀리지 앉자, 심화를 폭발시키듯 뜨개질한 실을 풀기 시작한다. 욕조의 여인은 실타래에 그 실을 되감는다. 그래도 심기가 가라앉지를 않으니, 임산부는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듯, 뜨게 질 감에서 뽑아든 두 개의 날카로운 뜨게 바늘로 자신의 배를 깊이 찌르고 물속에 쓰러진다.

동시에 배경전체가 좌우로 열리면서 흰 타일로 된 벽면에 천정에서부터 핏빛 수액이 여러 갈래로 쏟아져 흘러내리는 충격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여인과 태어날 아이, 그리고 남편의 의식을 다룬 독특한 연극이다. 장치도 극의 내용과 부합해 극적분위기 창출의 절대적 역할을 한다.

임정은, 배우진, 박혜영, 이희란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은 객석을 도입부터 연극에 빠지도록 만들고,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예술감독 송형종, 드라마터그 김숙현, 조명디자인 김성태, 무대디자인 이윤수, 무대제작 에스테이지, 의상디자인 김정향, 조연출 김남영, 무대감독 장호민, 그 외 스텝 진의 노력과 기량이 드러나, 극단 가변의 박미현 작, 이성구 연출의 <끔찍한 메데이아의 시(詩)>를 한편의 움직이는 추상회화를 보는 느낌의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2, 극단 드림플레이의 김재엽 작 연출 <알리바이 연대기>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드림플레이의 김재엽 작·연출의 <알리바이 연대기>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한 가족의 현대사를 서사적(敍事的)으로 그려낸 에픽 드라마(epic drama)다.

무대는 주인공 아버지의 서재다. 배경 막 앞으로 복도가 있고, 복도는 무대 외곽과 연결되어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무대 양쪽에 커다란 책장이 있고, 고서가 잔뜩 꽂혀있다. 오른쪽 책장 앞에는 책상과 의자가 있고, 그 위에 컴퓨터 노트북이 놓여있다. 배경 막에 시대적 역사적 사건의 영상과 인물들의 사진이 투사되고, 아버지가 교편을 잡던 학교건물, 부친이 6 25사변 당시 전우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그리고 사진액자의 유리가 깨어지는 영상, 그리고 뽀얀 색의 추상화 형태의 영상이 투사되기도 한다. 왼쪽 벽에는 정치 지도자 중 1인의 사진액자를 걸어놓았다.

음악은 재일동포 여가수 고(故) 미소라 히바리의 명가요 “川の流れのように(흐르는 강물처럼)”가 흘러나오고, 고 김정호의 “하얀 나비”, 그리고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의 멜로디가 극의 내용과 조화를 이루어 분위기 상승의 주요한 역할을 한다.

내용은 주인공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오사카에 거주할 당시 일본의 패망을 알리는 방송이 있자, 아버지는 일본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았기에 일본사람들처럼 일본의 패망을 슬퍼한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등장해 “우리는 조선 사람이니, 슬퍼할 이유가 없다.”면서 귀국을 종용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귀국해 경북 구미에 거주하면서 이웃에, 후에 대통령이 된 박정희라는 인물이 부근에 살고 있었음을 알린다. 할아버지는 귀국한지 얼마 안가 별세하고, 6 25가 발발한다. 아버지는 다른 젊은이들처럼 군에 입대한다. 사변이 끝나고, 아버지는 귀향해 학교 선생노릇을 하며, 아내와 함께 자식들을 키우고, 학교도 보낸다. 그리고 많지 않은 봉급으로 경향각지를 다니며, 외국서적을 고서적 책방에서 구입해, 그걸 읽고 저장한다. 후에 아버지의 장서는 대학도서관에 기증되어 그곳에 보관된다.

극중 이승만 정권, 장면정권, 박정희 정권과 유신시대, 그리고 군사정권시절이 차례로 펼쳐지고, 김대중 정권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성장한 자식들이 학교에 다니며 정치적 소요와 이에 따르는 시위에 참가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간혹 자식이 시위에 연루되어 유치장에 끌려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화를 내는 법이 없다. 그저 담담하게 사건의 경위를 물을 뿐이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를 평할 때에는 장준하 선생을 으뜸으로 치고, 선생이 벼랑에서 떨어져 사망했다고 하니, 장 선생이 전쟁 때 산악전투요원이었음을 회고하며 암벽에서의 낙상 사에 고개를 갸웃하던 모습을 전한다. 아버지는 장준하 선생이 작고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대통령보다 먼저 우리나라 지도자가 되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작가의 형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다녔고, 작가 자신은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다녔는데, 원래 법대를 지망했으나, 2지망으로 국문과를 원서에 기록한 아버지 덕분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기왕에 문학을 하느니, 희곡을 쓰고 싶다는 아들의 희망에, 아버지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에 관해 들려주던 놀라운 사실을 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6 25사변기간 중, 군에 귀대하지 않고, 탈영병이 되었던 이야기와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 다시 입대해 대위로 예편한 내력을 아버지는 알리바이처럼 엮어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말년에 암 투병을 하게 되고, 수술을 받았으나 여의치가 않자, 아버지는 아들인 작가에게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이른다. 아버지는 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남명렬, 지춘성, 정원조, 이종무, 전국향, 유준원, 백운철, 이정수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은 극을 성공으로 이끈 계기가 된다.

무대 서지영, 조명 최보윤, 의상 오수현, 음악 한재권, 영상 윤민철, 분장 이지연, 소품 박효진, 조연출 이지현, 기획 이시은, 역사자문 김일수, 일본어 이진, 무대감독 서정완, 그 외 스텝 모두의 노력과 기량이 연출가의 열정과 조화를 이루어, 극단 드림플레이의 김재엽 작 연출의 <알리바이 연대기>를 한편의 걸작 에픽 드라마로 창출시켰다.

3, 극단 뿌리의 한윤섭 작, 연출의 <성호가든>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뿌리의 김도훈 예술감독, 한윤섭 작·연출의 <성호가든>을 관람했다.

이 연극은 닭과 개를 의인화시키고, 닭 전문음식점인 <성호가든>을 배경으로 주인부부와 손님, 그리고 종업원 간의 얽힌 이야기를 충격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무대는 왼쪽에 닭장이 있고, 그 안에 수십 마리의 토종닭을 가둬놓고 기른다. 횃대 대신, 긴 널판을 닭장 주위에 계단식으로 연결시켜, 의인화 된 주인공 닭이 널판을 딛고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 천정에서 끈을 내려 매어단 철봉에 매달리기도 한다. 오른편에는 개집이 있고, 의인화 된 커다란 몸집의 개가 긴 줄에 매여 마당에 내려서, 닭장 가까이 오기도 한다. 개집 뒤로 <성호가든>이라는 간판을 단 양옥풍의 건물이 1m 높이의 축대 위에 있고, 마당에서 식당으로 오르는 계단은 바로 출입문과 연결된다. 배경 가까이 숲이 펼쳐 있고, 숲의 오른쪽, 그러니까 건물의 뒤쪽이 등퇴장 로이고, 숲의 왼쪽, 닭장 뒤에도 샛길이 난 것으로 설정된다. 장면변화에 따라 배경에는 수많은 별빛이 명멸함을 볼 수 있다.

연극은 도입에 누더기를 묘하게 짜깁기를 해 닭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은 의인화 된 닭이 횃대를 오르내리며 펼치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찰스라는 이름을 가진 닭은, 6개월이면 성장을 마쳐 음식으로 제공되는 여느 닭과는 달리, 2년간 이 닭장에서 생존해 있었음을 알린다. 개장에서 메리라는 개가 다가와 으르렁대며 참견을 하면서 찰스라는 닭을 꼭 물어죽이겠다는 의사를 나타낸다. 그 때 중키에 탄탄해 보이는 몸집을 가진 음식점 주인이 등장해, 닭장을 열어 모이를 주고, 닭을 잡아 그 자리에서 목을 비트는 장면이 연출된다. 개장 앞으로 가서 개에게도 먹이를 주는데, 개 먹이는 닭의 내장이라는 것이 알려진다. 주인의 부인이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고, 부인은 잘생긴 모습에 관능적인 몸매를 지녔는데, 앞을 잘 보지 못하는 것으로 소개가 된다. 부인은 한 때 찰스라는 남자친구와 가까운 사이였는데, 찰스가 <성호가든>을 방문한 다음 급작스레 행방불명이 되었고, 부인은 늘 찰스생각을 하며 그것에 대한 궁금증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성호가든>에 직업소개소 사장이 조선족 여인을 데리고 등장한다. 사장은 음식점 주인에게 소개비를 두둑이 받고 여인을 맡기고 떠난다. 주인은 조선족 여인에게 다가가 몸을 여기저기 만져본다. 여인이 저항을 하자, 불법 체류 자를 맡아줄 사람은 자신뿐이라며, 옷을 들추고 벗긴다. 이 광경을 보며 개 메리가 짖어대기 시작한다. 이 때 주인여자가 등장을 한다. 앞을 못 보는 부인은 당연히 남편과 여인의 행태를 보지 못한다. 남편은 여인을 닭장 뒤 샛길로 해서 어디론가 데려간다.

<성호가든>의 일상이 되풀이 되면서, 식당주가 메리를 데리고 등장한다. 메리는 성대수술을 해 짖지를 못하는 개가 된다. 찰스는 메리가 짖지 못하자 분노를 표한다.

<성호가든>의 정기휴일이 된다. 주인은 모이와 먹이를 주고, 낚시질을 하러 떠난다. 얼마 안 되어 직업소개소 사장이 엽총을 들고 샛길로 등장한다. 여주인이 집 밖으로 나오자, 그녀에게 다가간다. 놀라며 어떻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왔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샛길통로로 왔노라고 답하며, 그녀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욕망을 고백한다. 닭장 속 찰스가 꼬꼬댁거리며 울어대니, 사장은 엽총을 발사해 닭 몇 마리를 죽인다. 여주인은 사장에게 엽총을 하루만 빌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눈 때문에 먹는 약의 성분을 알아봐 달라고 하며, 사장을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장면이 바뀌면, 여주인이 조선족 여인을 부른다. 여인이 지은 죄도 있어 서먹서먹해 하며 여주인에게 다가가니, 여주인은 오히려 여인에게 다정하게 대하며, 언니라고 부르라고 이른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광경이 연출된다.

총을 찾으러 온 직업소개소 사장이 총을 찾아들고, 약의 성분을 이야기한다. 눈이 점점 더 나빠지는 약이라는…. 그리고, 메리에게 방아쇠를 당겨본다. 총이 발사되고, 메리가 죽는다. 찰스가 꼬꼬댁거리자 닭장을 향해 총을 또 발사한다. 여주인과 직업소개소 사장의 이야기로 여주인의 남자친구 찰스가 죽게 된 까닭과 찰스의 시신이 닭의 모이가 되면서 영혼도 닭에게 옮겨져 찰스라는 닭이 생겨난 사연이 밝혀진다. 그러나 찰스는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발사된 총에 맞아 쓰러진다. 여주인은 총을 뺏어 소개소 사장을 사살한다.

대단원에서 여주인은 조선족 여인과 힘을 합쳐 음식점 주인마저 사살한다. 음식점 주인의 영혼도 닭에게로 옮겨져, 주인은 닭장 속 한 마리의 수탉으로

남아 날개를 푸득거리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태훈이 성호가든 주인, 고인배가 직업소개소 사장, 박선옥이 여주인, 찰스 민준호, 조선족 여인 전지혜, 메리 권서봉 등 출연자 전원의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이 관객을 시종일관 연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술감독 김도훈, 무대 민병구, 조명 정태민, 의상 김정향, 안무 라키아, 음악 이고운, 분장 이혜진, 사진 이효민, 조연출 이보영, 무대감독 태준호·장석환, 기획 이나경·조은경·박다혜, 홍보 박아연, 진행 조혜진·이지연, 음향 장용석, 조명오퍼 최진호, 소품 유승철·김서년, 영상 박성순 등 스텝진의 힘이 일치되어 극단 뿌리의 한윤섭 작·연출의 <성호가든>을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4, 극단 아리랑의 오세혁 작, 고동업 연출의 <게릴라 씨어터>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아리랑의 오세혁 작, 고동업 연출의 <게릴라 씨어터>를 관람했다.

게릴라(Guerrilla, guérilla)의 어원은 나폴레옹군의 침입에 대해 스페인 국민이 저항한 전투방법에서 유래하며 ‘작은 전쟁’을 의미한다. 군사적 역량이 부족한 당사자가 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전투지역의 국민의 물리적 또는 정신적 지원을 배경으로 전투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경화기(輕火器)를 사용하여 기습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적에 대한 은밀성ㆍ기밀성이 게릴라의 특징이 된다. 이러한 전투방법은 오래 전부터 실행되어 왔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저항한 유격대 활동과 레지스탕스 운동으로서 널리 이루어졌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민족해방 전투 등의 무력분쟁에서는 주요한 전투방법이 되었다.

조선조 중반이나 후기, 왜적과 오랑캐 군에 대항해 의병이라는 이름으로 게릴라전을 펼쳤고, 일제침탈 시에는 고종의 밀지를 받고, 의병의 기치를 높이 세우고 의병활동을 벌였는가 하면, 남북분단 이후에는, 남쪽의 고산준령을 배경으로 빨치산이라는 이름의 게릴라가 정부군에 대항해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무대는 아름드리나무가 여러 그루 우뚝 서있는 숲이다. 오래된 나무를 자른 등걸이 여기 저기 보이고, 그 옆으로 커다란 바위가 자리를 잡았다. 굵은 나무를 통째로 잘라, 무대 왼쪽과 객석 가까이에 가로 놓아두었다. 산지기의 집은 객석에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무대 오른쪽은 수색대의 초소로 가는 길이고, 무대 왼쪽은 게릴라의 거소다.

연극은 도입에 정부군이 살포한 전단을 집어든 게릴라 대원들이 하나같이 까막눈이라 읽지 못하는 광경이 벌어진다. 마침 그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던 산지기에게 다녀온 게릴라 1인이, 산지기마저 식량공급물량을 줄이겠노라는 통고를 했다며, 자루에서 빵 한 개만을 꺼내 보이니, 게릴라 대원들의 난감한 표정이 드러난다. 게릴라 대장이 언짢은 상황 타개책으로 연극하기를 제안한다. 각자 게릴라의 용감성을 되찾고, 식량공급자에게 자신들의 연극을 보여, 공급물량을 줄이지 않도록 하자는 묘책이다.

대장의 지도에 따라 게릴라들의 연극 만들기와 연습이 시작된다. 차츰 대원들의 숨은 장끼가 드러나고, 연습에 열정을 다하면서 평소 말을 더듬던 대원 한명은 말더듬기가 사라진다.

이들은 집단으로 산지기를 방문한다, 산지기는 체격이 당당한 여인으로, 조개껍질을 서로 부비는 소리 같은, 웃음을 터뜨리는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게릴라들은 자신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무기가 나무로 만든 장난감 총 밖에 없기는 하지만, 자신들은 용감하며, 연극을 준비하고 있노라 이야기한다. 산지기 여인은 그들 모두에게 빵을 한 개씩 제공한다. 딸은 게릴라 대원 쌍거플과 첫눈에 서로 마음이 이끌린다.

정부군 수색대가 도착해 게릴라들의 동태를 살핀다. 수색대 소대장은 사관학교 출신으로 전투경험이 없는 게 흠이라면 흠인 신참 장교다. 수색대원들도 게릴라의 동태파악을 위해 산지기에게 가기로 하면서 수색대원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군복을 나무 등걸 두에 감추고 산지기 모녀를 만난다. 이때 게릴라 대원 한명이 산지기에게 온다. 산지기와 게릴라 1인에게, 소대장은 자신들이 게릴라 대원이 되고 싶어 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게릴라 대원은 물론 이들을 환영한다. 그 때 수색대원 한명이 수색대원들이 벗어놓은 군복을 들고 등장한다. 왜 옷을 벗어놓고 이리로 왔느냐며….. 위기와 긴급한 상황이지만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진다.

게릴라와 수색대의 대치 속에서 비행기의 폭격 음이 계속되고, 쌍방의 대치상황에서 산지기 딸과 쌍커풀의 사랑이 숲속의 들꽃처럼 피어나고, 그 향기는 객석에까지 전달된다. 연극연습이 계속되던 중, 쌍거플은 폭격으로 희생되고, 산지기의 딸의 몸에는 쌍커풀의 씨가 잉태된 것으로 알려진다.

수색대원 중 1인이 게릴라들 속에 끼어들면서, 폭격으로 사망한 자신의 쌍둥이 형에 관해 상세히 듣게 된다. 그리고 형 대신 연극에 참여한다.

대단원에서 게릴라들은 공연을 하게 되고, 동시에 폭격 음과 함께 모두 화석의 형상으로 역사의 뒷길로 사라진다. 이들의 공연을 지켜보던 수색대원들의 감동어린 표정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남문철, 정선민, 정종복, 권태진, 김신용, 김현준, 박영남, 김동순, 전민선, 배세암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은 연극을 폭소로 이끌어 간다.

프로듀서 김수진, 드라마투르크 전성희, 음악 정민아, 안무 최아름, 무대 김태훈, 조명 민새롬, 의상 김시정, 무감 권순재, 조연출 최민혜, 진행 김동우·변신우 등 스텝 모두의 노력이 드러나, 극단 아리랑의 오세혁 작, 고동업 연출의 <게릴라 씨어터>를 독특한 형식의 희극으로 창출시켰다.

5, 극단 루트 21의 오태영 작, 박재완 연출의 <엄마젖 하얀밥>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극단 루트 21의 오태영 작, 박재완 연출의 <엄마젖 하얀밥>을 관람했다.

무대는 커다란 동굴로 보인다. 정면에 낮은 출입구가 있고, 장면이 바뀌면 정면 왼쪽에 또 하나의 출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무대 왼쪽 끝에 동굴 밖으로 해서 동굴 위 언덕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이 있고, 꼭대기에서 물체를 던지면 첨벙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부근에 커다란 강이나 호수가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동굴 안, 정면으로 보이는 왼쪽 벽 꼭대기에 여인의 퉁퉁 불은 젖 모양의 바위가 눈길을 끌고, 아래쪽에 사람을 묶어두는 사슬이 보인다. 장면변화에 따라 동굴바닥의 작은 공간이 열리고, 내용과 관련된 소품이 전해진다.

연극은 도입에 정면의 낮은 출입구에 안에 밀집해 있는 젊은 남녀들의 꿈틀거리는 형상에서 시작된다. 무대 오른쪽 객석 가까이에 네 명의 출연자가 나란히 서있고, 그들이 백발 가발과 의상을 갈아입으면, 극중 지도자 격인 4인의 원로로 변신을 한다.

내용은 이들이 거주하는 섬의 인구를 불리기 위해, 원로들의 지시에 따른, 젊은이들의 짝짓기가 제도처럼 정착되어 있고, 짝짓기에서의 불문율은, 눈을 가려 상대의 신원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고, 일체 말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어길 시에는 처벌을 하게 되어있다. 처벌을 받게 될 사람은 동굴 벽 사슬에 묶여 고문을 당하게 되고, 목숨까지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이러한 짝짓기에 따라 통일된 행동을 보이지만, 나이가 들은 여인이나, 과부인 경우에는 소외되는 경우가 있어, 불만을 표시하거나, 행동으로 나타내는 정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섬의 지도자 격인 원로들이 제정한 짝짓기 제도를 감히 반기를 들지는 못한다.

과거 에스키모 인들은 집에 남자손님이 오면, 부인과 동침을 하도록 해, 거기서 잉태한 씨앗으로 종족의 수가 감소하지 않도록 했고, 여진족은 일처다부제로 종족수를 늘려나갔다. 그 뿐인가 현재 우리사회에서도 재벌이나 고위공직자 자녀의 짝짓기는 그 명단과 신상명세서까지 작성되어, 마담뚜라는 인물들에 의해 연결되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이라, 이 연극에서의 원로들에 의한 젊은이들의 엽기적인 짝짓기가 수긍이 아니 가는 것은 아니다.

간혹 짝짓기 중 주림과 배고픔으로 인해 정욕이 발동되지 않아 실패하는 경우에는, 그 인물은 체벌을 당하거나, 그 이상의 형벌을 감수해야 하는 장면이 극 속에 펼쳐지고, 오년간 남편이 출타를 해, 과부나 다름없는 한 여인은 원로들에게 자신을 짝짓기에 포함시켜 주도록 애원하는 웃지 못 할 풍경도 펼쳐진다. 그녀는 원로들의 허락을 받고 젊은이와 살을 밀착시키지만, 공복과 허기에 지친 젊은이가 사내구실을 제대로 못하자, 여인은 몸 안에 감춰둔 생선은어를 꺼낸다. 그러나 젊은이는 펄펄뛰는 생선을 보고 놀랄 뿐 먹으려 하지 않으니, 여인의 의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애절한 소원도 이루지 못한 채, 결국 원로들의 제재와 처벌을 받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대단원에서 이러한 제도에 반기를 든 젊은이들의 집단 봉기로, 잘못된 제도를 타파하고, 원로들의 그릇된 행동에 대항하려 들지만, 가발과 의상을 벗은 원로들의 모습은 이 섬으로 새로 이주해온 외지인 같은 모습이라, 젊은이들의 봉기는 허공에 걷어찬 공처럼, 골인이 아니 된 축구공 같은 모습이 되고 만다.

권경희, 최태용, 류 진, 김낙균, 조은태, 이래경, 김진복, 조부현, 아후성, 김윤경, 민윤영 등 출연자들의 독특한 성격창출과 열연은 관객을 연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술감독 이영택, 드라마투르크 김미연, 조연출 김영래, 무대 김인준, 조명 나한수, 의상 조현정, 안무 금배섭, 음향 박상철, 그래픽 김영윤 이후성, 무감 차태홍, 그 외 스텝 모두의 기량이 드러나, 극단 루트 21과 극단 동의 오태영 작, 박재완 연출의 <엄마젖, 하얀밥>을 한편의 고차원적 표현주의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6,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신은수 작, 신동인 연출의 <거울속의 은하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신은수 작, 신동인 연출의 <거울속의 은하수>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1945년 해방을 전후해,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자인 의친왕과 왕비김씨 그리고 그 자녀들이 겪어야 했던 역사적 상황을 <거울속의 은하수>를 보듯 연극으로 그려냈다,

의친왕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상해로 망명을 하려다 일제에 의해 발각되어, 황태자 책봉에서 제외 되고, 20년 연하의 배다른 아우인 영친왕이 왕통을 잇게 된다. 의친왕의 장남 이건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다니고, 일본여인과 정략결혼을 하는 등의 호방한 생활로 부왕인 의친왕의 눈 밖에 나게 된다. 그런데 이건의 아우인 이우 역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다녔고,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지만 박 씨 가문의 여인과 결혼해, 의친왕의 신뢰를 받는다. 그러나 1945년 8월 6일, 이우는 출근길에 원폭투하로 사망한다. 이 연극은 이우의 장례식에 맞춰 도착한 의친왕과 그 자녀들, 그리고 이우의 미망인과 친지들의 이야기다.

무대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위로 커다란 천창이 있고, 그 밖으로 홍살문과 무덤가를 지키는 대신들의 호상이 보인다. 계단 아래는 왕궁의 일실이다. 한단 높이의 무대에 소파와 의자가 놓이고, 원형의 탁자 위에는 라디오와 도자기가 놓여있다. 무대 좌우로 등퇴장 로가 나 있고, 왼쪽은 측간 출입구로 사용된다. 장면변화에 따라 방 전체가 풍경소리에 맞춰 회전한다.

조선왕가로 되돌아와 남편의 장례를 기다리는, 작고한 왕자 이우의 비 박씨와, 음악에 재능이 있는 여자고등보통학교 생도인 의친왕의 다섯째 딸 이해경, 그리고 한없이 콜록거리는 의친왕의 젊은 아들 이광과 의친왕비 김 씨의 근엄한 모습에서 연극은 시작된다. 의친왕비 김 씨에게는 소생이 없어, 음악에 재능이 있는 이해경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피아노를 사주기도 하면서 마음을 둔다. 의친왕을 심복처럼 따르는 반백의 이기권과 의친왕이 몸종처럼 데리고 다니는 19세의 홍정순이 음울한 왕실의 분위기를 애써 밝게 변화시키려 노력한다. 이때 7세 소년시절에 일본으로 떠난 의친왕의 장남 이건이 몇 십 년 만에 귀국해 왕실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건을 대하는 의친왕의 태도는 냉랭하기 그지없다. 당연히 의친왕과 장남 이건과의 충돌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의친왕은 딸 해경의 피아노 연주소리까지 듣기 싫어하며, 당장 피아노를 없애버리라고 호령한다. 왕의 장남 이건의 부인이라도 조신한 모습을 보이면 좋으련만, 이건의 부인 요시코는 남편 말에 콧방귀를 뀌면서 방자스런 행동을 보이고, 왕실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연기를 냅다 여기저기 내뿜는다. 이런 가운데에도 의친왕비는 음전하고 근엄한 모습으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품위를 유지한다.

이런 경황 중에 의친왕은 19세의 홍정순에게 임신을 시킨다. 시녀노릇을 하며, 누구에게나 “해라” 소리를 듣던 홍정순이, 임신을 함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하세요”라고 존대를 받는 모습은 객석의 웃음을 유발시킨다. 통분한 마음으로 거리로 뛰쳐나간 의친왕의 장남 이건은 전차 속에서, 우연히 요시코라는 자신의 부인과 동명이인인 조선여인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인연이 아니라, 필연처럼 여겨진다. 드디어 장례일인 8월 15일이 다가왔으나, 일본왕의 특별방송으로 장례를 연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라디오를 통해 일본 왕이 연합국에 항복한다는 충격적인 방송이 흘러나온다.

대단원에서 왕비는 평소의 근엄한 자세를 유지하고, 왕녀 이해경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장남 이건은 동경으로 떠난다. 이건은 전차 속에서 다시 한 번 조선 여인 요시코와 만나 주소를 적어 받게 된다. 이 연극에서는 소개되지 않지만 의친왕의 장남 이건은 후에 이 조선여인과 재혼을 하게 되고, 자녀도 갖게 된다.

최형인, 박용수, 류태호, 신용욱, 김왕근, 추귀정, 이혜원, 조한준, 김희연, 김희정 등 출연자들의 성격창출과 호연은 연극의 품격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왕비역의 최형인의 호연은 물론, 박용수와 신용욱의 호연은 1972년에 제작된 프랜시스 코프라 감독의 영화 <대부>에서의 말론 브랜도와 알파치노를 보는 느낌이다.

예술감독 권용, 드라마투르크 배선애, 무대 임민, 작곡 김철환, 저명 최보윤, 의상 박진희, 소품 김혜지, 분장 장경숙, 조연출 김정민, 무대감독 주지희, abeirjaegrqg 자송휸, 음향오퍼 김해린, 조명오퍼 정희찬, 무대크로 신현일, 그래픽 다홍디자인, 사진 이강물, 기획·홍보 코르코르디움 등 스텝의 노력이 일치되어,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신은수 작, 신동인 연출의 <거울속의 은하수>를 고품격 고수준의 서사극으로 창출시켰다.

7, 극단 백수광부의 윤영선 작, 최치언 재창작, 이성열 연출의 <죽음의 집 2>

극단 백수광부의 윤영선 작, 최치언 재창작, 이성열 연출의 <죽음의 집 2>를 관람했다.

윤영선(1954~2007)은 해남에서 고산 윤선도 선생의 후손으로 태어나, 단국대와 미국 뉴욕에서 공부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극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했다.

작품으로는 <사팔뜨기 선문답><떠벌이 우리 아버지 암에 걸리셨네> <맨하탄일번지> <키스> <파티><여행> <임차인> 등이 있다.

무대는 병원 같기도 하고 보건소로도 보이는 흰 커튼을 드리운 가리개가 진료실 분위기를 풍긴다. 장면이 바뀌면 무대중앙이 도로가 된다. 의사가 도로를 달려가는 장면이 전개된다. 다음 장면은 어느 환자의 집으로 무슨 곡간같은 건물이다. 배경 쪽에 바위덩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무대왼쪽에 내실로 들어가는 통로와 그 옆에 창문이 있다. 무대 오른쪽에도 이 집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나있다. 거실에는 긴 나무걸상이 놓여있고, 의사가 가져온 등받이가 달린 의자도 사용된다.

연극은 도입에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는 젊은 의사에게 부인의 음성이 들려온다. 밤이 깊었으니 그만 자라며 혹시 늦도록 게임에 열중하는 게 아닌가 묻는다. 의사는 아니라며, 음악을 틀어놓는다. 부인은 몇 번 묻기를 되풀이 하다가 먼저 자겠노라며 잠잠해진다. 천둥소리가 울리면서 비가 쏟아지는 것으로 설정이 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벙어리 여인이 등장해 급한 환자 때문에 왔다는 듯. 자신을 따라오라는 동작과 함께 앞장을 선다. 의사가 따라 나서자 천둥소리가 거듭 나면서, 비가 쏟아지는 길을, 의자와 진찰가방을 손에 든 의사가 정면을 바라보며 뛰는 모습이 전개된다. 물론 제자리에서 뛴다.

장면이 바뀌면 환자의 집 거실이다. 배경 쪽 벽에 커다란 바위덩이가 보인다. 진찰가방과 의자까지 든 의사와 벙어리 여인, 그리고 여인의 어머니와 작은 아버지가 의사를 반긴다. 의사와 여인은 비를 맞아 온통 젖은 몸이다. 어머니는 벙어리 여인에게 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으라고 한다. 의사에게도 젖은 옷을 바꿔 입으라며 체격이 비슷하니 죽은 남편의 옷이라도 입으라며 옷을 가져다준다. 의사가 거절을 하지만 온몸이 물에 빠진 생쥐 꼴과 다름이 없다. 의사는 응급 환자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응급환자가 있다는 가족들의 태도가 의외로 급하기는커녕 여유만만하다. 옷 타령이 잠시 계속되고, 벙어리 여인은 옷을 갈아입으러 무대 오른쪽 통로로 들어간다. 거듭 환자를 보아야겠다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와 작은 아버지라는 남자는 엉뚱한 답변만 한다. 야외 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벙어리여인에게 왜 실내복을 입지를 않았느냐는 핀잔이 쏟아지고, 환자는 죽은 이집 아버지라며, 화병으로 죽었는데, 집 채 만 한 바위덩이가 굴러 이집으로 뚫고 들어왔다며, 배경 쪽 바위이야기를 한다. 갑자기 이집의 자매가 창밖으로 두 사람의 머리를 드러내고, 오빠가 돌아왔다고 소리친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아니라, 사실은 이 집 아들이 환자라고 한다, 아들을 치료하겠다며 의사는 진료가방을 연다. 그런데 가방 안에서는 의료기구 대신 교수형 할 때 쓰는 목을 매는 밧줄이 튀어 나온다. 교수형 밧줄로 인해 이 집 식구들과 승강이가 벌어지고, 의사는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밖으로 뛰어 나간다. 그 때 다시 천둥소리가 울린다. 물론 비가 퍼붓는 것으로 설정된다. 그러니 의사가 다시 돌아오는 수밖에…..

돌아온 의사에게 작은 아버지는 술을 권한다. 술을 마신 의사는 벌거벗은 채 긴 나무의자 위에 잠들어버린다.

누워 잠든 의사의 젖은 몸을 딸에게 닦아주라고 어머니가 이야기한다. 딸이 시원스레 닦지를 못하니, 어머니가 천을 뺏어들고 닦는다. 그러자 딸이 “안돼요!”라고 소리를 지른다. 벙어리 여인의 말문이 틘다. 의사가 눈을 뜨고 자신의 벌거숭이 몸을 보고 아연실색한다. 벙어리 여인의 어머니가 남편의 옷을 다시 내민다. 의사는 그 옷을 받아 입는다.

잠시 후 벙어리 여인이 허벅지가 피투성이가 되어 등장한다. 여인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는 독한 술을 알코홀 대신 사용하겠노라고 가져오도록 이른다. 어머니가 독한 술병을 내온다. 의사가 독주로 여인의 상처부위를 치료하자, 벙어리 여인의 말문이 열린다. 그러면서 이 집 아들, 그러니까 벙어리 여인의 오라비가 먹을 게 없어 쥐를 잡아먹었는데, 쥐 고기에 맛이 들려 나중에는 쥐만 잡아먹게 되었고, 어느 땐가 그 오라비는 쥐의 형상으로 그 모습이 바뀌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쥐 고기만 먹고 쥐의 모습으로 변했으니, 사람고기를 먹으면 다시 사람 모습이 될까 해서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였다는 이야기다.

황당한 이야기에 더 이상 치료할 의지를 잃은 의사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의자와 가방을 챙겨들고 문을 나서려고 한다. 작은 아버지는 잘 가라며 대신 절대로 이러한 사실을 남에게 알려서는 안된다고 다짐을 한다. 그때 여인의 어머니가 칼을 들고 나온다. 그대로 돌려보낼 수 없다며, 칼을 겨누고 다가선다. 잠시 의사와 이집 가족들 간의 몸싸움이 벌어지고, 의사는 부상당한 몸이지만 가까스로 이 집에서 탈출해 병원으로 되돌아 달려가기 시작한다.

대단원은 연극의 도입과 마찬가지로 진료실 장면이다. 남편이 없는 텅 빈 진료실에서 부인이 빗소리에 밤새 한숨도 못 잣다며 그만 자겠다는 졸음 섞인 음성과 이 고장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하자는 소리와 함께 잠잠해 지면서 남편의 간밤의 일을 굳은 모습으로 생각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김학수, 정은경, 김현영, 정훈, 김원진, 민해심 등 출연자 전원의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이 관객을 시종일관 공연에 몰입시킨다.

예술감독 채승훈, 무대 윤시중, 조명 김창기, 의상 박인선, 음악 김동욱, 사진 이은경, 조연출 이우천·백정희, 기획·홍보 코르코르디움 등 모두의 기량이 드러나, 극단 백수광부의 윤영선 작, 최치언 재창작, 김옥란 드라마터그, 이성열 연출의 <죽음의 집 2>를 엽기적이고 공포감을 만끽할 수 있는 독특한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8, 극 발전소 301의 김 원 작, 정범철 연출의 <만리향>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 발전소 301의 김 원 작, 정범철 연출의 <만리향>을 관람했다.

<만리향>은 중국음식점의 이름이다. 이 연극은 대를 이은 중국음식점과 자녀들의 이야기다.

무대는 오른쪽 벽면에 중국 음식점 입구인 여닫이 유리문과 중화요리, <만리향>이라고 써 붙인 커다란 붓글씨가 눈에 띈다. 서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 필력에 감탄을 한다. 그리고 실내에 걸려있는 음식목록을 열거한 글씨 역시 명필의 솜씨다. 유리문을 들어서면 카운터가 있고, 빨간색 전화기가 놓여있다. 카운터 뒤로 중국술 진열장과 냉장고가 있고, 그 옆이 주방으로 들어가는 통로다. 통로 안쪽으로 흰색 타일 벽면이 보인다. 정면 벽에 몇 장의 광고물 포스터가 붙어있고, 그 앞으로 테이블과 의자가 나란히 놓여있다. 아직 펼쳐놓지 않은 테이블과 의자는 벽 앞에 쌓아 두었다. 무대 왼쪽에 내실로 들어가는 문은 한지를 바른 나무창살문이고, 그 앞에 마루가 놓여있다.

집의 어른은 어머니이고, 어머니는 노인성 무릎관절염을 앓고 있다. 현재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며 주방 일을 맡는 장남, 장남의 솜씨 때문인지 음식점 손님이 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고, 장남의 처는 예쁘장한 모습인데 7년째 아기가 없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차남은 집을 뛰쳐나가 객지생활을 하고, 결혼할 나이가 된 장녀가 음식점 일을 돕고 있다. 장녀는 유도선수였다는 설명이지만 체격은 보통이다. 장녀는 부근 어떤 남성과 교제중인 것으로 소개가 된다. 막내인 딸은 5년 전에 집을 나간 뒤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설정이 된다.

연극은 도입에 5년이나 행방불명이던 막내가 시장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소문과 그 진위를 확인하려는 어머니와 장남부부, 그리고 장녀의 동태에서 시작된다. 연락을 받고, 집을 나간 차남까지 돌아온다. 그런데 소문은 소문일 뿐 집과 가까운 시장까지 왔다는 이야기에서 그 이상의 진전은 없다. 장남과 차남의 오랜만에 상봉도, 짜장 맛과 관련된 의견차이로 형제간의 우애는커녕 냉랭한 분위기와 티격태격하는 모습만 연출된다. 어머니가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한 차남에게, “너는 남의 자식을 데려다 기른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꺼내며, “네 형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 이런 사실을 떠벌인 적이 없다.”라고 고백한다. 차남은 이 말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면서 어머니는 굿을 하면 죽은 사람도 무당을 통해 현신한다는 말을 믿는다며, 막내의 모습을 보기 위해 굿을 해주기를 원한다. 자녀들은 수백 만 원에서 1천 만 원의 금액을 요구하는 무당들의 굿 가격에 하품을 한다. 그런데 장녀의 친구이자 동료유도선수였던 여인이 현재 연극배우노릇을 한다는 말에, 그녀에게 무당 노릇을 하도록 부탁해, 저렴한 비용으로 굿을 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그녀에게 연락한다. 사실 이 집 막내는 지체장애아로, 집 부근 개울에서, 물에 빠진 자신의 신발을 건지려고 들어가다가, 불어난 물에 휩쓸려가 익사한 것을 장녀는 알고 있기에, 장녀는 이러한 사실을 오라비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동료였던 유도선수에게도 연락을 한다.

장면이 바뀌면, 장녀의 친구인 체격이 당당한 여자유도선수가 등장한다. 원래 이 집 장남을 좋아했으나, 장남이 다른 여인과 결혼한 것에 실망해 발길을 끊은 것으로 소개가 되고, 또 올림픽출전을 위한 유도결승전에서 장녀에게 패한 것 때문에 그 후 이 집과 앙숙처럼 지내게 된 내력이 소개가 된다. 그녀는 차남이 짬뽕에 홍합을 잔뜩 넣어준 것까지 기억하면서, 무당노릇하기를 거절한다. 장남은 아내와 사별했다는 거짓이야기를 지어내고, 장녀는 무릎까지 꿇으며 무당노릇을 해달라고 애원을 하고, 차남까지 사정을 하니, 결국 그녀는 굿을 해 주기로 마음을 바꾼다.

장녀의 여자 친구가 무당복장을 제대로 입고, 악사 세 명을 대동하고, 굿판을 제대로 벌인다. 굿이 절정에 이르면서 막내의 혼이 무당을 통해 현신한다. 어머니에게 일찍 저세상으로 가 미안하고 죄송하다며 아뢰고, 장남에게는 새 여자를 맞으라고 이르고, 장남의 부인에게는 사과 두 알이 몸에 들어 있다며 쌍둥이 임신을 예언한다. 차남에게는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장녀에게 결혼을 곧 하게 되리라는 예언으로 굿을 마무리한다.

대단원에서 어머니는 막내가 오래전에 저세상으로 떠난 것을 알고 있었다는 고백과 함께, 장남부인의 잉태소식이 전해지고, 장녀는 가까이 지내는 남성과 더욱 가까워지고 있으며, 장남과 차남은 예전처럼 중국음식점 만리향의 짜장 맛이 최고라는 소리를 다시 듣게끔 음식 맛내기 경쟁을 벌이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김효숙, 성노진, 김지은, 백선우, 이교엽, 문학연, 그리고 악사역의 이성순, 명인호, 심규현이 등, 출연자 전원의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은 관객을 극에 완전히 몰입시키고, 연극을 폭소와 눈물로 이끌어 간다.

무대 김대한, 조명 최은정, 소품 김기향, 옿보디자인 우민혁, 조연출 배소현, 기획 엠버스 등 스텝의 기량도 드러나, 극 발전소 301의 김 원 작, 이은경 드라마 트루크, 정범철 연출의 <만리향>을 흥미와 감동만점의 친 대중적인 사실주의 연극으로 창출해 냈다.

9, 부산연극제작소 동녘의 양효윤 작 연출의 운악을 보고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2014 서울연극제 기획초청작인 부산연극제작소 동녘의 양효윤 작/연출의 <운악>을 관람했다.

<운악>은 현진건의 단편 <운수좋은 날>을 재창작한 연극이다.

현진건(1900~1943)은 대구출생으로 호는 빙허(憑虛)다. 가계는 한말에 득세한 개화파 집안으로서, 대구우체국장이었던 경운(慶運)의 4남으로 태어났다. 1915년 이순득(李順得)과 혼인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세이조중학(成城中學) 4학년을 중퇴하고 상해로 건너가 후장대학(扈江大學)에서 수학한 뒤, 1919년 귀국하여 한말 주일공사관 참서관(參書官)을 지낸 당숙 보운(普運)에게 입양되었다. 1920년 《개벽(開闢)》에 〈희생화(犧牲化)〉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1921년〈빈처(貧妻)〉를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같은해 조선일보사에 입사함으로써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홍사용(洪思容) 〮 이상화(李相和) 〮 나도향(羅稻香) 〮 박종화(朴鍾和) 등과 함께 《백조(白潮)》창간동인으로 참여하여 1920년대 신문학운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하였다. 1922년에는 동명사(東明社)에 입사, 1925년 그 후신인 《시대일보》가 폐간되자 동아일보사로 옮겼다. 1932년 상해에서 활약하던 공산주의자인 셋째 형인 정건(鼎建)의 체포와 죽음으로 깊은 충격을 받았는데, 그 자신도 1936년 동아일보사 사회부장 당시 일장기말살사건으로 구속되었다. 1937년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소설 창작에 전념하였으며, 빈궁 속에서도 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지내다가 1943년 장결핵으로 죽었다. 장편 · 단편 20여편과 7편의 번역소설, 그리고 여러 편의 수필과 비평문 등을 남겼는데, 그의 작품경향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사실주의계열로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자전적 신변소설, 하층민과 민족적 현실에 눈을 돌린 소설, 1930년대의 장편소설과 역사소설 등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전적 소설인 〈빈처〉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등에서는 순수한 젊은이가 구체적인 생활 안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부닥치는 여러 가지 좌절의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한 양심적 지식청년의 고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둘째, 창작집 《조선의 얼굴》(1926)을 간행한 시기는 제목이 나타내주듯이, 그의 의식이 자전적 세계를 벗어나 식민지의 민족적 현실 및 고통받는 식민지 민중의 문제로 옮겨간다. 도시하층민의 운명을 추적한 〈운수좋은 날〉(1924), 미숙한 성의식(性意識)과 노역으로 고통받는 농촌여성을 그린 〈불〉(1925), 땅을 잃고 뜨내기 노동자로 전전하는 한 이농민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고향〉(1926) 등은 1920년대 단편문학의 한 정점으로 기록된다. 셋째, 장편소설 〈적도(赤道)〉(1933~1934)에서는 삼각관계의 연애소설 구조 속에서, 그리고 〈무영탑〉(1938-1939) 〮〈흑치상지(黑齒常之)〉(1939~1940, 미완) 〮〈선화공주(善花公主)〉(1941, 미완) 등에서는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민족해방에 대한 강렬한 동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930년대의 암울한 시대적 압박으로 말미암아 외면적인 통속성이 강화되고, 민족정신은 내재화 · 추상화의 경향에 빠졌다. 이밖에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개벽 65호, 1926) 등의 비평문을 통하여 식민지시대의 조선문학이 나가야 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김동인(金東仁) 〮 염상섭(廉想涉)과 더불어 근대문학 초기에 단편소설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로서, 특히 식민지시대의 현실대응문제를 단편기교와 더불어 탁월하게 양식화한 작가로서 문학사적 위치를 크게 차지하고 있다.

<운수좋은 날>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인력거꾼 ‘김 첨지’ 의 하루 일과를 그리고 있다. 김 첨지가 아침에 일을 하러 집을 나서려고 할 때 아픈 아내가 오늘만은 나가지 말라고 거듭 부탁을 한다. 그러나 돈이 궁하고 살림이 궁핍한 탓에 김 첨지는 일을 하러 집을 나서고 만다. 하루 종일 김 첨지는 아내의 말이 머릿속에 서성거리고, 그날따라 툭툭 면상 위를 때리는 비 때문에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다. 게다가 평소와 다르게 돈벌이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불길한 느낌으로 인해 일이 끝난 후에도 그러한 느낌을 떨치고, 친구와 선술집에서 술까지 마시고 집으로 향한다. 그날 돈벌이가 좋았기에 아픈 아내를 위해서 아내가 평소 먹고 싶다고 말하던 ‘설렁탕’한 그릇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으나, 아내는 이미 죽어있고, 어린 아기 혼자 죽은 아내의 젖을 빨며 울고 있었다. 김 첨지가 아내를 보았을 때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는 상태였고 돈벌이가 좋아 운수가 좋았건만, 그 운수 좋은 날은 결국 아내가 죽는 날 이였다는 결말이다.

무대는 여러 장의 한지를 물에 담았다가, 배경전체에 여기저기 던져 붙이고, 한지가 배경에 달라붙어 마르며 변형된 형태를, 한 폭의 새로운 기법의 그림으로 표현한 회화작품 같은 느낌의 배경이고, 그 아래 무대 왼쪽으로 오르는 언덕길, 무대 오른쪽 김 첨지의 허름한 집, 그리고 천정에서 바닥까지 연결된 붉은 선은, 마치 인간의 운명의 선처럼 느껴지고, 무대를 오가는 서너 대의 인력거의 형태도 조형예술작품으로 느껴지는 독특한 설정이다.

<운악>에서는 예뻐 보이는 아내와 아내의 죽음과 관련된 저승사자를 비롯한 지옥의 잡귀들이 등장한다. 아내의 영혼을 인도하는 듯싶은 거대한 학의 날개를 단 여인이 아내의 주변 뿐 아니라, 그 집 지붕 위에 자리를 잡고, 무당과 점쟁이, 그리고 길거리나, 언덕길에 등장하는 귀신들도 한 몫을 한다. 인력거를 타는 손님마다 나름대로의 성격창출이 제대로 구현되고, 잡귀들의 집단행동은 재창작 내용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특히 비 내리는 풍경 전개와 음습하고 우울한 분위기 창출은 아내의 죽음과 어우러져, <운악>을 회색바탕과 백색의 여백, 그리고 움직이는 인력거와 함께 한 폭의 걸작 동양화로 창출시켰다.

김하린, 진선미, 이혁우, 박지현, 강원재, 유하나, 이동욱, 이혜민, 박석재, 한수용, 성주원, 임희선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은 극을 성공으로 이끌어 간다.

제작 강원재, 기획 정현우, 무대 황경호, 조연출 윤혜지, 안무 류혜숙, 음악 이영재 등 스텝 전원의 기량이 확연히 드러나, 부산연극제작소 동녘의 양효운 작 연출의 <운악>을 한폭의 움직이는 회화작품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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