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딸 복희…음소거된 그녀의 이야기 / 이양숙

(집중, 천자평)

장군의 딸 복희…음소거된 그녀의 이야기

이양숙

작: 이강백

연출: 이성열

드라마터그: 김옥란

단체: 백수광부

공연일시: 2014/08/26-09/21

공연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His-tory’인 남성위주의 역사 속에서, 여자들의 이야기 ‘her-story’는 왜곡되고 억압되어져 왔다. ‘즐거운 복희’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남성들의 이야기는 ‘허구’이고, 그 이야기는 경제원리를 토대로 한다. 그 속에서 복희와 그녀의 삶, 즉 그녀의 이야기는주체자 복희가 전하는 ‘복희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전해지는 복희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극은 복희의 아버지인 장군의 죽음 이후의 상황을 다루는데, 그 세계는 철저히 남성들의 것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남성들이고, 작가, 연출가 모두가 남성이다. 초상화에 그려져 있듯 어린 소녀 복희는 어머니가 부재한 상태에서 ‘아버지의 딸’로 살았고, 여인이 된 복희는 아버지의 죽음이후에도 ‘장군의 딸’로 살아가야 한다. 장군이 생전에 마련한 팬션 사업에 투자자로 6명의 남성들은 자연스럽게 복희와 그녀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복희 아버지에게서 이양받았다. 화가, 퇴역장군, 레스토랑 운영자, 수학교사, 건달, 나팔수 등은 출신 성분과 처지는 다르지만 팬션의 소유주가 된 이후에는 변질되어간다. 그 과정에는 경제원리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인간성, 탐욕으로 인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왜곡된 품성들이 적나라하게 담겨져 있다. 그 중심에서 복희는 남성의 소유로, 감정조차 통제되고 실존하나‘ 허구적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희생양이다.

남성인물들은 처음에는 서로 개인일 뿐이었으나 팬션 사업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목적으로 점점 하나가 되어가며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간다. 반면에, 복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이다. 등장하지 않은 나팔수를 제외하고, 극중 어느 누구도 복희와 개인적으로 관계된 사람도, 대사를 주고받는 사람은 없다.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무대는 철저희 남성들만의 영역인 듯, 복희가 그 무대에 발을 디딘 경우는 단 두 번 정도에 불과하고, 복희의 등장은 늘 주변 다리에만 제한되어 있고, 그녀에게 허락된 대사는 늘 독백뿐이다. 복희와 유일하게 개인적 관계를 가진 것으로 들려지는 나팔수도 무대에 한번 등장하지 못해, 허구적 인물같이 느껴지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린다. 또한, 복희를 짝사랑하는 건달이라는 인물도 사실 주변인에 불과한데, 직업도 없는 한량에 불과해 그가 가진 복희에 대한 애정조차도 신뢰하기가 쉽지 않고, 모든 진실을 알고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희생되고 있는 복희를 위해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쉬웠던 건 작품의 초점이 남성들에만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복희는 사실상 주인공으로 너무 미비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작가나 연출가의 의도였는지, 연기자의 역량 때문인지, 복희의 감정선에서 확고한 변화를 보지 못했다. 제목인‘즐거운 복희’에서 ‘즐거운’은 장군의 어린 딸로 자라다, 죽은 장군의 딸로, 슬픔만이 강요된 세계에서 스스로 ‘즐거운 자’로 정체성을 만들어 가겠다는 복희의 ‘독립선언’이다. 그런 인식 과정이 좀 더 점진적이나, 극적으로 그려지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유산인 팬션을 전소시키려는 복희의 행위는 드디어 아버지의 세계, 그리고 아버지를 대신하는 6명 남성들의 세계에서, 꼭두각시처럼 놀아나던 끈을 스스로가 끊고 더 이상 인형의 삶이 아닌 ‘주체’로 자신의 발로 움직이겠다는 의지의 극단적 발현인데, 그냥 충동적인 결정으로만 비춰졌다. 마지막 장면에서 화재로 죽은 줄 여겨졌던 복희가 무대 가장 높은 곳에서 노란 잠바를 입고 배낭을 메고 지나가는 모습으로 잠깐 보여지는데, 그것이 그녀의 자유와 독립 등을 설명해줄 수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팬션을 벗어나 또 다른 세계로 나간 복희의 삶이 얼마나 녹록할지 그것 역시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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