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극 죽음의 날에 부쳐
2014년 11월 14일은 한국 연극계의 심장부인 서울 연극의 상징적인 죽음을 알리는 참담한 날이다. 한국의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기관인 문화예술위원회의 산하에 있는 한국공연예술센터(약칭 한팩)가 ‘서류 미비’를 내세워 ‘2015년 정기대관 공모 선정 결과’ 명단에서 서울연극제를 탈락시킨 날이다. 왜 이 날이 참담한 역사적인 날이고 상징적인 죽음의 날인가?
서울연극제와 아르코예술극장의 역사적 가치
1977년 출범한 서울연극제는 한국 연극계 최대 행사로서 지금까지 존속해오고 있다. 연극계 일각에서는 과거에 비해 권위와 명성이 약화되었다고 보기도 하나, 서울연극제는 아직도 건재하다. 작품 선정의 다양한 방식과 절차 등 연극제의 운영이 한층 더 진보하였고, 동시대 현실 문제를 담은 작품들이 공연되어 이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서울연극제는 단순히 특정 지역의 연극제들처럼 해마다 치르는 ‘서울’만의 연극제가 아니다. 서울연극제는 한국 현대 연극의 살아 있는 역사이자 전통이다. 동시에 명실 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창작극의 산실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이처럼 오랜 역사와 전통, 한국 연극계의 심장 역할을 해온 서울연극제의 뿌리가 뒤흔들리는 판인데 어찌 참담한 날이 아니며 상징적인 죽음의 날이 아니란 말인가?
특히 제5회부터 연극제가 열렸던 아르코예술극장(구 문예회관대극장)은 한국 현대 연극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원로와 중견 연극인에겐 연극 정신과 예술혼을 불태운 터전이다. 젊은 연극인에겐 한번쯤 밟아보고 싶은 희망과 꿈의 무대다. 엄혹하고 살벌했던 1970년대와 80년대 군부 정권 시절에도 이 극장에서 연극은 계속 올려졌다. 무용 등 다른 공연예술에도 열려 있긴 하나, 우리 연극인에게 아르코예술극장은 특히 과거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역사적인 공간이며 극작과 연극 정신을 발현하는 예술의 창조 공간이다. 또한 이 공간은 무대를 밟고 싶은 희망과 꿈을 키워주는 미래의 열린 공간이자 서울 대학로의 상징적인 핵심 극장이자 연극 예술의 건축 문화재다.
한팩 심사의 자기모순과 저의
서울연극제와 아르코예술극장 각각의 역사적 가치와 이 둘의 불가분리의 관계가 이러할진대, 문화예술위원회의 한팩이 얼마나 대단한 권력을 지녔기에 사소한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서울연극제 대관 신청을 탈락시킨단 말인가? 한팩이 공식적으로 서울연극협회에 전달한 공문에서 탈락시킨 이유를 살펴보면,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한팩이 지적한 서류 미비는 똑같이 서류가 미비했던 한국연극연출가협회측의 대관 통과와 상충되어 형평성에 어긋난다. 그리고 서울연극제는 예년과 준비 과정이 동일하기에 올해와 마찬가지로 작년에도 서류 준비가 동일하였다. 그런데 작년에는 통과된 데 반해 올해는 탈락되었다. 한팩은 상황이 이런 데도 ‘엄정한 잣대’ 운운하며 심사의 적절성을 주장하고 있다. ‘표적 심의’의 비난과, 탈락시킨 다른 저의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이밖에도 한팩이 지적한 공연 작품의 참신성과, 레미제라블 특별 공연 관련 문제가 심사 기준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백번 양보하여 받아들인다 해도, 그 점들 때문에 서울연극제가 대관 탈락되어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한팩에 대한 불신은 높아만 간다. 작년에는 심사위원 명단을 떳떳이 공개했으나 올해는 규정에 없다며 공개하고 있지 않다. 급기야 한팩에 대한 불신은 서울연극제 같은 중요한 행사를 대관 탈락시키면서 상업성이 강한, 극단이나 ‘연극열전’에게 대관해준 것을 문제 삼는 것으로 비화된다. 한팩의 권위와 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하고 있다.
공연예술을 지원하여 공연 문화 발전에 기여해야 할 한팩이 왜 대관 탈락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을까? 한팩의 입장을 두 가지로 요약해서 추측해볼 수 있다. 첫째, 한팩은 서울연극협회나 이 협회가 주관하는 서울연극제를 너무 하찮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팩은 서울연극협회를 ‘하나의 단체’로 언급한 적이 있다. 이 협회에 소속된 극단이 몇 백 개인데 단순히 하나의 단체로 보다니! 몇 명이 모인 극단이 대관 신청하는 것과 똑같이 취급한단 말인가. 서울연극협회의 존재를 폄하하는 오만함을 지닌 한팩이 서울연극제 정도를 하찮게 보는 것은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둘째, 한팩이 보낸 공문을 읽으면, 행간을 통해 한팩과 서울연극협회의 갈등이 읽힌다. 한팩이 작년 서울연극제에서의 레미제라블 공연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올해의 심의 이전에 한팩은 서울연극협회와 갈등 관계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설령 양측의 갈등이 있었다고 해도, 또는 한팩의 입장에서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었다고 해도, 갈등의 해결 방식으로 한팩이 갑의 위치에서 서울연극제와 협회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공연예술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한팩의 입장에서 서울연극제나 협회에 문제가 있다면, 좀더 인내심을 갖고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갈등이 있다면 대화와 소통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갈등의 관계를 상호 발전적인 관계로 전환시킬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예술 현장 일선에서 유연하게 처리하라고 설립한 것이 한팩의 존재 이유들 중 하나 아닌가.
예술 행정의 문화권력
그런데 한팩은 어떻게 했는가? ‘엄정한 잣대’라는 심사 기준을 내세워 서울연극제를 단칼에 날려버렸다. ‘단칼에 날려버린다’는 표현이 과격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전 예고도 없이 마른 날에 날벼락을 맞은 자의 심정을 생각해보라. 한팩이 서울연극제의 역사적 가치를 알았더라면, 서울연극협회에게 좀더 배려심이 있었더라면, 사전에 협회에게 심사 요건을 갖추도록 권유하거나 경고라도 주어 협회가 심사 요건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할 것이다. 이점에서 한팩은 왜 이번 대관 탈락 결정을 ‘보복성 심사’라고 하는지 경청해야 한다.
한팩이 문화예술을 지원하고 봉사하는 단체가 아니라, 갑의 위치에서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공공기관이라는 걸 한국 연극계에 보여주어 우리 연극인들을 벌벌 떨게 하고 싶었던가? 이걸 예술 행정이라고 하고 있는가? 행정을 배우는 초자도 이렇게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 오직 행정의 문화권력자만이 이렇게 한다. 이번 서울연극제 대관 탈락을 주도했던 담당 실무자들은 한팩을 책임지고 운영할 만한 자격이나 실력도 없는 인물들이다. 한팩은 서울연극제를 말살 위기로 몰아넣은 사태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한팩은 공연 예술을 발전시키고 융성하게 돕는 공공 예술 센터지, 침대의 크기(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팔다리를 잘라 문화예술의 역사와 숨통을 끊어버리는 신화적 존재 프로크루스테스가 아님을 명심하라.
꼭두각시 연극 전문가
흔히 하는 말에 “아는 놈이 더 무섭다”는 표현이 있다. 실상을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보다 더 가혹하고 무섭다는 뜻으로서 아는 사람한테 당한 피해자가 부정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지경이 되도록 연극을 아는 한팩 담당 실무자와 연극을 전공하는 심사위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점이다. 이번 사태가 연극에 무지한 실무자들이나 심사위원들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다. 전혀 무지하니까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가정은 해당 전공 분야의 심사위원을 두지 않고 심사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근본 문제가 발생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절대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되는 것이 바로 연극계의 속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소위 ‘연극 전문가’라는 심사위원들도 대관 탈락 결정에 동의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너무 충격적이다. 우리가 연극계에서 연극 전문가를 신뢰하지 못 한다면, 연극계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수많은 연극인들은 어떤 전문가의 말과 비평을 경청하며 활동해야 한단 말인가. 연극을 전공하니까 연극과 관련된 서울연극제 행사를 무조건 옹호하고 비호하라는 말이 아니다. 서울연극제든, 그것을 주최하는 서울연극협회든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지적하고 개선하고 발전할 수 있게 돕는 위치에 있어야 전문가다운 전문가다. 서울연극제 대관 심사에서 대관탈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의식있는 바른 소리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가. 아니면 역사적 사건이 될 대관탈락을 막지 못할 바에야 사직을 할 수 있는 용기도 없었단 말인가. 연극 전문가들이 한팩의 말대로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의 ‘엄정한 잣대’에 따라 심의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거야말로 권력 기관의 말대로 따라하는 ‘어용’ 전문가이고, ‘꼭두각시’ 전문가가 아닌가.
불신이 점차 쌓여간다. 한국 연극계에서 이런 전문가들이 자기 소신도 없이 공공기관의 지시대로 얼마나 많은 심사를 수행할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심사들이 이렇게 진행되었을까. 우리 연극인들이 이런 사람들을 전문가로 모시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분발하고 활동해야 하다니! 이런 연극 전문가들이 정리하고 제시하는 대로 한국연극계의 역사와 지도가 그려져야 하는가! 나랏돈을 먹고 심사했으면서도, 심사위원 명단 공개를 하지 못하는 한팩의 궁색한 변명 속에 숨어 있는 연극 전문가들이여! 전문가답게 소신껏 심사했다면, 역사 앞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밝혀라!
한팩은 이번 사태를 더 이상 변명으로 지연하거나 장기화해서는 안 된다. 힘의 남용을 스스로 인정하고 사태를 원점으로 돌려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팩은 스스로 문화 권력 기관임을 자인하게 되어 역사의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서울연극제를 주최하는 서울연극협회도 이번 기회에 자성할 것이 없나 살펴야 한다. 서울연극제 대관이 탈락되었다고 공분할 수 있지만, 한팩으로부터 사소한 지적도 받지 않도록 내부적으로 한팩의 심사 기준을 면밀히 검토하고 연극제의 운영 방식이나 제도 개선 등을 통해 공공 예술 기관의 방침을 준수하려는 태도의 전환이 요구된다.
실무자들의 소통 절실
행정에서 시스템과 제도가 문서화되고 엄격한 기준이 마련된다 해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정치한 시스템과 제도라 해도,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포용할 수 있는 완벽한 시스템과 제도는 없다. 시스템과 현상 사이에는 틈과 균열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틈과 균열 때문에 마찰이 생기고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이 틈을 메우고 문제를 해결하고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드는 게 바로 사람이다. 한팩과 서울연극협회는 단체 대 단체로 관계를 맺고 만나겠지만, 실무자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만나는 게 중요하다.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은 만남과 소통의 계기를 부여한다. 그래서 분열하고 대립하는 가운데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의 앙금을 털어버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서울 연극에 대한 희망의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
2014.11.29.
(사) 한국희곡작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