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2014년 기억에 남는 공연 10선
1, 극단 광대무변의 톨스토이 원작, 마르크 로조프스키 각색, 김 관 연출의 <음악극 홀스또메르>
영등포 CGV 신한카드 아트홀에서 극단 광대무변의 톨스토이 원작, 마르크 로조프스키 각색, 김 관 연출, 조선아 음악감독의 음악극 <홀스또메르>를 관람했다.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1828 ~ 1910)는 남러시아의 야스나야 폴라나에서 니콜라이 일리치 톨스토이 백작의 넷째 아들로 출생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양친을 여의고 친척에 의해 양육되었다. 카잔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였으나, 대학의 교수법에 회의를 느끼고 자퇴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가 농민운동을 펼쳤으나 실패하였다. 1851년 군대에 입대하였으며 1855년 제대하였다. <유년시대>를 1852년 익명으로 발표하였고, <소년시대>, <세바스토폴 이야기> 등으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1962년 소피아와 결혼하고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등 러시아 문학 사상 불후의 대작들을 집필하였다. 그러나 정신적 고뇌와 방황 끝에 결국 종교에 귀의하고 <참회록>, <교회와 국가>, <나의 신앙> 등을 발표하여 독특한 톨스토이주의를 구축하였다. 그의 톨스토이주의는 현대의 기독교 대신 원시 그리스도교로 회귀하며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을 유지하고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복음서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을 공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폭력에 무저항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98년 <예술이란 무엇인가>, 1899년에는 대작인 <부활>을 집필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작품과 논문을 발표했다. 1910년에는 최후의 작품인 <인생의 길>을 발표하였고, 같은 해 여행 중에 객사하였다.
톨스토이는 종교와 인생관, 육체와 정신, 죽음의 문제 등을 작품 속에서 논하면서 나름대로 해답을 독자에게 제공하려 하였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으로 오늘날까지 우뚝 서 있으며, 오늘날 그의 대작 장편 소설들뿐만 아니라 <이반 일리치의 죽음>, <바보 이반> 등 단편, 중편 소설들도 유명하다.
<어느 말의 이야기 홀스또메르>는 가슴으로부터 생명의 소중함을 충격적으로 일깨우는 불행한 한 악대말의 이야기를 담은 톨스토이의 중편소설이다. 유명한 말(馬)의 목장주인 A.A. 스타호비치는 톨스토이에게 1860년경에 작가인 그의 형 M.A. 스타호비치가 쓰려고 생각했던 중편소설 『얼룩배기 말의 편력』의 슈줴트 이야기라고 회상하고 있다. 스타호비치는 1863년에 죽었기 때문에 그의 구상은 실현되지 않았고, 톨스토이가 슈줴트에 흥미를 갖게 되어 1861년에 이 중편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어느 여름날 저녁, 나는 마을에서 톨스토이와 만나 그의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방목장을 산책했다. 우리는 아주 볼품없는 피폐한 모습의 늙어빠진 말 한 마리가 방목장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말에게로, 이 불행한 악대말한테로 다가갔다. 그러자 톨스토이는 악대말을 쓰다듬으며 그저 지나가는 말로, 이 악대말은 틀림없이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려니 하고 들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 불행한 짐승의 처지가 될 뿐 아니라 나까지도 그런 처지로 끌어들였다. 나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그런데 말입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당신은 언젠가 말이었던 게 아닙니까. 그러시다면 어디 한번 말을 그려보지 않으시렵니까.” 」소설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홀스또메르>는 얼룩박이 늙은 말의 이름이다. 종자가 좋은 말이지만, 갈색이나 백색 말이 아닌, 얼룩무늬 말로 태어난 까닭에 마구간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신통치 않은 대접을 받는다. 게다가 홀스또메르가 몹시 좋아하는 암말 바조쁘리하 마저 백색 말 밀리에게 반해 정분을 나누니, 홀스또메르의 분노가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의 분노를 이해할 리 없는 주인은 홀스또메르를 거세시키고, 마구간지기에게 준다. 일꾼말로 전락한 홀스또메르의 기죽고 고달픈 생활이 펼쳐진다. 그러던 어느 날 홀스또메르는 공작 세르홉스끼의 눈에 띄어, 그의 소유로 되면서 경마장에서 경기마로 출전하게 되고, 거기서 우승을 해 일약 최고의 준마로 부상을 한다. 그런데 세르홉스끼 공작은 미모의 정부 마찌에의 육체에 빠져있었는데, 그녀가 공작이 경마에 몰두해 있을 때, 미남 장교의 유혹에 빠져 장교와 함께 도망을 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실을 안 세르홉스끼 공작은 홀스또메르를 몰아 두 남녀의 뒤를 쫓는다. 경기장에서 이미 체력을 다한 홀스또메르는 추적과정에 서 탈진해 불구가 된다. 공작은 홀스또메르를 홧김에 팔아버린다. 향후 홀스또메르는 여기 저기 팔려 다니다가 종당에는 자신이 태어난 마구간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싱싱하고 팔팔한 준마들 속에서 홀스또메르는 구박덩이가 되고, 몰매까지 맞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좋아했던 암말 바조쁘리하가 이 마구간에 들어옴으로써 그녀의 눈에 띄게 되고, 뭇 말들에게 홀스또메르의 내력이 소개된다. 마구간 주인이 된 장교와 공작의 정부였던 마찌에 앞에, 늙고 주정뱅이가 된 세르홉스끼 공작이 찾아온다. 공작은 자신의 말 감식안과 말에 대한 지식을 털어놓으며, 홀스또메르라는 전설마를 소개하지만, 정작 마구간 한편 구석에서 병든 몸으로 공작을 향해 계속 반가움을 표시하는 홀스또메르를 알아채지 못하고 돌아가 버린다. 낙담한 홀스또메르와 말의 최후인 늙은 말의 도살이 <어느 말 이야기>의 대미(大尾)가 된다.
무대는 상수 안쪽에 한단 높이의 연주석을 마련하고, 무대 여기저기에 굵은 각목으로 이십여 개의 기둥을 세워, 말을 붙들어 매놓는 장소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무대 좌우에 오래된 소달구지 원형을 장식처럼 세워놓고, 그 양쪽에 여물통을 놓았다, 무대 하수 쪽 여물통에는 물을 채워놓고, 그 옆에 숫돌과 도살용 칼이 보인다. 체격이 잘 갖춰진 남녀 이십 여 명의 출연자들이 검은색 의상과 벨트를 착용하고, 그리고 한 개씩 말의 꼬리를 흔들며, 마치 기계체조 선수 같은 동작으로 경기 말 역을 확실하게 연기한다.
홀스또메르만 백발에다가 허름하고 낡은 얼룩박이 의상과 절룩거리는 연기로 늙고 병든 말임을 객석에 전한다. 말 역 출연자의 동작과 율동, 그리고 합창이 마구간의 분위기를 절묘하게 묘사해 내고, 연주자들의 연주는 물론, 작중 인물들의 출중한 성격창출과 열연, 그리고 열창이 관객을 시종일관 공연에 몰입시킨다.
유인촌, 이경미, 서태화, 김선경, 김명수, 박원묵, 지대한, 이광열, 위 훈, 정주영, 김기분, 김정음, 마정석, 김지희, 김성진, 김진아, 이훈민, 김화랑, 엄준식, 박 진, 류 단, 하영진, 최윤정, 박용환, 편성찬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열창이 혼연일체를 이루어 음악극의 수준을 상승시키고, 고도의 예술적 경지로 몰아간다.
음악감독 조선아, 조명디자인 용선중, 의상디자인 조혜정, 무대디장인 김정란, 무대제작 함영규, 음향 정연복, 분장디자인 김유선, 제작감독 김연재 남지선, 프로듀서 신병훈, 제작 김명규 등 스텝진과 연주자들의 기량과 열정이 돋보여, 극단 광대무변의 레프 톨스토이 원작, 마르크 로조프스키 각색, 김 관 연출의 음악극 <홀스또메르>를 고수준 고품격의 예술적 공연으로 탄생시켰다.
2, 극단 실험극장의 피터 쉐퍼 작, 신정옥 역, 이한승 연출의 <에쿠우스>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극단 실험극장의 피터 쉐퍼 작, 신정옥 역, 이한승 연출의 <에쿠우스>를 관람했다.
피터 쉐퍼(Peter Shaffer)는 1926년 5월 15일 잉글랜드의 리버풀에서 출생했다. 1935년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이사를 했으며, 쌍둥이 형제인 안토니 쉐퍼와 함께 영국 세인트폴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1944년 두 형제는 학교를 떠나 군징집 대신 모집한 탄광근무를 지원하여 3년간 켄트와 요크셔의 탄광에서 일했으며, 이후 고향에 돌아온 피터는 케임브릿지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54년 런던에 있는 ‘부지 앤 호크스’ 악보 출판회사에 근무하던 중 그의 작품 <소금의 땅(The Salt Land)>이 영국의 한 TV에서 제작되고, 라디오 드라마인 <돌아온 탕부(The Prodigal Father)>가 BBC에서 방송되었다. 이후 두 개의 미스터리 소설(쌍둥이 형제 안토니와의 공동 집필), TV 스릴러 한 편을 썼고, 주로 문학과 음악에 관한 비평을 런던의 잡지에 실었다. 그 후 1964년 에스파냐의 잉카제국 침략을 주제로 한 서사시적인 희곡 <태양제국의 멸망(The Royal Hunt of the Sun)>이 영국 국립극단의 치체스터 페스티벌의 오프닝 작품으로 선정되었고 국립극단의 정규 레퍼토리로 런던의 올드빅 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1965년 뉴욕에서도 공연되어 관객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피터 쉐퍼의 작품 중 최초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그 뒤에 쓴 <에쿠우스(Equus)>와 <아마데우스(Amadeus)>가 성공적인 공연을 거쳐 그의 대표작이 되었고, 쉐퍼에게 토니상을 연속으로 안겨 주었으며 두 작품 모두 영화화되었다.
<에쿠우스(Equus)>는 말(馬)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자신이 사랑하던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찔러 멀게 하고 법정에 선 17세 소년 알런 스트랑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피터 쉐퍼가 2년 6개월 동안 집필 1973년에 발표한 희곡이다. 이 작품으로 1975년 토니상 최우수 극본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에쿠우스>는 영국,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며 그때마다 장기 흥행을 이루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 9월 극단 실험극장에서 초연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아마데우스(Amadeus)>는 1981년 토니상 최우수극본상과 1985년 제57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각색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피터 쉐퍼가 음악계에서 떠도는 루머인 모차르트의 독살설에서 착안해 집필한 희곡이며, 이 작품은 연극보다도 영화가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외의 작품으로는 단막코미디 <블랙코미디(Black Comedy)>, <새하얀 거짓말(White Lies)>, <고해를 위한 전쟁(The Battle of Shrivings)>, <요나답(Yonadab)>, <고곤의 선물(The Gift of the Gorgon)> 등이 있으며, 현존 영국 극작가 중 가장 성공적인 작가로 꼽히고 있다.
신정옥(申定玉 1931~) 교수는, 과거 영미희곡이나 구주대륙의 희곡을 일본어판을 참고해 번역한 1세대 번역가들과는 달리, 원작을 직접 번역한 영문학자이다. 최근까지 영미희곡과 셰익스피어 전 작품을 번역 완간하는 등 한국연극계의 이바지한 공로가 지대하다. 현재 경향의 각 극단에서 신정옥 교수의 번역본으로 공연되는 영미희곡작품이 계속되고 있다.
<에쿠우스>영화로는 1977년에 시드니 루멧이 감독하고, 리처드 버튼과 피터 버스, 콜린 블레이커리, 조안 플로 등이 출연해 성공을 거둔바 있다.
금년이 말의 해라서, <에쿠우스>나 <홀스 또메르> 같이 말과 관련된 공연이 계속되고 있는데, 말을 주제로 한 세계명작소설은 테오도어 슈토름(Theodore Storm, 1817~1888)의 백마의 기수(Der Schimmelreiter, 白馬─騎手)이다. 이 소설은 그의 사망해인 1888년에 발표되었는데, 내용은 폭풍이 부는 어느날 밤 고로(古老)의 입을 빌어 회상이 펼쳐진다. 북해(北海)의 바람과 파도 그리고 고독을 벗 삼아 성장해 온 청년 하우케 하이엔은, 독학으로 수학과 측량술을 배워 제방(堤防) 감독관 밑에서 일하다가, 감독관의 딸 엘케와 결혼하게 된다. 그는 뛰어난 제방감독관으로서, 미신을 믿는 마을 사람들의 몰이해와 대결하면서 100년이 되어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제방을 구축한다.
그러나 격심한 해일이 몰려와 구(舊)제방을 끊어버린다. 하우케는 자연의 맹위(猛威)와 민중의 악의, 이런 것에 대한 자기의 역량의 한계를 느끼며 고민하다가, 사랑하는 처자와 격랑에 휩쓸려 죽고 만다. 그러나 하우케는 아직도 전설 속에 살아 있다. 즉 해일이 몰아칠 때마다 밤이면 백마를 타고 나타나 제방 위를 질주한다. <이멘제 Immensee>의 서정적 분위기에서 출발한 슈토름은 심리적 문제소설을 거쳐, 이 마지막 한 편에서 <백마의 기수>를 통해 인간의 의지와 불멸의 영혼을, 제방 위를 달리는 한 마리의 말로 표현해 냈다.
영화로는 1944년에 제작된 클라렌스 브라운 감독의 녹원의 <천사(National Velvet)>가 말과 관련된 영화다. 미키 루니와 당시 11살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한 영화로, 배경은 영국 런던의 교외이고, 내용은 말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한 소녀의 말과 우정을 그린 것으로, 말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성숙시켜가고, 인간관계도 원만해질 뿐 아니라, 전국경마대회에 출전해 우승의 영광을 안게 되는 소녀와 말의 이야기다. 자나 깨나 말 생각뿐인 소녀가, 침상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것 같은 동작을 취하는, 11세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말 그림으로는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 Gíuseppe1688~ 1766)의 군마도(群馬圖)가 걸작이자 명화다. 카스틸리오네는, 이탈리아 밀라노 태생으로 청나라에 귀화해 낭세녕(郞世寧)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땅에서 일생을 마쳤다.
궁중화가로서 강희(康熙) ·옹정(雍正) ·건륭(乾隆) 황제 밑에서 벼슬하였는데, 초기의 《취서도(聚瑞圖)》와 《백준도(百駿圖)》는 중국인들의 격찬을 받았다. 건륭제는 원명원(圓明園) 안에 여의관(如意館)이라는 화실을 지어주었는데, 그 화실에는 역대 황제가 그의 그림을 보러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서양의 재료 ·화법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고, 중국 고유의 재료를 사용, 황제나 황비 등의 초상화를 그렸고, 당대(唐岱) 등과 협력하여 <원명원전도(全圖)> 등을 그렸다. 이때 그가 사용한 음영법(陰影法)은 새로운 수법으로서 중국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옹정 ·건륭제때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있었는데, 기독교 신자인 그는 황제의 총애 때문에 화를 모면할 수 있었고, 말년에 베이징[北京]에서 사망했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과 동지사 일행을 따라 청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의 말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고, 서양미술에 눈을 뜨게 되었다.
피터 쉐퍼는 <에쿠우스>를 통해, 이성과 논리의 세계에 충실한 지적 인간의 모습으로 다이사트를 등장시킨다. 그러나 다이사트의 몽매함이, 알런을 치료과정에서 재현되는 말과의 관계에 의해, 서서히 그 윤곽이 드러난다. 알런에게 있어서 말은 신과 다름이 없다는 점, 그렇다면 알런의 반항심과 적개심은 어디로부터 창출되었는가? 그것은 인간의 도덕심과 종교적 신앙에서 영향을 받는다. 어머니의 과잉신앙과 아버지의 무신론적 사고가 가선(假善)과 진선(眞善) 구별하지 못하고, 혼돈의 세계로 유도한다. 알런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통념에 대한 거부감이다. 이러한 사고가 알런의 여자 친구인 질과 마구간에서의 최초의 성 접촉에서, 말들이 눈을 부라리며 자신의 행위를 질책하듯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 알런이, 신처럼 여기던 말들의 눈을 하나하나 모조리….. 그리고 알런은 법정에 서게 되고, 가정법원의 여판사 헤스터는 그녀의 경륜으로, 알런이 교도소가 아닌 정신병원에서의 치료가 우선임을 감지하고, 친지인 닥터 다이사트에게 안내한다. 처음에 다이사트는 알런에게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찾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치료과정에서 알런이 7세 어린아이시절 초원과 벌판을 달리는 말과 기수를 부러움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고, 기수가 자신을 말 등에 태웠을 때의 기쁨과 향후 말을 세상의 모든 것보다 사랑하게 되고, 신으로까지 여기게 된 사실을 알아내고는, 인간의 고정관념에 대한 지성인 다이사트의 참 고뇌가 극의 진행에 따라 깊어간다. 알런이 성숙해 가면서 이성에 대한 그리움과 성과 본능에 접근해 가는 과정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영화관에서 도색장면을 관람하게 되고, 아버지에게 들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멱살을 잡혀 끌려 나오는 수치를 당한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알런에게, 아버지는 자신을 극장에서 보았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나,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지 말라며 가버린다. 하늘처럼 생각했던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 거리에서 아버지와 헤어지고, 그후 계속 남아있는 본능적 충동 감으로 해서, 알런은 여자 친구인 질과 어두컴컴한 마구간으로… 그런데 이번에는 영화관에서의 많은 사람들이 아닌, 많은 말들의 눈이 질과의 행위를 질책하는 눈빛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착각하고, 알런은 달려들어 하늘처럼 여기던 말들의 눈을 모조리…..
알런에게 정상의 세계를 되찾아 주려는 임무를 맡은 다이사트의 딜레마는, 전문적 의료행위나, 도덕적, 또는 종교적 치료로, 알런의 정신상태를 여판사 헤스터의 요구대로 정상화시킬 수 있겠는가, 가선과 진선, 본능과 그 처리를 도덕적, 종교적 잣대로 측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등을 진정으로 고뇌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김태훈이 다이사트로 출연해 더할나위 없는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연극을 이끌어간다. 차유경이 여판사 헤스터로 출연해 작품의 중량감을 더하고, 품격높은 무대로 만들어 간다. 지현준과 이은주가 전라를 보이며 열연을 해 관객의 시선을 극에 몰입시킨다. 이양숙과 김상규가 알런의 부모로 출연해 호연을 보인다. 안석환, 전박찬, 유정기, 김지은이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한다. 노상원, 은경균, 김동훈, 장찬호, 신선관, 권형준, 김태완, 인규식, 김시유 등 말과 코러스로 출연한 출연자 전원의 매력적으로 다져진 몸매와 율동, 연기호흡 일치는 일품으로 박수 받을 만하다.
기획 제작 이한승, 미술 신종한, 음악 김태근, 의상 조문수, 조명 최은정, 안무 김윤규, 조안무 구선진, 가면디자인 정윤정, 분장 김선희, 사진 이강물, 공연진행 김용조, 극단 진행 윤나정, 조명오퍼 김소영, 무대감독보 음향오퍼 박수현, 조연출 오동식 등 스텝진의 기량과 열정이 일치되어, 극단 실험극장의 피터 쉐퍼(Peter Shaffer) 작, 신정옥 역, 이한승 연출의 <에쿠우스(Equus)를 예술성이 높은 걸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3,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신은수 작, 신동인 연출의 <거울속의 은하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신은수 작, 신동인 연출의 <거울속의 은하수>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1945년 해방을 전후해,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자인 의친왕과 왕비김씨 그리고 그 자녀들이 겪어야 했던 역사적 상황을 <거울속의 은하수>를 보듯 연극으로 그려냈다,
의친왕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상해로 망명을 하려다 일제에 의해 발각되어, 황태자 책봉에서 제외 되고, 20년 연하의 배다른 아우인 영친왕이 왕통을 잇게 된다. 의친왕의 장남 이건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다니고, 일본여인과 정략결혼을 하는 등의 호방한 생활로 부왕인 의친왕의 눈 밖에 나게 된다. 그런데 이건의 아우인 이우 역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다녔고,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지만 박 씨 가문의 여인과 결혼해, 의친왕의 신뢰를 받는다. 그러나 1945년 8월 6일, 이우는 출근길에 원폭투하로 사망한다. 이 연극은 이우의 장례식에 맞춰 도착한 의친왕과 그 자녀들, 그리고 이우의 미망인과 친지들의 이야기다.
무대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위로 커다란 천창이 있고, 그 밖으로 홍살문과 무덤가를 지키는 대신들의 호상이 보인다. 계단 아래는 왕궁의 일실이다. 한단 높이의 무대에 소파와 의자가 놓이고, 원형의 탁자 위에는 라디오와 도자기가 놓여있다. 무대 좌우로 등퇴장 로가 나 있고, 왼쪽은 측간 출입구로 사용된다. 장면변화에 따라 방 전체가 풍경소리에 맞춰 회전한다.
조선왕가로 되돌아와 남편의 장례를 기다리는, 작고한 왕자 이우의 비 박씨와, 음악에 재능이 있는 여자고등보통학교 생도인 의친왕의 다섯째 딸 이해경, 그리고 한없이 콜록거리는 의친왕의 젊은 아들 이광과 의친왕비 김 씨의 근엄한 모습에서 연극은 시작된다. 의친왕비 김 씨에게는 소생이 없어, 음악에 재능이 있는 이해경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피아노를 사주기도 하면서 마음을 둔다. 의친왕을 심복처럼 따르는 반백의 이기권과 의친왕이 몸종처럼 데리고 다니는 19세의 홍정순이 음울한 왕실의 분위기를 애써 밝게 변화시키려 노력한다. 이때 7세 소년시절에 일본으로 떠난 의친왕의 장남 이건이 몇 십 년 만에 귀국해 왕실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건을 대하는 의친왕의 태도는 냉랭하기 그지없다. 당연히 의친왕과 장남 이건과의 충돌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의친왕은 딸 해경의 피아노 연주소리까지 듣기 싫어하며, 당장 피아노를 없애버리라고 호령한다. 왕의 장남 이건의 부인이라도 조신한 모습을 보이면 좋으련만, 이건의 부인 요시코는 남편 말에 콧방귀를 뀌면서 방자스런 행동을 보이고, 왕실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연기를 냅다 여기저기 내뿜는다. 이런 가운데에도 의친왕비는 음전하고 근엄한 모습으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품위를 유지한다.
이런 경황 중에 의친왕은 19세의 홍정순에게 임신을 시킨다. 시녀노릇을 하며, 누구에게나 “해라” 소리를 듣던 홍정순이, 임신을 함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하세요”라고 존대를 받는 모습은 객석의 웃음을 유발시킨다. 통분한 마음으로 거리로 뛰쳐나간 의친왕의 장남 이건은 전차 속에서, 우연히 요시코라는 자신의 부인과 동명이인인 조선여인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인연이 아니라, 필연처럼 여겨진다. 드디어 장례일인 8월 15일이 다가왔으나, 일본왕의 특별방송으로 장례를 연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라디오를 통해 일본 왕이 연합국에 항복한다는 충격적인 방송이 흘러나온다.
대단원에서 왕비는 평소의 근엄한 자세를 유지하고, 왕녀 이해경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장남 이건은 동경으로 떠난다. 이건은 전차 속에서 다시 한 번 조선 여인 요시코와 만나 주소를 적어 받게 된다. 이 연극에서는 소개되지 않지만 의친왕의 장남 이건은 후에 이 조선여인과 재혼을 하게 되고, 자녀도 갖게 된다.
최형인, 박용수, 류태호, 신용욱, 김왕근, 추귀정, 이혜원, 조한준, 김희연, 김희정 등 출연자들의 성격창출과 호연은 연극의 품격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왕비역의 최형인의 호연은 물론, 박용수와 신용욱의 호연은 1972년에 제작된 프랜시스 코프라 감독의 영화 <대부>에서의 말론 브랜도와 알파치노를 보는 느낌이다.
예술감독 권용, 드라마투르크 배선애, 무대 임민, 작곡 김철환, 저명 최보윤, 의상 박진희, 소품 김혜지, 분장 장경숙, 조연출 김정민, 무대감독 주지희, abeirjaegrqg 자송휸, 음향오퍼 김해린, 조명오퍼 정희찬, 무대크로 신현일, 그래픽 다홍디자인, 사진 이강물, 기획·홍보 코르코르디움 등 스텝의 노력이 일치되어,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신은수 작, 신동인 연출의 <거울속의 은하수>를 고품격 고수준의 서사극으로 창출시켰다.
4, 극단 전설의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씽 작, 김미혜 역, 김석만 연출의 <현자 나탄>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극단 전설의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씽 작, 김미혜 역, 김석만 연출의 <현자 나탄>을 관람했다.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씽(Gotthold Ephraim Lessing, 1729~ 1781) 2월 15일)은 독일의 극작가,비평가이다. 계몽주의의 대표적 극작가·평론가로서 독일문학·연극의 시조다.
작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의학과 신학을 배웠으나 노이베린 극단에 의해 연극 혁신의 계몽을 받았다. 일찍부터 연극에 관심을 가져 초기의 희극<젊은 학자>(1747년)는 노이베린 극단에 의해 공연된다. 그러나 부채로 인해 레씽은 베를린 대학, 비텐베르크 대학으로 옮겨 다닌다. 그 후 베를린에서 저술가로 출발, 계몽적인 연극 잡지를 발행하는 한편 독일 최초의 시민비극 <사라 심프슨 양>을 발표하여 성공을 거둔다. 7년 전쟁을 배경으로 한 1막 비극 <필로타스(Philotas)>(1759)를 쓴 이후 돌연 프로이센의 브레슬라우의 총독 타우엔친 장군의 비서가 되고, 한편으로 집필할 재료를 수집해 〈미나 폰 바른헬름〉,〈라오콘〉,〈함부르크 연극론〉등을 구상한다. 그 후 베를린으로 돌아와 예술론 <라오콘(Laokoon)>(1766), 군인희극 <미나 폰 바른헬름>(1765년 완성, 1767년 출판 초연)을 발표한다. 〈군인의 행복〉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미나 폰 바른헬름〉은 독일 최초의 걸작 희극으로 7년 전쟁 후의 정치권력이나 사회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1767년에 함부르크에 국민극장이 창설되자 고문으로 초빙되어 그 2년 동안의 극평 활동과 <함부르크 연극론>을 집필한다. 이것은 공연평과 독일연극의 향방을 논한 작업이다. 그러나 얼마 후 이 국민극장의 경영이 실패하자 어느 고위인사의 사서직(司書職)을 보면서 고전 연구에 몰두, 또한 미망인 에바케니히와 47세에 최초로 결혼을 하지만, 불행하게도 1년 만에 사별(死別)한다.
그는 1770년 볼펜뷔텔시로 가서 시의 도서관장이 되고, 이곳에서 그의 연극이론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 비극 <에밀리아 갈로티>를 집필한다. 만년에는 함부르크의 주임사제(主任司祭)와 신학논쟁을 벌여, 루터 정통파의 배격을 받고, 그 반증으로서 사랑과 관용을 테마로 한 비극 <현자 나탄(Nathan der Weise)>(1779)을 집필 발표한다. 그의 최후 저작은 〈인류의 교육〉(1780년)인데 만년에는 건강을 해쳐 사서관사(司書官舍)에서 52세 나이로 사망한다.
레씽은 진정한 의미에서 독일 계몽주의의 완성자인 동시에 독일 시민문학의 기초를 다졌고, 프랑스 고전주의 문학의 영향을 배척해, 독일정신에 입각한 문학과 창작을 몸소 실천한 선도자이다.
<현자 나탄>의 시대적 배경은 십자군 시대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유대인 나탄은 돈이 많은데다가 심성도 좋은 인물로 소문나 있다. 그러나 행복했던 그의 가정은 하루아침에 파괴된다. 아내와 일곱 자녀가 기독교도의 손에 의해 학살당한다. 자식을 모조리 잃어버린 그는 그 대신 고아인 레하를 양녀로 기른다.
한번은 나탄이 여행길에 나선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나탄은 자기가 집을 비운 사이에 큰 불이 일어나 집 전체가 불타 버리고, 그 불 속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던 레하가 어느 정체불명의 십자군 기사에게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탄은 가까스로 그 기사를 찾아내어 감사의 뜻을 전하려 하나, 나탄이 유대인이라는 까닭으로 해서 그 기사는 만나려 들지 않는다.
때마침 이슬람 황제인 술탄은 재정의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나탄에게 원조를 구한다. 그와 아울러 술탄은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 세 가지 중에서 어느 종교가 가장 올바르다고 생각하는가 하고 매우 어려운 질문을 나탄에게 던진다. 그 물음에 대신하여 나탄은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하고 ‘세 개의 반지’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한다.
어느 마을에 세 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한테서 유산으로 제각기 행복의 반지를 물려받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세 개의 반지 가운데서 하나만이 진짜이고 나머지 두 개는 가짜였다는 것. 세 형제는 모두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진짜라고 서로 다투게 된다. 다툼은 끝내 재판정에까지 나가게 된다. 이에 대한 재판관의 판결은 “자기 반지가 진짜라고 생각하여 노력하는 자만이 진짜로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 그 형제들을 깨우쳐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종교에나 우열은 있을 수가 없고, 신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만이 정말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라는 대답에 감동한 황제 술탄은 나탄과 형제 의를 맺는다.
연극의 종반에 십자군의 기사와 레하는 남매 사이이며, 술탄은 두 남매의 아저씨뻘이 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해서 서로가 떨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대단원에서 모든 종교적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으로 포용으로 대하려는 의지가 술탄과 나탄을 비롯한 출연자들 모두에게 심어지면서 연극은 막을 내린다.
무대는 커다란 소대 같은 벽면을 비스듬히 무대 중앙에 세워두고, 그 표면에 십자군 전쟁과 관련된 미술작품의 영상을 투사하거나 십자군 문양이 들어간 기치나 방패 등의 영상을 투사해 극적효과를 높인다. 고증에 따른 의상과 분장도 출연자의 극중 신분과 절묘하게 어울려 효과가 배가된다. 극중 부분조명과 농도의 강약도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정재진과 이문수는 나탄과 술탄을 하기 위해 배우가 된 듯싶다. 두 인물의 호연은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견줄 배우가 드물 것이리라는 생각이다. 윤예인, 우리나라에 이런 중견 여배우가 있었다니! 그녀의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은 관객을 시종일관 미소 짓도록 만들고, 극 속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고인배, 김재건의 중후한 연기가 작중인물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최홍일, 권남희의 출중한 연기가 연극의 버팀목이 되고, 젊은 주인공 이수정과 이강희의 연기도 젊은 남녀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호연과 열연으로 사랑을 받는다.
제작감독 정상철, 프로젝트 매니저 신은경, 프로듀서 김 현, 무대디자인 이태섭, 조명디자인 이상봉, 의상디자인 황연희, 소품디자인 정윤정, 음향 한 철, 음악 김동욱, 분장 정지호, 사진 하형주, 그래픽디자인 김 솔, 조연출 유 림, 변혜운, 연출인턴 이승민, 홍보 마케팅 한강아트컴퍼니(대표 김 현) 등 제작진의 기량도 돋보여, 극단 전설(대표 김지숙)의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씽(Gotthold Ephraim Lessing) 작, 김미혜 번역, 김석만 연출의 <현자 나탄(Nathan der Weise)>을 근래 보기 드문 걸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5, 명동예술극장의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의 <길 떠나는 가족>
명동예술극장에서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의 <길 떠나는 가족>을 관람했다.
이 연극은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의 일대기이다.
이중섭의 호는 대향(大鄕).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이희주(李熙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오산고등보통학교(五山高等普通學校)에 들어가 당시 미술 교사였던 임용련(任用璉)의 지도를 받으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분카학원(文化學院) 미술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독립전(獨立展)과 자유전(自由展)에 출품하여 신인으로서의 각광을 받았다.
분카학원을 졸업하던 1940년에는 미술창작가협회전(자유전의 개칭)에 출품하여 협회상을 수상하였다. 1943년에도 역시 같은 협회전에서는 태양상(太陽賞)을 수상하였다.
이 무렵 일본인 여성 야마모토(山本方子)와 1945년원산에서 결혼하여 이 사이에 2남을 두었다. 1946년 일시 원산사범학교에 미술 교사로 봉직하기도 하였다.
북한 땅이 공산 치하가 되자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았다. 친구인 시인 구상(具常)의 시집 『응향(凝香)』의 표지화를 그려 두 사람이 같이 공산주의 당국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6·25 사변이 일어나고,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그는 자유를 찾아 원산을 탈출, 제주도를 거쳐 부산에 도착하였다.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이중섭은 홀로 남아 부산·통영 등지로 전전하였다. 1953년 밀항하여 가족들을 만났으나 굴욕적인 처가 신세가 싫어 다시 귀국하였다. 이후 줄곧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하다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그의 나이 40세에 적십자병원에서 절명한다.
화단 활동은 부산 피난 시절 박고석(朴古石)·한묵(韓默)·이봉상(李鳳商) 등과 같이 만든 기조전(其潮展)과 신사실파에 일시 참여한 것 외에 통영·서울·대구에서의 개인전이 기록되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 많은 인간적인 에피소드와 강한 개성적 작품으로 1970년대에 이르러 갖가지 회고전과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1972년 현대화랑에서의 유작전과 화집 발간을 위시하여, 평전(評傳)의 간행, 일대기를 다룬 영화·연극 등이 상연되었으며, 많은 작가론이 발표되었다.
그가 추구하였던 작품의 소재는 소·닭·어린이〔童子〕·가족 등이 가장 많다. 불상·풍경 등도 몇 점 전하고 있다. 소재상의 특징은 향토성을 강하게 띠는 요소와 동화적이며 동시에 자전적(自傳的)인 요소이다.
「싸우는 소」·「흰소」(이상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움직이는 흰소」·「소와 어린이」·「황소」(이상 개인 소장)·「투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등은 전자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닭과 가족」·「사내와 아이들」·「집떠나는 가족」(이상 개인 소장)과 그밖에 수많은 은지화(담뱃갑 속의 은지에다 송곳으로 눌러 그린 일종의 선각화)들은 후자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극작가 김의경(金義卿)은 1936년 서울 출생. 1960년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원 연극학과를 수료하였으며, 1983년 미국 하와이대학 연극학과에서 수학하였다.
국제극예술협회(ITI) 한국본부 사무국장‧부위원장을 거쳐 1994년 3월 이후 회장을 맡았으며, 한국연극협회에서는 상임이사‧부이사장‧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극단 실험극장 창립동인 및 대표,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장, 국립극장 공연과장 등을 지냈다. 1976년 9월 극단 현대극장을 창설하고 동 대표를 역임하였다. 그는 한국연극의 국제 교류에 노력한 연극인으로서, 1967년 이후 국제극예술협회 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고 있으며, 기타 국제교류에서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단막극 「애욕(愛慾)의 우화(寓話)」(실험극장 초연, 1963)가 문공부 주최 신인예술상 연극부문에서 단체상을 수상하여 인정을 받고, 『문학춘추』에 「갈대의 노래」(1964), 「신병후보생」(1964)이 추천 완료됨으로써 극작가로 데뷔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남한산성」(1973), 「논개」(1975), 「함성」(1976), 「원효대사」(1976), 「북벌」(1978), 「삭풍의 계절」(1982), 「식민지에서 온 아나키스트」(1984),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985), 「조국은 외롭지 않다」(1986), 「처용무」(1987), 「길 떠나는 가족」(1991) 등이 있다. 1975년 희곡 「남한산성」으로 제11회 백상예술상 희곡상을 수상하였고, 1986년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로 제22회 백상예술상 희곡상을 다시 받았으며, 1991년엔 「길 떠나는 가족」으로 제15회 서울연극제 희곡상을 수상하였다. 그 외 1989년엔 문화훈장 ‘관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희곡집 『남한산성』(1977)이 있고, 그 외 번역서로 『세계 신경향 희곡선』(1976), 『연극론 12장-아더 밀러 연극론집』(1978), 『스즈키 연극론』(1993), 『경극과 매란방』(1993) 등이 있다.
무대는 이중섭의 움직이는 화폭으로 재현된다. 이중섭이 즐겨 그렸던 작품의 소재인 소, 게, 새, 물고기, 어린이 인형이 천재적인 설치미술가 이영란의 손길로 되살아나 등장한다. 오케스트라 박스에 앉은 연주자들의 연주음은 극의 분위기를 절묘하게 이끌어 가고, 출연자들을, 움직이는 소조상(塑彫像)으로 연출해낸 연출가 이윤택의 예술혼은, 명동예술극장무대를 한 폭의 역동적인 조형예술적 연극작품으로 그려낸다.
극중 일제의 패망은 히로히도 일본왕의 육성방송을 통해 전달되고, 6 25사변은 북한군의 복장으로 등장한 출연자를 통해 식별이 된다. 이중섭이 일본으로 건너간 장면은 일본전통의상을 입은 출연자들에 의해 구별되고, 동란시절의 어려운 모습은 지게를 진 이중섭과 길거리 주막을 통해 전달된다.
도입과 대단원에서 배경 쪽의 가리개가 열리면 마치 동화 속의 생명체 같은 한지종이와 나무로 제작된 인형들이, 출연자들의 작동으로 춤추듯 무대를 가득 채우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2인 또는 3인의 출연자가 이중섭 작품 속의 생명체를 마임으로 표현하거나 캔버스의 이젤형상으로 서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이중섭으로 출연한 연기자가 이젤에 화판을 놓고 잠시 소의 머리를 그리는 장면은 연극의 백미(白眉)라 하겠다. 대단원에서 출연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들이 이중섭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듯 퇴장하는 장면은 기억 속에 영원히 아로새겨질 듯싶은 명장면이다.
지현준, 문경희, 전경수, 한갑수, 김은진, 김동완, 장재호, 이기돈, 배보람, 신경혜, 변민지, 안연주, 이재훈, 이승우,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성격창출 그리고 노래는 물론, 인형과 함께 벌이는 움직임은, 무대를 이중섭 화백의 그림의 세계로 창출시키는 충분한 역할을 해낸다.
특히 지현준의 열연과 회화작업은 물론, 이중섭 화백과 방불한 모습에서, 이 극을 통해 실제 이중섭 화백의 생환이나 부활을 접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예술감독 이영란, 조명 영상 조인곤, 안무 김운규, 작곡 vann 전상민, 의상디자인 김경인, 분장디자인 최유정, 연습감독 이승헌, 음악감독 김시율, 무대제작 김경수, 인형제작 이영란, 작화 조소예, 소품제작 김은진, 조연출보 김태현, 연주자 윤현종, 전상민, 김시율 등의 연주와 제작진의 기량이 어우러져, 명동예술극장(대표 구자흥)의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의 <길 떠나는 가족>을 기억에 길이 남을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6, 극단 체의 안톤 체홉 작, 강태식 역·연출 <이바노프>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극단 체의 안톤 체홉 작, 강태식 역·연출의 <이바노프>를 관람했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러시아어 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영어 Anton Pavlovich Chekhov,1860~1904)체호프는 흑해 위에 있는 아조프 해연안의 항구 도시 타간로크(Taganrog)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예비학교를 다닌 후, 타간로크 인문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성적 불량으로 3학년 때 유급하고, 3년 뒤 고대 그리스어 시험에 낙제하여 다시 5학년에 유급해 원래 5년이면 졸업하는 학교를 8년 만에 졸업한다.
그런 후 모스크바 대학의 의학과에 진학한다. 그러나 이 때부터 체호프는 의학공부를 하는 한편 타간로크에서 받는 장학금과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의 잡지에 유머 단편을 써서 그 원고료로 부모와 세 동생의 뒷바라지를 한다.
1887년 연극 이바노프의 첫 공연이 있기까지 체호프은 문학잡지 <귀뚜라미(Strekoza)>, <파편(Oskolski)>, <자명종(Budilnik)>, <페테르부르크 신문> 에단편과 수필을 기고한다. 특히 1883년에는 <Oskolski>에 모스크바의 일상을 스케치하는 컬럼을 맡는다. 체호프의 글은 호평을 받았으며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이미 신진 소설가로서의 명성이 높았다.
1883년 의과대학을 졸업한다. 그러나 23세 때 걸린 폐결핵이 체호프의 건강을 위협하게 된다. 그 해 11월에 처음 결핵 증세로 요양한다.
톨스토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체호프는 시베리아, 사할린 섬 여행을 계획하고 1890년 모스크바를 출발, 사할린에 도착한다. 사할린 섬에 유배된 수인(囚人)들의 비참한 생활은 체호프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새긴다. 그는 1899년, 건강상태가 악화되자 얄타를 마주보는 크림 반도로 옮겨간다.
1900년에는 러시아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나, 사임하고 1904년에 폐결핵으로 44년의 생애를 마친다.
체호프의 만년은 연극, 특히 모스크바 예술극단과의 유대가 강했고, 1901년에 결혼한 올리가 크니페르는 예술극단의 여배우다.
체호프는 직접 무대에 서기도 했으며, 19세기 말의 러시아 사회상태를 배경으로 하여 반항적이지만 능력 없는 인물을 극에 등장시킨다.
1887년에 집필된 <이바노프>는 모스크바 및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기교로도 <프라토노프>보다 앞선 작품이었고, 차기작인 <숲의 정(精)>에서 실패를 하기는 했으나, 단편 <곰>(1888)이나 <청혼>(1889) 등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896년의 <갈매기>를 비롯해 <바냐 아저씨>(1899), <세 자매>(1901), <벚꽃동산>(1903) 등을 집필해 새로운 형태의 회화극(會話劇)을 확립한다.
무대는 배경에 자작나무 숲이 펼쳐있고, 무대 중앙에 소형 피아노가 한 대 놓여있다. 무대 오른쪽에 작은 책상과 의자가 있다. 장면이 바뀌면 숲 대신 이바노프의 거실이 되고, 다시 장면이 바뀌면 도지사 저택의 응접실이 된다.
배경막이 열리면 무대 뒷부분까지 등퇴장 로가 되고, 대단원에서는 객석을 향해 조명이 정면으로 투사되면서 마무리를 한다. 베토벤의 “월광곡”이 피아노로 연주되고,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의 주제가, 또는 오페라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 플라맹고 음악 등 귀에 익은 음악이 극적효과를 높인다.
연극은 도입에 신부복을 입은 여인과 이바노프의 첫날밤 장면이 실크 스크린 안쪽에 그림자로 묘사되고, 흑색착의의 인물군상이 무대를 가로 세로 질주를 하거나, 이합집산을 하며, 희미한 조명 아래서 형광을 발하기도 하면서 신혼부부의 암울한 장래를 예고하는 듯싶은 동작을 연출해 낸다.
극이 시작되면 이바노프는 사랑 없는 결혼을 한 인물이라는 오해를 산다. 아내가 결핵을 앓고 있기에 남편으로서 할 도리를 다해 치료를 하지만, 좀처럼 병세가 호전되지 않는다. 주치의는 이바노프에게 아내를 요양원으로 보내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이바노프에게는 금전적 여유가 없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게다가 이바노프는 관리자를 비롯한 주변의 도지사 댁 마님에게 급료요구나, 빚 독촉을 받는 입장이다. 그러니 요양원을 보낼 수 없다는 게 이해가 간다. 글을 쓰는 이바노프….어쩌면 체호프 자신일 수도 있지만, 이바노프는 함께 살고 있는 삼촌까지 부담스럽지만, 60이 지난 삼촌은 어디 놀러갈 장소만 있으면 이바노프에게 데리고 가 달라고 보채는 게 일쑤다. 도지사 부인에게 약속한 날짜에 빚을 갚을 수 없으니 기일을 연기해 달라는 부탁을 하러 갈 때, 이바노프는 삼촌과 동행을 한다. 이바노프의 부인도 의사의 권유로 의사와 함께 도지사의 집으로 향한다. 부인이 자신의 뒤를 따르는 것을 이바노프가 알 리가 없다.
도지사 집은 무슨 유곽기분이 난다. 운집한 사람들도 그렇고, 음주와 함께 즐기는 분위기가 열정적이고, 연주되는 음악이나 노래가 사람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한다. 이바노프와 삼촌이 방문하자, 도지사나, 부인의 환대가 쌀쌀맞은 느낌이다. 물론 이바노프의 빚 연기 이야기가 원인일 수도 있다. 삼촌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손님으로 와 있는 젊은 미망인에게 눈독을 들인다. 어쨌건 모두 어울려 즐기면서 불꽃놀이를 한다고 도지사 집 마당으로 나가자, 도지사의 아름다운 딸이 이바노프에게 달려온다. 이바노프야 아내 병수발 하랴, 빚 갚으랴,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릴 여유가 없지만, 안톤 체호프처럼 잘생긴 이바노프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여인이 접근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도지사의 딸의 연정이 이바노프에게 은연중에 노출이 된다. 이바노프는 거부의사를 나타내지만, 열정적으로 몸과 마음을 밀착시키는 도지사의 딸을 밀어내기는 부처님이 아닌 바에야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이바노프와 도지사 딸의 입맞춤과 포옹이 절정에 이를 때 이바노프의 아내가 등장해 이 장면을 보고 주저앉는다.
장면전환이 되면 이바노프의 아내는 충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설정이 되고, 주치의는 이바노프에게 아내대신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삼촌은 미망인과 함께 사는 것으로 소개가 되고, 장면전환과 함께 이바노프와 도지사 딸의 혼례 날로 객석에 전해진다. 모두 결혼준비로 떠들썩한데, 맨발의 이바노프가 등장한다. 자신의 불륜행실로 아내가 죽었으니, 양심의 가책으로 이 결혼을 하지 못하겠다는 의사표명을 한다. 도지사 내외 뿐 아니라, 주위사람들이 결혼날짜를 받아놓고, 바로 혼례 날, 어찌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떠들어 댄다. 신부될 사람도 달려와 항의를 하고, 주치의가 등장해 죽은 이바노프의 아내를 위해, 이바노프에게 결투신청을 한다. 그러자 이바노프는 권총을 꺼내 자작나무 숲을 향해 달려간다. 잠시 후 총성이 들리고, 배경 막이 열리면, 강한 조명의 역광과 함께 연극은 마무리를 한다.
남성진이 이바노프로 출연해 놀라운 호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마치 1950년대의 명배우 황 철의 현신을 대하는 느낌이다. 권성덕, 이주실, 장보규가 능숙한 기량으로 연극의 버팀목이 된다. 전국향, 손종학, 배해선이 호연으로 극의 주춧돌 노릇을 한다. 김홍택, 김태한, 서숙영, 문지영, 박그리나, 김수현, 우주원, 정유진, 안민호, 김수미, 김아진, 김진욱, 윤석민, 진성웅, 장준현, 자두리, 박상희 등 출연자들의 열연과 호연이 극의 수준을 상승시킨다.
예술감독 박상규, 드라마투르크 송현옥, 조연출 문아영, 기술감독 최관열, 무대디자인 표종현, 무대제작 타프무대, 안무 하정오, 조안무 조주연, 음향감독 김대영, 조명감독 정진철, 분장 김다인, 의상 장주영, 사진 신귀만, 조연출보 나동욱, 음향 프로그래머 정주리, 조명어시스트 이은주, 무대감독 신은철 포스터 김유미, 홍보 드림컴퍼니 오해선, 서혜란 등 제작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극단 체의 안톤 체홉 작, 강태식 역·연출의 <이바노프>를 고품격 예술지향적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7, 명동예술극장의 테네시 윌리암스 작, 정명주 번역, 한태숙 연출의 <유리 동물원>
명동예술극장에서 테네시 윌리암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 작, 정명주 번역, 한태숙 연출의 <유리 동물원(The Glass Menagerie)>을 관람했다.
필자가 처음 <유리 동물원>을 관람한 것은 1967년 11월에 명동국립극장에서 극단 동인극장의 노덕선 기획, 오화섭 역, 정일성 연출의 정혜선, 오지명, 손숙, 최지민이 출연한 연극이다.
정혜선이 아만다, 손숙이 로라, 오지명이 톰, 최지민이 짐으로 출연했다. 정혜선은 TV출연으로 잘 알려져 있었기에 어머니 역으로 적절했으나, 로라 역을 부각시키려고, 아만다의 대사를 대폭 삭제한 공연이었기에 어머니라는 역할만 드러났을 뿐 작품에 따른 제대로 된 성격창출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톰 역의 오지명은 당시 햄릿을 비롯해 동인극장 연극의 주역을 도맡아 했기에, 해설자 겸 시인인 톰 역을 마치 햄릿 역을 하듯 멋들어지게 연기했다. 손 숙은 연극 초년병이었으나, 미모와 호연으로 갈채를 받았다. 최지민(본명 최종화)은 한양대학교 영화과 출신답게 성격창출이나 연기 면에서 탁월함을 보였다.
그런데 오지명이 TV출연으로 공연 펑크를 내는 일이 발생했다. 극단 측에서는 난리가 났다. 당시 아내 손 숙의 연기를 연습장에 와서도 지켜보던 김성옥이 오지명 대신 무대에 올라섰다. 연습장면과 공연장면을 보았으니, 물론 동선을 잘 알고 있었지만 대사를 외우지를 못했기에, 대본을 들고 연기를 했다. 톰이 시를 쓰니, 시를 쓰는 노트로 대본을 설정하고, 대본을 들여다보며 했어도, 김성옥이 워낙 능숙하게 연기를 해, 객석에서는 대역으로 출연한 것인 줄을 전혀 몰랐다. 물론 관객의 우레와 같은 박수도 커튼콜에 쏟아졌다.
그 공연 이후 극단 대표였던 노덕선은 자취를 감췄다. 연출을 한 정일성은 미국으로 가버렸다. 47년 전 일이지만 엊그제 일 같아 소개한다.
한태숙 연출의 <유리 동물원>은 김성녀의 아만다 역을 완벽하게 부각시켰다. 김성녀 역시 출중하고 탁월한 연기와 성격창출로 아만다 역을 100% 살려냈다. 로라 역의 정운선도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의 기억에 오래 남을 연기를 선보였다. 톰 역의 이승주도 젊은 연기자답게 여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다만 테네시 윌리엄스 자신일 수도 있는, 톰의 시인으로서의 풍모는,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듯도 싶었으나, 그의 훤칠한 용모와 호연은 부족을 메우기에 충분했다. 짐 역의 심완준…. 이렇게 좋은 연기자가 있었다니….! 이번 공연으로 그의 발전적 장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대 상수 골목 한 귀퉁이에서 거리의 악사처럼 첼로를 연주하는 최 영, 그의 연주에 따른 극적 분위기의 창출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에 날개를 달아 하늘높이 비상토록 했고, 한태숙의 연출력이 감지되는 설정이었다.
무대는 기존의 <유리 동물원>의 천편일률적인 무대를, 바닥을 경사지게 함으로써 변화를 보이고, 상수 쪽 공중에 매단 밧줄설정,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좁은 골목, 로라의 거실과 유리 인형을 넣어둔 상자, 그리고 유니콘 말의 유리인형, 그리고 소파와 탁자의 배치나, 촛대, 아버지의 초상 등 세밀한 부분까지 살려낸 장치도 더할 나위 없이 극과 조화를 이루었다.
도입의 음악이나 중간 중간 첼로연주음, 후반 샹송까지 음악도 수준급이었고, 조명의 강약과 변화까지 작품배경과 극적 분위기 상승의 공신역할을 했다.
드라마 투르크 강태경, 무대·영상디자인 윤정섭, 조명디자인 김창기, 의상디자인 김우성, 소품디자인 강민숙, 음악감독 박승원, 안무 이경은, 분장디자인 백지영, 조연출 김 정`강소희 등 제작진의 기량도 드러나, 명동예술극장(대표 구자흥>의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작, 정명주 번역, 한태숙 연출의 <유리 동물원(The Glass Menagerie)>을 고수준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8, 신시컴퍼니의 잉마르 베리히만 작, 임영웅 연출의 <가을 소나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신시컴퍼니의 잉마르 베르히만 작 임영웅 연출의 <가을 소나타>를 관람했다.
잉마르 베리만(스웨덴어: Ingmar Bergman 1918~ 2007)은 스웨덴의 영화, 연극 및 오페라 감독이다. 현대 영화 최고의 감독으로 뽑힌다.
대부분을 자신이 쓴 총 62편의 영화와 170편이 넘는 연극을 감독했다. 대다수의 영화가 고향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다. 병, 배신, 광기 등 어두운 주>, <페르소나>(1967)<화니와 알렉산더>등이 있다
스톡홀름 대학교를 졸업한 후 연극계에 투신, 무대 연출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1944년에 알프 셰베리가 감독한 <번민>의 각본을 써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1945년 <위기>에서 감독으로 진출하고, 뒤이어 <애욕의 항구>(1948), <불량소녀 모니카>(1952), <마술사의 밤>(1953), <사랑의 레슨>(1954), <여름밤은 세 번 미소한다>(1955) 등에서 눈에 띄게 두각을 나타냈다. 1956년 <처녀의 샘>을 발표함으로써 세계적인 대작가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베리만은 사실적인 영화로부터 출발하여 무대희극적인 작품을 거쳐 점차 ‘인간과 하느님’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거기에서 인간에 대한 엄연한 리얼스트의 눈과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추상적인 사념을 갈라놓을 수 없게 융합하여 일종의 육감성과 북유럽적인 신비적 경향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섹스에 신(神)을 대치시켜 인간 존재의 심부를 추구해왔다.
특히 <페르소나>에서 보이는 베리만의 작품은 한층 추상적인 관념성이 강해져 가고 있어 그의 독자적인 영상 세계의 농도를 알 수가 있다.
임영웅(林英雄)은 1934년 서울 현저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1930년대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명성이 높던 재즈 연주자다. 1948년 휘문 중학에 입학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교사 조흔파 씨(본명 조봉순)의 권유로 개교 50주년 기념 공연 <마의태자>에 출연했다, 명동 국립극장무대였다. 임영웅에게 연극과의 인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한 좌담회에서 연극<뇌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자리에는 유치진과 이해랑도 참석하고 있었다. 임영웅의 모습을 눈여겨본 유치진은, 임영웅에게 연출을 권유했다. 연출가 데뷔는 1955년에 이루어졌다. 연극학회가 주최한 제1회 전국 중·고등학교 연극경연대회에, 임영웅은 휘문고등학교 연극 팀을 이끌고 참가하게 되었다. 처음 휘문 측은 학교 내에서 연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다가 뜻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임영웅을 수소문해서 의뢰한 것이었다.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동서남북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한 연극이 <사육신>이었다. 중도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연습량이 부족했고, 이를 메우기 위해서 원서동 교사(지금의 현대그룹 사옥) 강당에서 합숙까지 강행했다. 열심히 연습한 성과가 있었다. 김경옥은 「경향신문」에 게재한 총평에서, 휘문의 작품이 학생극다운 순수함이 있다고 칭찬했다. 휘문고는 단체로는 3위를 했고 연기상을 두 사람이나 수상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연극배우였던 고(故) 이진수였고, 다른 하나가 KBS 성우로 활동한 안종국이었다. 탤런트 박근형이 박팽년 역으로 출연했고 KBS 촬영 감독을 지낸 박노한은 하위지 역으로 출연했다.
1948년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연극연출을 전공하면서 재학 중 <사육신>으로 연출에 데뷔한 뒤, 조선일보 등 언론사에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극단 산울림단장이다.
작품으로는 산울림 창단 공연작이며 20여 차례나 연출하여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고도를 기다리며>를 비롯하여, <환절기>, <달집>, <하늘만큼 먼 나라>, <위기의 여자>, <목소리〉<산불> 그리고 <살자기 옵서예>를 비롯한 뮤지컬은 물론 발레와 오페라를 연출해 출중한 기량을 들어내고, 영화배우를 능가하는 미남으로, 여성연극인의 인기를 독차지하기도 했다.
1966년 9월, 동인극장의 노덕준 기획 정일성 연출의 유진 오닐 작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에서 박근형, 오지명, 백일섭 등과 함께 첫 명동국립극장 무대에 선 손 숙 역시, 50주년기념무대이기에, 이번 <가을 소나타> 공연은 의미가 있다.
<가을소나타>는 1978년, 잉마르 베르히만 감독과 잉그릿드 버그만(샬롯 역) 리브 울만(에바 역) 출연의 영화로 처음 제작되었다. 내용은 어느 가을날 목사의 아내 에바(리브 울만)는 유명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샬롯(잉그리드 버그만)을 집으로 초대한다. 연주 여행 차 전 세계를 순회하느라 바쁜 샬롯은 최근 오랜 연인 레오나르도의 죽음으로 상심한 상태다. 7년 만에 어머니를 만난 에바는 반갑게 샬롯을 맞이하지만, 샬롯이 미처 몰랐던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둘 사이가 서먹해진다. 심각한 신체장애를 가진 채 요양원에 방치되어 있던 여동생 헬레나가 2년 전부터 에바의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던 것. 샬롯은 예술가로서 명성과 경력을 위해 자식들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몰두해 왔던 것이다. 자의식 강한 샬롯은 자신의 선택을 애써 정당화하려 하지만, 에바는 무책임한 샬롯에 대한 원망과 애증을 안고 있다. 마침내 두 모녀는 오래 묵혀두었던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며 감정적 회오리를 겪는다.
연극의 무대는 거의 실제 건물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목조 2층 주택을 장치로 세우고, 창밖에 서있는 나무들의 잎에서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아래층은 서재 겸 거실과 주방으로 사용이 되고, 이층은 벽이 없는 두 개의 방, 그리고 배경 쪽 창문이 막힘없이 시원하게 트여있다. 이층의 방에 침상과 장애인용 등받이 의자가 있고, 아래층에는 중앙에 책장, 그리고 객석에서 바라보기에 왼쪽에 와인 장이 있어, 출연자가 가져다 탁자에 놓고 마신다.
두 딸의 어머니지만, 이름난 건반악기연주자로서 가정과 가족을 등한시했던 그녀의 과거가 큰 딸과의 이야기 속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대다수 예술가의 삶과 행위가 나이든 연주자인 어머니와 살아온 모습과 다름이 없듯이, 꼭 이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가정은 물론, 자녀까지 등한시 하는 삶에서 예술가들은 대부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관극을 하게 된다. 물론 마음에 가족에 대한 늘 상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지는 것도 이 연극의 건반연주자의 심정과 일치한다. 게다가 장애인인 둘 째 딸을 돌보지 않아, 큰 딸이 함께 데려다 살면서, 어머니에 대한 섭섭함이 대화중에 서서히 드러나고, 큰 딸로서 맨 정신으로는 말하기 어렵기에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꺼낸 이야기로 해서 차츰 마음속의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솟아오르면서, 와인은 병을 가져오는 횟수가 증가하게 된다. 어머니가 변명하듯 자신의 연주가로서의 삶을 딸에게 납득시키려 들지만, 모녀의 대화는 감정적으로 변하고, 차츰 격화되면서 폭발 직전까지 치닫는다. 모녀의 대화를 듣던 장애인 딸이 사력을 다해 이층에서 기어 내려와 모녀의 싸움을 중단시키고, 어머니와 포옹을 하는 장면은 연극의 백미(白眉)다. 대단원은 연극의 도입에서처럼 목사인 큰 딸의 남편의 해설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손 숙이 어머니, 한명구가 큰 딸의 남편, 큰딸로 서은경, 작은 딸로 이연정이 출연해 완벽에 가까운 성격창출과 호연, 그리고 건반악기 연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무대디자인 박동우, 조명디자인 최형오, 의상디자인 박항치·백경진, 분장디자인 김유선, 소품디자인 최혜진 등 제작진의 열정과 기량이 돋보여, 신시컴퍼니(대표 박명성)의 잉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 작, 임영웅 연출의 <가을 소나타>를 기억에 길이 남을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9, LG아트센터와 에이콤인터내셔날 제작, 게오르그 뷔히너 원작, 크리스 브로더릭 극본·작사, 롭 셰퍼드·크리스 브로더릭·황규동 작곡, 윤호진 연출의 <뮤지컬 보이체크>
LG아트센터에서 (주)에이콤인터내셔날의 게오르크 뷔히너 원작, 크리스 브로더릭 극본 작사, 롭 셰퍼드 크리스 브로더릭 황규동 공동작곡의 <뮤지컬 보이체크>를 관람했다.
게오르크 뷔히너 (Georg Büchner)는 24세에 요절한 천재적인 작가다. 그는 독일에서 1813년에 태어나고 1837년에 스위스에서 사망했다.
뷔히너는 소시 적부터 글쓰기는 재주가 있었다. 1823년 3월 학교 축제일에 <과일을 먹을 때 주의하세요! (Vorsicht bei Genusse des Ebstes!)>라는 라틴어로 글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낭독발표하고, 1830년 9월에는 자신이 다니던 김나지움의 공식 축제에 <카토에 관한 연설, 자살 옹호론(Rede über Cato>을 발표했고, 1831년 김나지움의 졸업식에서 <메네니우스 아그리파 (Menenius Agrippa)>라는 이름으로 산상에 모인 민중들이 로마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는 글을 라틴어로 발표했다.
다름슈타트에서 김나지움을 마친 그는 1831년부터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의 의학부에서 의학과 자연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 시절에 그는 자신이 세를 들어 살던 집 주인(목사)의 딸인 빌헬미네 얘글레 Wilhelmine(Minna) Jaegle와 비밀리에 약혼을 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2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그는 1833년에는 다시 독일로 돌아와 기센대학에서 의학공부를 계속했는데, 이때 그는 역사와 철학도 아울러 공부했으며, 한편으로 정치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즉 그는 1834년에 인권협회를 창설하고, 헤센의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헤센 대공국의 반동적 사회 상황에 저항했다. 1834년 7월에 뷔히너는 부츠바하 출신의 학교장 바이디히 (F. L. Weidig)와 함께 ‘헤센급전’이라는 독일 최초의 사회주의적 성향을 띤 전단을 작성하여 농민들에게 살포해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 후 그는 기센을 떠나 다름슈타트에 있는 부모의 집에 숨어살면서 체포된 동료들의 구출작업에도 힘을 쏟았다.
이 무렵인 1835년 2월에 그는 첫 희곡 <당통의 죽음 (Dantons Tod)>을 썼다. 그러나 같은 해 3월에 경찰로부터 소환장을 받은 후 독일에서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슈트라스부르크로 도망한다. 6월에는 뷔히너에 대한 공개수배로 더 이상 고국 땅을 밟을 수 없게 되지만, 7월말에 출판사의 편집위원으로 일하던 구츠코 Gutzkow의 도움으로 <당통의 죽음>이 독일에서 출판된다. 동년 5월에 중편소설 <렌츠 (Lenz)>를 집필해 9월에 완성하고, 10월에는 빅톨 유고 Victor Hugo의 드라마 두 편 <Lucrèce Borgia>와 <Marie Tudor>를 번역한다. 그해 가을과 겨울 사이에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면서, 한편으로 돌 잉어의 신경조직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여, 그 다음해에 이 연구논문을 취리히 대학의 철학부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다. 1836년에 들어 뷔히너는 세 차례에 걸쳐(4월 13일, 4월 20일, 5월 4일) 슈트라스부르크의 자연역사협회에서 물고기의 신경조직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초여름에는 <레옹세와 레나 (Leonce und Lena)>를 집필하고 <보이첵 (Woyzeck)>의 구상작업에 들어간다. 같은 해 9월에 박사학위논문이 통과되어 취리히 대학에서 학위를 받는다. 10월에는 거처를 취리히로 옮기고, 11월 초에 <두개골신경에 관하여>라는 테마로 취리히 대학에서 시험강의를 하고, 겨울에 <보이첵>을 완성한다. 1837년 1월말에 그는 치명적인 병에 걸리고, 2월부터는 병석에 눕게 된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면서부터 그의 의식은 혼미상태에 들어가고, 2월 19일에 뷔히너는 더 이상 깨어나지 못하고 영면한다. 이틀 후 그는 취리히의 크라우트 가르텐이란 공동묘지에 안장된다.
<보이첵>의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프레드리히 요한 프란츠 보이첵, 육군 일등병 제 2연대 2대대 4중대 소총수,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 마리가 있다. 보이첵은 군대에서는 상사의 면도를 해 주며, 의사의 명령에 따라 매일 완두콩만 먹고, 소변 량이나 감정의 상태를 점검 당한다. 가난하기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삶의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나약한 인간 보이첵을, 의사는 자유의지를 상실한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고, 자신의 실험용 집토끼인양 이용하고 학대한다. 이렇듯 계속되는 정신적, 육체적인 착취로 인하여 보이첵은 점점 극심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칠 대로 지친 보이첵과 더불어 마리는 자신의 답답한 현실 속에서 어떠한 탈출구도 찾지 못한 채 정신적 고립감에 지쳐간다. 어느 날, 한 가설무대에서 악대장은 보이첵과 함께 온 마리에게 눈독을 들인다. 악대장은 마리에게 야성적 손길을 뻗친다. 마리는 육체적, 경제적 능력을 지닌 매력남 악대장의 유혹에 이끌려 그와 통정을 하게 된다. 보이첵은 악대장과 마리의 관계를 눈치 챈다. 그러나 보이첵으로서는 어떤 항의나 항변도 못하고 그저 가슴에 묻어둘 뿐이다. 의사와 중대장은 그러한 보이첵을 조롱하고 보이첵에게 야유를 퍼붓는다. 견디다 못해 보이첵은 마침내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사랑하는 여인인 마리를 살해한다.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는 같은 사건을 소재로 소설 <카르멘>을 썼다. 메리메의 카르멘은 1845년에 발표되었지만, 오랫동안 비평가들에게 묵살당해 온 불운한 작품이었다. 메리메의 사후 비제가 <카르멘>을 오페라로 만들어 성공함에 따라 메리메 원작 소설 <카르멘>의 진가도 널리 인정받게 되었고. 뷔히너의 희곡 <보이체크>도 새롭게 평가받게 되었다. 그러나 비제는 오페라 <카르멘>의 초연의 실패로 요절했고, 뷔히너 역시 <보이체크>를 완성하지 못하고 요절했다. 모두 19세기에 발생한 일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태와 생활, 그리고 사람들의 자유분방(自由奔放)한 사고는 <보이체크>나 <카르멘>을 재평가하게 되었고, 드디어 21세기인 오늘날에는 <카르멘>은 세계도처의 극장에서 공연되는 최고의 인기 오페라가 되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보이체크> 역시 마찬가지다.
무대는 하수 쪽에 커다란 목선의 바닥이나, 고층나무계단의 안쪽 같은 형태의 가리개를 2중으로 세우고, 상수 쪽에는 대로변 3층 목제 건물이 있고, 1층은 출입구로 보이고, 2층부터 방마다 베란다가 있고, 나무창살 난간이 있다. 장면변화에 따라 목제건물의 중앙부분이 무대중앙으로 돌출되면, 건물 이층의 침실과 어린이 요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장면변화에 따라 3층 건물의 배경 막에 근접한 부분이 돌출되면, 층과 방의 칸칸마다 성매매업소 여인들의 관능적인 모습이 관객의 눈길을 끈다. 3층 건물의 객석 가까운 부분이 돌출되면, 카페풍의 주점이 펼쳐지고, 상수 쪽 객석 가까이에서 한자 높이와 세자 폭 그리고 열두 자 길이의 단이 돌출되면, 군대 내무반의 일실이고, 단 위에는 탁자와 의자 그리고 장난감이 놓여있다. 이 건물이 어둠에 쌓이면, 호수 가에 골 풀 풍경이 전개되고, 풀숲 사이로 통로가 보이고, 배경 막에 구름과 둥근달의 영상이 투사된다. 그리고 별도로 곡예단, 유랑극단의 이동무대가 등장하기도 한다. 배경의 달이 처음에는 부드러운 주황색이었다가 차츰 핏빛으로 변하고 후반부에는 은빛으로 변해 극의 흐름과 어우러진다. 대단원에는 황량한 골 풀만 보이는 호숫가의 공터로, 손수레에 관을 두 개 싣고 등퇴장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뮤지컬은 1부와 2부로 구성이 되고, 오케스트라 박스 안에 연주자와 연주석이 마련되고, 지휘자의 지휘하는 뒷모습이 보인다. 작중인물의 합창, 이중창, 독창, 그리고 춤이 이국적 정취를 풍기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성격창출에 따른 음색과 출연자들의 열창이 제대로 연출된다.
도입에 병사들의 행진과 함께 합창이 시작되고, 무대중앙에 집결하면서 뒤처져 들어오는 보이첵의 기운 빠진 모습과 이를 보고 상관이 기합을 주는 장면에 관객의 머리가 갸웃 둥 하면, 보이첵은 의사의 인체시험대상으로 일정한 대가를 받고 완두콩만 먹는다는 설정이고, 그 이유가 사랑하는 여인과의 사이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인체시험대상이 되었다는 노래로 전달이 된다. 의과대학에서 교수노릇을 하는 의학박사, 부대의 상관, 그리고 군악대의 대장이 등장하면서, 보이첵과 미모의 아내 마리가 아기를 데리고 나들이 하는 모습을 본 군악대장이 마리에게 음심을 품는 장면이 연출된다. 아름다운 보석목걸이로 마리의 환심을 사고 통정을 하는 군악대장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그런데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의 입소문이 종당에는 보이첵의 귀에까지 들어간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고 조롱하는 군상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드디어 보이첵이 복수를 하려 결심하고 군악대장을 찾지만 오히려 두드려 맞고 실신하기에 이른다. 인체실험대상이 되어 의학박사로부터 받은 돈과 군악대장이 폭력의 대가로 던져준 돈으로 보이첵은 상점에서 칼을 한 자루 산다. 그리고 마리를 찾아가 자신을 배반했다며 칼로 찌른다. 마리를 죽인 후 보이첵은 노래를 부른다. 사랑하면 불륜을 저지른 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그러나 죽인 뒤에 부르는 그런 노래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대단원은 보이첵과 마리의 시신을 담은 두 개의 관을 수레에 싣고, 보이첵과 친했던 동료 병사가 끌고 들어온다. 마을 여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오고, 다 함께 노래를 부른 후, 다시 관을 끌고 퇴장하는 장면에서 공연은 마무리가 된다.
김다현과 김수용이 보이첵, 김소향이 마리, 김법래가 군악대장으로 출연해 탁월한 가창력과 호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정의욱이 중대장, 박성환이 의학박사, 박송권이 동료병사, 김영완이 중사로 출연해 역시 열창과 열연으로 박수를 받는다. 임선애가 마을 노인, 김태현이 쇼맨으로 출중한 기량을 드러낸다. 임의재, 주홍균, 홍준기, 이 강, 정은규, 황경석, 이호진, 이종민, 구준모, 김아름, 김순주, 홍광선, 황한나, 김려원, 이아름솔 등 출연자 전원의 가창력과 열창이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관객의 찬탄과 환호를 받는다.
공동작곡 작사 황규동, 음악감독 편곡 장소영, 안무 이란영, 각색 한국어가사 안재승, 오케스트라 지휘 염규현, 음악조감독 정혜지 김지영 임진희, 드럼 노용진, 기타 윤행재 박상진, 키보드 윤정로 우종화, 바이올린 김지은 김민희, 첼로 연금영 이영림, 트럼펫 김남철 박도강, 혼 박종석, 트럼본 황교진, 베스 트럼본 조현신 등 연주자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뮤지컬의 수준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무대디자인 박동우, 조명디자인 고희선, 음향디자인 권도경, 의상디자인 이은경, 분장 헤어디자인 양희선, 소품디자인 임희정 등 제작진 모두의 기량이 드러나, LG아트센터와 (주)에이콤인터내셔날 제작, 게오르크 뷔히너 (Georg Büchner) 원작, 크리스 브로더릭(Chris Broderick) 극본 작사, 롭 셰퍼드(Rob Shepherd) 크리스 브로더릭(Chris Broderick) 황규동 공동작곡의 <뮤지컬 보이체크(Woyzeck)>를 기억에 길이 남을 음악극으로 만들어 냈다.
10, 극단 천지와 수현재컴퍼니 제작, 어니스트 톰슨 작, 문삼화 역, 이종한 연출의 <황금연못>
대학로 대명문화공장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극단 천지와 (주)수현재컴퍼니 공동제작, 어니스트 톰슨(Ernest Thompson) 작, 문삼화 역, 이종한 연출의 <황금연못(On Golden Pond)>을 관람했다.
<황금 연못(On Golden Pond)>은 미국의 신예 극작가 어니스트 톰슨((Ernest Thompson 1949~)이 27세 때에 쓴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1981년에 영화로 제작되고, 평생을 배우의 삶을 산 헨리 폰다의 마지막 작품이다. 영화 <황금연못>은 제5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1982)에서 헨리 폰다가 남우주연상, 캐서린 헵번이 여우주연상, 어니스트 톰슨이 시나리오 상을 수상했다.
내용은 40년 가까이, 겨울철만 빼고는 봄부터 가을까지 해마다 이 <황금연못>의 별장에서 지내는 노부부에게 아버지의 80회 생신에 맞춰, 오랜만에 딸이 찾아온다. 그리고 혼자 온 것이 아니라, 딸이 결혼할 치과의사를 하는 새 남자와 그 남자의 아들인 소년도 함께…. 딸은 새 남자와 유럽여행을 떠나기 위해, 소년을 부모에게 맡긴다. 이 연극에서 딸은 어머니와는 무척 가깝지만 아버지와는 냉랭한 사이로 설정이 된다. 아버지는 평소 딸과 대화도 않고, 딸을 등한시하는 심정을 보였기에, 42세가 되도록 딸은 아버지를 미워한다. 생일날 아버지의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생일노래합창을 한 후, 소년을 남기고 젊은 남녀는 여행을 떠난다. 아버지는 소년과 낚시를 다니기 시작하고, 소설을 읽히면서 차츰 가까워진다. 할아버지와 소년은 둘 만의 농담도 한다. 여행길에 딸은 소년의 아버지인 새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부모에게 맡긴 소년의 안부를 묻는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딸에게 소년이 아버지와 무척 잘 지내고 있다는 대답을 한다. 결혼한 딸 내외가 돌아온다. 아버지에게 여전히 미움을 갖고 있는 딸에게 어머니는 그러지 말라고 충고를 한다. 딸이 거부의사를 나타내자 어머니는 버럭 역정까지 낸다. 딸은 어머니의 역정에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다. 딸 부부가 소년을 데리고 떠나는 장면에서, 소년이 할아버지를 친 할아버지처럼 좋아하고, 자주 <황금연못>을 찾겠다는 약속을 하는 소년의 모습을 딸은 주의 깊게 본다. 딸 부부와 소년은 노부부에게 작별을 고하고 떠난다. 얼마 뒤에 딸은 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한다. 어머니는 딸과 통화중 전화기를 아버지에게 건넨다. 딸은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사랑해요” 라고 전화기에 대고 소리친다. 아버지도 얼떨결에 “나도 너를 사랑한다.”라고 대답한다. 새로 사위가 된 남자도 아버지라고 다정하게 부른다. 설사 본심이 아니라고 해도 다정한 통화가 나이 든 아버지와 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든다. <황금연못>에 가을이 깊어간다. 곧 차가운 겨울이 닥치기 전에 노부부는 여느 때처럼 이 고장을 떠나려고 짐을 꾸린다. 그런데 남편이 가벼운 짐짝 하나도 제대로 들지를 못하고, 쓰러진다. 아내는 놀래 남편에게 달려간다. 한동안 꼼짝도 못하던 남편이 푸시시 일어난다. 괜찮다고 이야기를 하며, 아내는 일단 안심을 하지만, 이번 겨울에는 이 <황금연못> 별장에서 추운 계절을 그대로 지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늙은 남편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힌다. 노부부의 첫 번째 <황금연못>에서의 겨울나기가 시작되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무대는 노부부의 별장이다. 정면의 창밖으로 <황금연못>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창 왼쪽에 출입문이 있고, 벽에는 선반이 있어 모자를 잔뜩 얹어놓았다. 창 앞에 낮은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다, 창 오른쪽으로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벽에 그림과 사진액자들이 걸려있다. 그 계단으로 옥상까지 오르도록 되어있고, 옥상에는 난간이 만들어져 있다. 계단아래 창고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무대 오른쪽에는 책이 잔뜩 꽂힌 책장과 방문이 있다. 무대 오른 쪽 마루에는 긴 안락의자와 탁자, 그 좌우에 걸상과 등받이 없는 사각의 의자가 있고, 무대 왼쪽 마루에도 낮은 원형탁자와 의자가 있다. 탁자 위에는 금색을 입힌 고풍스런 전화기가 놓여 있다. 무대 왼쪽 벽에도 문이 있고 그 옆으로 벽난로로 보이는 조형물이 있다. 낚싯대, 책, 짐짝, 약 등의 소품과 배달부의 우편물, 여행용 가방, 그리고 생일 케이크가 연극 진행에 따라 출연자들이 가지고 등장한다. 조명의 강약으로 극적장면을 강조하거나, 부각시킨다. 음악도 분위기 상승을 주도한다.
이순재가 아버지, 나문희가 어머니, 우미화가 딸, 이주원이 딸의 어린 시절의 친구인 배달부, 이도엽이 딸의 새 남자인 치과의사, 홍시로가 소년으로 출연해,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특히 이순재 나문희 두 출연자의 호연은 1981년에 제작된 영화 <황금연못>의 헨리 폰다나 캐서린 헵번에 비견되는 탁월하고 출중한 연기이기에, 모처럼 명작에 어울리는 명연기를 감상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한 공연이었다. 신구와 성병숙이 더블캐스팅 되어 출연한다.
무대 소품디자인 김혜지, 조명디자인 황종량, 음악디자인 최인양, 의상디자인 정현정, 분장디자인 백지영, 음향감독 이순용 등 제작진의 열정과 노력이 일치되어, 극단 천지(대표 김남호 김영수)와 (주)수현재컴퍼니(대표 조재현) 공동제작, 어니스트 톰슨(Ernest Thompson) 작, 문삼화 역, 이종한 연출의 <황금연못(On Golden Pond)>을 친 대중적인 공연이자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12월 31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