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제36회 서울연극제 자유참가작평/ 박정기

2015 36회 서울연극제 자유참가작평

 

박정기

 

서울연극제 자유참가작은 <도둑맞은 책> <루틴> <어둠 속의 햄릿> <서부전선 이상없다> <그녀들의 집> <금천구 시흥동 2015번지> <뽕짝> <연기학원 요양원> <체홉, 여자를 읽다> 등 9작품이다. 이들 공연 중 필자가 관람한 7작품의 공연평이다.

 

1, 드림시어터컴퍼니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정형석 각색·연출의 <어둠 속의 햄릿>

 

예술공간 오르다에서 극단 드림시어터컴퍼니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정형석 각색·연출의 <어둠 속의 햄릿>을 관람했다.

 

<어둠 속의 햄릿>은 원작의 비극적 결말을 의도적으로 개선하여 희극적 결말을 맺도록 재창작한 연극이다.

 

햄릿이 숙부인 클로디어스 왕에게 협력하여 숙부는 80세에 달하기까지 덴마크를 통치한다. 물론 햄릿도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오필리어와의 사이에서 햄릿 주니어가 태어나 그 역시 장성한 청년이 된다. 왕비인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와 오필리어는 호사생활의 극치를 누리며 살고 있다. 재상 폴로니어스의 아들 레어티스도 무장(武將)으로 나라에 충성을 하면서 차기 통치권 자리를 넘보고 있다. 햄릿의 절친인 호레이쇼는 선대의 국왕암살에 관한 진실을 알고 있기에, 진실은폐라는 정치적 차원에서 어두컴컴한 감옥에 갇힌 채 평생을 보내고 있다. 당연히 햄릿과 레어티스 사이에 통치권에 관한 암투가 전개되고, 레어티스는 선대왕의 비밀을 만천하에 공개하려고, 광대들을 초청해, 햄릿선왕이 그의 아우인 클로디우스에게 독살당하는 장면을 꼭두각시극으로 연출해 내 햄릿이 우유부단하고 기회주의자적인 성격으로 부친의 복수는커녕 자신의 안일만 유지하려하고, 왕위 계승권자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만천하에 공개하려한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자 광대들은 전원 살해당하고 만다. 당연히 레어티스는 분노를 터뜨리고 햄릿을 비난한다. 바로 그때 인접국이자 적대국인 노르웨이의 포틴 브라스 2세가 덴마크를 침공한다. 햄릿이 적군저지에 곧바로 나서지 않고, 우물주물하자 레어티스는 총사령관이 되어 앞장서 노르웨이 군에 맞서 전쟁터로 나간다. 햄릿의 아들 햄릿 주니어는 일찍이 정치적이나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문학과 예술 쪽에 더 관심을 두고 자라났으나, 부친 햄릿의 강권으로 무관직을 택했기에, 햄릿과 오필리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쟁에서 레어티스와 함께 출전한다. 그러나 레어티스와 햄릿 주니어는 전쟁터에서 전사한다. 다행히 덴마크 군이 승리를 했기에, 햄릿은 레어티스 일파의 여하한 저지나 방해도 없이 클로디어스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햄릿은 비로소 회의에 빠진다. 자신이 바라고 선택한 희극적 결말이 어쩌면 비극적 결말보다 더 비극이 된 것이 아닌가 하고.

 

무대는 천정에 주렁주렁 매단 수많은 해골바가지가 극장을 들어서는 관객의 머리카락을 쭈뼛하게 만든다. 암흑 속에 부분조명으로 출연자들의 얼굴이나, 반신상, 또는 꼭두각시극 인형들이 부각되고, 배경 인접한 곳에 마련한 1m 높이의 단과 그 앞에 놓인 계단에 차례로 선 노년의 클로디어스, 중년의 햄릿의 얼굴에 흐릿한 조명이 투사되고, 가끔 클로디어스의 군모와 선 그라스를 쓴 모습에서 낯이 익음을 느끼게 되고, 그를 시해한 인물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광대들의 꼭두 극이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상체를 노출한 무희의 춤이 뇌쇄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효과음인 천둥번개와 전쟁포화소리가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가 하면, 배경음악 역시 극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암흑을 최대한 유지한 조명효과와 함께 극을 공포 환상 극으로 몰아간다.

 

박기륭이 중년의 햄릿, 오동욱이 햄릿 주니어, 서민성이 클로디어스와 레어티스, 이희영이 오필리어와 거트루드, 그리고 꼭두각시 연희자, 신연경과 정진영이 무희로 출연해, 출연자 전원이 호연으로 관객을 공포 환상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작곡·음악 홍지연·우지현, 조명 공홍표, 조연출 김수경, 무대감독 김혜영, 기획 마은지 등 스텝진의 노력과 열정이 잘 드러나, 드림시어터 컴퍼니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정형석 재창작·연출의 <어둠 속의 햄릿>을 연출력이 감지되는 한편의 걸작 공포 환상 극으로 창출시켰다.

 

2, 극단 지즐의 김진수 작 석봉준 연출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성균관대학교입구 동화소극장에서 극단 지즐의 김진수 작, 석봉준 연출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관람했다.

 

김진수는 배우이자 <영안실> <진짜 사나이>를 쓰고 연출한 앞날이 기대되는 전천후 연극인이다.

 

석봉준은 서울창공축제위원장, 서울연극협회 청년회 임원이고 극단 지즐 대표다. 연출작은 <흉터> <오해피> <바람이 되어> <제칠감> <영안실> <서부전선 이상 없다> <진짜사나이> <결혼> <골목길> <소년, 소녀 드림> <달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친구> 등이 있고, 극작은 <흉터> <오해피> <바람이 되어> <골목길> <소년, 소녀 드림> <신의 선물> 등을 집필한 배우이자 작가 겸 연출가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최전방 초소를 무대로 경비병 1, 2가 펼치는 희극이다. 무대 중앙에 초소가 있고, 주변에는 철조망이 있고, 그 너머로 숲이 보인다. 초소 주변은 위장막으로 가려있고, 무대 오른쪽에 낮은 바위덩이가 의자구실을 한다. 초소에 통신전화가 가설되어 있어, 본부와 연락을 취하고, 기이한 음향효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가 하면, 대단원에 산돼지 소리로 기이한 효과음의 정체를 밝힌다.

 

연극이 시작되면, 경비병 1, 2의 경비모습과 선임이 후임에 대한 얼차려가 희극적으로 전개되고, 군 입대하기 전의 일상이 소개되면서, 경비 2가 소년시절 부모상을 당하고 할머니한테서 자라난 사연이 펼쳐지고, 경비 1은 사랑하던 여인과 그 여인이 경제적 안정과 지위향상을 꿈꾸며 다른 남성에게로 떠나가던 모습이 재현된다. 최전방이라, 기이한 효과음이 들이면, 혹시 북괴군이 침투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경계근무를 강화하고, 또는 귀순병이 사선을 넘어오는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 속에서 경비병의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내고, 경비병의 연인이 등장하기도 하면서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관객을 무대로 초청해, 극중 인물로 연기를 하도록 해 폭소와 갈채를 이끌어 낸다. 무장간첩이 침투해 경비병에게 총상을 입히기도 하고, 후임에게 얼차려로 기압을 가하던 경비가 바뀐 입장에서 얼차려를 당하는 광경은 폭소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하고, 대단원에서 경비 1, 2가 다투다가 잘못 발사된 총탄에 쓰러져 선임이 운명하지만, 깨어나니 꿈이었다는 장면은 관객의 옴츠러들었던 마음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흥미만점의 연극이다.

 

김지용, 김영진이 경비병 1, 2로 출연해 더할 나위 없는 호연과 성격창출로 관객의 폭소와 갈채를 이끌어 내고, 박미리가 할머니, 연인, 무장침투적군병사, 경비병 1, 2의 소대장 등 1인 다 역으로 출연해 펼치는 탁월한 연기는 관객의 탄성과 함께 갈채를 받는다.

 

조연출 정성윤, 조명 박민한, 조명오퍼 강원진, 무대 유다미 등 스텝의 기량이 잘 드러나, 2015 서울연극제 자유참가작 극단 지즐의 김수진 작, 석봉준 연출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걸작희극으로 탄생시켰다.

 

3, 극단 그룹 동 시대의 김수미 작, 오유경 연출의 <그녀들의 집>

 

서초동 소극장 씨어터 송에서 극단 그룹 動 시대의 2015 서울연극제 자유참가작 김수미 작, 오유경 연출의 <그녀들의 집>을 관람했다.

 

김수미는 서울예대 극작과 출신으로 1997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 1999년 제1회 옥랑 희곡상 수상, 2000년 제19회 한국 희곡 신인 문학상, 2002년에는 한국연극협회선정 우수공연 ‘BEST 7’ 수상, 2004년 경기도 연극제 동상 수상, 2005년 대산창작기금 수혜자 선정, 2005년 日本劇作家大會 심사위원상 수상, 2005년 제8회 국립극장 신작희곡페스티벌 당선, 2005년 마포구 (양화진 성지화 사업) 희곡공모 당선, 2006년 거창국제연극제 희곡공모 우수상 수상, 2008년 제1회 동랑 희곡상 수상, 2010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작가창작활동지원 선정, 2010년 제1회 명동예술극장 창작희곡 공모 당선, 2011년에는 제5회 차범석 희곡상, 2014 대한민국 셰익스피어 어워즈 희곡상을 수상한 미모의 여류작가다.

 

오유경은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동국대학교 대학원 출신으로 현재 그룹 動시대 상임연출이다.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3기 동인으로 <원더풀초밥> <듀스> <서글퍼도 커튼콜>, <은미노래방>, <변태>, <아가멤논 家의 비극>, <박제 갈매기>, <오셀로, 오셀로> <햄릿… 유령선>, <말하는 고양이>, <강철여인의 거울>, <오! 발칙한 앨리스>, <안전(+)제일> 등을 집필 또는 연출한 출중한 기량과 미모의 연출가다.

 

<그녀들의 집>은 나이 들어 몸이 굳어가는 병에 걸린 아버지와 세 딸, 그리고 아버지를 치료하는 전문의와 막내딸과 동성애를 한 여인의 이야기다.

 

몸이 굳어가는 병을 다발성 경화증(多發性 硬化症)이라고 한다. 과로하거나 몸이 너무 피곤하면 근육이 굳어지거나 눈이 침침해지는 듯한, 경험을 누구나 한다. 대개 일과성으로 지나간다. 하지만 이런 증상이 24시간 이상 지속되고 여러 부위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면 다발성 경화증을 의심해봐야 한다.다발성 경화증은 몸의 여러 부위가 점점 굳어가는 병. 피로감과 신경성 통증, 마비, 시야 혼탁 등이 갈수록 심해져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이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엉뚱하게 외부의 적이 아니라 스스로를 공격해서 생기는 자가 면역 질환의 하나다. 병이 진행되면 뇌에서 팔과 다리 등 신체 말단으로 연결되는 신경망이 손상되어 뇌의 신호가 잘 전달되지 않아 마비가 나타난다.다발성 경화증은 전 세계적으로 250만명, 국내에는 2300여 명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연극에서 아버지는 일찍 아내와 사별하고, 딸 셋을 기르면서 유독 예쁜 막내를 지나치게 사랑해, 어려서부터 막내의 온몸을 자주 쓰다듬어 준 것으로 설정이 되고, 그로 인해 막내는 일찍 성감에 눈을 뜨게 되고, 자라면서 동성애는 물론, 결혼 후에도 남편이 신통치 않으면 갈아버리는 등, 두 번 이혼경력의 관능미 가 넘치는 여인이로 설정된다.

첫째는 피아니스트로 그녀의 연주곡이 연극의 도입과 중간에 축음기를 통해 아름답게 들려 나온다. 첫째 역시 유전인자 때문인지 다리가 굳는 병에 걸려 자주 넘어지고, 신장 중 하나를 제거수술을 받은 것으로 소개가 된다. 그렇기에 건강한 둘째가 혼자 남아 아버지를 보살피고 있다.

 

이 집으로 주치의가 자주 왕진을 하고, 주치의는 훤칠한 키에 귀태가 철철 흐르는 미남이다. 둘째는 가정적이고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아버지에게 효성을 다한다. 그리고 아버지 주치의를 연모한다. 그런데 다른 자매들이 하도 아버지를 보러 오지를 않으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연락을 해, 나머지 두 딸이 급거 귀가를 하게 된다.

 

오랜만에 대면한 세 딸의 모습에서 친자매의 다정함이나 정겨움을 감지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서로 왠지 모를 증오심까지 엿보인다. 아버지를 대하는 딸의 모습이 제각각이다. 여기에 처녀시절 막내와 동성애를 벌렸던 여인이 다리를 절룩이며 공구가 든 통을 들고 등장한다. 막내는 의외로 동성애 상대를 차갑게 대하니, 상대는 대단히 실망한 표정을 드러낸다. 이런 분위기 속으로 주치의가 등장을 하고, 첫째와 막내는 둘째처럼 첫눈에 주치의의 잘생긴 모습에 빨려든다. 막내는 미모와 관능미로 주치의를 유혹해, 주치의와 열정적인 입맞춤을 벌이기까지 한다. 이 광경을 목도한 둘째의 기분이 오죽하랴? 원래 이 집에는 치명적인 독극물이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되고, 살아있으나 죽어 있으나 같은 처지인 아버지는 딸이 넣은 독극물로 운명을 하게 된다. 주치의는 독극물에 의한 죽음이 아닌, 심장마비사로 진단을 한다. 둘째는 주치의와 치정행각을 더 벌이려 하지만, 둘째가 냉대하던 동성애 상대에게 목 졸려 죽임을 당한다. 둘째는 주치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고, 결혼해 줄 것을 청한다. 그러나 주치의는 일거에 거절을 하고 둘째를 외면한다. 둘째는 절망과 허탈감에 빠져 주저앉는다. 첫째도 주치의에게 은연중 매달리지만 주치의가 냉대하니, 첫째는 막내의 동성애 상대가 놓고 간 공구 통에서 망치를 꺼내 주치의를….. 그리고 자신도 아버지에게 먹인 독극물로…. 대단원에서 홀로 남게 된 둘째의 허탈하고 절망적인 모습에 첫째와 막내의 망령이 다가서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무대는 중앙이 객석을 향해 경사진 무대이고, 좌우에 한자 높이와 여섯 자 넓이의 공간이 있고,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방으로 통하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배경에 밀실 같은 공간과 그 왼쪽에 아버지 침실이 있다. 무대 오른쪽 객석 가까이에 소파와 탁자, 그리고 의자가 배치가 되고, 환자이동의자와 망치가 들어있는 공구 통, 장식장 위에 놓인 축음기, 주치의 진료가방, 쟁반과 찻잔 등이 극의 전개와 함께 제구실을 한다. 경사진 무대 밑으로 보이는 조명이 극적효과를 나타내고, 객석방향으로 설정된 창문을 열면 들리는 차의 소음이 대로변에 위치한 집이라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천정에 매단 여러 개의 백열전구와 갓의 흰색 부착물이 상징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장면에 따라 갈아입는 의상도 기억에 남는다.

 

이수미, 김종태, 이미라, 송인성, 이혜진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이 2시간 동안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극을 기억에 아로새기도록 만든다.

 

음악 이호근, 음향 임서진, 무대·소품 김원현, 무대제작 최두선, 의상 오수현, 조명 조성한·김상호, 사진 이상욱, 조연출 신소이·김진솔·김정은, 기획 이은경·김현진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잘 드러나, 극단 그룹 動 시대의 김수미 작, 오유경 연출의 <그녀들의 집>을 연출력이 감지되고, 출연자들의 열연이 돋보인 고품격, 고수준의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4, 극단 노을의 손톤 와일더 원작 오세곤 번역·번안, 이신영 연출의 <금천구 시흥동 2015번지>

 

노을소극장에서 손톤 와일더 작 오세곤 번역 번안, 이원현 예술감독, 이신영 연출의 <금천구 시흥동 2015번지>를 관람했다.

 

손톤 와일더는 1887년 4월 17일 위스콘신 주 메디슨 시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 그곳에서 교육을 받은 후, 1905년부터 92년까지 부친이 상해와 홍콩의 총영사로 있는 동안 그곳에서 교육을 받고 1910년부터 12년까지 버클리에서 그리고 1913년 캘리포니아 주의 Ojai에서 Thacher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후에 예일대학을 졸업한 다음 고등학교와 시카고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소설 · 희곡을 썼다. 격조 있는 문체와 신선한 형식,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는 명상적인 작풍, 인간의 가능성을 믿고 인생을 긍정하는 태도에 의하여 미국 문학계의 특이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소설에는 사고사(事故死)한 인물의 과거를 추구하여 신의 섭리인가 우발적인 사고인가를 구명하는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The Bridge of San Luis Rey>(1927), 서간문과 일기문으로 카이사르 등 로마인의 사생활을 전하는 <3월 15일 The Ides of March>(1948),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를 둘러싼 인간성의 미묘함을 그린 <제8일>(1967) 등이 있다.

 

희곡에서도 무대의 시간 · 공간의 틀을 깬 비 사실(非寫實) 형식을 구사하여 인류의 유구한 주제와 정면 대결, 1막극집 <긴 크리스마스의 정찬(正餐) The Long Christmas Dinner>(1931)을 비롯하여, 연애와 결혼 그리고 죽음이라는 가정생활의 평범한 사건을 파헤친 <우리 읍내 Our Town>(1938), 빙하 · 홍수 · 전쟁의 재해를 헤쳐온 인류의 의의를 호소하는 우의극(寓意劇) <위기일발 The Skin of Our Teeth>(1942), 뮤지컬 <헬로, 돌리>의 원작이 된 인생을 구가하는 희극 <중매인>(1954) 등의 걸작이 있다.

 

어릴 때부터 소설과 희곡을 서온 그는 Oberlin대학과 예일 대학을 다니는 동안 2대학의 문학잡지에 작품을 기고했다. 특히 Oberlin대학 재학 시에는 Chaales Wager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손톤 와일더는 당시의 미국의 극 주류와는 별도의 위치를 차지한 고립되고 독창적인 극작가이다. 극의 내용면에서도 극의 극은 어떠한 사회성도 표방하지 않고, 우주속의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근본 문제로 삼고 인간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제시한다. 극의 수법에 있어서도 사실주의극과는 다르게 관객의 상상력을 중시하고 극에 대한 환상을 깨는 수법을 채택한다. 작품수로 볼 때 소설에 비해서 훨씬 적은 수의 희곡을 쓴 와일더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희곡작가로서의 인기를 얻는 이유는 그가 누구보다도 미국적인 특성을 평범한 내용 속에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가이기 때문이다

<금천구 시흥동 2015번지>는 손톤 와일더의 <우리읍내>를 번안한 연극이다. 무대 좌우에 정사각의 입체 조형물이 여러 개 쌓여있고, 출연자들이 그 조형물을 이동시켜 극의 전개에 맞도록 배치한다. 그리고 출연자가 극의 1970년대, 1980년대 등, 극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관객들에게 설명한다. 조명으로 객석 뒤쪽에 보름달이 뜨는 것으로 설정하고, 여자출연자가 등장해 친 대중적 대화로 연극이 시작되면서 마을의 의사 김 원장이 일찍 모습을 보이고 신문 배달원이 뛰어다니며 신문을 집집마다 던지는 시늉을 한다.

 

김 원장 부인은 아들 철수를, 옆집의 이 선생 부인은 딸 영희를 깨워 학교에 보내는 등 평범한 일상적인 생활모습이 펼쳐진다. 아이들은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마을의 부인네들은 부인들대로의 평범한 일상을 떠벌이며 1970년대의 풍경이 전개된다. 이런 마을 모습이 소개되면서 1막이 끝난다.

 

2막이 되면 출연자가 흘러간 세월이 몇 년인가를 알린다. 2막은 사랑과 결혼이 주제다. 김 원장 부인과 이 선생 부인은 각각 아들 철수와 딸 영희의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인다. 철수와 영희의 혼례장면과 주례사가 연출되고, 결혼식 떡이 관객에게 분배된다. 출연자들이 쟁반에 떡을 담아 객석을 돌아다니며 나누어 준다. 결혼식 장면이 끝나면 관객들에게 2막이 끝났다고 전한다.

 

3막은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무대는 공동묘지다. 망자가 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를 낳다 죽은 영희가 어린 시절 자신의 집으로 가겠다고 소망한다. 소망대로 영희는 자신의 열두 번째 생일날로 되돌아간다. 과거로 돌아간 영희는 가족의 일상을 접하게 되고, 자기 어머니가 너무 바빠서 소소한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영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살아 있음의 소중함과 일상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무덤으로 다시 돌아온다. 여전히 신문배달부는 신문을 돌리고, 나이든 모습의 철수가 등장하면서 출연자가 이제 극이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면 연극은 끝난다.

 

김인수, 박우열, 김도연, 박새롬, 유일한, 김연진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고, 갈채를 받는다.

 

무대디자인 최병훈, 음악감독 이상규 양지현, 연주 양지현, 안무 민들레, 의상디자인 손대한, 조명디자인 최라윤, 분장디자인 노성인, 조연출 권민수, 조연출보 신승용 조성준, 그림 이동철, 기획 손동영 손지나 등 스텝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극단 노을의 손톤 와일더 원작, 오세곤 번역 번안, 이원현 예술감독, 이신영 연출의 <금천구 시흥동 2015번지>를 성곡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5, 극단 은행나무의 강병헌 작, 문삼화 연출의 <뽕짝>

 

스타시티 예술공간 SM에서 극단 은행나무의 이영진 프로듀서, 강병헌 작, 문삼화 연출의 <뽕짝>을 관람했다.

 

강병헌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대학원 석사 수료. KBS 4부작 추리드라마 <천사 없는 천국>, 영구아트무비 <영구와 불괴리>,<할머니캅스>, <심비홍>, <파워킹>, 도로교통 안전공단 공익, 에니메이션 <음주운전> 시리즈,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에니메이션 <벼리다리치치포포> 등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였으며, 아동뮤지컬 <낭랑뿌뚜꾸> 대본 작업과 극단 현대극장 뮤지컬 <빠담빠담빠담>, <해상왕 장보고>, 극단 신협 <블랙햄릿> 등을 각색하고, 스튜디오 배우열전의 <통닭>을 집필 공연했다.

 

문삼화 연출가는 2003년 연극 <사마귀>로 공식 데뷔하여 10년 넘게 연출가로 살아온 베테랑이며 공상집단 뚱딴지의 대표를 맡고 있다. 연출작품은 <바람직한 청소년> <뮤지컬 균> <세자매> <일곱집매> <언니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너 때문에 산다> <쿠킹 위드 엘비스> <백중사 이야기> <Getting Out> <라이방> <사마귀> 그 외 다수다 2003평론가협회선정 올해의 베스트3, 2004밀양 여름공연예술축제 제3회 젊은 연출가전 최우수작품, 2005 서울연극제 연기상, 신인연기상, 2006 거창 국제공연 예술제 남자연기상, 2008 서울문화재단 젊은 예술가 지원사업(Nart)선정, 2008대한민국연극대상여자연기상, 2009대한민국연극대상희곡상, 2013 서울연극제 우수작품상, 여자연기상, 2013한국연극BEST7, 2013제1회 이 데일리 문화대상 연극부문최우수상, 2013대한민국연극대상여자연기상, 2014제16회 김상열 연극상 등을 수상한 미모의 연출가다.

 

<뽕짝>의 내용은 지방의 한 정신병원에서 병원행정감사에 맞춰 정신질환자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만들고, 그 음악회가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성공적인 공연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정신병에 관해서는 유럽에서 그리스-로마시대에도 우울증, 사회공포증, 성격장애 등 현대 질환들의 기초를 찾을 수 있는 문헌들이 발견되었고, 유럽에서 그리스도교가 장악했던 중세에는 정신질병을 가진 이들은 그냥 마귀 들린 이들로 통일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인권은커녕 마녀로 몰린 이들과 함께 불타 죽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유럽과는 반대로 중세 이슬람권 정신병원에는 정신병에 대한 의식이 매우 관대해서 환자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 및 정신병의 원인과 이를 치료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1세기 실존한 아랍권 의사 이븐시나의 기록에서도 정신병자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며, 구타와 감금은 상태를 악화시킨다면서 우울증과 조울증 초기 상태가 자살이나 발작 같은 말기증상을 가져온다고 저술한 바 있다

 

유럽에서 중세 이후 들어서는 정신병원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그저 족쇄를 채워두고 기본적으로 가둬두는 곳일 뿐 치료소는 아니었다. 환자를 치료한다는 개념은 전혀 없었고 사회로부터 격리시켜놓는 용도였다. 서구의 정신병자와 광기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미셸 푸코가 자신의 저서 광기의 역사에서 잘 다루었다.

 

18세기 들어서야 정신병자들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개선되었고 정신질환 환자들도 치료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행해진 치료는 피 뽑기, 치아 뽑기, 관장, 회전의자 돌리기, 매 타작 등의 고문 수준이었고 효과는 당연히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20세기 초 전두엽 절제술(로보토미)이 등장했을 때 이를 창안한 모니츠가 노벨상까지 탈 수 있었던 건 겉보기에 치료 효과가 극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난동 피우고 망상을 호소하던 환자를 차분하게 진정시켜 버렸으니 대단하다고 여겨진 것이다. 문제는 뇌를 파내서 그렇게 됐다는 것이지만. 이 시절에는 정신병이 아니라 일반 질병에도 피 뽑기, 이빨 뽑기, 관장 등등을 하는 게 치료법이라고 여겨졌다. 조지 워싱턴도 폐렴에 걸렸을 때 피를 너무 많이 뽑아서 과다출혈로 죽었다고 한다. 루이 14세도 이런 치료법을 다 썼다. 거기에다 19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의 미국에서 남자는 포경수술을 해야 정신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내용까지 나왔다.

 

19세기 후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등장하면서 정신질환 환자들에 대한 치료방안이 심리적인 방안으로 개선되기 시작했고[1], 20세기 초중반 향정신성약물의 활용법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치료 방술들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검증 절차들이 도입된 20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정신질환 진단을 남용하는 일도 줄어들기 시작했고, 치료 기술들도 의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중반 입원 환자들에 대한 지역 사회 복귀 운동을 실시하기 시작했으며, 정신병원을 줄이고 입원 병동을 줄이는 동시에 환자들이 병원 장기 입원이 아닌 정신보건센터를 통해 치료를 받도록 권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후반 정신보건법이 발의된 이후 점차 정신병원에 대한 환경을 개선하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인권이 매우 강화되어 있어, 강제 입원도 쉽게 허용되지 않으며 특별한 사유 없이는 6개월 이상의 장기 입원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현실은 거의 사라졌다.

 

무대는 병원건물내의 한 커다란 실내공간이다. 왼쪽에는 병원의 작은 집무실이 있고, 컴퓨터가 보인다. 정면 오른쪽과 오른쪽 벽에는 환자수용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상자 곽 같은 사각의 입체조형물을 환자들이 제각기 들고 나와 깔고 앉거나 머리에 베고 눕기도 한다. 의자를 들여다 깔고 앉기도 한다.

 

병원소유주의 아들이 수련의가 되어, 부친과 절친한 병원장과 대면하면서, 고분고분한 면모를 보여 괜찮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정신질환자나, 간호사 앞에서는 방약무인한 성격을 노출시킨다. 간호원장은 이러한 수련의의 행동을 지적하지만, 수련의에게는 당나귀 귀에 코란을 읊조리는 격일뿐이다.

 

환자들 중에는 교주로 불리는 나이든 인물이 있다. 몰핀으로 통증을 진정시키는 것으로 보아 교주는 죽을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물론 수련의와 교주의 마찰이 노정되기도 한다.

 

바로 이즈음 정신질환자 병원의 여러 가지 안 좋은 소문으로 해서 관계당국의 행정감사가 시작되고, 머지않아 이 병원에도 감사가 실시되리라는 소식에 원장과 직원들은 환자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만들어 감사에 대응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수련의가 자청해 환자들 합창단을 지휘하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악보를 만들어 환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연습에 들어가려고 한다. 환자들 중에는 노래를 제법 잘 부르는 사람이 있지만, 악보를 볼 줄 아는 인물은 교주 한사람뿐이다.`수련의가 연습을 시키는 과정에 나이든 환자에게 하대를 하는 등 방약무인한 모습이 노출되고, 간호원장이나, 다른 직원이 수련에게 그래서는 아니 됨을 지적하지만, 수련의에게 개선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원장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린다. 원장은 수련의에게 교주가 사실은 자신의 형제이며, 수련의가 어린 시절에 늘 데리고 다니며 노래를 가르쳐 주던 인물이 바로 교주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수련의는 비로소 환자들에게 진정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원장이 요구하는 클래식 노래보다, 환자들이 요구하는 친 대중적인 노래를 반반씩 섞어 합창곡으로 하기로 한다. 연습과정에서 수련의는 환자들에게 과일과 음료수를 제공하게 되고, 환자 중 몰래 음주를 한 것이 간호원장에게 발각 된다. 병원장이 들이닥치고, 책임을 물어, 합창까지 무산되는 듯싶게 되니, 수련의는 의사 직을 그만두는 약속으로 합창단의 공연을 성사시켜달라고 간청한다.

 

대단원에서 합창단원의 클래식 곡과 친 대중적인 노래를 반반씩 섞어 부른 합창이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 속에 성공적인 마무리를 하고, 다정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변모한 수련의에게 환자 모두가 사랑과 신뢰를 보내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현균, 김재건, 최승일, 전국향, 송바울, 정출구, 김경숙, 이종승, 한철훈, 구도균, 문병주, 신지현, 백승창, 김종운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열연, 그리고 열창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프로듀서 이영진, 무대 소품디자인 김혜지, 소품팀 이희순, 무대제작 온스테이지 김원현, 조명디자인 박성희, 조명어시스트 유성욱, 조명팀 김애선 김명식 이소현 방재원, 의상디자인 홍정희, 의상어시스트 정현아, 음악 레인보우99 류승현, 노래지도 레이린 박혜린, 움직임 고재경, 안무 조주경, 그래픽디자인 박재현, 사진 박주혜, 기획 나희경, 조연출 최소현, 조연출보 홍혜란, 오퍼레이터 권용태 등 스텝 진의 노력과 열정이 제대로 드러나, 극단 은행나무의 강병헌 작, 문삼화 연출의 <뽕짝>을 친 대중적이자 흥미롭고 감동적인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6, 극단 아이터의 박재완 예술감독, 김영래 작·연출의 <연기학원 요양원>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에서 극단 아이터의 서울연극제 자유참가작 박재완 예술감독, 김영래 작·연출의 <연기학원 요양원>을 관람했다.

 

김영래는 한양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학과 출신의 배우 겸 작가이자 미남 연출가다.

<요리쿡! 과학cook!> <무지개 학교> <동민이는 내 친구> <똥이와 디룩디룩 대마왕> <밖에> <아이 만드는 남자> <연기학원 요양원> 등을 집필하고 연출했다.

 

요양병원이란 ‘장기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기 위한 병원’이다.(의료법 제3조 2항) 이런 요양병원에 입원하려면 치매나 관절염 등 노인성 질환 또는 만성 질환을 앓고 있거나 외과적 수술이나 상해 사고 이후 회복기를 필요로 하는 경우라야 한다.(의료법 시행규칙 제36조)

 

법령과 현실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장기입원이 필요한 환자’가 아닌데도 버젓이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현실이 대표적이다. 요양병원을 둘러싼 거의 모든 문제의 시작은 이런 노인의료 체계에서 비롯한다. 돌봄 서비스 중심의 요양원 등 ‘시설’을 이용하거나 집에서 생활해도 될 노인이 의료 서비스가 이뤄지는 ‘요양병원’을 찾더라도 이를 막을 법·제도적 장치가 없다. 전문적인 의료시설 및 인력이 부족한 일부 요양병원은 되레 입원 치료가 필요없는 ‘환자’를 반긴다. 건강보험이 입원 적절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입원비를 대신 내주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의료복지 분야 전문가들은 요양병원 부실화를 막으려면,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연계 방안 마련 등 요양병원이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환자가 자기 상태에 따라 각각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두 기관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되, 입원·입소의 적절성 평가 기준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까지 전국의 요양병원은 1,232개, 환자 수는 78만 9432명이고, 요양시설은 4,646개 수용인원은 15만 5,868명이다.

무대는 요양원의 여자노인 병실이다. 왼쪽 벽에 침대가 세 개, 오른쪽 벽에 침대가 두 개 마련되어 있고, 오른 쪽 벽 배경 가까이에 출입문이 있다. 정면 벽에도 여닫이문이 있어, 화장실로 사용이 되고, 망령들이나 상상속의 인물들이 출입을 한다. 보행보조기구, 무녀복장과 기구, 의료기구 등 대소도구가 사용되고, 감추어 둔 음료수 병도 극 중 사용된다.

 

다섯 명의 여성수용환자는 각기 내력이 독특하다. 연배가 가장 많은 노인은 아들이 일찍 죽어 의지할 데가 없어 입소를 했고, 평소 보행보조기를 사용하지만 그냥 조심스럽게 걷기도 한다. 또 한 사람은 한창 때 영화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노인, 하지만 막대한 유산 문제로 자식들은 어머니인 이 노인을 요양원에 강제로 맡기고 유산을 나누어 갖는다는 설정이 마치 여성 리어왕을 연상시킨다. 또 한 인물은 무속 인이다. 무당노릇을 할 때 쟁쟁한 명성을 날리고, 고객이 쇄도했지만, 현재는 요양원 신세를 지니, 실력을 드러낼 수가 업지만, 끝부분에 놀라운 신통력을 발휘한다. 또 한 사람은 미군부대 앞에서 주점을 경영하던 여인이다. 날씬하지 않은 몸집이지만 밉지도 않다. 미군과 살림을 차렸지만 미군이 사망하자 그를 평생 잊지 못하고 혼자 살다가 요양원에 들어온다. 마지막 노인은 모진 고생을 하며 남편과 자식을 위해 애썼지만 남편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려 떠나가 버렸고, 자식들도 아버지의 새 여자의 부유함에 이끌려 가버리니, 나이 들어 홀로 되자 요양원신세를 진다는 설정이다.

 

바로 이들이 수용된 요양원에 당국의 감사가 있게 되고, 의사와 간호사들도 이들보다 중환자를 수용시키기 위해 현재의 입소자들을 내보내려 하니, 다섯 명의 노인들은 요양원을 떠나지 않으려고 중환자 연기를 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다. 개개인의 장기가 하나하나 드러나고, 노래, 타악연주, 춤, 굿을 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그러는 가운데 본격적인 굿거리가 펼쳐지면서 각자의 과거가 한 장면 한 장면 노출된다. 그리고는 과거의 인물들이 젊은 모습으로 망령처럼 등장을 한다. 바로 이 때 요양원에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하고, 다섯 명의 여자노인들은 스며든 연기에 질식을 하고,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한 사람 한사람 죽어가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를 한다.

 

이용녀, 민경옥, 심지미, 김덕주, 조문경이 여자수용자로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더할 나위 없는 호연으로 연극을 이끌어 간다. 김우정, 강사랑, 함승아, 김채경, 김보람, 한 건, 노동욱, 김영래 등 출연자들의 호연은 관객의 갈채를 이끌어 낸다.

 

기획 최정후, 드라마투르크 이지언, 무대감독 차태홍, 조연출 한 건, 음악 박상철, 의상디자인 조현정, 조명디자인 김종석, 분장 김수연, 마케팅 김미연, 일러스트 전은혜, 무대 명성무대 박철우, 사진 윤준섭 등 스텝의 기량도 드러나, 극단 아이터의 박재완 예술감독, 김영래 작·연출의 <연기학원 요양원>을 기억에 남을 친 대중적이고 감동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7, 극단 제자백가의 안톤 체홉 작, 이항재 역, 장서현 각색, 홍현우 연출의 <체홉 여자를 읽다>

 

세실극장에서 극단 제자백가의 안톤 체홉 원작, 이항재 역, 장서현 각색, 홍현우 연출의 <체홉, 여자를 읽다>를 관람했다.

 

체홉의 희곡으로는 <숲의 정령> <이바노브> <갈매기> <세 자매> <바냐 아저씨> <벚꽃 동산> <곰> <청혼> <담배의 해독에 관하여> 등이 공연되었고, 단편소설은〈관리의 죽음〉(1883) <우수〉(1885)〈키스〉 <사랑에 대하여〉〈귀여운 여인〉(1898)〈약혼녀〉(1902)〈개를 데리고 있는 여인〉(1899)〈카멜레온〉(1884)〈초원〉(1888)〈6호 병실〉(1892) 〈사할린섬〉(1890)〈아리아드나〉〈결투〉(1892) 등이 소개되었다.

 

번역을 한 이항재 교수는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고려대학교 강사, 고리키 세계 문학 연구소 연구 교수, 한국 러시아 문학회 총무 이사 및 부회장을 지내고 현재 단국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투르게네프 : 사냥꾼의 눈, 시인의 마음』, 『소설의 정치학 : 투르게네프 소설 연구』 등의 저서와 『러시아 문학사』, 『러시아 문학 비평사』, 『첫사랑』, 『숄로호프 단편선』 등의 역서, 러시아 문학에 관한 많은 논문이 있다.

 

무대는 첫 장면에 긴 나무 벤치로 여행 가방을 든 여인들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장면이 바뀌면, 침대, 책상, 약장 등을 출연자들이 이동시키고, 긴 안락의자와 탁자, 긴 탁자와 의자 등 대도구는 물론, 램프, 낚시대, 술잔, 쟁반, 여행용 트렁크 같은 소품도 출연자들이 운반한다.

 

연극은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이 되고, 연극의 도입에 각 장면의 여주인공 세 사람이 긴 나무 벤치가 놓인 정거장 앞에 모여들어 차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장면이 바뀌면 깊은 밤, 천정이 무너져 내를 듯 코를 골아대는 남편 대신 약국 문을 여는 예쁜 아내와 두 병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병사 중 멋진 청년에게 마음과 몸을 살포시 열어 보이며 술까지 대접하는 여인의 모습이 100년 전의 러시아의 풍경 같지만은 않다.

 

장면이 바뀌면 낚시터에서 두 남자가 낚시질을 하는 모습이 여간 한가롭게 보이지가 않는다. 이곳에 귀엽게 생긴 여인이 감자를 삶아가지고 등장해 젊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한 청년 낚시꾼에게 다가가 감자 바구니를 펼쳐 놓는다. 정성스레 가져온 감자를 청년에게 내미는 모습에서 연인 사이인 것으로 생각하게 될 즈음, 가까운 철길로 기차가 지나가는 효과음과 함께 여인이 펼쳐든 양산으로 자신을 가리며, “남편이 탄 기차예요” 하는 소리에 “아!” 하는 탄성과 고개를 끄덕이는 관객의 모습에서, 양지바른 길에 피어오르는 봄날의 아지랑이 같은 여인의 마음을 읽어낼 수가 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부인을 여러 명 살해한 남성의 이야기다. 결혼도 여덟 번 이나 한 것으로 소개가 되고, 차례로 부인을 살해한 동기가 펼쳐진다. 별의별 살해이유로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남성이 여인 중 한 명과 부르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가사를 바꿔 열창을 하는 모습은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장면은 남편의 친구로부터 5년간 구애를 받은 여인의 이야기다. 상대남성은 훤칠한 매력남이기도 하지만, 5년의 세월동안 초지일관 자신의 사랑을 여인에게 표하고, 그래서인지 여인의 강하기가 금강석 같던 마음의 문이 어느 결엔가 다소곳이 상대에게 틈을 벌여주게 되면서, 드디어 열정적으로 상대에게 입술을 내어맡기는 장면은 관객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듯싶다. 여성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광경이 예사롭지가 않게 느껴지는 연극이다.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에서처럼 세 여인이 긴 나무벤치에 앉아 음식을 나눠 먹으며 차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연극은 마무리를 한다.

 

윤성원, 장재권, 임한창, 박정림, 고훈목, 이재영, 문현영, 노혜란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이 관객의 갈채를 이끌어 낸다.

 

조명 김종석, 조명보 김민재, 사진 장지융, 일러스트 디자인 김도경, 오퍼 이평환·차예지, 기획 밍기획 등 스텝의 노력과 기량이 드러나, 극단 제자백가의 안톤 체홉 작, 이항재 번역, 장서현 각색, 홍현우 연출의 <체홉, 여자를 읽다>를 기억에 남는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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