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에서 광화문까지/ 오유경

<청산리에서 광화문까지>

유쾌한 꼬집기, 우스꽝스런 정색

잔혹한 블랙유머

 

 

오유경(극단 그룹動·시대 연출 )

 

작/연출: 이우천

단체: 대학로극장

공연일시: 2018/02/01-02/11

공연장소: 미마지아트센터 눈빛극장

관극일시: 2018/02/01

 

 

아직 공연 중인 원로예술인지원사업선정작 극단대학로극장의 작품 <청산리에서 광화문까지>의 줄거리를 지금 여기에서 언급하면 스포일러(spoiler)가 되는 걸까? 그래도 줄거리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 작품이 품은 후끈거리는 분노와 낄낄거리는 경멸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만화 같은 우스꽝스런 상황 설정과 상황에 몰입하는 인물들의 진지한 신념의 무게, 그리고 주인공들의 진심을 기계적으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고 싶어 하는, 아니 이미 그 편이 되어 그들의 왜곡된 신념을 그들만큼이나 진실이라고 굳건히 믿고 지지하게 된 관객들의 쉬운 인식의 태도에 코푼 휴지를 흔들며 조롱하는 듯한 엔딩(ending)! 그게 이 작품의 핵심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용서하시길!

 

장면1  조폭 삽질파 사무실. 한 남자가 방문한다. 삽질파 두목은 그에게 경쟁조폭두목 쌍도끼의 청부 살해를 의뢰한다. 거래에는 조건이 붙는다. 청부살해 조직의 강령을 위배하는 거래는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남자 조직이 독립유공자 아버님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신념이자 자부심이라는 것. 강령은 첫째, 여자와 아이는 살해대상에서 제외한다. 둘째, 살해대상은 폭력, 강간, 살인 등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에 국한한다. 셋째, 사적인 질문은 거부한다. 넷째, 피부병과 같은 신체의 병이 있는 살해대상자는 거래하지 않는다. 다섯째, 친일파와는 거래하지 않는다. 삽질파와의 거래는 성립된다. 다만 시체는 청부조직이 갖는다는 조건으로.

 

장면2  청부 살해조직 사무실. 삼형제가 운영하는 이곳은 사실 죽은 시체로부터 근육이나 장기를 적출해 파는 장기매매 사무실이다. 실제 시체를 처리하는 작업장과 도구, 시체를 보관하는 냉장고가 있다는 끔직한 설정을 아주 유쾌하게 전달한다. 아버님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냉장고는 노후로 자주 고장이 난다. 그래도 바꾸지 않는다. 그것은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가업의 신념이자 상징이니까.

 

장면3  지하철. 막차 안에서 영업을 맡은 첫째가 삼형제 중 장기가 담긴 아이스박스 상자를 구매자에게 넘긴다. 브로커는 장기매매할 시체를 구하기 힘든 요즘 같은 불황에는 더 많은 거래를 위해 강령을 조금 느슨하게 수정하라고 권유하고 이 때문에 자신의 신념을 모욕한다고 첫째에게 무술로 혼이 난다.

 

장면4  청부살해조직 사무실. 삽질파와 거래한 살해 대상자의 시체를 가지고 온 둘째. 하지만 시체담은 가방을 열어보니 시체는 의뢰받은 살해대상자가 아닌 왠 속옷차림의 젊은 여자이다. 삼형제는 충격에 휩싸인다. 그들이 목숨처럼 지켜왔던 조직의 신념. 그 첫 번째 강령을 어겼기 때문이다. 조직의 수치이자 아버님의 명성에 먹칠을 하게 되어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기 전에 여자시체를 처리하여야 한다. 삼형제가 고심하는 와중에 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깨어난다. 여자가 공포에 소란을 피우자 가업을 위해 성적욕구도 참아왔던 삼형제는 그녀를 결박하고 여자의 존재마저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한다.

 

장면5  삽질파 사무실. 삽질파 두목은 죽어야할 쌍도끼가 살아있음에 분노하고 거래를 이행하지 않고 돈만 떼어먹은 그 청부살해조직을 혼내주려고 계획한다.

 

장면6  청부살해조직 사무실. 첫째가 외출한 사이 결박당해있던 여자는 자신의 성적 매력과 재치를 총 동원하여 죽음을 면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강령을 어긴 그 수치를 덮으려는 삼형제의 신념을 돌리기는 어렵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우연히 벽에 걸린 어느 남자의 얼굴포스터를 발견한다. 그 남자는 도박에 미쳐있던 삼형제 중 막내에게 사기도박을 하고 달아난 사람이다. 유명여배우인 그녀는 유명인들에게 성상납을 해왔고, 사실 살해대상자였던 조폭 쌍도끼는 그녀의 애인이며, 포스터의 남자는 그녀가 상대했던 국회의원이었다. 그녀는 그 두 남자들이 어디 있는 지 형제에게 알려주기로 하고 죽음을 면한다.

 

장면7  삽질파 사무실. 삽질파 두목은 청부살해조직과 장기거래를 했던 브로커를 잡아 위협하여 다음 거래장소와 시간을 알아낸다.

 

장면8  지하철. 삽질파는 거래를 하러 온 삼형제 중 첫째를 테러하려 시도하고, 첫째는 탁월한 무예솜씨로 위기를 모면한다.

 

장면9 청부살해조직 사무실. 지하철에서 놓친 삼형제를 습격한 삽질파. 하지만 삼형제는 강했다. 오히려 삽질파는 삼형제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장면10  청부살해조직 사무실. 삼형제는 오래간만에 삼결살 파티를 한다. 삽질파를 일망타진한 덕에 시체를 구하기 어려웠던 불황을 타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앞으로 조폭들을 살해대상으로 사업의 위기를 호황으로 전환시킬 수 있음에 자축한다.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일제강점기부터 광복이후까지 친일파를 색출하고 그들을 처단하며 그들의 시체로 이 장기매매사업을 일으킨 역사를 자랑스레 읊어댄다. 왜곡된 그들의 신념과 역사인식과 반복적으로 되풀이 된다.

 

장면11 술집. 혹은 모텔. 죽음을 모면한 여자는 누군가에게 가학적 폭력을 당한 듯 몸과 얼굴에 여기저기 멍과 상처를 입었다. 비틀거리는 여자.

 

장면12 청부살해조직 사무실. 여자가 사무실에 찾아온다. 여자는 삼형제에게 쌍도끼의 청부살해를 의뢰한다. 또한 국회의원이 어디있는지도 알려 줄 테니 자신도 이 조직의 일원으로 삼아달라고 요청한다. 그 요청은 잠깐의 고민 후에 즐겁게 받아들여진다.

 

마지막 장면 역시 사무실. 시간이 꽤 흐른 듯. 라디오에서는 해외사기도박원정을 다녔던 국회의원이 검거되었다는 뉴스가 흐른다. 사무실은 활기차다. 여자는 형제 중 둘째의 아내가 되었다. 임신으로 배가 꽤 불렀다. 그녀는 시아버지의 물건들을 다시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삼형제는 독립유공자인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현충원으로 외출하고, 여자는 시아버지의 유품 중 한 상자를 발견해 나온다. 상자에서 나온 독립유공자 시아버지의 유품은 다름 아닌 일본경찰복과 일장기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걸쳐 입은 시아버지의 사진 한 장이다. 친일파를 처단하던 독립유공자 아버지는 다름 아닌 독립운동가를 잡아들여 처단하던 친일파 밀정이었던 것이다.

 

작품 <청산리에서 광화문까지>의 작가이자 연출자인 이우천은 프로그램에 작품의도를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당했을 때 ‘그래도 잡혀가는 모습을 보니 안됐더라..’하시던 어머님의 말씀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그리고 자신의 분노는 국정을 농단했던 박근혜 때문이 아닌 이를 대하는 무지한 국민, 여전히 시민을 농간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부패한 세력을 향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부패한 세력들의 왜곡된 신념과 이념공세에 당신의 어머님처럼 많은 민초들이 이용당해왔고, 어쩌면 여전히 또 다시 이용당할 거라는 끔찍한 역사인식이 분노의 배경이라고.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서 지금까지 숨 가쁜 역사의 변환을 겪어 왔다. 크게 보면 외세와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 그 어려운 역사의 소용돌이를 그래도 잘 극복하고 넘어왔다고 스스로 대견해하며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지만, 역사의 급물살 속에 ‘생존’이라는 당면욕구에만 급급하다 휩쓸려 잊어버린, 미처 챙기고 돌아보지 못한, 혹은 무시하고 버려버린 ‘사실’, ‘진실’, ‘정의’, ‘희생’, ‘진심어린 후회와 치유’, ‘진지한 사과’ 그리고 ‘용서’를 이제야 끔찍한 결과로 마주하는 현실을 맞게 된 것이다. 크고 큰 변화의 순간 속에 우리는 그 변화를 이끄는 중심에서 그 변화를 정확히 인식하고 정리하고 다음의 변화를 준비할 여유 없이,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역사를 이끄는 주인이 되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역사의 진실의 진위여부 또한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그 진위자체가 뒤죽박죽 얽혀 애초에 진실 자체가 무엇인지 조차 실종된 혼란된 역사인식에 휘청거리고 있었단 거다. 어느 유명 정신과의사는 한국인 모두가 혼란된 역사 속에서 치유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그저 진행되는 집단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한 기억이 난다.    

 

작품 속 가장 인상적인 한 장면은 아버님과 가업의 역사를 삼형제가 자랑스레 반복적으로 읊어댈 때이다. ‘조국을 위해 친일파를 처단했고 반민특위를 통해 친일파를 색출했지만 그들이  월북을 하고… ’ 곧 친일파들이 월북했으니 지금의 북은 친일파들의 소굴이며 곧 ‘친일파=북한’이라는 왜곡된 논리가 성립이 되는 속에서, 그들의 아버지는 어느새 친일파에서 친일파를 색출한 독립유공자로 바뀌고, 그 왜곡된 진실은 처음부터 진실인 것처럼 거짓은 그들의 신념이 되었다. 이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들 의식 속에서 한 점의 의혹도 없이 계속 반복 재생되고, 그들은 그 왜곡된 인식에 갇혀 폐쇄적인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한다. 신념의 진위여부와는 상관없이 믿음의 행위만이 진실이 되는 애국. 목숨처럼 여기는 강령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사회정의’ 곧 ‘애국’을 실천한다고 믿는 그들의 신념은 사람의 목숨을 고작 200만원에 거래하며, 시체를 물질처럼 다루고, 여자를 보호한다는 강령이 실수로 어긋났을 때 비록 여자이지만 조직을 위해서는 여자조차 처단해야 한다고 바로 돌변하며 그들의 폭력행위를 합리화하는, 곧 사람의 목숨보다 조직의 권위와 체면을 더 중요하게 우위에 두는 자신들의 모순된 인식을 삼형제는 깨닫지 못한다.

 

작품은 짧은 장면들을 빠르게 교차 진행하며 코믹한 상황과 인물설정과 함께 유쾌함을 더한다. 보는 관객을 무장 해제시키는 만화 같은 친근한 유쾌함은 노련한 원로배우 선생님들의 넉살과 위트 있는 연기로 즐거움이 배(培)가 된다. 무게 중심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 무대디자인의 설정도 작품의 주제와 인식을 함께 한다. 하지만 폭력에 쓰인 도구들(시체 작업을 할 때 쓰이는 도구들). 칼, 도끼 톱, 끌, 망치, 낫 같은 것들이 서로 부딪칠 때 모두 차갑고 무거운 끔찍한 쇳소리를 내는 것이 매우 현실적이어서, 만화 같은 비현실적이고 가벼운 유쾌한 작품설정과는 대조되며 작품 속에 숨겨진 끔찍한 폭력을 잊지 않고 인식하게 해준다.

 

공연 초연 첫날 항상 존재하는 어려움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인물 역할의 관습적인 쓰임새가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일 것이다. 또한 ‘작가의 의도대로 이 작품의 공격대상이 관객 자체, 우리 모두의 역사인식에 있음을 대다수의 관객 스스로는 의식했을 것인가’ 자문해 봤을 때, 자신 없게 고개가 가로로 저어지는 것은 왜 일까? 우리 관객들은 아직 작품의 유쾌함에 쉽게 속아버린다. 그리고 그 유쾌함 속에 진정한 비수가 숨어있음을 차마 유추해내지 못하고, 잘못된 영혼을 지닌 인물들의 신념을 함께 믿고 따르며 마음을 주어버리는 어리석은 수동적 관극태도가 존재한다. 마치 우리 무지한 민초들의 역사인식 태도가 그랬던 것처럼.

              

아! 하지만 작품 <청산리에서 광화문까지>를 관람한 관객들은 작품의 유쾌함에 속아 즐거움만 안고 극장 문을 나서면 안 된다. 적어도 이 마지막 질문들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역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우린 지금 바르게 역사를 직시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삼형제의 작업(?) 대상이 되어 언제 죽은 시체가 되어 해부대에 누워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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