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름다웠던 날들에 관하여/ 양근애

101분, 기억의 순간들

– <우리의 아름다웠던 날들에 관하여>

 

양근애(연극평론가)

 

작 : 공동창작

구성・연출 : 백석현

움직임 연출 : 홍예원

단체 : 극단 창세

공연일시 : 2018/04/10~12

공연장소 :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별무리 극장

관극일시 : 2018/04/10 pm. 7:30

 

 

지난 4월 안산에서는 제2회 ‘4월 연극제’가 열렸다. 안산지역 일대에서는 4.16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정부 합동 영결식을 열고 ‘기억하고 희망하는 봄’이라는 큰 제목 하에 공공미술, 영화, 연극, 음악, 자유발언, 플래시몹, 전시, 체험 행사 등이 이루어졌다. ‘4월 연극제’는 사단법인 안산민예총과 416안산시민연대가 공동으로 주관한 행사로,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별무리극장에서 4월 3일부터 22일까지 총 여섯 편의 공연이 올라갔다. 그 중에는 작년 혜화동1번지 기획초청공연에 올랐던 <우리의 아름다웠던 날들에 관하여>도 있었다. 작년에 혜화동1번지 소극장에서 이 공연을 보았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낯설었고 가닿기 어려웠고 제대로 와 닿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생각을 가다듬고 싶었다. 안산은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4월 저녁의 공기는 아직 차가웠고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벌써 4번째 맞는 4월 16일이 오고 있었다. 벌써, 라고 쓰고 멈칫거리게 된다.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는 의미로 쓴 것은 아니다. 어떤 시간은 가지 않고 기어이 거기 머물러 그때 그 시간을 다시 살게 한다. 그날 이후, 벌써 네 번째 봄이 돌아오는 동안에도 규명되지 않은 진실들이 거기에 있고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도 여전히 남아 있다. 세월호가 인양되었고 처음으로 정부 합동 영결식을 열었고 이제 안산정부합동분향소도 정리 되었지만 세월호라는 이름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아마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기억이라는 말의 의미를 두텁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기억은 지난 일을 떠올리는 의식의 활동이 아니라 행동이고 의지이며 체험이 되었다.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무뎌지지 않기 위해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행하는 일이 되었다. 이제 그만 하자는 목소리가 들려도, 다른 사회적 이슈들에 가려지더라도, 세월호 사건은 삼풍백화점 붕괴와 대구 지하철 참사와, 5.18 광주와… 그로 인해 남겨진 상흔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겨진 자들을 통해서 그 죽음이 삶이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우리의 아름다웠던 날들에 관하여>는 그렇게 세월호를 기억하는 공연이다.

 

<우리의 아름다웠던 날들에 관하여>는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지 않는, 배우와 관객의 공동현존을 바탕으로 한 공연이다. 관객은 방석이나 의자를 들고 본인이 원하는 자리에 앉아 공연에 참여할 수 있다.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면서 공연을 진행시킨다. 그들은 놀이와 노동과 식사, 휴식, 간호, 여행 등을 수행하며 시공간을 채워나간다. 흰 옷을 입은 배우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면서 함께 놀았던 해맑은 아이들, 용돈을 탈탈 털어 피카츄 돈가스를 사먹고 휴일에 가족들과 먹는 탕수육 중자에 행복해하는 아이들, 보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고맙다는 말을 주고받는 아이들, 쓰러진 친구를 간호하고 곁에 누워 잠드는 아이들로 장면을 만들어 간다. 무대 정면에는 101이라는 숫자가 역순으로 흘러가고 있다. 9명의 배우들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 너무 소박해서 더욱 확실하고 아름다웠던 순간들에 대한 기억을 무대 위에 부려놓는다. 우리가 떠나보낸 아이들은 이런 기억을 가진 아이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주어지는 돌연한 암전. 주위가 침묵에 휩싸이고 캄캄한 어둠 속에 놓인다. 세월호 사건이 주었던 충격이 감지되는 순간이다. 세계가 갑자기 정지하고 방금까지 보았던 일들이 환영처럼 기억 속으로 숨어든다. 우리는 그 순간을 함께 목격했다. 그날 극장에 들었던 배우와 관객들이 그 순간에 함께 존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01분이 흘러가는 동안 우리가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는 행위를 통해서 그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공연은 기억을 넘어 엄마가 딸을, 아이가 부모를, 언니를, 동생을, 친구를 닮아가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공연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별이 된 아이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속에 닮은 모습으로 깃들어 있고, 함께 기억하는 순간 나와 너의 존재가 우리가 된다고. 남겨진 자들에게 더없는 위로가 되는 말이자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해야 되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사건 이후, 유가족들은 사소한 일상의 행위들에서도 죄책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무심결에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TV를 보면서 웃다가도 죽은 아이가 생각나 노래와 웃음을 거두었다는 이야기. 이 공연을 보면서 2015년에 나왔던 ‘생일시’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엄마,

제훈이가 생각날 땐

라디오 볼륨을 마구마구 키워주세요

엄마가 음악을 들어야 나도 들을 수가 있거든요

벚꽃이 피면 벚꽃 가지도 꺾어다주세요

엄마가 벚꽃 향기를 맡아야 나도 맡을 수가 있거든요

 

그리운 목소리로 제훈이가 말하고, 시인 김민정이 받아 적다, 「나는 우리 가족의 119, 부르면 언제든 달려옵니다!」 중에서 (곽수인 외, <<엄마. 나야>>, 2015, 84쪽.)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은 참사를 곱씹고 분노를 되새김질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스며든 사건 이후의 변화들을 감지하고 떠올리면서 함께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분노보다 연대의 힘이 더 크고 지속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 5.18 유가족과 삼풍백화점 사고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의 글도 떠올랐다. 멀리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들, 공감과 연민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그려보는 우리들. 그 의미가 전달이 된 것일까. 실제로 관극하던 날 무대를 한 바퀴 돌며 참여한 모든 관객의 손을 마주 잡고 “반갑습니다”라는 인사를 건네던 분이 계셨다. 얼결에 잡았던 그 손은, 지하철에서 마주친 노란 리본과 길을 가다 만난 노란 팔찌처럼 맑게 빛났다.

관극 당일에는 부모와 함께 공연을 보러 온 초등학생 관객 두 명이 처음부터 무대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70분이 지나고 침묵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두 명의 아이들은 축제 장면에서 무대에 던져진 볼풀 공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주어졌을 엄숙한 침묵의 시간을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깨뜨린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농담처럼, 큰 슬픔 속에서 문득 터져 나오는 그런 무구한 웃음소리가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작년 공연에서 느꼈던 낯섦의 정체 역시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둡고 좁고 컴컴한 대학로 소극장에는 그런 웃음소리가 깃들 여백이 부족했고 관객들에게 ‘우리’가 될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올해 공연은 작년 공연보다 더 깊어졌고 무대는 더 자유로웠으며 기억상자는 벽이 아니라 담으로, 기꺼이 기억을 담아내는 풍경이 되어 주었다. 여러 사람들의 기억으로 구성된 한 존재의 목소리가 극장을 가득 채우는 것도 뭉클했다. 빛 속으로 배우들이 걸어 나갈 때, 정말로 별이 된 아이들이 우리들 속에 살아 있다고 믿고 싶어졌다.

 

봄은 누구나 알고 맞이하는 기적이라고 한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신의 손이 내려와 침몰하는 배를 건져내는 상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건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기적은 뒤늦게, 그러나 반드시 기억 속에 우리가 잘 아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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