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프랑케슈타인/ 이연심

“피조물은 잘못 없다.” 

<프로젝트 프랑켄슈타인>

 

이연심(경기여자고등학교 교사)

 

 

작/연출 : 양지모

    체: 극단 행

공연일시: 2018.04.19. ~ 2018.04.29.

공연장소: 소극장 혜화당

관극일시: 2018.4.29.

 

 

사람이 영생할 수 있을까? 고대 이집트인들은 영생을 위해 미라를 만들었고, 중국 진시황은 불로초를 얻기 위해 온 세상을 찾아 헤맸고, 과학의 지속적인 발달은 1997년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켰다. 인간 복제 기술 및 인공 수정, 장기 이식, 유전자 검사 등의 첨단 기술은 기술적으로는 인간도 복제할 수 있다고 한다. 내세(來世)와 윤회(輪廻)로 인간의 영생에 대한 욕망을 위로하던 종교는 이제 과학이 그 자리를 대신할 판이다. 인간 게놈(Human Genome) 지도처럼 수천억 개의 뇌세포들이 기능적으로 어떻게 연결된 것인지 밝히는 ‘뇌지도’ 작성 연구는 육신(肉身)의 복제 수준을 넘어서 인간의 의식마저도 슈퍼컴퓨터를 이용하여 다운로드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한다. 1995년 개봉된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가 바로 실례이다. 이쯤 되면 마슬로우(Abraham H. Maslow)의 욕구위계이론에 ‘영생의 욕구’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광속으로 발전해가는 과학은 창조주의 창조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고 죽음으로부터 부활을 꿈꾸고 인간의 의식마저 이식(利殖)하고자 한다. 그렇게 되살아난 인간(피조물)과 그렇게 타인의 의식을 이식받은 인간(피조물)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역사와 경험, 의식이 없이 되살아난 인간과 타인의 의식을 이식받게 된 인간은 과연 누구일까? 연극 <프로젝트 프랑켄슈타인>(작/연출 양지모)은 그 엄청난 과학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옳지 않은가, 그렇게 금기에 도전하여 만들어진 인간(피조물)은 과연 누구인가,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만들어낸 ‘괴물’, 프랑켄슈타인은 창조주가 된 우리 인간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그 순간 섬뜩했다. 

동료교사가 탄식이 섞인 소리로 이야기했다. 

“요즈음 애들은 공부는 잘하는데 조금 얘기해 보면 바보예요”

장래 희망, 진로, 진학, 심지어 좋아하는 취미를 물어봐도 언제나 대답은 똑같단다. 

“몰라요. 엄마한테 물어 보세요”

부모로부터 ‘인간’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면서 비로소 ‘나‘로 다시 한 번 태어난다. 부모의 가치관, 희망, 선호도까지 이식받은 아이들은 아직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 죽음에서 태어난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의 추억을 이식하는 것처럼 명확한 객체인 아이들에게 부모의 가치관을 그대로 이식하는 일들은 왕왕 일어난다. 부활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프랑켄슈타인이 주호의 일기를 외우는 장면을 보면서 스스로 그 무엇도 선택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필자의 부적절한 연상이었을까? 어느 날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아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어쩌면 그 고통의 무게에 그 아이들 역시 그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연출은 90년대 IMF이후 사회적 병폐가 만들어낸 굵직한 사건들을 이야기 속에 삽입하여 비뚤어진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만들어낸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에 투영하며 거대담론을 이끌어 내려 한껏 욕심을 냈다. 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각 인물들의 서사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려 애썼다. 그러나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 질문이 갖는 묵직함에 성수대교 붕괴, 삼풍 백화점 붕괴와 같은 끔찍한 사회적 병폐들은 오히려 가벼운 에피소드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 든다. 

 

기본 컬러만을 이용하여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조명은 깔끔했고 이와 더불어 배우들의 자세, 호흡의 변화가 시공을 넘나드는 연극적 효과를 극대화하였으며 음향효과는 인간의 집착과 욕망, 조바심을 표현하기에 일조하였다. 근육의 강직으로 죽음에서 갓 부활한 프랑켄슈타인-현중(백효성 분)을 표현한 배우는 사건의 흐름에 따라 몸의 강직 뿐 아니라 목소리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노력을 하였고 주호(이홍재 분)와의 연기 호흡은 연극을 향한 그들의 진중한 열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시종 같은 톤과 과도한 호흡의 화술을 보인 문 박사(이종승 분)와 극 후반에 약물중독자와 같은 시선과 움직임, 자세를 보인 주호의 연기는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균형감과 통일성도 아쉽다. 인간의 욕망과 집착 등을 동시대의 관객이 쉽게 느끼고 공감하도록 노력하여 고등학생 과학도를 당대 최고의 실력자인 문 박사의 연구파트너로 설정하기엔 고등학생 주호의 천재성이나 당위성이 부족하여 인물이나 이야기의 구성 면에서 균형감이 없으며, 주호의 방과 문 박사의 연구실로 나눠진 무대 양쪽의 대소도구, 무대 뒤편의 플랫은 사실성의 정도에서 표현의 통일성이 없다. 이러한 무대는 당연히 배우들의 연기 양식에도 영향을 주어 관객의 극적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옥의 티처럼 남아 있는 문제들은 있으나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과학의 발달로 인본주의가 퇴색하고 더 이상 신의 가치나 인간 중심 이데올로기의 의미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수작을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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