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를 하다/ 최승연

<번지점프를 하다>가 지속되는 이유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조교수, 뮤지컬평론가)

 

작: 이문원

작사: 박천휴  

작곡: 윌 애런슨 

연출: 김민정

음악감독: 주소연

공동주최: (재)세종문화회관, 달컴퍼니

제작: 달컴퍼니

공연일시: 2018/06/12-2018/08/26

공연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관극일시: 2018/06/13 6pm

 

 

최근 뮤지컬 시장에서 한 가지 특징적인 현상이 발견된다. 사라진 제작사가 보유하고 있던 작품들이 새 제작사에 의해 부활하고 있는 것. 물론 이 현상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인프라에 기대어 안정적인 제작을 이어가야 하는, 별로 좋지 않은 뮤지컬시장의 현재 상황을 징후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를 통해 자체적인 자정작용이 가능하다면, 반가운 현상이다. 무엇보다도 재탄생 과정을 통해 작품 자체의 생명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제작사뿐만이 아니라 지금/여기 시장의 상황에서 유의미하다. 여전히 소통이 가능한 뮤지컬의 정서와 드라마는 무엇인지, 그중 유통기한이 지난 것은 무엇이고 왜 그러한지를 경험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 편의 공연이 탄생하기까지 필요했던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재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일반론적인 관점에서도, 오랫동안 공연될 수 있는 작품들이 외적인 상황에 의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리고 특정 작품이 지속되기를 원하는 팬들의 요청이 충족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엠뮤지컬아트와 뮤지컬해븐의 작품들이 각각 킹앤아이컴퍼니&메이커스프로덕션과 달컴퍼니에 의해 과거와 거의 비슷한 모양새를 취하며 재등장하는 현상은, 따라서 주목을 요한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이후 <번점>)는 ‘뮤지컬해븐’의 제작으로 2012년 초연, 2013년 재연까지 마친 후 5년간의 공백 상태를 깨고 2018년 ‘2018-19 세종시즌’ 레퍼토리로 부활했다. <번점>은 2008년 10월 뉴욕에서의 첫 워크샵 이후 2009년 전국문예회관연합회 창작팩토리사업 창작뮤지컬 부문 시범공연작, 2010년 DIMF 창작지원작, 2013년 한국뮤지컬협회 창작뮤지컬 육성지원사업에 연달아 선정되며 ‘긴 숙성과정과 높은 수준의 작품성’이라는 브랜딩에 성공한 바 있다. 이를 증명하듯, 그동안 <번점>은 항상 ‘다시 보고 싶은 뮤지컬’ 1위에 선정되며 지속적인 생명력을 자랑했다. 이번 <번점>에도 팬들의 높은 기대감은 여전했는데, 시간의 공백과 제작사의 교체라는 상황 변화 안에서 ‘공연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자기 증명을 해내야 했다. 

 

 

하필이면 현빈, 혹은 현빈이어야 했던

 

<번점>이 문제적인 이유는, 태희가 현빈으로 환생했다는 점에서 언제나 만들어진다. 원작 영화가 개봉되던 당시 ‘건장한 고등학생 현빈으로 환생한 태희와 인우가 다시 만나 사랑한다’는 후반부 이야기가 철저한 비밀에 붙여질 정도로, 제작주체 스스로 문제적인 지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영화 마케팅에 컬트, 퓨전과 같이 ‘비틀기’, ‘B급 정서’, ‘광기’ 등을 함의하는 세부 장르명이 첨가되고, 김대승 감독이 “1000명이 보면 1000명이 모두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언급을 할 만큼 수위가 셌기 때문이리라. 영화 제작진들의 예상대로 개봉 후 반응은 천차만별로 갈라졌는데, 흥미로운 것은 여성관객들이 정서적인 동의를 보여주었다는 점이었다. <번점>의 뮤지컬화는 이를 기반에 두고, 작품에 내재한 그 문제적인 지점을 주목한 결과물이었다. <번점> 이전 뮤지컬해븐에서 제작했던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My Scary Girl> 역시 원작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에 등장하는 문제적 인물인 ‘살인자-(여성)애인’에 초점을 두었는데, 이처럼 뮤지컬해븐은 일반적인 멜로드라마 문법에서 살짝 비켜나 새로운 장르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작품을 선호했다. 따라서 조금 거칠게 말하면, <번점>은 문제적 지점에서 시작되어 그 문제적 지점을 대중적인 소통이 가능하도록 무대화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뮤지컬 <번점>의 ‘극적인 설득력’은 작품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인우는 현빈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현빈으로 환생한 태희를 사랑한 것이다’라는 2막의 핵심이 억지스럽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현빈이었을까? 태희가 굳이 남자로 환생해서 안타깝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빈이 멀끔하고 어린 고등학생이라는 점을 질문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만약 현빈이 추레한 외모의 할아버지였다면(물론, 17년 전에 죽은 태희가 17살 현빈으로 환생했다는 논리가 작품 속에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개연성을 높이기 위한 극적 논리일 뿐이다)? 그 경우에도 인우가 현빈을 통해 태희를 인식할 수 있었을까? 백번 양보해서 그것이 가능했더라도, 관객을 설득할 수 있었을까?(아마 컬트를 넘어서 막장이라며 외면당했을 것이다) <번점>이 결국 동성애 프레임을 벗어나기 힘든 것은 바로 이 점에 있다. 뮤지컬은 특히 더 그렇다. 통상적으로 현빈 역에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거나 체구가 작은 배우들이 캐스팅되는 것은, 1막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인 드라마와 정서의 힘 외에 동성애적 케미에 의해서도 ‘극적 설득력’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남-남 배우들의 이미지가 조율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2018년 버전의 현빈인 최우혁, 이휘종 역시 이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특히 최우혁은 특유의 곱상한 얼굴 때문에 인우의 구애가 그다지 어색해보이지 않을 정도다. 관객에게 ‘그들의’ 사랑이 태희를 매개하지 않더라도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뮤지컬은 이렇듯 뮤지컬스러운 낯익음을 추가한다. 여현수라는 배우를 캐스팅하여 의도적으로 현빈을 남성적인 이미지로 가져간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문제적인 지점을 뮤지컬 시장의 취향에 맞추어 전유한 것이다. 

 

 

담백하고 코믹하고 정겹게 

 

물론 <번점>은 인우와 현빈의 관계를 최대한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1막에서 큰 에너지를 쏟는다. 이번 버전에서는 특히 작품을 담백하게 정리함으로써 설득력의 수위를 높이려 했다. 인우와 태희는 ‘첫 사랑의 풋풋한 설렘’이라는 틀 안에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갔으며, 인우의 친구 대근과 기석은 그들의 대학시절을 1980년대적 정서로 코믹하게 표현했다(작품 속 과거는 모두 1983년이라는 시간에 맞춰져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인우와 친구들이 나누는 대사 중 성과 관련된 농담이 대부분 삭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령, 몇 번 반복되던 ‘영계와 논다’는 대사가 대표적이다. 더불어 국어 선생이 된 현재의 인우 반 아이들도 이전 버전들에 비해 상당부분 순화된 모양새다. 넘버 ‘그런가봐’ 직전 현빈이 혜주에게 주는 선물이 커다란 여성용 브래지어에서 뱀 모형 장난감으로 바뀐 장면을 포함, 기존 버전에서 보여주었던 고등학생들의 일탈과 반항의 에너지를 전반적으로 낮추었다. 이러한 수정 작업은 인물들을 더 순진하고 착하게 만들며 인우와 태희/현빈의 사랑이 그 자체로 아름답게 묘사되는 데 기여했다. 물론, 이 변화는 공연계를 강타한 ‘미투 운동’을 바로 떠올리게 만든다. <번점>은 대학시절 남녀의 첫 사랑이 선생과 학생의 동성애로 모양새가 변하고, 게다가 남녀합반 고등학생들의 일상과 다소 객기를 부리는 남자 대학생들을 다루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예민할 수 있는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수정 작업을 통해 작품은 주인공들의 사랑에 더 집중하고 담백함의 수위를 높였다. 긍정적인 변화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2018년 버전에서 보여준 ‘담백하고 코믹하고 정겨운’ 정서의 수위는 미래에도 유지될 수 있을까? 가령, 가장 큰 변화를 보인 1막의 술집장면, 그러니까 인우가 군대 가기 전 대근과 기석을 만나는 장면은 2018년 <번점>의 부담감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려준다. 기존 버전에서 이 장면은 인우에게 태희와 하룻밤을 보낼 것을 종용하는 대근과 기석의 직접적이고 거친 대사와, 인우에게 ‘어떻게’ 하면 될지 설명하는 넘버 ‘어떻게 알아’(리프라이즈)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태희랑 잤냐고”, “오늘 밤에 도장 콱 찍어놓고” 혹은 “이러면 좆 돼” 등의 대사 톤으로 채워져 있었으며, 그 이면에서는 그들 역시 아무 것도 모르지만 객기를 부리고 있음이 표현되었다. 이번 공연은 “너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야 해” 정도의 대사로 그들의 거친 이야기를 함축시켰고, 넘버를 삭제했으며, 인우는 곧바로 태희를 만나러가야 한다는 급한 사정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기 힘든 것으로 설정됐다. 그리고 대근과 기석이 중요한 이야기를 꺼낼라치면 술에 취한 군인들이 반복적으로 크게 군가를 불러 그들의 이야기를 ‘막음으로써’ 상황이 코믹하게 흘러가도록 방향을 바꾸었다. 객기를 무기로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가능한 비판을 막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전 버전에서 크게 수정되었지만 장면의 목표와 질감은 많이 바뀌지 않았으며 이에 대하여 객석은 박수와 폭소로 응답했다. 

 

이제 다음의 질문들이 따라 나온다. 이 결과를 여성 연출의 감각으로만 돌려야할까(<번점>은 이번 공연에서 처음으로 여성에 의해 연출되었다)? 미투 운동의 파급이 없었다면 <번점>은 계속 객기와 폭력의 경계를 흐리고 있었을까? 사회의 변화에 따라 더욱 다양하게 예각화될 성담론은 앞으로 이 작품을 어떻게 규정짓고 어떻게 변화시키게 될까? 

 

공연의 미덕과 생명력의 상관관계

 

이번 공연에서도 뮤지컬 <번점>의 미덕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윌 애런슨의 음악은 <번점>의 테마와 이미지를 정확하게 구현하며, 작품이 목표하는 바를 변함없이 잘 전달했다. 작품을 아련하게 감싸며 두 사람의 영원한 인연을 조용히 관조하는 첫 넘버, ‘Waltz #01’에서부터 고등학생들의 발랄함과 일촉즉발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그런가봐’, 그리고 태희와의 기억을 서정적으로 펼쳐놓는 ‘마운틴 송Mountain Song’ 등은 <번점>이 정서적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멜로디를 서정적으로 풀어놓는 윌 애런슨 특유의 화성은 <번점>과 같이 인물의 사연에 공감하여 극 안으로 몰입해야 하는 관극 스타일과 잘 부합하며(이는 <번점> 이후 윌 애론슨이 음악을 썼던 <어쩌면 해피엔딩>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작품의 생명력 지수를 높였다. 또한 음악 외에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백시원의 무대조명이었는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플롯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 조명으로 최적화 시켰으며 특히 현빈이 전생을 각성하는 드라마틱한 순간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뮤지컬 <번점>에는 이처럼 공연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확실한 미덕이 존재한다. 그리고 정확히 그만큼 부활의 정당성이 필요한 지점들 역시 존재한다. 앞으로 <번점>을 보수적인 동성애적 관점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 해석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면(결국 인우와 (예쁜) 현빈은 죽었고, 또 다른 모습으로 어디에선가 살아갈 것이다), 작품은 또 다시 수정보완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하나의 버전으로 영원히 박제된 영화와 달리, 뮤지컬 <번점>은 동시대의 사회와 문화에 민감한 유기체로서 지금 우리 옆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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