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ve] 예술이 죽었다/ 김창화

일상으로 되돌아온 예술의 본성 : <예술이 죽었다>

 

김창화 (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 상임부회장)

 

영화를 하던 사람이 연극계로 뛰어들었다. 배우 김선영의 남편이자, <예술이 죽었다>라는 희곡을 쓰고 연출한, 이승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연극하는 사람들은, ‘무대’를 성역처럼, 혹은 자신만의 보금자리처럼, 폐쇄적인 곳으로 생각하면서, 끼리끼리 모여 사는 곳으로만 여기는 경향들이 있었는데, 이제 연극계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처럼 그렇게 배타적이지 않은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극단 ‘나베’라는 이름은 2014년 9월에 ‘나누고 베푸는 극단’의 줄임말로 생겨났다고 한다. 대학로 연극 공연에서 가장 안정된 연기를 하면서도, 그렇게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연극인들과 꾸준하게 작업해 온, 배우 김용준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속물’ 혹은 ‘경제적 사고에 물든’ 현대인의 모습으로 출연하는, <예술이 죽었다>라는 작품은, 지난 8월 14일부터 19일까지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되었다.

 

배우 장선이 글을 쓰는 20대 후반의 작가로 등장하는, 그래서 예술 활동은 못하고, 굶주림과 주위의 간섭, 폭행, 협박에 못 이겨, 이불속에서 죽은 듯 누워있으면서 끝나는, 이 연극에서, 장선은 예술 그 자체처럼 여겨지고, 장선이 굶주림으로, 사실은 급성 복막염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보여주면서, ‘예술이 죽었다’는 제목에 걸 맞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메시지나 형식, 구조, 혹은 ‘미학’을 내포하지 않은 <예술이 죽었다> 공연은 ‘예술’과 ‘일상’의 절묘한 대립과 부조화를 보여주면서, 자본이 자본을 형성해가는 자본주의의 못된 논리와 그 정직하지 못한 이념에 함몰되어, 인간과 인격, 삶의 소중한 여백을 짓밟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이 시대의 풍속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의 무대 공간은 거대한 자본주의자의 책상과 그 옆을 간신히 비켜서 지나가야하는 출입구의 설정, 그리고 이불 하나 달랑 깔려있고, 빈 냉장고만 있는 장선의 지극히 협소한 방이 대조를 이루면서, 동일한 공간에서, 크기와 기능이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공간을, 자본과 비자본의 대립으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 노력해야 먹을 것이 생긴다는 논리만을 내세우는 김용준과 말없이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여 있는, 그의 아내 김선미 역시 매우 큰 차이를 보여준다. 끝없이 질문하고, 잔소리하는 남편의 위협적인 말투에 김선미는 들은 척도 안하고, 밥만 먹는다. 집세를 못내는 장선을 대하는 태도도 남편처럼 직설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우회하면서, 매우 곤란해 하면서, 그러나 사실은 남편과 다를 바 없는 김선미가 며칠 동안 굶주린 장선에게 건네준 오이절임. 그리고 그 절임을 미친 듯이 먹어대는 장선의 모습을 통해, 눈물 젖은 오이절임을 먹어본 작가 장선의 비참함과 예술에 대한 자본의 위협을 짐작하게 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렇게 예술과 자본의 대립, 일상과 예술의 구분 외에도, 데이트 폭력과 강간에 준하는 성폭력이 등장한다. 장선과 잘 아는 김애진은 장선에게 예술대신 자본을 택할 수 있도록 잡지사의 일감을 몰아주고, 한 때 장선과 연인 사이였던, 남수현은 술에 취해 장선을 찾아와서는 아직도 장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왜 김애진이 제시한 잡지사의 일을 하느냐, 너는 예술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며, 장선을 정신적으로 괴롭힌다. 그리고 다음날 술에서 깨어나서는, 장선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돈을 훔치지 않았는지, 의심한다. 한편 이 곳에 장선과 함께 세 들어 살고 있으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건설시공업자 김성민은 배고픈 장선에게 사과와 치킨으로 인심을 쓰는 척 하면서, 장선의 방에서 그녀를 강간 하고자 한다. 세 명의 남자와 세 명의 여자가 출연하는 이번 공연에서 작가이자 연출자인 이승원은 등장인물 모두가 실제 배우의 이름을 쓰도록 했다. 그래서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속에서 우리는 자본의 논리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폭행하고, 위협하면서 살아가는지, 그리고 일상에 갇힌 우리들의 시선과 입장에서 ‘예술’이 얼마나 낯설고 위험한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일상으로 되돌아온 예술을, ‘예술이 죽었다’는 논리로 펼쳐 보인 이번 공연은, 매우 아이러니하면서도, 극단이 전 공연으로 보여준 <모럴 패밀리>에 이어, 사회비판적인 극단의 성격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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