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정윤희

국립극단 <운명> 리뷰

 

정윤희

작: 윤백남

연출: 김낙형

단체: 국립극단

공연일시: 2018.9.7(금) ~ 29(토)

공연장소: 백성희장민호극장

관극일시: 2018.9.22.(토) 15:00

 

 

 

1921년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윤백남에 의해 쓰인 이 작품은 웬일인지 필자로 하여금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연상하게 했다. 소설은 한 지적이고 강인한 여성의 여정을 주로 다루면서도, 그를 향해 휘몰아치던 시련과 불가피한 상황들이 어찌나 급작스러우면서도 강렬하게 전개되는지 공상과학소설과 맞먹는 판타지와 여운을 남기고 만다. 윤백남의 <운명>에서도 그와 같은 장치들이 발견된다. 서양식 이름과 서양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 메리는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라고 강요했던 아버지에 의해 멀고 먼 하와이로 이주해 왔지만, 기대와는 달리 남편은 늙수레한 교양 없는 구두 수선공이었으며 술주정뱅이였다. 결혼생활이 모든 꿈을 산산조각 냈기에 깊이 번민하던 중 메리 앞에 갑자기 옛 연인 수옥이 나타난다. 우리네 근대사에 닥친 시련이나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버렸던 인생들이 마주해야 했던 상황들 역시 그것이 진짜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황당무계했으니, 작품 속 섬뜩한 상황들이 지닌 결이 우리의 역사가 지닌 그것과 딱 들어맞곤 했다. 원작의 선택이 탁월했다.

 

국립극단이 약 100년 전에 쓰인 <운명>을 상연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많은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 작업은 의미 있는 복구 작업이었을 텐데, 엄연히 존재했으되 지금에서는 많은 이들에게 잊혀진 ‘하와이 사진 신부’의 존재에 대한 인식의 복구였으며, 또한 100년 전 조선 사람들이 구사하던 근대 언어에 대한 복구였다. 국립극단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해 역사를 되짚는 작업은 뜸하게나마 지속적으로 행해야할 당연한 테제이며, 그러한 면에서 국립극단이 이 작품을 올렸다는 소식이 매우 기쁘게 여겨졌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100년 전 조선인들이 구사했던 말에 대하여 무지한 터라 배우들이 대사를 처리하는 억양과 톤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잘 내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작품은 2018년 관객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하여 동시대의 뉘앙스와 톤을 가미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보며 근대 우리말의 원형과 매력을 좇는 재미가 아주 좋았다. 특히 극중 메리와 수옥의 대사에 기독교적 가치관이 담겨졌을 때에는 내리치는 번개의 섬광과 같은 강렬한 인상이 느껴지곤 했다. 그 시절 새로운 학문과 교양이란 혹한의 역사를 극복하는 힘과도 같았으니, 이상과 꿈을 거론하는 말 자체에도 무언가를 내리 꽂는 듯한 힘이 실리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 강렬하고 저 높은 곳을 향하고 있는 듯한 말투는 현대 드라마의 섬세한 표현을 담기에는 지나치게 투박한 점이 없지 않겠지만, 오히려 짧고 강렬한 플롯을 지닌 이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연출가와의 인터뷰에서 김낙형은 현대 관객들과 공감하기 위해서는, 신랑 될 사람의 사진만 보고 하와이로 원정결혼을 나갔던 이른바 사진 신부들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다. 이를 위해 약간의 장치를 고안했는데, 두 명의 이웃 여인의 존재도 그중 하나였다. 이들의 찰떡쿵 수다는 코미디가 넘치는 한편 하와이 이주생활의 형편과 사진 신부들의 사연을 차근차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처의 감각>에서도 만난 적이 있었던 이수미 배우의 익살스러운 연기와 톤은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원작에 비해 이 두 여인의 역할이 조금은 확대됨으로써 작품은 재밌어지고 사회와 역사적 배경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원작의 힘은 크게 상실되지 않았는데, 이상을 좇는 인물인 메리와 수옥의 톤,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의 톤이 확실하게 구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옛 말투와 화법에 붙박여 있었던 반면 주변 인물들에게는 좀 더 다양한 표현들이 용인되었다. 이로써 작품은 지켜야 할 것에 대한 확실한 방어벽을 치는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용 없이 담백하게 공연이 되었더라면 작품이 지녔을지 모를 굵직한 인상이 궁금해지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운명>을 그 전에는 접한 적이 없었던 연유에서이니, 이 다음에도 윤백남의 <운명>을 다른 버전으로 만나보고 싶다.

 

‘운명’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도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는 말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영원한 테마이자 숙제 같은 주제이다. 작품은 ‘운명’이 ‘욕망’ 그리고 ‘도덕적 이상’과 함께 비추어 바라보아야 할 것이라고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향해 인간은 멀고 먼 여행을 감행하곤 한다. 메리는 조국에서 하와이로 먼 이동을 감행했던 인물이며, 옛 애인 수옥을 만났을 때는 또다시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하지만 빠져나오려 하면 할수록 그녀는 더 큰 굴레에 갇히고 만다. 옛 애인과 메리의 사실을 알아차린, 질투에 눈이 멀고 술에 취한 남편이 나타나 칼부림을 했고, 그 와중에 메리는 자기도 모르게 남편을 살해하고 만다. 이들 앞에 또 다시 새로운 운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옥은 이 또한 자신의 운명이라며 소리치며 무릎을 꿇지만 이는 한편 여인을 향한 욕망의 분출이기도 했다. 메리의 살인은 정당방위로 인정될 여지가 있으나, 극은 하와이 법정이 조선인에 대하여 가혹하면서도 공정하지 않은 판결을 내리고 있었음을 사전에 보여준바 있었고, 작품은 메리에 대한 판결을 절대적인 미지수로 남겨둬 버린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