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당치 않은 생존경쟁에 일갈: “다들 엿 먹어요.”

<춤추며 가다> by 이연심

경기여자고등학교 교사

 

 

“사람들이 다 나보고 열심히 산대.
그 말 들을 때마다 비참해서 죽어버리고 싶어.
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야만 살 수 있는 사람 같아서, 남들 보기에도 그럴 만큼 열심히 사는데 나아지지가 않아서.
도대체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되는지, 난 뭘 보고 이렇게 사는 건지.
나도 모르는데, 엄마는 알아?”

 

2018년 신춘문예 경상일보 당선작인 단편을 장편으로 각색해 극단 각인각색이 선보인 <춤추며 간다> 속 인물인 ‘시내’의 나지막한 절규이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꿈과 희망을 도둑맞은 청춘, 작가지망생으로 알바를 전전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지지리 복도 없는 인생! 숨 막히는 입시, 취업, 진급 등으로 수많은 터널을 빠져나와도 빛이 보이지 않는 현실 ……

 

연극은 단편과 마찬가지로 떠돌이 엿장수 아버지 ‘선흥’과 다단계와 종교에 빠진 엄마 ‘혜연’, 그리고 ‘시내’를 중심으로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웃들의 모습을 투영한다. 밝혀지지 않은 과거로부터 도망치듯 집을 나가 버린 아버지 ‘선흥’은 전국을 떠돌며 엿을 팔러 다니지만 여전히 바로 그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다단계 사업과 종교에 빠져 안정된 삶과 성공만을 추구하는 엄마 ‘혜연’은 세상 사람들의 파편화된 욕망을 딸에게 투영하며, 알바와 같은 ‘비젼없는 일’ 이 아닌, 작가와 같은 ‘쓸모없는 사람’ 아닌 열심히 노력하고 기도하여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반복된 가산탕진과 그나마 살고 있는 집에서도 쫓겨날 형편이다. ‘시내’는 무책임한 아버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고, 욕망덩어리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도 아버지도 수용하지 못한다. 더 무서운 것은 요지부동인 현실이다. 열심히 살수록 더 비참해지는 현실, 열심히 공부해도 오르지 않는 성적, 열심히 일해도 멀기만 한 정규직, 열심히 벌어도 벗어날 수 없는 빚더미….도대체 얼마나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건지, 그 무한 경쟁으로 등 떠미는 어른들은 답을 알까? 엄마 ‘혜연’이 제시하는 ‘열심히 사는 것’도 정답이 아니고 아버지 ‘선흥’이 제시하는 ‘흐르는 대로 사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어쩌면 정답은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르는데 자신들이 아는 것만이 정답이란다. 과거로부터 도망치듯 떠났지만 ‘선흥’은 아직도 과거 속에서 헉헉거리고 있고,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사업과 종교에 열심이지만 아직도 사기의 흔적 속에서 끙끙거리고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엄마는 ‘떠남’과 ‘열심’이 정답이란다.

 

“엿 먹어, 엿 먹어, 다들 엿 먹어요!”

 

이 대사는 ‘선흥’의 대사가 아니라 ‘시내’의 대사여야 한다. ‘선흥’은 극을 시작하면서 객석에 엿을 나눠주고 극이 진행되는 내내 엿을 빨고 있다. 이 씁쓸한 현실의 이야기를 보는 관객에게 엿의 단맛이 위로가 될까? 손에 꼭 쥐고 있던 엿이 녹아 끈적끈적하다. 엿은 먹을 때마다 입안에 쩍쩍 달라붙어서 여간 먹기가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엿 먹어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상대를 야유하거나 골려줄 때 그렇게 힘든 고생을 좀 해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혹자는 성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을 비웃는 전형적인 욕설이라는 사람도 있고, 혹자는 조선시대 군영제도에서부터 유래되었다는 이도 있지만 모두 된통 당하듯이 혼이 나보라는 뜻이거나 엉뚱한 주장에 대해 퇴박 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니 혼을 내는 말임은 분명한 듯하다. 또, ‘엿 먹어라’에 욕의 의미가 담긴 것은 1964년 서울 중학교 입시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도 있다. 당시 문제 중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을 고르라’는 문제가 있었는데 ‘디아스타제’, ‘꿀’, ‘녹말’, ‘무즙’이 보기로 제시됐다. 출제 측이 요구한 정답은 ‘디아스타제’였다. 무즙으로도 엿을 만들 수 있음을 안 불합격생의 부모들은 급기야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당시 문교부와 시교육청에 달려가 “엿 먹어보라”고 항의했다고 한다. 여기서 엿은 ‘너희들이 틀렸다’는 회초리였을 것이다. 틀린 답으로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예단하는 것은 퇴박을 맞아 마땅하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연극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공연 내내 ‘선흥’의 엿과 필자의 손에 쥔 엿이 신경이 쓰였던 때문일까? 그 ‘엿’이 영 머릿속에서 떠나질 안더니 결국 연극은 엿과 연결되어 정리되고야 말았다. 연극 <춤추며 간다>가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판단하고 강요하는 어른들의 아집과 폭력에, 떼어내려 해도 떼어지지 않는 엿같은 인생에 일갈하는 이야기로 보이는 것은 너무 자의적인 해석일까? 그래서 “모두가 춤추며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썼다”는 송현진 작가의 바람이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리고 정말 ‘인생이 엿 같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신나게 춤추며 “가즈아~~” 라고 외치던 전 출연진의 노래는 아마도 그동안 가당치 않은 생존경쟁(生存競爭)을 만들어 놓은 어른들의 반성문이며 나와 우리의 희망의 노래인 것 같다. 춤추며 공부하고 노래하며 일하는 세상에 대한 기도 말이다. 2019년 정월 대보름 슈퍼문(Supermoon)이 떴다. 음력 정초에 지신을 달래고 잡신과 악귀를 물리쳐 마을, 가정의 안녕과 풍어, 풍년을 비는 농악대의 장단이 흥겹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잡신과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맹목의 악귀를 물리치고 누구나 희망과 꿈을 찾아 춤추며 갈 수 있도록 연극 <춤추며 간다>의 장구와 엿가락 소리가 2019년 새해 지신밟기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춤추며 간다>

작 : 송현진
연 출: 이정하
단 체: 각인각색
공연일시: 2019.01.16. ~ 2019.02.17.
공연장소: 대학로 민송 아트홀 2관
관극일시: 2019.02.08.(금)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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