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슬라브스키 명언(1)

어절시구리 by 백승무

**어절시구리(語節是求理 말에서 이치를 찾다)는 연극에 대한 지식을 심화시키고 싶은 연극애호가들에게 평소 궁금했거나 딱히 물어볼 곳 없는 연극정보를 알려주는 연재물이다.

먼저 현대 연출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명언을 통해 쓸데없이 알고픈 연극 지식을 하나둘 쌓아보겠다.

 

 

“시시한 배역이란 없다. 시시한 배우가 있을 뿐이다.”

 

스타니슬랍스키가 모스크바예술극장을 만들면서 내건 강령 중 하나는 스타시스템의 거부였다. 고질적인 과거의 병폐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인기스타의 심기 경호에 몰두하는 폐습을 청산하고, 예술성에 입각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거들먹거리며 젠체하는 스타에 의존하기보다는 희곡의 정확한 해석, 공연의 진실성, 배우들의 앙상블에 공력을 들였다. 당연히 고참배우들의 저항이 거셌다. 어제 주연을 맡은 배우더러 오늘은 문지기를 하라니 불평할 만도 하다. 몇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그의 민주적 레퍼토리 체계는 꾸준히 준수되었다. 

 

어떤 배역이든 중요하다. 그 중요성을 깨닫는 배우만 있다면! 저임금 단역배우의 열정페이에 대한 핑계로 악용해선 안 된다. 

 

“산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말이다.”

 

스타니슬랍스키를 읽다 보면 자주 깜짝깜짝 놀란다. 분명 무대예술에 관한 지적인데, 곱씹어보면 마치 현자의 경구를 읽는 듯한 경건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문장도 마찬가지. 원래는 루소의 말이지만, 인용자인 스타니슬랍스키의 아포리즘으로 널리 알려졌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가 무대에서 실제 삶을 살듯 진실한 행위를 취하라고 명했다. 과장, 가식, 허세, 과잉 등이 없는 행위, 배역과의 동일시를 통해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행위가 ‘진실’의 요체이다. 말년에는 신체행위의 단순함에 꽂혀서 행위에 항상 ‘단순한’이란 수식어를 달았다. 비극성이 클수록 인물의 행위는 단순하고 작아진다는 것. 굳이 예를 들자면,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조인성이 선보인 주먹 오열 씬 정도. 큰 행위 없이 감정의 디테일을 극대화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은 항상 구체적 행동을 요하기 때문이다. 파스테르나크는“산다는 것은 들판을 지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들판 걷기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한 것이 삶이다. 삶이 요구하는 행동도 그만큼 의미심장해야 한다. 연극도, 삶도 결코 만만한 무대가 아니다.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상영 중인 <세 자매>의 한 장면 ⓒ МХАТ

 

“자신에 대한 끔찍한 진실을 잘 듣고 이해한 다음,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

 

스타니슬랍스키는 누구보다 자기비판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전집 1권에 해당하는 <나의 예술 인생>은 자서전이라기보다 장문의 반성문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타고난 성품 자체가 그러했다. 타고난 것은 그뿐만 아니었다. 재물 복도 타고나서, 아버지는 전경련 회장 격이었고, 삼촌은 모스크바 시장이었다. 게다가 성실하기까지 했다. 지독한 메모광이었고, 이른바 <배우수업>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후에도 깨알 수정을 계속했다(즉, 최종본이 아니라는 말씀! 그의 사전엔 최종본이란 없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영감과 재능이 번뜩이는 ‘천재’였다. 이쯤 되면 우리 같은 흙수저 나태무능자는 식음을 전폐해야 한다. 

이 엄친아 끝판왕께서 우리 ‘식충’들의 끔찍한 진실을 따끔하게 지적하신 후에 그 말미에 사랑의 전언을 남기셨다. 그 끔찍한 진실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할 줄은 몰라도, 그것쯤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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