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예수 이야기

– 연극 < 삼일로창고극장 봉헌예배>-

 

글_김향 (연극평론가, 호서대 교수)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예배

 

 

<삼일로창고극장 봉헌예배>는 예배 형식을 갖춘 퍼포먼스이다.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삼일로창고극장 봉헌예배>를 한다니까 일부 관객들은 ‘거기서 예배를 보냐’고 되묻는 일화도 있었다. 입장권은 교회 예배당 들어갈 때 나눠주는 주보 형식을 취하면서 공연프로그램도 겸하고 있었고 삼일로창고극장에 십자가를 그려 넣은 표지의 이미지는 ‘삼일로창고교회’로 보이기도 한다.

2018년 <아웃스포큰>(9.12.~9.16. 예술공간혜화)으로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거칠고 크게’ 이야기했던 꿍짝프로젝트가 이번에는 퀴어들의 성적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를 향해 예배 형식으로 목소리를 높인 <삼일로창고극장 봉헌예배>를 공연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성지였던 명동성당과 서북청년단들의 교회인 영락교회, 퀴어들의 문화가 쌓인 종로 일대 그리고 지금도 꾸준히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명동향린교회가 위치한, ‘3·1 운동의 정신을 기린 삼일로’ 이름을 딴 ‘삼일로창고극장’을 봉헌한다는 취지의 <삼일로창고극장 봉헌예배>는 <아웃스포큰>에 이어 연극적 형식을 빌린 ‘퀴어연극’이라 할 수 있다.

재개관 뒤 1인극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에 다섯 명이나 출연하는 삼일로창고극장 무대가 어찌 만들어졌을지 궁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객석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좀 더 많은 관객이 함께했으면 좋았을 연극이었다. 그동안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억압받았는지 생사를 건 고통의 수위가 얼마나 높은지를 다시금 실감하게 하는 연극이었고 기독교 신자들의 성서를 바라보는 시각에 반성을 촉구하는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소수자의 범위는 넓고 또 일상적인 성향일 수 있으며 종교인이든 아니든 또는 나 자신은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결코 ‘남의 문제’로 바라볼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성소수자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는 이성애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될 수 있는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선입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종교라는 뿌리 깊은 인간 정신 세계가 좀처럼 바뀌기 어려운 폭력적인 면모를 지녔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며 얼마 전 공연된 <크리스천스>(2018.9.7.~10.7, Lucas Hnath 작, 민새롬 연출,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종교적 문제를 한국 사회 문화적 시선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예배 형식의 패러디와 공감대

 

 

종교적 형식을 따라가는 공연이기에 엄숙할 듯하지만 <삼일로창고극장 봉헌예배>(앞으로 <봉헌예배>로 표기)는 첫 장면에서부터 기독교에서 설파하는 “믿음”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관객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시작한다.

‘1.희생제의–거짓된 성전을 허물다, 2.경배와 찬양–드랙퀸의 축복송, 3.예배로의 부름–다같이, 4.죄의 고백, 참회의 시간–한국 기독교 역사와 혐오의 계보, 5.막간극–박적박문적문, 6.봉헌기도–삼일로창고극장을 바칩니다, 7.성극–퀴어 예수의 생애, 8.성찬식–우리 곁의 예수를 기념하라, 9.간증–커밍아웃, 앨라이 선언, 고해성사, 연대 표명의 시간, 10.성가–사랑은 영원하다, 11.축복기도’ 순으로 전개되는 <봉헌예배>는 보수적인 기독교의 ‘성서 말씀의 죽음과 희생’이라는, ‘희생’에 대한 전복적 인식으로 시작된다. 동성애를 혼탁한 죄로 믿어야 한다는 성직자(양대은 분)는 살해 당하고 그의 피가 제단 위에 올려지면서 2장의 경배와 찬양의 축복송이 울려 퍼진다. 이 축복송은 미국의 팝가수 레이디가가(Lady GaGa)의 ‘Born this way’로 남성과 이성으로 구분 지을 수 없는 성적 정체성을 인정하고 사랑하며 당당하게 그 방식으로 살라는 내용의 노래이다. 드랙퀸 ‘썸머’가 대제사장이 되어 엄숙하고 신성한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축복송과 판이하게 다른, 오히려 불순하고 사악하다고 여겨지는 노래를 신나게 역동적으로 부르며 화려한 춤으로 형상화하는 ‘축복송’이다. 그리고 3장에서는 자신의 남다른 성정체성으로 인해 헤매고 있는 성소수자들에게 ‘함께 예배를 드리자’며 이들을 불러 모으는 대사가 이어진다.

4장에서는 한국에 천주교와 기독교가 유입되고 20세기 들어서 정권과 유착되어 발전해온 한국 기독교의 역사가 ‘참회’의 관점에서 조명되고 5장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시민’과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내세우면서도 동성애자 인권에 대해서는 한발을 뺐던 모습을 막간극 형태로 패러디하고 있다. 6장은 ‘삼일로창고극장’을 봉헌하는 기도로, ‘반공·보수 교회’와 ‘민주·진보 교회’가 공존하는 ‘삼일로’라는 모순된 공간에 놓인 ‘삼일로창고극장’의 역사성을 돌아보고 이 극장을 봉헌하는 행위를 통해 이 땅에 성소수자들을 위한 평화가 오기를 염원한다.

7장 ‘성극’은 성서 속 예수의 삶을 ‘퀴어’로서의 삶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극중 극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이전까지 성서 속 예수를 ‘남성’이라고 규정했던 것과 ‘이성애 중심적인 사랑’의 내용에 문제의식을 던지며 성서에는 성적 구분이나 동성애를 금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지 않으며 이러한 인식은 남성 중심적이고 이성애 중심적인 권력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예수의 고난을 ‘퀴어’로서의 고난과 배척으로 형상화하면서 그 고난 속에서 ‘퀴어예수’가 사랑했던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을 언급한다. 그리고 죽었다가 부활한 예수를 지금 이 순간에도 조롱당하며 핍박받고 있는 성적 소수자들의 모습으로 치환한다. 8장 ‘성찬식’ 장면은 ‘퀴어’로서 핍박 받는 성소수자들을 위해 일하다 끝내 자신의 목숨을 던진 ‘육우당’이라는 인물을 추모하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3장에서부터 삽입되고 있는 ‘낙원가’, ‘타락교회’, ‘만민평등 기원가’, ‘하소연’ 등의 시조와 가사를 쓴 작가가 ‘육우당’인데, 8장에서 비로소 그의 실체가 소개되는 것이다. 20살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우울증과 세상에 대한 환멸 그리고 성 평등을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던 한 ‘퀴어 시인’은 이 장에서 ‘퀴어 예수’의 한명으로 거론되고 그가 남긴 유서가 공개되면서 추모식이 거행된다. 예배를 이끄는 배우들은 이때 관객들 모두에게 예수의 ‘살’을 상징하는 무지개가 그려진 과자와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나눠주고 이 ‘과자’와 ‘포도주’로 ‘육우당’을 기리는 추모의 글을 낭독한다. 어린 나이의 ‘퀴어 시인’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그리고 앞으로 부모에게 받을 재산까지 모두 퀴어 인권 단체에 기부하는 일화는 그 어떤 헌신보다 고귀한 것으로 경험된다.

9장은 지금까지 일인 다역을 하며 무대를 꾸미고 있는 배우들이 ‘간증’을 하는 장이었다. 종교적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의미의 ‘간증’이 아니라 ‘남의 범죄에 관련된 증인’으로서 죄를 폭로한다는 의미의 간증을 하는 것이었다. 마리아의 잉태를 ‘남성과 관계없이’ 기적적으로 행해진 것이 아닌 권력자에게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 해석하는 간증(임윤미)을 시작으로, 여성으로서 당연히 착용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브레지어라는 코르셋에서 해방된 이야기(백소정),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나 반동성애 인식을 가졌었지만 이제는 동성애자를 박해하는 것이 성서에 어긋나는 폭력적인 죄라는 것을 깨달은 신앙인의 간증(양대은), ‘사랑’은 넘치지만 성애적 욕구가 없는 무성애자의 고백(신효진) 그리고 주민등록상으로는 남성이지만 여성성을 지녀 한국 사회에서 큰 시련을 겪으며 살고 있는 그러나 예수를 사랑하는 드랙퀸(썸머)의 간증이 이어졌다.

10장의 ‘성가’와 11장의 ‘축복기도’는 관객들을 향해 감성적이면서도 도전적으로 꾸짖는 결말이었다. ‘내가 천사의 말 한다 해도’라는 가스펠송은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퀴어를 혐오하는 세상의 모순적이고 배타적인 폭력적 행위를 다정하고 경건한 성가로 꾸짖는 듯했다. 그 어떤 언변과 지식과 믿음이 있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가사 내용은 ‘인간과 세상을 사랑한다면서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모순적 인식’을 향한 감성적 꾸짖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축복기도’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막12:31)”,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라는 성서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구절들이 실은 사회적·성적 소수자들을 모두 사랑하는 예수님의 말씀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훈계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러한 꾸짖음과 훈계가 아름답고 절박하게 온 정성을 다해 세상을 사랑하려는 쿵짝 프로젝트의 몸부림으로 경험되고 그 마음이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이 이 공연의 미덕이다. 연극적으로 아무리 에둘러 형상화한 것이라 할지라도 기독교의 예배를 풍자하여 패러디하는 면모는 한층 직설적이고 마음을 담아 할 말 다하는 또 다른 ‘아웃스포큰’으로 다가온다.

 

공부하는 집단의 진정성

 

 

어찌 보면 쿵짝 프로젝트의 <봉헌예배>는 기독교인들에게 불편할 수 있는 연극이며 배우들의 연기가 아직 기술적으로 서툴고 덜 여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진정성은 담겨 있으나 다소 거칠고 세련미가 부족하다고 여겨질 수 있겠다. 그러나 어쩌면 쿵짝 프로젝트가 이러한 날것의 표현을 선호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입장권에 소개되어 있는 다수의 참고문헌 즉, 『인권옹호자 예수』(김지학), The Queer Bible Commentary (Robert E. Goss), 『한권으로 읽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류대영), 『퀴어 아포갈립스』(시우), 『내 혼은 꽃이 되어』(육우당), 『가가 페미니즘』(Judith Jack Halberstam) 그리고 성서를 읽으며 작업을 했던 쿵짝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 전문서를 탐독하고 토론하며 제작하는 공동창작 방식을 고수할 듯하다. 매우 지적이고 바람직한 제작 방식이다. 이와 더불어 장면 전시적 연출 방식에 ‘산만한 극 행동을 줄이고 극적 밀도와 긴장감’을 보완한다면 금상첨화 퀴어 연극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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