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4’,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

연극 <명왕성에서>-

 

글_이유영(공이모 회원)

 

작/연출 : 박상현
제작 : 남산예술센터, 극단 코끼리만보
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일시:  2019년 5월 15일 ~ 26일

 

1930년 발견된 명왕성은 태양계의 9번째 행성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2006년 국제천문연맹에서 행성의 분류법을 바뀌면서, 우리 기억 속에 남은 명왕성은 사라지고 ‘134340 플루토’만 존재한다.

그 무엇도 시간 앞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하물며 인간의 경험과 기억은 어떨까.

시간은 인간이 기억과 망각 사이의 교착점을 지나 차츰 망각으로 넘어가도록 한다. 이런 변화가 자연스럽지만, 그 자연스러움을 거부해야 할 때도 있다.

 

4월의 그날’, ‘그들과 우리의 아픔

 

 

예술이라는 장치를 통해 우리는 2014년 4월의 비극,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직면하고,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2014년 4월 16일. 거짓을 믿고 싶었던 그날, 믿고 싶지 않은 그 사건이 우리의 삶 속에 직·간접적으로 들어와 버렸다. 꽃이 피었어야 할 그해 4월,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변해버리고 모든 것이 시들어 버렸다. 이러한 점을 연극 <명왕성에서>는 남겨진 사람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즉 죽음을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모습을 잔인하리만큼 생생하게 보여준다. 4월 꽃다운 봄에 미처 피어보지도 못한 생명이 꺾였던 그때를 우리 앞에 고스란히 가져다 놓는다.

연극은 2014년 4월 14일로 고등학교 방송실에서 점심시간 방송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수학여행에 들떠있는 어린 학생들의 해맑은 목소리와 그들이 전해주는 ‘역사 속의 오늘’로 타이타닉호의 침몰 사건과 부활절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준다. 극 속에서 전해주는 두 사건은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극 속 아이들의 미래이자 우리의 과거와 현재인 세월호와 연결되면서, 수학여행으로 들뜬 아이들의 모습은 부유(浮遊)한 상태로 우리 곁에 안착한다.

 

 

선실에 갇혀서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의 영혼이 한데 모여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놀이를 한다.

이 순간 무대와 객석에는 명암(明暗)이 공존하며, 아이들의 명랑함 속의 슬픔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진다. 이 장면에서 아이들이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을 전한다. 이로써 그날의 사건을 현재의 기억으로, 기억해야만 하는 기억으로 만든다.

2014년의 4월 이후, 다수의 사람은 일상을 누릴 수 없었다.

유가족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민간 잠수사들, 자원봉사자들, 기자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봐야 했던 대다수의 국민 모두. 남겨진 이들의 아픔, 행동해야만 했던 이들의 아픔, 지켜봐야만 하는 이들의 아픔 모두가 한데 모여 결국 극 전체는 슬픔과 아픔으로 침전한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점차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닌, 망각하려는 혹은 기억으로 간직하지 않으려는 지금 이때 과연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아이들의 모습,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의 모습을 시간의 변화에 따라 보여주면서 ‘이제 잊겠다’라는 우리의 목소리에 오히려 그 아이들이 ‘잊어도 된다’는 말을 건네준다.

마치 태양계 행성 중 가장 끝자리에 자리 잡고 있으나 행성으로 분류될 수 없는 명왕성처럼, 우리의 삶 속에 현존하는 사건으로 각인은 되어있으나 점차 잊혀지는 망각의 기로에 서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슴으로 아로새길 진혼곡(鎭魂曲)

 

 

연극 <명왕성에서>는 기존 극의 문법으로는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명왕성에서>는 플롯이 유기적, 인과적인 짜임새를 보이기보다는,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연출의 시각과 동시대의 비극을 다루는 조심성이 보인다.

그래서 때로는 반복되는 이야기의 구성과 남겨진 이들, 그 사건에 관계된 이들의 모습을 편린(片鱗)처럼 제시된다―유가족의 아픔과 잠수사들의 고통, 그리고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 마지막으로 배 안에서 부유하는 그들의 모습까지.

<명왕성에서>는 여전히 우리의 현재로 살아있는 세월호의 아픔을 최대한 그대로 전달하면서 어느 것 하나 취사선택하거나, 강조하지 않았다.

때로는 감정을 자극하면서 이때의 아픔이, 이때의 슬픔을 하나의 기록처럼 재연해서 관객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연극 <명왕성에서>는 지시에 따라 ‘가만히 있다’가 희생된, 햇살보다 빛나는 이들에게 무대 위의 배우와 연출이 표현하는 애도이자,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진혼곡이다.

우리는 마음껏 감정적으로 관극하면서, 우리 각자만의 방식으로 다시금 ‘20140416 세월호’를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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