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출한 무대에 담긴 역사란 무게의 현주소

-연극 <뼈의 기행>-

 

글_오유경(극단 그룹動·시대 연출)

작 : 백하룡
연출 : 최진아
단체 : 국립극단
일시 : 2019년 5월 31일 ~ 6월 16일
소 : 백성희장민호극장
관극일시 : 2019년 6월 15일

 

백하룡 作 작품 《뼈의 기행》은 지난 세대의 뼈아픈 역사의 무게조차 후대의 현실 인식 앞에서 얼마나 맥없이 무가치하게 버려지는지 묵도(默禱)하게 되는 날카로운 역사 인식의 현주소를 그렸다.

 

무대는 직사각형으로 깊게 뒤로 나 있고 그저 회색의 단순한 공간으로 어떤 특정적인 표징이 하나도 없이 설정되어 있다. 무대 천장에도 어떤 조명도 달려 있지 않다. 다만 무대 오른쪽에 배의 닷 줄을 매어 놓은 쇠기둥이 2개 있고 무대 중앙에 놓여있는 커다란 여행용 트렁크를 보아 어느 큰 부두, 항구임을 짐작하게 한다. 노인 한 명이 수첩에 무엇을 꼼꼼히 적고 있다. 무엇을 긁는 소리가 나는데 그것은 이 노인이 수첩에 무엇을 적는 소리다. 그리고 그 내용은 지도와 함께 무대 중앙 뒷벽에 영상으로 투사된다.

 

 

여기는 중국 대련. 노인은 중국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 그는 배를 못 타고 비가 오는 항구에서 불안하게 서성이고 있다. 이윽고 아들이 등장한다. 아들과 노인은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아비를 대하는 아들의 태도는 매우 거칠고 말할 때마다 무조건 화를 내며 격앙되어 있다. 사연인즉슨 노인은 중국에 묻혀있던 자신의 부모의 뼈를 고국으로 가져가고자 하는데, 뼈 자체로는 반출이 불법이고, 그러자면 뼈를 화장(火葬)하여 가루로 만들어 납골함에 넣어야 하는데, 노인은 굳이 화장하지 않고 불법이라도 좋으니 어떻게 해서든 방도를 찾아 뼈 채 가져가기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방법은 없고 아들은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차일피일 이 항구에서 발이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들은 위험하고 불가능한 것을 고집하는 아비에게 화가 나 있고, 아비는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 하는 아들의 무정함이 섭하다.

 

 

작품은 영상과 함께 자연스레 과거로 돌아가고 노인이 어찌하여 중국에 가게 되었으며 어찌하여 현재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노인은 만주에 살다가 해방되고 열 살 때 고국으로 돌아오려다가 누이동생이 병이 들자 가족 모두와 떨어져 홀로 한국으로 귀향했다. 그 이후로 그는 가족과 소식이 끊기고 중국이 90년대 자유경제를 지향하면서 누이동생과 겨우 연락이 닿게 되었다. 누이의 편지내용은 부모가 돌아가시며 고국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하셨다는 것이다. 중국에 도착하여 누이동생을 찾아가는 그 긴 시간의 기차여행에도 노인은 설렘을 감출 수 없다.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면서. 드디어 만난 누이동생은 남같이 낯설다. 부모의 이야기보다는 번잡한 마을잔치를 열어 노인을 환영하며 동시에 어떻게든 노인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돈벌이를 가고자 하는 목적을 더 앞세운다. 어릴 때 헤어진 누이동생과 중국 동포는 이미 살아온 문화도 처한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한 이해도 헤어졌던 시간만큼 멀고 다르다. 노인은 누이와 서로 갈등한다. 심지어 아들은 중국 동포는 동포라는 핑계로 순 사기만 치고 한국가족을 이용해 어떻게든 한국에 가려고만 한다고 중국의 가족들을 경멸하고 그들과 크게 반목한다. 좋은 기대가 무너지고 가족과 의만 상한 채 부모의 뼈를 싸안고 지금 그렇게 항구에 있는 것이다. 중국 기차 안에서 만난 한 중국동포여인의 주선으로 노인은 많은 돈을 지불하고 뼈 그대로 밀항할 방법을 찾게 된다. 그 와중에 돈이 모자라자, 노인은 아들에게 숨겨둔 통장과 인감도장의 위치를 알려주며 고향에 먼저 돌아가 돈을 부치라고 보낸다. 하지만 운이 없게도 일은 꼬이고 불법 밀항계획은 중국 공안에 발각이 난다. 노인은 돈도 날리고 할 수 없이 스스로 부모의 뼈를 불에 태우고 결국 화장한 납골함을 가지고 귀국한다. 뼈를 묻고자 고향 선산(先山)을 찾아간 노인은 아들이 이미 선산을 팔아먹고 선산은 다른 이의 손에 의해 건설현장으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에 맞닥뜨린다. 파헤쳐진 고향 땅에 부모의 뼈가루를 뿌리며 서글픈 여정의 끝이 막을 내린다.

 

 

 

노인 이외에 모든 배역은 1인 다(多)역이다. 또한 빈 무대에 장면의 설정이 바뀔 때마다 특정한 소도구와 소품들이 채워지고 바뀌고 재배치되면서 상황을 다양하고 적절하게 표현한다. 항구에서 긴 여행객의 줄은 줄지어 놓인 수많은 트렁크들로 표현되며 이것은 또한 긴 기차가 되기도 한다. 누이동생의 마을에 와서는 잔칫상이 들어오고 노인에게 인사하는 누이의 이웃동포들은 한 커플이 계속 반복적으로 바꾸어 절을 올리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매우 흥미롭고 적절한 방식이었다. 회색과 쥐색, 검정색 등 무채색이 주조(主潮)인 가운데 빨간 우산, 빨간 우비 등으로 생동감을 살렸으며 노인의 여정이 그려진 지도를 영상으로 투사하고 그 위치와 동선을 정확히 줄과 화살로 표시하여 그 긴 여정의 과정과 부모의 뼈가 고국으로 오는 숱한 우여곡절의 이야기를 간단하면서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불필요한 사실적 기호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단순화하는 것으로 많은 다양한 상황과 인물들을 소화하고 가장 중요한 부모의 뼈와 노인에게만 관객이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스타일을 넘어, 본인이 작품 《뼈의 기행》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인식한 것은 노인과 부모의 뼈에 대한 애착을 그리는 작가의 관점과 그에 담긴 역사 인식이다. 작품은 해방 이후 고국에 돌아오려다 헤어진 이산가족의 아픔을 흔히 하는 거창한 역사 인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노인은 단지 열 살 때 어쩌다 혼자, 가족 모두와 이별을 한, 부모의 사랑이 결핍된 상처 입은 한 어린 소년으로 다가온다. 어린 장남을 살리고자 부모는 그를 혼자 떠나보냈지만 어린 소년에겐 영문도 모르고 단지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혼자 떨어져 나가게 된 깊은 아픔일 뿐이다. 부모의 뼈에 대한 애착도 부모의 애정이 결핍된 그에게 뼈만이라도 부모를 다시 차지하고 싶은 어린 소년의 욕망으로 보인다. 그것이 비극적인 한국의 역사보다도 더욱 깊고 무겁게 절실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한 나라도 아닌 한 개인, 한 소년의 바람조차도 무가치하게 여겨지고 무시되는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노인의 아들은 아비가 어릴 때 헤어졌던 부모에 대한 마음 한 조각도 이해하거나 존중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그것은 뼈라고 생각한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애써 가져온 부모의 뼈가루는 고향에 묻힐 손바닥의 땅도 허락되지 않는다. 땅은 이미 파헤쳐지고 다른 세상이 되어버렸다. 고국에 묻히고자 바랐던 그 작은 소망도 너무 무가치하고 가볍다. 그 뼈가 담은 슬픔의 역사 따위 현실의 물질적 이득의 욕망 앞에서는 하염없이 가볍고 또 가벼운 것이다. 그 인식이 한없이 아프고 아렸다. 그것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작금(昨今)의 역사인식이라고 설득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한국에 어학연수를 온 본인의 조카가 DMZ을 다녀와 궁금해하는 본인에게 툭 던지는 한마디와 같다. ‘고모, 역사에 관심 없어요.’

 

 

노인역의 박상종배우와 중국동포여인역의 이수미배우의 연기는 이 작품을 짙게 만들어 무게감 있게 만든다. 그들은 짧게 스쳐 지나는 많은 장면들의 열거로 자칫 산만할 수 있는 작품을 든든히 뿌리박아 준다. 배우의 멋진 연기는 언제나 정답이다. 한 가지 아쉬움은 2020년대를 앞 둔 지금은 중국동포와의 관계가 많이 달라져 작품 속 갈등이 더 이상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이 벌써 시대의 굴레에 갇힌 듯하여 아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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