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륄리

‘서민 귀족’ Le Bourgeois gentilhomme (2)

글_임야비(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서민 귀족은 ‘총체극’이다.

연기, 음악, 무용 중 하나만 빠져도 작품은 맹탕이 된다. 륄리의 음악을 CD로만 들었을 때 느끼는 느슨함과 단절감은 배우의 대사와 무대의 장면 전환을 위한 것이다. 몰리에르의 극을 희곡으로 읽을 때의 우리가 느낀 썰렁한 웃음과 엉성한 행간은 음악과 무용을 위한 여백이다.

‘서민 귀족’ 베르사이유 궁정 공연 (연출: Denis Podalydès / 안무: Kaori Ito)

어설픈 교만은 끔찍한 놀림거리가 된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한마디로 ‘어설픈 교만은 끔찍한 놀림거리가 된다.’이다. 몰리에르는 쥬르댕을 통해 이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이게 다일까? 몰리에르의 펜은 쥬르댕을 관통해서 관객석에서 배꼽 잡고 웃고 있는 교만한 왕과 귀족을 겨냥한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 교훈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20여 년 전, 희곡과 음악을 따로따로 접하고 둘 다 별로라고 생각했던 나는 얼마나 끔찍하게 교만했던가?

‘서민 귀족’의 음반

‘서민 귀족’의 음반 4장을 소개하겠다. 첫 번째는 전곡 음반이다. 당시 연주되었던 륄리의 음악이 궁금하다면 이 음반 한 장이면 족하다. 겸손한 음악학자이자 고음악 지휘자인 레온하르트의 철저한 고증을 거쳐 완성한 륄리 음악의 완벽한 재현이다. 한마디로 이 음반은 륄리가 서민 귀족을 위해 종이에 기록한 모든 음표를 다 연주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더불어 극에 지시된 음악 이외의 6개의 ‘민속춤곡’까지 빼곡하게 수록되어 있다. 음악을 듣다 보면 초연 당시 루이 14세 앞에서 쥬르댕을 연기한 몰리에르와 하인 꼬비엘을 연기한 륄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두 번째는 지휘자 민코프스키가 루브르의 음악가들을 이끌고 연주한 음반이다. ‘투르크 의식’ 부분만 떼어서 녹음한 것으로 왁자지껄한 극의 분위기를 잘 살린 연주다. 더불어 이 음반에는 륄리가 몰리에르와 함께 작업한 작품들인 사랑에 빠진 의사L’Amour médecin, 조르주 당댕George Dandin, 멋진 연인들Les Amants magnifiques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서, 륄리의 음악과 당시의 연극상을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2장의 ‘서민 귀족’ 음반의 작곡가는 륄리가 아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다.
마치 몰리에르와 륄리가 그랬던 것처럼, 극작가 휴고 폰 호프만슈탈(1874~1929)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 의기투합하여 오페라 ‘서민 귀족’을 1911년에 완성했다. 이듬해 당대 최고의 연출가인 막스 라인하르트(1873~1943)가 공연을 올렸지만 안타깝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1920년에 슈트라우스는 이 극의 음악들을 추려서 관현악 모음곡으로 재출판했다.
곡은 서곡을 포함한 총 9곡으로 연주 시간은 40분 정도다. 9곡이 모두 수려하지만 단 한 곡을 고르자면 제4곡 ‘재단사들의 입장과 춤’을 꼽아본다. 화려함을 뽐내는 바이올린 협주곡 형식으로, 슈트라우스는 청자의 관점을 관객석이 아닌 무대 위로 옮겨놓는다. 듣다 보면 눈앞에는 지휘자의 뒷모습과 오케스트라가 아닌 쥬르댕과 재단사들이 보이는 느낌이다. 이외 다른 곡들도 성악이 없는 순수 기악곡이지만, 음악만 들어도 극과 무용이 저절로 떠오르게 하는 슈트라우스의 천재성이 오감을 즐겁게 한다.

슈트라우스의 ‘서민 귀족’의 추천 음반은 변방의 지휘자 드미트리 키타엔코가 ‘모스크바 필하모닉 심포니 오케스트라’라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악단을 지휘한 음반이다. 주저 없이 제1순위에 놓겠다. 지휘자 키타엔코는 음표가 내포하고 있는 극적 요소를 완벽하게 끄집어냈다. 몰리에르, 륄리, 호프만슈탈, 슈트라우스가 만약 이 연주를 듣는다면, 4명 모두 만족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명연 중의 명연이다.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

절대 피해야 할 최악의 음반도 소개한다. 현역 최고의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빈(Wien) 필을 이끌고 녹음한 음반이다. 지휘자 무티는 곡의 의도와 배경을 전혀 아니 아예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이 곡의 가장 핵심인 ‘유쾌한 비꼼’은 무거운 음색과 밋밋한 리듬 처리에 파묻혀 버렸다. 지휘자의 해석이 이 모양이니 연주력에 있어서 최강의 군단인 빈 필을 투입해도 소생이 불가능하다. 빈 필은 이름도 생소한 ‘모스크바 필하모닉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완파 당한다. 내 생각에 이 패배의 원인은 전적으로 교만한 지휘자 무티 때문이다. 군대에서 배운 격언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 이는 비단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루이 14세의 프랑스, 대혁명 직전의 귀족들, 연극을 만드는 연출과 드라마투르기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격언이다.

이 음반을 들으며 서민 귀족의 교훈인 ‘어설픈 교만은 끔찍한 놀림거리가 된다.’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 점에서는 지휘자 무티에게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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