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의 인정을 위한 기본 원칙

 

글_오세곤(연극평론가)

 

코로나 19 사태와 함께 ‘기본소득’이니 ‘재난수당’이니 하며 논란이 크게 일었다. 여기서 특히 ‘소득’이라는 명칭에 대한 경계는 그 경우 향후 지속적으로 지급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담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수당’이 ‘보조’의 성격으로 ‘일부’를 대상으로 하는 데 반해 ‘소득’은 ‘중심’의 성격으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기본소득’에 대해 좌파적 발상이라는 진영 논리도 있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 국가들의 과감한 예산 편성에 그런 색깔론은 근거가 약해졌다.

 

Coronavirus. Isolated on white.Clipping Path. monitor. Virus warning. Black and white.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살리고 국가 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전 국민에게 같은 액수의 돈을 나눠 주는 게 옳은지, 아니면 꼭 필요한 곳을 찾아 거기 집중해야 하는지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누락이 곧 죽음이라 할 때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체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주장과 그러다가는 결국 아무 것도 살리지 못 한다는 효율론 모두 논리적으로는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만 번 그런 논란을 벌여도 실제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과거와 현재의 여러 경우를 살펴서 우리에게 맞는 정책을 정한 뒤 한 시라도 빨리 과감하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사태로 예술계 전체가 위기라 하겠지만 특히 연극계는 그야말로 완전한 정지 상태에 빠졌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움직이려면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있을 때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힘이 필요하다. 그러니 결국 힘이 약한 존재들은 다시 움직일 엄두도 못 내고 그냥 멈춘 그대로 생을 마감해야 할 것이다. 혹자들은 이것을 경쟁력으로 정의할지 모른다. 심지어 약한 자를 도태시킴으로써 전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순기능적 자연의 법칙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다. 약한 개체를 포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건 인간을 제외한 동물의 세계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것도 대부분 최선을 다하다가 안 될 때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그런 행동을 취한다. 적어도 이성을 지닌 우리 인간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한 번 멈췄던 연극계를 다시 움직이려면 뭣보다 연극인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 대상이 될 연극인의 범위도 정해야 한다. 과거 메르스 사태 때 침체된 연극계를 살린다고 ‘원 플러스 원’ 정책을 펼친 바 있다. 그러나 그야말로 ‘부익부 빈익빈’ 내지는 편법 부당 이득 행위로 인한 형사처벌 등 부정적인 결과만 초래했을 뿐 실제로 약한 연극인들을 살리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연극계를 지원하여 살리겠다고 했지만 정작 그 대상에 들 수 있는 범위를 행정 편의적으로 한정함으로써 오히려 다수의 약한 연극인들을 소외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과거 메르스 사태 때 ‘원 플러스 원’의 경우 문화예술위원회의 기준으로 정산 미비라든가 지원금 사용 규칙 위반 등의 하자가 있는 경우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이것은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긴급 구난에서는 절대 적용해서는 안 될 원칙이다. 조금 강하게 얘기하자면 마치 세금 미납자는 전염병에 걸려도 치료해 줄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에도 정부 차원에서는 모든 국민에 대해 전염병 치료도 해 주고,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한 이들의 세금도 유예하거나 감면해 주었을 텐데, 유독 공연예술계를 대상으로 하는 긴급 구호 정책에서는 평상시의 의무 준수 여부를 따져 긴급한 시기의 구난 대상을 선별한 셈이다.

 

 

 

그런 오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제 연극인의 범위를 정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우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담당하는 예술활동증명의 연극인 인정 세부기준이 있다. 다음은 예술인복지법 시행규칙에 있는 연극인 인정 세부 기준이다.

 

가. 최근 3년 동안 3편 이상의 연극 공연에 출연한 실적이 있는 사람
나. 최근 3년 동안 연극 공연에서 1회 이상 연출을 담당한 실적이 있는 사람
다. 최근 3년 동안 1편 이상의 희곡을 연극 공연이나 관련 잡지 등을 통하여 발표한 실적이 있는 사람
라. 최근 3년 동안 3편 이상의 연극 비평을 관련 잡지 등에 발표하거나 1권 이상의 연극 비평집을 출간한 실적이 있는 사람
마. 최근 3년 동안 3편 이상의 연극 공연에 기술지원 인력 또는 기획 인력으로 참여한 실적이 있는 사람

 

 

또 예술활동증명 운영규칙 제20조에는 연극인의 범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제20조(연극 분야 인정기준)
① ‘연극’은 배우가 각본에 따라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말과 동작으로 관객에게 보여 주는 무대 예술이다.
② 연극 분야 범주로는 대사극, 음악극(오페라, 창극(국극), 뮤지컬), 무용극, 마당극, 거리극, 마임, 행위예술, 전통연희(판소리, 가면극, 인형극, 그림자극), 아동․청소년극, 교육연극 등의 세부 장르와 연극 비평이 있으며, 대표적인 직종으로는 연기, 연출, 극작, 비평, 기술지원(조연출, 안무, 조안무, 프로듀서, 예술감독, 드라마트루그, 무대감독, 장치, 조명, 음향, 도구, 분장, 의상, 음악, 영상, 사진, 연기지도, 대사지도, 안무지도, 동작지도, 무술지도, 작창, 각색, 번역, 번안, 윤색, 재구성 등), 기획 등이 있다.
③ 학생 공연 참여나 지도는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④ 작품 개발 차원의 낭독 공연은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⑤ 교육연극의 경우 무대공연을 목적으로 하되 해당 공연이 일정 정도의 예술적 성취를 이룬 경우에만 인정한다.

 

 

이에 더해 예술활동증명 운영규칙은 위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70세 이상의 원로, 경력단절 연극인, 특별한 작업 방식(긴 주기의 작품 발표 등)의 연극인까지 인정할 수 있도록 세부 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니까 꼭 예술활동증명을 받지 않았더라도 이런 기준으로 연극인 여부를 판단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신진 연극인의 문제가 있다. 사실 신진 연극인들이야말로 연극계의 미래가 아닌가? 어떻게든 노력하여 멈췄던 연극계를 다시 작동한다 해도 미래 인력이 없다면 언젠가 연극계는 심각한 공백으로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물론 위의 예술활동증명 기준대로라도 최소 필요 작품 편수를 짧은 기간 안에 모두 채울 경우 인정받을 수는 있다. 즉 예를 들어 전문 연극을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3편에 출연했거나 1편을 연출했다면 곧바로 기준 충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에 해당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예술활동증명 운영규칙을 잘 살펴보면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다.

제29조(예술인 산업재해보상보험 가입 관련 특례)
① 심의위원회는 예술인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이라 한다)에 가입하기 위해 예술 활동 증명을 신청한 사람에 대하여 서면 계약서를 근거로 산재보험 가입 지원에 한하여만 유효한 예술 활동 증명을 한시적으로 할 수 있다.
② 예술인 산재보험 가입 관련 특례로 예술 활동 증명을 받은 사람은 이후 정식으로 예술 활동 증명을 신청하여야 한다.

제30조(표준계약서 체결 예술인 사회보험료 지원 관련 특례)
① 심의위원회는 ‘표준계약서 체결 예술인 사회보험료 지원’ 사업에 신청하기 위해 예술 활동 증명을 신청한 사람에 대하여 서면 계약서, 보험료 납부 관련 자료 등을 근거로 당해 사업에 한하여만 유효한 예술 활동 증명을 한시적으로 할 수 있다.
② 표준계약서 체결 예술인 사회보험료 지원 관련 특례로 예술 활동 증명을 받은 사람은 이후 정식으로 예술 활동 증명을 신청하여야 한다.

그러니까 산재보험 가입이나 사회보험료 지원과 관련하여 특례를 두고 있는데 이는 정식으로 예술활동증명을 받지 못 했더라도 서면계약서를 근거로 한정적인 목적의 예술활동증명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그래서 경력이 짧은 신진 연극인들도 이에 따라 산재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고 사회보험료도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연극계의 긴급 구난을 위하여 연극인의 범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면 반드시 신진 연극인들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려면 위의 특례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 텐데 그 근거로는 일단은 계약서가 확실하겠지만 올해 예정으로 세웠던 공연계획서 정도까지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이에 대해 급조된 자료를 제출하는 등의 부도덕 행위를 우려할 수도 있겠으나 코로나 사태 진정 후 일정 기간 안에 그 계획을 그대로 또는 그에 준하는 정도로 실행하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면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할 것이다.

긴급 구난의 대상을 정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자칫 누락될 경우 바로 치명적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느슨한 원칙이 정답일 수도 있다. 소위 부정수급을 방지한다고 까다롭게 세운 원칙 때문에 발생하는 사각(死角)의 비극을 막으려면 그래야 한다.

 

 

우리나라가 특히 메르스 사태 때 범한 시행착오로부터 많은 깨달음을 얻어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 전세계 모범이 될 만한 방역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메르스 사태 때 연극계에서 벌어진 상황은 그 시행착오의 정도가 당시의 우리나라 평균치보다 훨씬 심했다. 그렇다면 더 많이 깨닫고 더 많이 개선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그 깨달음은 연극계 이전에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해야 할 정부 당국에 우선 필요하겠지만 연극계 일반의 생각이 올바른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을 때 잘못된 정책을 막고 올바른 재난 구호가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난은 물러갈 것이다. 그리고 연극계도 다시 움직일 것이다. 그때 사라지고 안 보이는 동료들이 없기 바란다. 다들 어렵고 힘들더라도 모든 연극인과 연극단체들이 다시 숨 쉬면서 함께 움직이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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