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연극고등학교, 연극에 날개를 달다!
글_이연심(무학여자고등학교 교사)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교사들은 학생이 없는 학교만 지키고 있다. 더욱이 3월에 개교하기로 한 학교는 아직까지 한 번도 교문을 열지 못했고 새내기 신입생들은 새로 산 교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아이를 키워 본 엄마들이라면 아기의 머리에 모자를 씌우거나 예쁜 핀을 꽂아 두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무도 잘 안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아기는 도리질을 하며 모자를 벗어 던지고 핀을 뽑아 버린다. 예뻐 보이는 것보다 불편함을 참을 수 없을 테니. 그런데 코로나19는 그런 아기들조차 마스크를 얌전히 쓰고 있도록 만들었다. 얼굴의 대부분을 가린 마스크는 성인보다 호흡수가 많은 아기들에게는 훨씬 답답하고 불편한 것일 텐데도 말이다. 개원이 미뤄진 아이들은 집안에서 몸부림을 치다가도 밖에 나가 놀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 투정을 부리지도 않고 스스로 마스크를 찾아 쓰기도 한다. 어른들이 느끼는 공포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아이들의 일상의 행동을 바꿔 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코로나19가 바꾸어 놓은 우리 모두의 일상은 대단히 낯설다. 이 가운데 거창 연극고등학교가 개교를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교사들은 학생이 없는 학교만 지키고 있다. 더욱이 3월에 개교하기로 한 학교는 아직까지 한 번도 교문을 열지 못했고 새내기 신입생들은 새로 산 교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이런 낯선 상황이 무척 어색하지만 거창연극고등학교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고등학교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전문인 양성 교육과정 중 연극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가 되고, 우리나라 전체 고등학교 학교 수(2,356개교)와 비교해 보면, 전체 고등학교 중 1%의 학교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19년 기준 전국에 예술고등학교가 29개교 있으며, 그것도 서울 6개교, 경기 4개교가 집중되어 있다. 그 외 지역교육청에는 각 1~2개교가 있고, 제주지역에는 없다. 그러니까 수도권 지역에 전체 예술고등학교의 1/3이 집중되어 있는 셈이다.
예술고등학교는 특수목적고등학교(이하 ‘특목고’)의 형태 중 하나인데, 특목고란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90조)를 말한다. 일반계고등학교와 달리 특목고에서는 과학, 외국어, 예술, 체육 등 각 특수하고 전문적인 분야를 미리 학생들에게 습득시켜 그 분야의 전문가를 조기 양성을 하는 목표로 설립되었다.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예술고등학교, 체육고등학교,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 등의 특목고가 있는데, 전국에 158개교(2019년 기준)가 있다. 특목고 중 예술고등학교는 29개교이고 이 중에서 연극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는 24개교 정도이다. 그러니까 연극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고등학교는 특목고 중에서 15% 정도이며, 전체 고등학교(2,356개교) 중에서는 1% 정도이다.(물론 일부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연극관련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고려한다면 이 수치는 달라진다.) 이 1%의 학교 중 연극고등학교는 없다. 그러니깐 거창연극고등학교가 처음인 것이다. 그래서 이 작은 학교의 개교가 연극교육 분야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또 향후 이 학교가 어떻게 운영되는가에 따라 그 의미는 매우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이 학교의 개교에 주목해야 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거창연극고등학교는 기숙형 대안 학교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연극고등학교가 될 전망이다. 거창군의 옛 위천중학교 부지에 설립된 이 학교는 연극뮤지컬과를 개설하여, 정규교육과정 속에서 연극과 뮤지컬을 가르칠 예정이다.
2017년 밀양에 공립형 대안학교로 영화고등학교를 설립한 경상남도교육청은 맞춤형 다양성 학교 설립 정책에 따라 이번에는 거창에 연극고등학교를 세웠다. 물론 코로나19로 아직 교문을 열지는 못했다. 4월7일경 개교기념행사를 계획하고 있으나 현 상황을 고려하면 이마저도 힘들 것 같다. 거창연극고등학교는 기숙형 대안 학교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연극고등학교가 될 전망이다. 거창군의 옛 위천중학교 부지에 설립된 이 학교는 연극뮤지컬과를 개설하여, 정규교육과정 속에서 연극과 뮤지컬을 가르칠 예정이다.
현재 2020년 신입생으로 1학급 15명씩 2학급으로 총 30명의 학생을 선발해 놓은 상태이고, 경남지역 학생이 90% 정도이다. 전교생이 30명인 미니(mini)학교이니 만큼 교직원 숫자도 적다. 교장을 포함하여 교사는 8명 남짓이고, 교육 공무직을 포함해도 19명 정도로 아주 조촐하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운 교육 철학은 연극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듯하다.
“Play with Play!”
놀이로 연극하고 연극하며 놀자는 것이다. 놀이를 하듯 연극을 하고 연극으로 행복한 학생들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기도 한다.
입시와 취업 앞에서 연극이 학생들의 능력과 비전을 구분하는 칼날이 되어서는 안된다.
초대 교장인 서용수 교장(거창연극고등학교 교장)은 입시 연극을 지양하고 연극을 통해 즐거움(Pleasure), 관계(Link), 행동(Action), 숙성(Yeast)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한다. 그래서 활동중심의 재미있는 수업, 좋은 관계를 만드는 평화 교육, 자신의 꿈을 실행으로 옮기는 진로교육, 생각을 숙성시켜 연극으로 표현하는 공연예술학교를 목표로 삼는다. 또한 경쟁 위주의 대학 입시를 목표로 하지 않으며, 대안적 가치로 아이들과 함께 3년 동안 연극으로 행복하게 놀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교육과정을 운영하다보면 연극으로 대학에 진학하길 원하는 학생들도 있을 수 있고, 중도에 꿈이 변하여 연극 이외의 진로를 선택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용수 교장의 말에 의하면, 연극학과의 진학을 원하면 당연히 진학 지도를 할 것이지만, 연극 이외의 진로를 생각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하여,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할 것이라고 한다.
연극교육은 연극으로 행복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므로 연극으로 능력을 평가하고 미래를 예단하여 구분하여서는 안 되며, 연극을 하고 싶어 입학을 하였다가 꿈이 바뀌었다 해도 학교는 그들 모두를 품고 교육할 수 있는 안전망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전과나 전학을 생각하지 않아도 연극을 통해 삶의 비전을 찾고 자신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고등학교이든 대학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입시와 취업 앞에서 연극이 학생들의 능력과 비전을 구분하는 칼날이 되어서는 안된다.
부디 30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연극고등학교가 한 해 한 해 성장하고 교육적 성과를 내어, 경남뿐 아니라 전국의 시도교육청에서 연극고등학교를 개교하고 싶어 안달이 났으면 좋겠다.
거창연극고등학교의 교육목표는 교육과정이나 일과 시간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소위 대학 입시에 필요한 과목은 국어, 영어, 한국사 등 기초과목 이외에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 전문교과, 특히 연극교과를 최대한 많이 선택하고 있다. 거기다 일반교과의 절반 정도는 연극과 뮤지컬 공연과 관련한 교과 지원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예컨대 국어 수업에서는 글쓰기를 통해서 극작 훈련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연극 이외의 교과도 연극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과정으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물론 음악이나 미술 역시 공연을 위한 교육과정임에 틀림없다.
일과 시간표도 특이하다. 보통 고등학교 1시간 수업은 50분인데, 거창연극고등학교의 1시간은 75분이다. 연극 활동 중심의 수업을 운영하려면 50분 수업은 너무 짧기 때문에 거창형 블록수업시간을 고안해 낸 것으로 보인다. 학교의 설립에서부터 일과 시간표에 이르기까지 ‘연극’을 중심에 두고 설계한 것이 한 눈에 보이니 연극교육을 하는 사람에게는 참 가슴 벅찬 일이다.
이제 첫 출발!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고등학교가 첫 수업을 하는 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교사의 심장은 얼마나 떨릴까? 그 떨리는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해 못내 아쉽지만, 내게도 올해의 첫 수업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 ‘떨림’을 가늠해보려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비록 첫 수업이 미뤄지긴 했지만 기다림에 숙성된 떨림은 예년과는 사뭇 다를 것 같다.
부디 30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연극고등학교가 한 해 한 해 성장하고 교육적 성과를 내어, 경남뿐 아니라 전국의 시도교육청에서 연극고등학교를 개교하고 싶어 안달이 났으면 좋겠다. 생각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