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의 늪에 빠진 청춘들에게

연극 <인구론>

 

글_마동준

작       최준호
연출   정형석
제작   드림시어터컴퍼티
장소   소극장 혜화당
일시   2020년 4월 22일 ~ 4월 26일

 

‘굶는과’.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이 취업난을 겪어 굶는다는 것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신조어이다. 이는 비단 국문과뿐만이 아니라 취업 시장에 몸을 내던진 젊은 세대들 대부분에게 해당하는 말이 될 것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람이 필요했던 여러 일자리가 기계들로 대체되었다. 실제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현재, 20~29세의 고용률은 60%도 채 안 되는 54.5%에 해당하며 이는 기술이 발전되어감에 따라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 속에서 많은 젊은 세대들이 취업난으로 인한 피해를 보았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바로 ‘인문계’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일 것이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인문계의 특성상,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회사들이 추구하는 인재상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아 취업에 특히 더 어려움을 겪는다.

 

 

이 연극의 제목 <인구론> 역시 ‘인문계의 구십 퍼센트는 논다’ 의 약자로, 인문계 학생들이 취업난으로 허덕이는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연극의 남주인공 ‘오승환’은 고등학생 시절 전국 3위에 빛났던 수재였지만 10년째 사법고시에서 낙방하고 있는 인문계 졸업생이다. 여주인공인 ‘게르간투스’(지구 이름 ‘김태희’)는 외계인으로, 통역학과를 졸업한 인문계 졸업생이며 구직을 위해 지구로 오던 중 불시착하여 승환을 만난다. 극은 이 두 인물이 서로의 현실에 공감하고 협력하여 일자리를 찾는 과정을 무겁지 않고 오히려 코미디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인구론>은 대학로에 위치한 소극장 ‘혜화당’에서 상연되었으며 무대 소품 역시 작은 벤치 하나와 나무 두 그루가 전부이다. 극의 배경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이 두 소품의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단지 몇 개의 소품을 추가하거나 조명의 활용으로 배경의 변화를 관객들에게 인지시킨다. 이 좁은 공간은 때로는 공원이나 방 안, 술집이 되기도 한다. 이때 돋보인 것은 소품의 활용이다. 벤치 위에 몇 개의 쿠션을 두어 현재 배경이 방 안임을 나타내고, 술집임을 나타낼 때는 작은 미러볼을 둔다. 이렇듯 <인구론>은 소극장이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적은 소품들만으로 최대의 공간을 활용하여 관객들에게 주는 혼란을 최소화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부분은 조명의 활용이다. <인구론>의 조명은 코믹한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두컴컴한 무대 분위기를 조성한다.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배우들의 얼굴에는 음영이 드리워져 있고, 무대 뒤편 역시도 조명이 직접적으로 비추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연극에서 배우들은 어두운 조명 아래서는 슬프거나 진지한 연기를 하며, 밝은 조명 아래서는 유쾌하고 즐거운 연기를 한다. 하지만 <인구론>의 배우들은 어두운 조명에 상관없이 본인만의 밝고 코믹한 연기를 선보인다. 이는 연극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인구론>은 청년실업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어두운 조명과 무대는 청년실업이 만연한 우울한 세상이며 코믹한 배우들은 그 세상 속에서 인문계 졸업생이라는 무거운 꼬리표를 달고 살지만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살길을 찾아 나서는 청춘들의 모습인 것이다. 이렇듯 이 연극은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조명의 활용을 통해서 주제 의식을 전달하였다.

 

 

이 연극이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데에는 주제뿐만 아니라 인물의 설정 역시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주인공 ‘오승환’은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완벽한 주인공이 아니다. 오히려 실제 우리 주위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인물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전국 석차 3등 출신이 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자 친구였던 성혜가 시간을 갖자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술에 잔뜩 취해 연락하거나 차인 뒤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 태희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나뭇잎을 하나씩 떼며 알아보는 찌질한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친근함을 불러일으켜 더 큰 공감을 얻어낸다.

 

 

하지만 등장인물 중, ‘이성혜’의 형상화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연극의 연출가에 따르면 <인구론>은 똑같이 청년실업을 주제로 한 독립 영화 <성혜의 나라>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영화에서의 승환은 7년째 고시를 낙방하였고, 연극에서의 승환은 10년째 고시를 낙방 중이니 시간상으로는 3년이 지난 것이다. 하지만 그 3년 사이에 성혜는 아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있다. <성혜의 나라>에서 성혜는 회사들의 계속된 불합격 통보에도 포기하지 않고 취업 준비와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 새벽 신문 배달을 하는 이 시대 힘든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인구론>에서의 성혜는 명품 가방을 사주지 못하는 승환에게 실망하여 권태기를 느끼며 태희의 얼굴이 아쉽지만 몇 군데만 손보면 될 것 같다는 말을 서슴없이 건넨다. 또한 승환과 헤어지고 1년 만에 건물주에게 시집을 가는, 그야말로 속물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이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극을 코믹한 분위기로 이끌기 위한 변화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점을 고려하고서라도 ‘굳이 영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언급을 하면서까지 전작의 인물을 이렇게까지 망가트리고 변화시켰어야 하나?’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동시에 아쉬운 부분이다.

 

 

<인구론>은 청년 실업이라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회 문제에 대해 다루고 이를 마냥 무겁지만은 않게 표현하였다. 이는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는 한편, 코믹함에 치중하여 인문계 청년들의 취업난이라는 제재가 빛이 바랜 것 같은 아쉬운 측면도 존재한다. 한편, <인구론>의 등장인물들은 외계별과 지구를 이어주는 통역사가 되거나 외계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 강사가 되는 등, 각자의 능력을 살려서 구직에 성공한다. 비록 이 결말이 비현실적이고 너무나도 먼 미래를 상정했다는 점에서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연극이 시사하는 바인 ‘인문계를 졸업했을지라도 본인의 능력을 갈고닦다 보면 그 능력이 언제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쓰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는 관객들에게 큰 무리 없이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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