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한 판, 생존 신호가 되다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

정명문(뮤지컬평론가)

작/작사 : 박해림

작곡 : 황예슬

연출 : 장우성

음악감독 : 양주인

기획/제작 : (재)안산문화재단, (주)아이엠컬쳐

출연 : 유승현, 안재영, 송유택, 김현진, 임진섭, 신창주, 박대원, 김승용, 구준모, 조현우, 안지환, 곽다인, 김찬, 황순종

일시 : 2020.7.4.~8.30

장소 :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코튼홀

2020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 앵콜 포스터

스포츠 경기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승패 때문이다. 스포츠를 소재로 삼은 텔레비전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 등은 여기에 삶에 서툰 주인공의 성장담을 부각시켜 흥미를 높이곤 하였다. 주인공은 우연히 야구, 피구, 농구 등에서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고 게임 룰을 익히는 과정을 통해 최종 단계에서 승자가 된다. 물론 주인공의 로맨스는 덤이다. <마지막 승부>, <피구왕 통키>, <공포의 외인구단>, <슬램 덩크>처럼 사랑받았던 작품에서 위 공식은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사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대중물은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역동적인 면으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고 성공작품들도 많다. 그런데 뮤지컬에서는? 2020년 현재까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뷰티풀 게임>이나 김건덕 투수의 생애를 토대로 한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외에는 스포츠 뮤지컬은 제작된 바가 없다. <뷰티풀 게임>의 경우 사회 구성원의 갈등을 그리는데 축구가 활용되고,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는 투수와 타자의 대결로 장면화 되었다. 즉 게임이 전면에 나오지 않았다. 사실 축구나 야구나 플레이어가 팀 당 10명 전후 이고, 경기 장면에는 두 배 이상의 인원이 필요해진다. 그러다보니 규모 확장은 필수고 생동감 있는 연출도 필요하다. 즉 뮤지컬로 스포츠 장면을 만들려면 해결할 것들이 많다.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스포츠 뮤지컬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중소형 무대에서 공연되면서도 드리블, 패스, 맨투맨 방어, 덩크슛, 준비 운동 등 실제 농구 장면들이 잘 펼쳐진다. 이는 농구 스킬트레이너(안희욱)와의 훈련과 안무의 긴밀한 장면 구성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게다가 라이브 연주는 역동성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이는 음악, 안무, 연출 등 분야별 전문가와 협업을 잘 이뤄낸 성과이기도 하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작품이 상업화 이전 다양한 무대에서 검증하여 완성도를 높인 제작 방식(인핸스먼스 enhancement deals)을 거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창작 플랫폼 페스티벌에 올라간 학생 작품에서 출발한다. 안산문화재단 측은 가능성을 보고 재단 지원을 결정했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섭외하여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지역 공연, 베세토 연극제 참여, 한 달 이상 대학로 공연 진행, 방방곡곡 사업 참여 등을 통해 이 작품을 다양한 관객들과 만나게 하였다. 상업 제작사와 공동 제작된 2019년 버전부터는 지원 사업 중 받았던 관객 피드백 수용과 디테일한 연출 보완 및 민간 제작사의 기획 노하우가 합쳐지면서 작품은 탄력을 받게 된다. 2020년 이 작품은 코로나로 관객동원이 부진했던 시기에도 성황리에 공연을 끝마치는 저력을 보여주게 되었다. 공공에서 만들어 시장에서 순행한 이 작품은 제작 방식의 좋은 선례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한편 이 뮤지컬은 기존 스포츠 소재물의 공식과 비슷한 듯 다르다. 오합지졸 농구부가 전국대회에 우여곡절 끝에 출전해서 진다. 이들의 내년 목표는 전국 제패이지만 가능성은 별로 없다. 멋진 승부는 없지만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은 상당히 만족스러워한다. 닮은 듯 다른 스포츠 뮤지컬의 방향성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해보자.

15년 전에도, 15년 후에도 변치 않는 진실

이 작품에는 평범해서 주목받지 못한 인생들이 나온다. 어릴 때 암기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못 알아보는 상태, pc방에서 게임하는 게 낙인 상록구청 농구부원들이 그렇다. 32살인 종우도 구청 농구부 코치지만 성과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이야기는 학교에선 왕따 찌질이, 집에선 투명 인간인 17살 수현에서 출발한다. 수현은 학교 폭력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말짱하게 깨어난다. 대신 학교를 맴도는 귀신 승우, 다인, 지훈을 보게 되면서 소동을 겪게 된다. 수현은 귀신 삼총사의 막무가내 같은 빙의로 수학 선생님께 칭찬받기도 하고, 덩크슛으로 농구부에 들어가며, 속초 전지훈련과 전국 대회도 출전하게 된다는 것이 줄거리이다.

이 작품의 장점은 뮤지컬 화법을 적재적소에서 잘 활용하였다는 것이다. 수현의 외로움, 승우의 농구 사랑, 지훈의 허세, 상태의 현실, 다인의 사연, 종우의 죄책감처럼 각 인물의 감정은 에피소드 속 노래로 캐치되도록 짜여 있다. 또한 귀신 삼총사 빙의처럼 비현실적인 방식도 적당한 동작으로 연출하여 에피소드의 공백을 줄인다. 적절한 리듬 속 가사와 퍼포먼스가 캐릭터를 이해시키니, 노래 전후 상황 설명을 상세히 하지 않아도 장면 이해에 문제가 없다. 뮤지컬의 기본을 지키면서도 스토리가 흘러가는 이 방식은 적절한 사례로 참조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의 두 주인공, 수현과 종우는 타인과 어울리는 방법을 자의로, 타의로 익히지 못한 인물이었다. 17살 수현이 타인과 어울리지 못한다면 32살이 되더라도 여전히 멈춰진 채 살게 될 것이다. 종우는 15년 전 전지훈련을 간 속초 바다에서 친구들(귀신 삼총사)을 잃었다. 종우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 왔다. 이 둘 사이에서 귀신 삼총사는 딱 17살스러운 해결 방식을 제시한다. 겁먹을 필요 없이 자신을 믿고(인생은 선빵) 공만 보고 달리고(농구의 기술), 실패해도 한번 더하고(덩크슛) 아무 생각 없이 농구 한판(농구 한판)해보면 된단다. 삶에서 무언가 몰입하는 그 순간은 분명 행복하다. 나 혼자 해결하지 못한다면, 속으로 고민하지 말고 타인과 부딪치고 소통하면서 틀을 깨야 한다. 타인은 나에게 세상의 일부이고, 나 역시 타인에게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결국 수현은 농구를 하면서, 종우는 자신과 닮은 혹은 죽은 친구의 모습을 수현에게 느끼면서 차츰 변한다. 혼자에서 우리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사소한 지지가 인간을 살게 하는 힘이란 것을 슬쩍 보여준다. 수현이 차후 학교 생활과 상록구청 농구단의 미래는 작품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수현이는 상태라는 친구가 생겼고, 종우는 농구부를 열심히 지도할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삶이 극적으로 바뀌지 않았지만 처음보다 한 발자국 성장했다는 것, 성과주의 시대에서 맞지 않는 결론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변화는 바로 이 한걸음부터 출발한다는 단순한 사실은 공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세상, 두근거리게 하는 넘버들

<전설의 리틀농구단>의 무대는 농구 코트, 골대, 철조망, 사물함이 전부이다. 무대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신 소품과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주조색은 파란색이다. 배우 6명은 1인 3역을 해낸다. 농구단, 귀신, 일진과 같은 무리들은 운동복(파랑), 교복(회색), 일상복(검정색)처럼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여기 나온 복장들은 고등학생의 주 복장이란 점에서 현실감이 있다.

<전설의 리틀농구단>에 수록된 노래는 총 18곡이다. 뮤지컬 넘버는 농구를 소재로 했기에 전반적으로 유쾌한 에너지가 담겨있다. ‘농구 한판’ ‘나는 너에게 조던’ ‘덩크슛’ 등은 드럼, 베이스의 경쾌한 비트감과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통해 신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각 노래들은 독창으로 시작되더라도 후렴구에서 합창이 되면서 팀으로 함께 간다는 느낌도 확실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9곡의 독창이 지루하지 않다. 창작자의 역량이 돋보이는 건 전반부와 후반부 곡이 매칭 된다는 점이다. 스토리의 두 주인공 수현과 종우가 유사한 상황임을 노래를 통해 드러낸다. 첫 곡 ‘이 코트 안의 우리는’은 농구공이 움직이는 느낌을 다양한 악기 연주로 생생하게 살려낸다. 키보드, 베이스, 드럼 모두 공이 튀기는 듯한 느낌을 최대한 내준다. 또한 악기 하나로 주 멜로디를 각인시킨 후, 후렴부에 첼로, 베이스, 기타를 추가하여 풍성한 분위기를 보강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심지어 실내 코트 경기장에서 들리는 신발 소리까지 구현하였다. 거리 농구를 하는 아이들에서 출발한 이 곡은 후반부에 전국 경기에서 나온다. 경기 규모가 커졌음을 같은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구조 신호’의 경우, 초반에는 수현의 자살 장면에 등장하는데, 후반부에는 갑자기 남겨진 종우의 죄책감을 드러낸다. 수현과 종우의 행동이 사실은 구조요청임을 같은 제목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수현의 시선과 종우의 시선을 같은 제목의 노래로 교차하여 공감대를 넓히는 영리한 전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노래로 주제와 분위기를 동시에 전달해야 하는 뮤지컬에 농구라는 스포츠의 역동성까지 살려냈다. 15년 전의 아이들과 15년 후의 아이들을 만나게 하여, 접점을 찾아주는 구조는 어디서 본 듯하지만, 뻔한 결론으로 나아가지 않기에 좋다. 이 작품이 뮤지컬이 아니었으면 그 역동성이 살아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다 할 특기가 없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성과가 없다면, 그 삶은 무기력해야하는 걸까? 그저 살아있다는 것으로 그저 땀 한 방울 흘리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면 안 되는 것일까? 살아있음에 대한 보편적인 진리, 하지만 우리가 놓쳐버린 이야기를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발랄하게 노래한다. 실패하더라도 한숨자면 땡. 다시 새로 시작하면 된다. 그래서 보통의 삶을 뻔하지 않게 보여주는 이 뮤지컬에 관객들은 열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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