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브레히트는 古典主義 작가인가? (8)

이재진 (단국대 명예교수)

진실을 쓸 때 어려운 점 다섯 가지

헤겔(Friedrich Hegel, 1770 – 1831)진실은 늘 구체적이라고 했다. 하나하나의 개념이나 사실은 전체적인 보편성과 구체적으로 연계되며 서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브레히트는 [조처](Die Maßnahme. 1930)에서 진실은 구체적이다. 진실은 실제적이다. 진실은 사실적이다라고 말했다. 브레히트는 글을 쓰면서 겪은 어려움을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히틀러 독재에 저항하는 문인협회에서 출간하는 잡지(Unsere Zeit, 1935)에 실린 글이다. 브레히트의 작품에는 이런 요소들이 서로 작용하고 맞물린다.

오늘날 거짓과 무지와 싸워 이기고 진실을 쓰려는 사람에게는 극복해야 할 어려운 점이 최소한 다섯 가지는 된다. 진실을 온통 억누르려 하기에 무엇보다 진실을 쓰려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감추려 든다 해도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아볼 수 있는 ‘슬기로움’이 있어야 한다. 진실을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도 있어야겠고, 진실을 손에 넣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분별해 낼 수 있는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진실을 널리 퍼트리려면 ‘술책’도 있어야 한다. 파시즘 밑에서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어려운 점들이 너무나 크다. 쫓김을 당하고 도주하며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어려움은 있게 마련이고, 심지어 시민들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나라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조차 이런 어려움은 있는 것이다. … (전문을 보려면, [한밤의 북소리]. 지만지 2018.)

Die Maßnahme(출처: 구글)

[갈릴레이 생애](Leben des Galliei. 1939/45)

갈릴레이는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하늘을 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땅덩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던 로마 교황청은 이를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교황청은 하나님의 성전이 흔들리고, 하나님의 위상이 손상된다고 보았다. 악명 높은 종교재판소의 위협에 갈릴레이는 무릎을 꿇고 결국 지동설을 철회한다. “맹세합니다, 저의 오류와 이단을 저주하고 부끄러워합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그 비슷한 소리도 입으로든 글로든 써내지 않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굴하지 않는 학자로서의 양심을 지키고 용기를 보여주리라 믿으며 기다리고 있다. 종교재판소에서 갈릴레이가 무사히 풀려나온다. 스승에게 실망한 제자 안드레아스는 부르짖는다.

안드레아스(큰 소리로)

오 너 불행한 로마여, 너에게 영웅이 없다니!

갈릴레이(조용히)

아니, 로마는 불행한 것이지, 영웅이나 고대하고 있다니!

종교재판소의 눈을 피해 갈릴레이는 연구를 계속한다. 완성된 논문을 제자를 통해 끝내 해외로 빼돌린다. 진실을 밝히려면 이와같이 용기뿐 아니라 슬기와 술책이 필요하다. 바티칸의 눈을 피해 연구하고 투쟁하는 갈릴레이를 통해 브레히트는 히틀러 파쇼정권에 대항해서 투쟁하는 지식인들이 얼마나 어려운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바티칸은 나치와 같이 대중을 착취하는 지배세력으로 비췬다.

갈릴레이는 새 시대를 맞이하는 물리학자이다. 하지만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브레히트는 1945>갈릴레이<를 개작한다. 물리학자들의 횡포를 그대로 받아드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혜롭고 용기있는 늙은 물리학자의 모습을 관습에 젖은 탐욕스런 늙은이로 바꾸어 놓았다. (에세이 5 참조)

갈릴레이의 생애(국립극단, 이성열 연출, 2019.)

변증법적 연극

마르크스의 핵심사상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이념 투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독일이 통일된 후 나는 베를린을 찾아갔었다. 훔볼트 대학의 정문 벽에는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1804-1872)의 열한 번째 명제가 적혀 있었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여러모로 분석해 놓았다. 그러니 이제 남은 일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 해결방법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을 뿐이다. 브레히트는 서사극이란 무대를 통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변화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었다.

알려진 것이란 모름지기 잘 알려져 있기에 바로 그래서 인식되지 않는다.” 이런 헤겔의 인식론은 브레히트의 무대 철학과 일치한다. 만년에는 자신의 서사극을 변증법적 연극이라 불렀다. 뻔 한 것을 일단 낯선 것으로 설정한다, 부정의 부정이란 변증법적 기법을 무대에 실용화했다. 무대의 환상속에 납치된 관객을 다시 풀어주기 위함이다. 브레히트는 초기에 자신의 서사극을 감성(emotio) 대신 이성을(ratio) 내세우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이라 부르지 않았던가! 환상속으로 빠지려는 관객을 막기위해 낯설 만드는 이런 기법을 소외효과(Verfremdungseffekt)라 부른다. 극의 환영속에 빠지지 않은 관객은 무대와 거리를 가지고 진실(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관객을 토론의 장으로 끌어내 판단력을 가지고 현실(진실)을 인식하고 직시하게 유도한다. 마력(PS), 볼트(V), 왓트(W)처럼 일반화된 고정개념으로 만들고자 브레히트는 ‘V-Effekt’라고 약자로 썼다.

사천의 선인(출처: 구글)

[사천의 선인] (Der gute Mensch von Sezuan. 1940)

이 작품은 중국의 사천성을 무대로 두고 있지만 중국하고는 물론 전혀 관계가 없다. “착하면서도 살아남기란 불가능한가(gut zu sein und doch zu leben/ to be good and yet to live)? 살아남으려면 착할 수가 없는가? 이런 변증법적 질문이 주제로 담겨있다.

살기 어렵다고 사람들이 아우성친다. 너무 시끄러워 신들의 귀에까지 들린다. 신들 셋이 어쩔 수 없이 지상에 내려와 둘러보기로 한다. 착한 사람이 살고 있음을 신들은 증명하고 싶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삭막하고 인정이 없다. 신들은 하룻밤 지낼 방하나 구하지 못한다. 이때 센테(Shen Te)라는 창녀가 친절을 베풀어 방을 하나 내준다. 하룻밤을 신세지고 떠나면서 신들은 센테에게 슬쩍 돈을 찔러준다. 그 돈으로 착하게 살라는 조건이 붙는다. 창녀는 담배가게를 차린다. 친척이나 이웃이 모두 센테에게 달려들어 뜯어먹는다. 마음이 착하고 약한 센테는 이들을 막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수이타(Shui Ta)라는 가상의 인물을 사촌이라며 등장시킨다. 인정사정없고 야무진 사촌이 등장해서 어느 정도 수습을 한다. 마음씨 좋은 푼틸라와 술에서 깨어나면 대지주의 본색을 드러내는 또 다른 푼틸라처럼, 착한 센테와 매정한 수이타가 번갈아 등장한다. 점점 더 수이타가 자주 친척들 앞에 나타난다. 결국 센테는 아예 보이지 않게 된다. 이에 친척들은 수이타를 센테의 살인자로 고발한다. 법관석에는 신들이 앉아있다. 수이타는 즉 센테는 착하면서 그러면서도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지 신들에게 울먹이며 하소연한다. 애걸하며 그 해결 방법을 따지듯 신들에게 묻는다. 난처해진 신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비겁하게(!)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 저세상으로 도망치고 만다. 에필로그에서 배우가 무대앞에 나타나서 관객에게 다그치듯 호소한다. 신에게 묻지 말고 우리 스스로 그 해결점을 찾아보자고!

관객여러분, 어서,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아 보십시요!

좋은 해답은 분명 있을 겁니다, 있지요, 있고말고요, 있습니다!

억척어멈과 자식들(출처: 구글)

[억척어멈과 자식들] (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 1941)

17세기 유럽은 30년 전쟁으로 기아와 죽음에 시달린다. 억척스런 어멈 하나가 아이들 셋을 데리고 수레를 끌며 군대를 쫓아 물건을 팔며 살아간다. 어멈은 전쟁터에서 아이들을 하나씩 잃는다. 어멈은 전쟁을 증오하지만 그러면서도 전쟁이 끝날 가 걱정한다. 삶과 생존의 갈림길에서 어멈은 노래한다, 대포 위에 빨래를 널면서!

Der Mensch denkt; Gott lenkt. /Man proposes; God disposes.

인간은 생각한다, 하느님이 주관하신다고.

창세기의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에 맞추어 만들었지만(So God created man in his image), 포이어바하는 하나님을 인간의 곁으로 끌어내렸다. “인간은 자신의 형상에 맞추어 신을 만들어냈다.”(Man made God in his image.).

억척어멈은 신의 존재에 대한 인간의 착각을 일깨어주고 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신이 변화하리라고는, 변화를 주리라고는 처음부터 브레히트는 기대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좋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려면 신에 의지할 수는 없다. 이제 남은 희망은 하나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제도를 변화시킬 때 비로소 그런 세상이 올지 모른다고 브레히트는 결론짓는다.

원래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생각하고, 하느님은 주관하신다.” (Der Mensch denkt, Gott lenkt. /Man proposes, God disposes.) 즉 인간이 꾸미는 일은 하나님이 이끌어 주셔야 가능하다. 아무리 예민한 눈을 가진 사람도 브레히트가 문장과 문장사이에 점을 하나 더 붙인 것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쉼표 >>> 쌍점). 기가 막히게 우리말로는 를 어느 곳에 붙이는가에 따라 그 뜻은 하지만 엄청나게 달라진다.

억척어멈은 극이 끝날 때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아이들을 하나씩 전쟁으로 잃었을 뿐이다. 전쟁의 참담함은 몸으로 겪지만 그 고통을 통해 배우는 것은 없다. 브레히트는 관객이 억척어멈을 통해 이런 모순을 배우리라 기대하고 또 요구한다. 변증법적 사고이다.

1949년 베를린에서 브레히트가 직접 연출했다. 억척어멈은 아이들과 마차를 끌며 무대를 돌고돈다. 서사극 무대의 모델(Couragemodell)이 되었다. 이 공연은 관객과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억척어멈<을 무대에 올리지 않은 독일의 유명 극단은 없을 것이다. Claus Peymann(1937 – ), Peter Zadek(1926-2009) 등과 같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지 않은 독일의 유명 연출가도 없을 것이다. 여배우들은 억척어멈이란 배역으로 유명세를 타곤 했다. Therese Giehse(1898-1975)는 물론 브레히트의 부인 헬레네 바이겔도 억척어멈으로 최고의 배우란 영예를 얻었다.

브레히트와 포이히트방거(출처:구글)

드디어 미국으로

드디어 1941년 미국으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미국에 먼저 와 있던 지인들의 많은 도움이 있었다. 브레히트의 멘토 Feuchtwanger(1884-1958), 연출가 Erwin Piscator (1893-1966), 영화감독 Fritz Lang (1890-1976) 등 등. 멀리 로스앤젤레스의 서부해안이 (santa monica) 시야에 들어오자 슬며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바다에 던졌다. 뉴욕은 30년대 잠깐 다녀간 적이 있지만 미국은 브레히트와 가족에게 너무나 낯선 땅이었다.

*본 기사의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필자의 주장에 따라 국립국어원의 규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3 thoughts on “

  1. 진실을 쓰기위해
    용기. 슬기로움. 기술. 판단력. 술책
    전 기술이 부족한거 같습니다 ㅎㅎ

    브레히트의 미국생활도 궁금합니다
    다음 연재가 기대됩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은 진실을 담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듯요. 요즘은 이러한 논의를 위한 화두조차 어디서 찾아보기 힘듭니다.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3. 브레히트는 7년 정도(1941-1947) 미국에 머뭅니다. 할리우드나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돈도 벌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지인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생활하기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2차 대전이 끝나자 미국내 독일사람들은 유태인 학살 등 2차대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독일국민 전체에게 아니면 히틀러와 그 일당에게만 물어야 하는가?” 토론합니다. 전후독일문제로 브레히트는 토마스 만 등과 마찰을 빚습니다. 국회 청문회에도 끌려갑니다. 이런 저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적지 않습니다만 다음 달에 나는 청문회만 가볍게 다룰 것입니다. 에세이는 12월(10회)로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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