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 4

-연극 교육을 위한 영상 콘텐츠 제작

글_오세곤(연극평론가)

코로나 19로 연극계는 대단히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특히 코로나 이후를 겨냥한 어설픈 진단과 대책들은 참으로 걱정스럽다. 그중에서도 연극 공연의 영상화는 이미 광범위한 실행에 옮겨진 상황이다. 이런 움직임에 연극계는 크게 반발하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가는 형국이다. 중앙이건 지역이건 공모사업마다 영상화를 조건으로 내놓으니 일단 맞추고 봐야 하는 것이 현장의 사정이다. 공공극장들이 다투어 영상화를 위한 시설비로 거액을 책정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 거센 흐름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앞서 10월 1일자 TTIS에 게재한 글 “뉴딜 3-매년 연극 1,000편에 대한 보편 지원”에서 연극 공연의 영상화는 그 용도가 우선 평론과 함께 기록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다음으로 학교를 필두로 하는 교육 현장에서 차선 내지 차차선의 방법으로 영상화된 공연을 활용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 연극 공연 영상 콘텐츠 제작의 바탕으로 공연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연극 다시보기(출처:한겨레21)

연극이 발달한 유럽에서는 일찍이 연극 공연을 녹음하거나 촬영하여 배포하였다. 그것은 연극을 위축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대중으로 하여금 연극 작품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효과를 나타냈다. 프랑스의 라디오 프랑스는 연극 공연 실황을 녹음하여 방송하고 그 테이프를 판매하기까지 하였다. 때로는 녹음만을 위한 공연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이후 TV가 일반화하면서 공연을 촬영하여 방송하고 녹화테이프나 DVD, CD를 판매하는 식으로 진화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어떤 일이건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고를 단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연극 공연의 영상화도 무조건 틀렸다고 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행에 옮기는 것이 현명한 태도이다. 이에 있어 무엇보다도 대단히 훌륭해 보여도 마지막 단계까지 정교한 설계가 없으면 결국 실패하고 마는 것이 정책이라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브라보 엄사장> 온라인 공연(출처:연합뉴스)

2015 교육과정에서 연극은 고등학교 예술교과 일반선택 과목이 되었다. 그동안 학교 교육에서 예술은 음악과 미술만 정규 교과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적어도 고등학교에서는 음악, 미술, 연극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울러 초등학교는 국어 교과에 대단원으로, 중학교는 국어 교과에 단원으로 연극이 포함되는 등 전체적으로 연극 교육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교육은 교육과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사도 있어야 하고 교과서와 교보재도 있어야 한다. 이 중 교사는 대학 전공학과에 1999학번부터 연극영화 교직과정이 설치되어 운영되어 왔고, 또 2002년부터 연극분야 예술강사들이 초중고에 파견되어 왔으므로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교과서도 2002년 최초의 고등학교용 교과서가 나온 이후, 2003년 고등학교용 교과서의 교사지침서와 중학교용 교과서, 2004년에는 중학교용 교과서의 교사지침서와 초등학교용 교과서 3종(저학년용, 중학년용, 고학년용), 그리고 2008년 초등학교용 교과서 3종에 대한 교사지침서가 나왔으며, 2013년에는 예고와 특성화고 전공생들이 사용하는 전문교과서로 3종(연극의 이해, 무대기술, 연극 감상과 비평)이 나왔고, 2018년에는 2015 교육과정에 근거한 일반 연극 교과서 3종(지학사, 천재, 금성)과 전문교과서 3종(연극의 이해, 연기, 연극 감상과 비평)이 나왔다. 그러니까 앞으로 세부적인 교재 개발 등,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일단 최소한의 요건은 갖춘 셈이다.

그러나 교보재를 보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계획은 고사하고 방향조차 없는 실정이다. 사실 교과서를 개발하면서 작품을 소개할 때마다 과연 이 공연을 학생들이 어떻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할지 고민이었고 궁여지책으로 교과서에 있는 QR코드를 클릭하면 한국예술기록원 사이트에서 공연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 교과서에 수록할 만큼 중요한 작품들의 공연 영상을 거의 확보할 수 없었다. 오래전에 공연된 작품들은 대부분 영상 기록 자체가 없었다. 또 최근에 공연되었어도 맘먹고 영상을 제작하지 않았으면 질이 떨어져 사용하기에 부적절하였다. 게다가 외국의 유명 작품들은 원작저작권자 측의 허락이 없으면 교육용으로 사용하는 데에도 제약이 컸으며, 저작권이 풀린 작품이라도 출연자 중 일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청소년극 <비행소년> 온라인 공연(출처:국립극단)

연극 공연의 영상 배포는 코로나 사태로 갑자기 나타난 현실이다. 따라서 이 방면의 기술은 무척 취약하다. 사실 제대로 된 영상 제작을 위해서는 일반 공연과 달리 촬영을 위한 콘티에 맞게 공연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공연 특성을 감안한 영상 편집 기술도 반드시 갖춰야 한다. 결국 그냥 공연의 부수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기획해서 제작해야 하는 것이 공연 영상 콘텐츠라는 뜻이다.

이제 초중고 교과서에 수록할 만한 연극 작품들을 골라 하나씩 차근차근 영상 콘텐츠로 제작해야 한다. 질 좋은 공연 영상 콘텐츠 제작은 일반 연극 공연에 들이는 것 이상으로 공을 들여야 가능한 일이다. 사실 이건 이미 오래전부터 했어야 할 일이다. 이에 대해 교육계도 연극계도 모두 크게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늦었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일을 시작해야 한다. 한쪽에서는 작품 목록을 뽑고, 한쪽에서는 인력 구성, 공간 구성, 장비 확보 등을 포함하여 공연 영상 콘텐츠 제작을 위한 정교한 매뉴얼을 확립하고, 또 한 쪽에서는 그 실행을 위해 필요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이에 대해 아직 정확한 기준은 없다. 하지만 일단 제안해 본다. 일단 1000편을 목표로 하고 매년 100편씩 10년 동안 제작한 뒤 그 뒤로는 추가 작품 또는 수정 보완 차원의 재촬영 작품을 100편씩 선정해 지속해 나가는 것으로 하자. 1편에 참여하는 평균 인원을 배우 10명, 연출부 5명, 무대기술 10명, 촬영인력 10명으로 할 때 예산은 얼마가 적당할까? 배우와 연출부는 최소 3개월은 연습에 참여해야 하므로 급여도 3개월분은 책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 해도 벌써 1억 5천만 원 이상을 잡아야 한다. 이런 인건비와 함께 무대, 의상 등의 제작비, 장소, 기자재비 등까지 생각할 때 편당 제작비는 최소 3억 원에서 5억 원은 되어야 할 것이다.

<브라보 엄사장> 온라인 공연(출처:연합뉴스)

물론 매년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대단히 큰 사업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렇게 못 한 것을 부끄러워할 일이지 예산이 많이 든다고 부담스러워할 일이 아니다. 사실 두고두고 활용할 교육 콘텐츠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액수가 들어가도 국가와 사회에 커다란 이득이 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더욱이 그 활용도는 학교 교육에만 그치지 않고, 시청률에 목매면서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로 일관하는 TV를 일신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어느새 우리 국민들은 선택권을 잃고 TV에서 제공하는 천편일률의 드라마에 종속되고 말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 부조리한 상황을 타개하는 획기적인 방책이 아닐까 싶다.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면을 고집하는 연극은 코로나 시대에는 맞지 않으니 사양 분야가 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안이하고 소극적인 생각을 떨쳐버리고 폭발적으로 확장 가능한 콘텐츠 생산의 원동력으로서 연극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국민 누구나 영상으로 접한 작품의 감동이 실제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실제 그 작품의 공연 관람이 자신의 절대 희망 목록에 들어가 있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가 연극에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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