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피해 보상

재난으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누가 감당하는지를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아직까지는 대부분 각자 알아서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방역에서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생명을 지켜주었으니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당장 병을 피해도 그 후유증으로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회생 불능 상태에 빠진다면 결코 성공적이라 할 수 없다. 즉 장단기 회복 대책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방역도 결국은 별 소용이 없는 셈이 되고 만다.

재난안전법(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제3조(정의)에서 재난의 범위에 “감염병”을 분명히 포함시키고 있으며, 제64조(손실보상) ①항에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제39조 및 제45조(제46조에 따라 시·도지사가 행하는 경우를 포함한다)에 따른 조치로 인하여 손실이 발생하면 보상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보상의 근거로 들고 있는 39조, 45조, 46조를 보면 주로 “응급조치”를 위한 동원 등에 관한 내용이다. 즉 좁게 해석한다면 코로나19로 인한 광범위한 피해를 보상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자영업자들이 당국의 명령으로 영업을 중단하거나 축소한 것도 감염병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할 때 “응급조치”에 해당한다고 보면 과도한 해석일까?

출처: 픽사베이

이런 맥락에서 연극 분야 이야기를 해보자. 연극은 오랜 시간 연습해서 공연한다는 특성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특히 심한 분야이다. 국·공립극단들이나 공적으로 제작비를 지원받은 단체들은 준비했던 공연을 못 해도 미리 책정된 예산이 있으므로 참여자들에게 수고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일반 단체들의 경우 몇 개월 연습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지 못한다면 참여자들에게 수고한 대가를 지급하지 못 하는 것은 물론 준비과정에서 들어간 경직 경비로 인해 큰 빚을 질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연극계는 전반적으로 기반이 붕괴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19로 공연에 차질이 있었던 연극 단체들에 대하여 사례별로 세밀하면서도 충분한 보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코로나19가 진정된 뒤 연극 분야가 다시 활력을 찾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출처: 언스플래쉬

다음은 극단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입었을 피해의 경우를 거칠게 구분해 본 것이다.

①공연 준비를 완료(또는 거의 완료)했으나 코로나19로 공연을 포기한 경우

②관객 없이 비대면 영상 송출만 한 경우

③공연 기간을 축소하고 객석도 축소 운영한 경우(시작했다 중단한 경우 포함)

④공연 기간을 축소한 경우(시작했다 중단한 경우 포함)

⑤객석을 축소 운영한 경우

⑥연습을 시작했다가 후반부에 포기한 경우

⑦연습을 시작했다가 중간 시기에 포기한 경우

⑧연습을 시작했다가 초기에 포기한 경우

⑨인적 구성 등 사전 준비를 하고 연습 시작 전 단계에서 포기한 경우

⑩인적 구성 등 사전 준비 도중 포기한 경우

* 각 경우에 알맞은 보상 원칙이 세워져야 하는데 예를 들어 준비를 마친 뒤 공연을 포기했을 경우 제작비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을 보상해 주어야 하며, 이하 다른 경우들도 각각 추정되는 결손 부분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을 보상해 주어야 한다.

* ⑨, ⑩과 같이 실제 연습을 시작하지 않은 경우는 금전적 보상은 아니더라도 단체 및 참여 예정자들에 대한 경력 산정에 대한 특례 처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경우도 바람직하기는 극단이 활동을 못 한 것 자체를 심각한 손해로 간주하여 이 극단이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일정 정도의 보상을 해주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제작 규모가 크고 상업성이 높은 단체에 대해서는 보상과 융자(저리 또는 이자 감면)를 결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출처: 언스플래쉬

옛 속담에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나라가 나서도 그렇게 힘드니 개인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라가 더욱 적극적으로 가난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새겨야 마땅하다. 그런데 마치 가난 구제는 어차피 불가능하니 외부 도움을 기대하지 말고 각자 알아서 견뎌내야 한다는 뜻으로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국가의 운영을 책임지는 관료들조차 그런 생각을 하고 쉽게 그런 말을 내뱉는 걸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현재 지구 전체의 경제력과 생산 능력은 인류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잘 산다는 미국조차도 한쪽에서 식량이 썩어 나갈지언정 못 먹고 굶주리는 국민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탐욕을 잘못 다스린, 사회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어버린 무지와 무능, 어리석음의 결과이다. 즉 반대로 현명하고 지혜롭다면 분명히 모두가 다 굶지 않고 살 방법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출처: 픽사베이

코로나19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 바란다. 이전보다 더욱 튼튼해진 체력으로 국민 모두가, 연극계 또한 더욱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기 바란다. 그러려면 국가는 피해 보상에 대해 절대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 단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샅샅이 찾아서 보상해 주는 치밀함과 적극성이 필요하다. 설령 중첩이 있더라도 괜히 효율성 따지다 사각이 생기는 것보다는 백 번 낫다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부정수급”이니, “정산 미비”니, “도덕적 해이”니 하는 어설픈 말들을 갖다 붙여서 일을 그르치는 어리석은 짓은 절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방역에서 그랬듯이 코로나19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있어서도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021

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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