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지난 5월 17일 밤 팔꿈치 뼈에 금이 갔다. 일반적으로 뼈라고 생각하는 모양에서 양끝의 둥글어진 부분이 있잖은가. 위쪽 뼈와 아래쪽 뼈가 닿는 그 위치에서 아래쪽 뼈의 둥글어진 부분에 여러 개의 금이 갔다. 극장에서나 오가는 중은 아니었고 집에서 한 밤중에 청소를 하다 벌어진 일이었다. 18일 이른 시간 찾아간 병원에서 깁스를 하고 최소 3주 길게는 6주의 진단을 받고 나서면서 아니 이미 전날 밤 욱신거리는 팔을 의식하면서 밤새 잠들지 못하고 한 것은 ‘이번 주 일정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진행 중인 공연은 6월 30일 개막이고 보도 자료를 쓰고 돌리기에도 아직 여유가 있다. 아는 사람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모르는 사람은 놀라겠지만 연습이 시작된 그때도 대본의 최종고가 나온 것은 아니기에 혹 보도 자료를 좀 늦춰도 누구 하나 네가 부주의하게 팔을 다쳐서라고 하는 소리를 들을 일은 없겠다 싶었다. ‘나의 팔꿈치는 부서졌지만 공연에 피해가 가지는 않겠다’라고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런 일은 꿈에라도 없어야겠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고 무대 위에서의 일은 늘 언제나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늘 제자리에 있단 물건들이 사라지기도 하고 가끔 연예인들이 토크쇼에서 무용담으로 하는 이야기처럼 모조품으로 되었어야 할 소품들이 멀쩡하니 튼튼하게 남아서 무대 위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무대를 둘러 싼 어두움이 정상인 공간들에는 사람과 물건, 장비들이 부비트랩처럼 늘어져 있어서 약간만 방향을 틀어도 큰 사고가 되기도 한다.
A 연극은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했기에 등장하는 두 남자는 칼을 쥐고 싸운다. 작품의 갈등, 긴장이 가장 고조된 순간으로 어두운 무대, 두 사람만을 비치는 조명과 칼날마저 길어진 그림자들이 움직일 때, 긴 연습기간을 포함해서 단 한번이었다, 칼끝이 상대 배우의 이마를 세게 내리친 것은. 공연은 ‘무사히’ 마쳤지만 조금씩 피가 흐르는 이마를 싸매고 연기를 이어간 배우도 칼끝이 이마에 닿는 순간부터 패닉상태에 빠져버린 상대도 무대 위 다른 동료들과 눈치 빠른 몇몇 관객들에게 남은 러닝 타임은 초조함이 다였을 것이다. 이럴 때 서울대학교 응급실은 정말 고맙다.
B 뮤지컬은 소극장 연극이었는데도 10명이 넘는 배우가 출연하고 무대 장치의 변환도 많았다. 그 안에서 춤도 추고 춤을 추는 와중에 등퇴장하는 배우들은 장치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소극장의 문제는 무대와 객석만 작은 것이 아니라 당연히 소대도 좁다. 좁고 제한된 동선 안에서 아차 하는 순간 사고가 일어나는데 그날의 특이점은 깜깜한 소대를 통해 퀵체인지를 위해 분장실로 신속하게 이동하던 배우의 앞에 벽으로 쓰이는 장치가 있었다는 점이다. 수백 번의 연습, 개막 이후 이제 동선도 극장도 익을 만큼 익었다고 생각했을 때 일어난 사고였다. 아직 러닝 타임이 한참 남은 때라 기획팀은 로비에서 모니터 중이었는데 갑자기 한 배우가 다른 역할의 대사를 하기 시작해서 당황하던 참이었는데 무대감독이 뛰쳐나왔더랬다. “얼음이요” 대학로에 커피숍이 즐비하다는 사실이 정말 고마운 순간이었다. 얼굴을 세게 부딪친 배우는 틈나는 대로 얼음찜질을 해가며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는 서울대학교 응급실로, 뼈를 다쳤지만 우선은 응급처치를 하고 전체 공연 일정을 마친 뒤에 본 치료를 받아야했다.
C 연극은 좀 과격하다. 배우들은 각자의 신체와 무대, 소품을 활용해서 아크로바틱한 연기를 끝없이 이어나가야 하는 작품이다. 이런 박진감 넘치는 무대는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고 예상치 못한 연장공연도 이루어졌는데 안타까운 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호응으로 인해 배우들의 피로도가 높아졌음에도 대체할 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한 배우가 골절상을 입었다. 이후에 듣기로는 당일 예매를 하고 극장을 찾아온 관객들에게 배우가 직접 매표소 앞에 목발을 짚고 나와 사과의 인사를 전했다고 했다.
이밖에도 무대 안팎 사건사고와 관련한 이야기들은 많다. 배우들뿐만 아니라 조명, 무대 스태프들이 감내해야하는 위험은 상상초월이다. 1년 차 시절 극장 천장에 달린 사다리 같은, 겉에 매달려 썰매를 타듯 밀려나가는 조명 철수팀을 보고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모르겠다. 극장이라는 공간, 공연계 인력들에 대한 처우를 알면 알수록 그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다.
나는 앞서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다고 썼지만 실제로 이미 無事함은 그 안에 없다. 가끔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무대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사람이 상하는 상황에서 무대가 계속되는 것이 과연 맞나.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무대가, 연극이, 예술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가 정한 율법인가. 관객과의 약속도 늘 언제나 우리에게 무섭고 무거운 것이지만 그것이 동료의 안전보다 과연 중요한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기획팀이면서 홍보팀인 나는 보도 자료보다 공지와 사과문을 더 많이 써야했다. 국가와 자치단체가 정한 기준에 의해서 거리두기 좌석을 실시할 때도 우리는 죄송한 마음이었고, 코로나19로 인해 야기된 다양한 상황 안에서 공연의 일정이 바뀌거나, 취소되거나, 누군가 격리되거나 할 때마다 수많은 공지와 사과문을 썼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수없이 질문했다.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안전을 위협하면서까지 공연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객석 등이 꺼지면 답답함에 마스크를 벗는 관객들도 많았고 여전히 공연 중에 무언가를 마시거나 먹는 관객들도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스크를 벗은 채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배우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컸다. 때론 관객들이 묻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도 공연을 하느냐고, 극장에서 감염의 위협은 정녕 제로의 확률인가. 질문의 의도는 자신에 대한 보호 때문이기도 했고 아끼는 배우를 위한 염려이기도 했다. 가끔은 우리가 사람의 안전보다 무대의 무언가를 더 중요시하는 건 아닌가에 대한 의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인식이 변화하고 정책분야에서 꾸준히 권유하는 부분도 있어 많은 단체에서 공연을 진행하며 공연 중 재해와 관련된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작은 경우의 수이지만 의료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십 수 년 전에는 누군가 다치면 정말 병원비부터 걱정하던 시기도 있었다. 물론 여전히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내 팔꿈치의 뼈는 마치 서프라이즈처럼 6월 24일 이젠 괜찮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미 3주쯤 지나 반 깁스를 액세서리처럼 붙였다 떼었다 하며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내내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어쩌나 하는 근심도 컸다. 물론 이전처럼 극장에서 무거운 물건을 번쩍 들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극장에 멀쩡한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지만 혹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극장 문을 열고 외칠지도 모른다. “사람이 다쳤습니다, 오늘 공연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괜찮습니다. 어서 병원으로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