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의 만남: 벽지를 뜯어내는 글쓰기

연극 <휴식하는 무늬>

윤서현(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

‘2021 산울림 고전극장’의 부제는 ‘우리가 사랑한 영미고전’이다. 다섯 참가작 중 하나인 창작집단 혜윰의 <휴식하는 무늬>는 샬롯 퍼킨스 길먼의 자전적 이야기를 1인칭 화자의 수기 형식으로 담아낸 <누런 벽지>를 원작으로 한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연지아는 작품의 제목을 정함에 있어서부터 원작 소설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휴식하는 무늬’라는 생경한 단어 조합을 사용함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자극한다.

사진제공: 창작집단 혜윰

아이를 낳은 후 우울한 감정을 느껴온 로즈(김예별 분)는 의사인 남편 존(한상욱 분)의 권유로 절대적 휴식을 처방 받게 된다. 자신이 로즈 자신보다 그녀를 더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존은 아내에게 글쓰기를 비롯한 그 어떠한 노동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 무위의 휴식은 존의 출타로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 로즈의 정신적 착란 증세를 더욱 강화시킨다. 시누이 메리(윤소연 분) 또한 존의 눈이다. 점차 로즈는 자신을 감금한 방의 오래된 노란 벽지를 관찰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러던 중 한 여인이 그 벽지의 무늬 너머에 갇혀 기어 다니고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되고, 결국 방문을 걸어 잠그고 벽지를 잡아 뜯기 시작한다.

작품은 원작의 분위기를 간명하고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무대 천장에서 바닥까지 드리워진 반투명의 가벼운 커튼이 무대를 가로로 가로질러 뒷벽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천들이 서로 엉켜서 드리워져 있어 단조롭다는 인상을 받지 못한다. 흥미로운 점은 원작이 제시한 노란색의 색깔 이미지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대신 벽지에 그려져 있는 것으로 언급된 반복 패턴들이 무대화된다. ‘무늬’라는 역할로 프로그램 북에 소개된 다섯 명의 배우들(윤소연, 이혜린, 임영규, 이석도, 편다솜)이 로즈의 증세를 시각화하여 준다. 이 무늬들은 커튼 뒤를 밝히는 조명을 배경으로 거뭇한 그림자가 되어 로즈를 주시하는 시선이 되기도 하고, 그녀가 드디어 벽지를 뜯어버렸을 때에는 마치 감금된 이들이 탈옥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와 함께 광란의 춤을 추기도 한다. 쇤베르크의 무조음악 등 불안한 심리를 자극하는 음향효과 또한 작품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한다.

사진제공: 창작집단 혜윰

무위를 강요당한 19세기 중상류층 교육받은 여성의 심리를 다룬 이 이야기는 21세기 한국여성의 경험과 직접 연계된다. 청미(김양희 분)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공연에서 미완성작 <누런 벽지>의 작가로 설정된 청미는 소설 창작 욕구에도 불구하고 안정적 수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별로 원치 않는 동화를 쓰고 있다. 청미는 연기자인 남편 연생(윤혁진 분)의 권유로 불면증 치료를 위해 바닷가에서 한 달을 살게 되고, 아내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상의하며 사려 깊은 남편이라고 생각했던 연생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 연생이 꿈꾸는 둘의 미래에는 아이를 낳고, 여유롭게 살림을 하며, 일하는 남편을 자랑스러워하는 청미가 필요하다. 그 미래에 청미가 원하는 것의 자리는 없다. 둘의 갈등은 연생이 청미와 한 결혼 전 약속을 무시하고 그녀가 먹고 있는 피임약을 바꿔치기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최고조에 이른다. 임신을 확인한 청미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소리 지른다.

연출은 글쓰기 욕망이 억압된 이 두 여인을 무대 위에서 마주치게 한다. 작품의 말미, 발작 속에서 벽지를 뜯어내던 로즈가 무늬 뒤에서 발견한 인물이 바로 청미였던 것이다. 결국 이로써 <누런 벽지>를 완성시키려는 청미의 행동과 무늬 뒤에 있던 청미를 탈출시키는 로즈의 행동은 상호적인 것이 된다. 제도와 인식의 더딘 개선 속에서 여전히 그 종착지가 누구의 딸이나 아내, 어머니인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인구 절반의 낙담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진제공: 창작집단 혜윰

청미가 처한 억압적 상황은 타 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표면화된다. 주로 남편 연생과 청미의 친구(이혜린 분)가 이 역할을 맡는다. 존이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는 방식이 ‘19세기다운 남성적 확신’에 기반하고 있다면 연생의 방식은 ‘자상한 옭죔’이기에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연생의 사회적 콤플렉스는 물론 아내를 위한 배려인지 자기기만일지 알 수 없는 복잡한 태도가 얽혀있다. 그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아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연생의 형상이 이러한 질문을 가능케 하는 것과는 달리 청미 친구의 형상은 청미의 입장을 드러내기 위한 기능적 장치처럼 보인다. 출산을 선택하지 않은 청미를 아무렇지 않은 듯 타박하고 자신이 연생의 속내를 청미보다 더 잘 안다는 듯 젠 체하는 이 인물은 청미가 처한 억압적 상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는 하지만, 본의 아니게, 출산을 선택한 여성과 출산을 거부하는 여성의 대립이 부각될 수도 있다. 청미가 출산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 것처럼 청미 친구가 출산을 선택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에 반목하는 두 여인의 모습보다 출산과 개인의 욕망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던져진 여성들의 동질감이 부각되는 것은 어땠을까. 혹시 청미 친구야말로 로즈처럼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휴식하는 무늬>는 유려한 대사와 무대 응용,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장면 전환과 극 전개의 템포 또한 매우 안정적이다. 이 작품은 고전을 매개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생각’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혜윰’이 이 극단의 이름이다. 이들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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