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극장이 쉬는 동안

사진제공: 언스플래쉬

이럴 줄은 몰랐다. 메르스도 겪었고, 조류독감도 겪어봤지만 이건 또 다른 종류의 난감함이고 두려움이다. 물론 지금의 여기에서의 화두는 코로나가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비어버린 극장이다. 그러나 극장의 운영활성화와 같은 이야기도 아니다.

연극하고 공연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일하는 공간, 실제 시간은 연습실에서가 더 많을지 몰라도 출근을 하다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공간인 ‘극장’이다.

이미 오래 전 일이라 지금도 그런 일은 없겠지만 종종 극장의 공간 활용을 보다 더 잘해보자 라는 논의가 있었다. 그래서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는 평일 낮시간이나 월요일을 활용해서 극장에서 무언가 더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번 지면에서 할 이야기는 바로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서두에서 코로나19는 왜 언급했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작년과 올해처럼 극장이 자주 비었던 적이 없다. 심지어 대관으로 가득 차 있었거나 지금 대관중이라고 해도 극장에 관객이 없거나, 공연팀도 없이 비어있는 시간이 많다.

소극장의 운영도 함께 하고 있는 나의 동료는 세입자다. 그것도 공간을 빌렸다고 하기 보다는 운영만 하는 세입자라 극장이 비면 그 손해가 크고 건물주 눈치도 적잖게 보인다. 덧붙이자면 前 극장 대표이자 건물주이신 분의 사무실이 극장 안에 있기에 극장에서 쉴 새 없이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세입자인 現 극장대표는 더더욱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비어있는 극장이 계속 놀려지기만 하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부터다.

극장의 운영이라는 것이 그저 전화 오면 받아서 대관하고 공연하러 들어온 사람들 감시나 열심히 하다가 대관료나 받고, 운 좋게 지원금 받아 극장 좀 고치고 부족한 수입도 메꾸고 하면 되는 일이면 좋겠으나 수십 평에서 수 백 평에 가까운 극장의 오밀조밀한 공간들,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드나드는 공간, 또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대여공간인 극장은 그 관리도 절대 만만치 않다. 얼마 전 여름 한가운데 마침 일주일 정도 대관한 단체도 없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참이라 휴가기간을 보내겠다던 극장의 문이 열려 있어 들여다보니 로비에 온갖 짐 같은 쓰레기들이 가득이다.

사진제공: 언스플래쉬

대학로에서 운영되는 많은 극장들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여러 달 공연을 하지만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일주일단위로 대관을 한다. 하나의 작품이 들어오더라도 연출부와 배우들뿐만 아니라 조명, 음향, 무대, 분장과 기획까지 아무리 규모를 줄여도 열댓 명 이상의 사람들의 각자 역할을 하다 보니 극장 안에선 분장실부터 무대 위까지 필요한 물건들로 가득 차고 특히 무대에 설치되는 것들은 대부분 공연 기간이 지나면 용도가 사라지는 소비재들이다. 극장 측에서는 철수를 하면서 이런 것들이 극장에 남지 않도록 관리하지만 공연일정, 운반 차량의 배차 일정, 일요일이나 월요일이 휴일인 보관 장소들의 상황을 고려하다보면 창고나 분장실 한켠에 조막만한 것들부터 작은 가방, 상자 같은 것들이 남겨지고는 한다. 물론 약속된 기한 안에 찾아가는 물건들도 많지만 일부는 극장에 남는다. 애초에 극장 소유의 것이 아니니 함부로 처리하기도 수월하지 않아 극장에는 자꾸 주인 없는 무언가가 쌓인다.

더 처리가 곤란한 것은 누가 두었는지도 모르는 것들이다. 우리 것이 아닌 조명, 혹은 거기에 쓰이는 무언가와 분명 어느 뮤지컬 팀의 알뜰한 사람이 모아두었을 건전지들이 한 박스씩 나오기도 하고, 본 적도 없는 단체복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대관 기간이 길어지면 분장실이나 스태프들이 오가는 통로에 공연을 위한 물건들이 쌓인다. 요즘처럼 방역이 중요한때는 마스크나 소독액도 여기저기 상자만 뜯어진 채로 새것과 다름없지만 새것이 아닌 것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것은 목재와 가구일 것이다. 무대를 만드는 데는 늘 엄청난 양의 목재들이 쓰이는데 극장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쓸 만한 목재가 철수 이후에 처분될 것처럼 보이면 혹시나 싶어 보관하게 된다. 언젠가 공연에서는 조연출과 배우, 조명팀, 기획팀 모두 각자 운영하는 극단이 있었는데 무대에 쓰인 질 좋은 목재가 형태도 아주 좋아서 서로 탐냈던 적이 있다.

극장에는 이런 것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쌓인다. 그래서 안전과 관리를 위해서 자주 공간을 비우고 정리해야 한다.

사진제공: 언스플래쉬

물론 이런 일들이 다가 아니다.

언젠가 갤러리를 운영하시는 분들, 큐레이터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이분들의 역할은 의외로 자주 ‘페인트공’이라 이야기한다. 전시장에 갖추어져야 할 것이 순백의 벽이라면 극장은 단연 검정 벽과 바닥이다. 그래서 극장들은 연중 벽과 바닥을 확인하며 페인트칠을 다시 할 일정을 잡는다. 무대 장치와 소품으로 가득 한 무대만 떠올린다면 바닥과 벽이 얼마나 예쁘게 검정색인가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누구도 흠투성이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때문에 운이 좋게 대관 일정이 여유 있게 잡혔다면 극장에서는 사람들을 모아 칠을 하고는 한다. 가끔 무대 감독님이 벽이 정말 잘 칠해지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시는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얼마나 검어야 잘 검은 것인지.

하지만 공연 한편이 끝날 때마다 칠을 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극장을 관리하시는 분들은 대관을 하여 극장에 들어오는 분들에게 무대 바닥과 벽을 잘 사용하는 가이드를 끊임없이 안내하고는 한다. 타카, 못, 테이프, 본드. 가끔 어느 벽에 무엇을 어떻게 설치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의견이 격해지기도 하는데 공연을 위해 필요하겠지만 대부분 극장을 잘 아는 사람들의 의견이 옳다. 안전을 위해서나 다음에 공연을 할 동료들을 위해서나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공연이 잘 되려면 깜깜한 벽은 최대한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짐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 페인트 칠만 하면 좋겠는데 아직 극장에 비어있는 동안 할 일은 많다. 음향과 조명은 연극 뮤지컬 할 것 없이 당연히 중요한 분야인데 이를 컨트롤하는 콘솔이나 디머와 같은 장치들은 언제나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하지만 끊임없이 사람의 손이 닿는 것이니 당연히 낡거나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들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데 당연히 공연이 이루어지는 중에는 세팅되어 있는 것들을 해칠 수 있으니 극장이 쉬는 때 교체하거나 손봐주어야 한다.

그리고 누수가 되거나 망가진 의자, 암전이 되었을 때 빛이 새기 시작하는 어딘가도 이때 체크한다. 물론 어떤 일들은 대관이 이루어진 때에도 낮시간에 잠시 하면 어떤가 싶지만 대관이 된 극장 공간 특히 무대와 분장실, 하우스는 그 기간 동안 대관한 단체가 관리하고 운영할 권리(이자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연차가 쌓이고 공연 외에도 많은 일들을 하는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이제 막 공연을 만드는 기획자가 되었을 때는 그저 극장이 좋아서 한번이라도 더 가고 싶었다. 포그 냄새가 나는 극장 공기도 좋고 극장 안의 서늘함, 사람은 없지만 이야기가 준비된 무대와 객석에 오직 나만 있을 때의 설렘 같은 것도 무척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함께 작업하는 팀들이 주로 정해져 있다 보니 몇몇 극장에서는 매년 한 두 차례씩 공연을 올리기도 하고 어떤 극장은 대학로의 목적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연하는 사람들에게 극장은 사무실이기도 하고 출장지이기도하지만, 때로는 동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제공: 언스플래쉬

요즘 조용히 잠든 것처럼 보이는 극장을 보고 있으면 과연 이 공간이 ‘극장’으로 불리는 것은 언제까지 일까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 모든 것에 수명이 있을 텐데 지금 쉬어가는 이 시간이 그간 소란스러웠던 ‘극장’들이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몇몇은 이미 그 역할이 희미해져 우리가 속한 세상 속에서 사라져 버릴 것 같지만 그래도 몇몇은 좀 더 오래 연극인들의 일터로 남아있어주길 바란다.

#첫 연재를 제외하면 어쩐지 내가 쓰는,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잔소리 같다.

#새 달의 연재의 일정을 안내받으면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기간이 대부분이다. 이야기가 너무 신변잡기적으로 흐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쳐드는데 다행히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도 볼만하다 해주는 이가 있어 좀 더 해도 되겠다 싶었다.

#덧붙이자면 나는 아직도 무대를 내 발로 밟는 것이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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