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한 햄릿의 자화상

<햄릿맨>

정명문(뮤지컬 평론가)

작, 연출 : 강봉훈

출연 : 최용민, 김구택, 나인규, 김영지, 안경희

일시 : 2021.9.15.~26

장소 : 가나의집 열림홀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은 40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공연되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을 지금의 법으로 해석하자면 형제 살인, 근친혼, 우발적 살인, 자살방조, 결투와 자기 방어로 인한 죽음 등등 권력욕과 복수로 인한 범죄물의 집합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햄릿’의 고뇌와 복수는 지금의 법으로는 구제가 안 된다. 그럼에도 햄릿의 고뇌는 인간적인 부분이 있어서 현대적 해석을 시도하는 형태로도 만들어지기기도 했다. 작가 겸 연출가 강봉훈은 햄릿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전에도 뮤지컬 <햄릿 : 얼라이브>에서 ‘살기 위한 능동적 선택’을 강조한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햄릿맨>은 만약 햄릿이 2021년에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이며 그의 행동은 지지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출발한다. 블랙 코미디를 표방한 우리 시대의 햄릿은 어떠한지 확인해보자.

환각에 둘러싸인 그의 현재

극은 김시봉과 형사들이 함께 있는 취조실에서 출발한다. 김시봉은 극단에서 잡일을 하는 무명배우이다. 그는 폭행죄로 연행되었지만 기억을 못한다. 그는 ‘본드흡입’ 때문에 얼빠진 표정으로 비논리적인 말을 하곤 한다. 그는 친구와 어울리고자 본드를 시작했지만 그 결과 학교중퇴에 전과가 생기면서 비루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아마추어 극단에 들어갔다가 연습실 관리 겸 거주 중이다. 그의 공연 경력이라곤 전봇대, 신호등처럼 대사가 없는 사물을 맡은 것뿐이다.

어느 날 그는 환각 속에서 거울 앞에 선 햄릿과 이야기하게 된다. 그 햄릿은 본인이기도 하다. 햄릿은 연출의 방향성에 불만을 토로하는데, 자기가 인싸였고, 자식과 와이프를 때리는 아버지를 싫어했으며, 비혼주의자이고, 친했던 삼촌이 엄마와 결혼한 것이 짜증나 엇나가기 시작한 것이라고 그에게 알려준다. 시봉은 환각 이후, 햄릿과 주변 관계를 대본에 반영한다. 연출은 그 대본에 관심을 가지며, 시봉의 본드 흡입을 지지한다. 이런 상황을 들은 최반장은 그에게 ‘햄릿맨’이란 별명을 붙여준다.

2막은 햄릿과 주변인의 실제를 보여준다. 경찰은 김시봉의 동거녀(오하나), 장인(폴로니우스), 어머니(거트루트), 아버지, 새아버지 모두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다. 햄릿은 술집에 나가는 오하나에게 정숙과 아름다움에 대한 허망한 질문만 하지, 아이를 키울 자신도 능력도 없다. 장인은 햄릿에게 하나도 그만 만나고, 본드도 그만 사용하라 한다. 어머니는 폭력적인 남편 때문에 고통을 받다 한덕수와 재가했으나 한덕수 역시 어머니를 때린다. 한덕수로 인해 주식을 시작했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결혼을 반대하지만, 아들에게 살해당한다. 결국 김시봉은 자신의 연쇄살인을 시인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불행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보내주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것을 고백한 그는 항상 가지고 다니던 인형에서 본드와 칼을 꺼내 환각상태에서 자신을 찌른다.

2021년에 소환된 햄릿은 비루하다 못해 서글프다. 가정폭력, 가족 해체, 절단된 학력…. 그에겐 기댈 만한 것이 없다. 경제력과 교육은 계급 상승 도구 이전에 생존 유지라는 기본 역할을 가지고 있지만 시봉과 주변인은 이 기본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 이들은 복지 사각 지대에 놓여 있으며, 변화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시봉은 저렴한 본드 흡입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환각 상태에서만 자기 의견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 능력주의 시대에서 햄릿으로 상징되는 김시봉은 현실에서 도태된 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작품 내에서 신분과 지위를 걷어내니, 이들의 상황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가족에 대한 바른 시선을 키울 환경의 부재로 타인의 바람을 돌아보지도, 폭력을 끊어내지도 못했던 그는 햄릿의 대사들을 읊조리지만, 이는 당연히 자신의 삶과 유리될 수밖에 없다.

주인공을 배우 지망생으로 둔 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배우는 유명세를 타기 전까지는 일만으로 생존하기 어렵다. 무대 위에 서기 위해선 치열하게 노력하더라도,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르지 않으면, 가난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배우 지망생들이 다른 일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기억되지 않지만, 표현해야하는 이들은 이를 감내해야 한다. 환각과 연극은 상상이란 측면에서 일부 통한다. 연극은 현실의 문제를 소환하여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있다. 하지만 환각은 깨어나면 머리가 깨지는 고통만 있을 뿐 현실 개선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상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없는 현실의 제약이 배우의 몸으로 구현되니 그 답답함이 확실히 드러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들에겐 이론으로 무장한 평론가도 적군이다. 시봉의 첫 배역, ‘포틴브라스 왕자’, 두 번째 배역 ‘유령’도 평론가의 한마디로 생존이 결정된다. 이 작품은 공연계의 고질적인 부딪힘을 이렇게 꼬집는다. 공연에 임하는 이들의 잘 만들고 싶은 욕망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이리 보여준다. 햄릿의 환각을 보는 햄릿맨의 현실은 이리 답답하다.

현실과 이상, 그 언저리에서

얼마 전 오필리어를 내세워 각색한 영화가 나왔다. 남성의 선택에 따르지 않고, 자기 인생을 선택하는 면모를 보이려는 시도들이라 할 수 있다. 미투 이후로 우리 공연계도 여성의 다양한 삶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작품에는 시봉의 동거녀, 어머니, 형사로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오하나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직업을 선택하고, 아이를 지웠지만 살해당한다. 어머니는 구타 받는 자신을 위해 새 남편을 죽인 아들을 신고 못하고 불교에 귀의한다. 두 인물 다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직업과 남편을 선택한다. <햄릿> 속 인물들에 비하면 꽤 주체적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삶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안 형사의 경우, 환경 탓으로 살인을 하는 인간들을 벌주기 위해 형사가 되었지만 살인에 대한 해결책을 내리진 못한다. 이렇게 <햄릿맨> 속 여성 인물들은 과거에 비해 일보 전진하되 사이다 같은 해결책은 가지지 못한다. 이는 여전히 그녀들이 사는 사회의 구조가 견고함을 드러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햄릿맨은 햄릿이 비극이 아니고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초월한 로드무비라고 주장한다. 환각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장치이다. 이 작품은 1막을 취조실로, 2막을 시봉의 과거와 현재로 오고가게 만들어 실제와 환영이 공존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한 명의 배우가 모든 여성 역할을 소화하였는데, 어둡고, 발랄하고, 희생적이라는 다양한 연기를 한꺼번에 보는 재미를 주기도 하였다. 또한 무대 위는 책상과 의자, 인형 외에는 소품이 사용되지 않았고, 강렬한 조명만으로 감정의 굴곡을 드러내어 배우의 연기에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 몰입의 방식은 배우들의 모습이 어디선가 있을 법한 인물로 보이는데 기여하였다.

2021년에 마주한 햄릿맨은 환각에 취해야만 발언할 수 있는 어쩌면 사이코패스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를 통해 들여다 본 사회구조나 편견은 꽤 견고해서, 어디에서 이를 해결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창작자도 관객도 쉽지 않은 두 해였다. 객석 간 거리 두기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공연들이 취소되었다. 공연수도 줄었고, 객석 수도 줄었다. 그래도 극장에서는 꾸준히 과거, 오늘, 미래의 이야기가 올라온다. 어느 먼 미래에 2021년은 그런 흔적들로 인해 치열하게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후에 햄릿은 어떻게 나타날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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