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감사하고 기쁘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김소연_ 연극평론가


페르소나. 화제의 연극을 직접 무대에 선 배우와 함께 구석구석 살펴봅니다. 배우와 함께 나누는 캐릭터, 연기, 연극 이야기.


지난 해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이하 ‘노란리본’)의 신작 <장기자랑>을 보려고 혜화동1번지에 들어설 때,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미리 봤던 <장기자랑> 공연사진에서는 아이들로 분한 배우들이 교복을 입고 있었다. 공연 소개를 보니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 이야기라는 것이다. ‘노란리본’은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을 잃은 어머니들이 활동하고 있는 단체다. 그러니까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들은 모두 세월호 참사를 지금도 여전히 겪고 있는 어머니들이다. 대체 저 이야기를 어머님들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연극을 보기 전, 나는 혼자 좌불안석이었다. 공연을 보아야 할지 망설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극장에 들어서고 연극이 시작되자 연극에 흠뻑 빠져 걱정을 잊었다. 연극이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와서야, 내가 이 연극을 보기 전 긴장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장기자랑>은 수학여행을 앞둔 아이들의 이야기다. 아이돌을 꿈꾸며 매일 학원에 다니고 있는 가연, 기타를 연주하며 자작곡을 부르는 하늘, 패셔니스타 지수, 문학을 잘하는 그래서 욕도 잘하는 바른생활부 백희, 그리고 아영이 등장한다. 아영은 <원피스>를 좋아하고 ‘루피’를 좋아한다. 아영의 아빠는 지금 병원에 있고 엄마는 일을 마치면 아빠를 돌보러 병원에 간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거의 혼자 지내는 아영은 ‘루피’와 대화하듯이 일기를 쓰고 있다. 2학년이 되고 짝이 된 가연은 말이 없는 아영에게 학교와 아이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을 건다. 그리고 가연은 아영에게 수학여행 장기자랑에 함께 나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다섯 아이들의 노래와 춤 연습이 시작된다. 저마다 서로 다른 아이들의 모습은 말투로, 각자 가슴 설레는 남자아이들 이야기로 그려진다. 서로 다르지만 그 다름은 갈등으로 치닫지 않고 까르르 까르르 수다와 웃음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도 위기는 온다. 수학여행이 다가올수록 장기자랑에서 1등을 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던 가연은 잘 따라하지 못하는 아영에게 화를 내고, 아빠의 병세가 안 좋아지면서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걸 말하지 못하고 있던 아영은 갑자기 연습에서 빠지겠다고 말한다. 아영은 학교에도 가지 않는다. 가연은 자신이 심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사과를 건네지 못하다가 덜컥 아영이 아픈 건 아닌지 걱정되어 아이들과 함께 아영의 집을 찾는다. 아영의 사정을 알게 된 아이들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영의 수학여행비를 마련하고 아이들은 드디어 여행을 떠난다.

춤을 잘 따라하지 못하는 아영을 위해 아이들이 함께 추는 호키포키 춤이나 “무슨 50대 아줌마도 아니고” “너 열여덟 아니지” “65년생이지” 같은 대사들은 굳이 이 연극의 배우들이 중년의 엄마들이라는 것을 감추지 않는다. 그렇지만 캐릭터의 생생함, 아이들의 말투, 아영의 집안 사정, 아이돌 춤연습 등 매우 현실적인 에피소드들이 촘촘하다. 아이들은 착하기만 한 것도 그렇다고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것만도 아니다. 제 각각의 고민이 있고 제각각 짊어지고 있는 현실의 무게도 있다. 함께 아르바이트를 해서 아영의 수학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것도 아영의 어려움에 대한 연민보다는 장기자랑이라는 공동의 목표에서 시작된다. 물론 연민과 공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앞세우지 않는다.

<장기자랑>은 청소년들의 우정을 다룬 한편의 예쁘고 아기자기한 청소년극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장면에 이르면 한껏 부풀어있는 무대 위 아이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객석에서는 물기가 차오른다. 저렇게 저마다 부푼 마음으로, 누군가는 그곳에서 내내 어색했던 친구와의 관계가 달라지기를 바라며, 누군가는 어렵게 마련한 여행을 만끽할 거라 기대하며 수학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제주도에 도착한 아이들의 모습이다. 백사장을 달리고, 사진을 찍고, 장기자랑이 시작된다. 이것이 무대 연출에서 굳이 판타지라는 걸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예쁜 해피엔딩으로 연출된 것도 아니지만 ‘노란리본’의 공연이 아니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연극은 ‘노란리본’의 공연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끝내 가지 못한 그곳에 아이들을 데려다준다. 그것은 ‘노란리본’의 연극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노란리본’은 올해 또 한편의 신작을 올렸다. 이번엔 <기억여행>이다. <장기자랑>이 아이들의 이야기라면 <기억여행>은 엄마들의 이야기다. <기억여행>은 세월호 참사 이후 어머님들이 겪었던 여러 일들을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그린다. <장기자랑>이 날카로운 갈등을 앞세우기보다 활달한 아이들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낸다면, <기억여행>은 갈등과 대치의 시간들을 되짚지만, 역시 희망을 놓치않는다. 생명안전공원을 두고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그곳에 올 아이들이 바로 당신이 밥 먹는 게 예쁘다 하던 그 아이라며 커피를 건네고, 수 년만에 바다에서 건져올린 세월호가 팽목항에 들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순례길에 따라나선 ‘사내’의 손을 잡아준다. 거슬러 오르는 시간마다 혐오, 회피, 대치의 가시로 찌르는 순간들이지만 그럼에도 손을 내민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이 인터뷰는 바로 이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인터뷰는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이 항상 연습하는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이하 가족협의회) 대강당에서 진행했다. 건너편에 단원구청이 보이는 나대지 한 끄트머리에 컨테이너 박스로 4.16가족협의회의 여러 사무실이 모여 있었다. 인터뷰는 마치 동네 친한 엄마들 모임 같았다. 서로 서로 말을 하느라 말들이 엉키고, 까르르 까르르 웃음이 터지고, 피부가 건조하다니 미스트를 꺼내 뿌려주면서 그러다 울컥하기도 하면서 한 편의 연극처럼 진행되었다.

<장기자랑>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가족들 앞에서 한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김소연: 이미 많이 소개되었지만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에 대해 소개해달라. 처음부터 공연팀으로 모였던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김태현: 2015년 10월에 모임을 시작했는데 일종의 치유모임이었다. 연극연습 하면서 좀 웃으시라고 <그와 그녀의 옷장>을 골랐다. 이 작품은 세월호 이야기도 아니고 노동연극인데 희극이다. 그러다가 2016년 7월에 <그와 그녀의 옷장> 2장으로 15분짜리 공연을 했다. 세월호 활동가들, 지인, 가족들이 관객들이었다. 처음 무대에 서본 어머님들한테는 특별한 경험이었텐데 기운이 좋았다. 그 기운을 보면서 전편을 다해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해 10월에 전편을 올렸는데 내 예상이 맞았다. 그 다음에 대학로, 광장극장 블랙텐트로 공연이 이어졌다.

김소연: 반대는 없었나.

김태현: 전편 공연을 한다고 했더니 비중있는 배역을 달라고 하신 분도 있다.

박유신: 연출님이 잘한다 잘한다 해서 진짜 믿었다. 그런데 나중에 공연을 영상으로 보면 진짜 눈 뜨고 못 본다.(웃음) 사진을 보면 웃고 있더라. 그게 큰 힘이 된다.

김순덕: 멀리서 본다. 왔다갔다 하면서 슬쩍슬쩍.(웃음)

이미경: 이만큼 오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것 같다. (웃음)

김소연: 지금은 연기를 너무 잘해서 도리어 ‘노란리본’만의 독특함이 사라지면 어쩌나 걱정된다.(웃음) 2017년 1월 광장극장 블랙텐트에서 처음 ‘노란리본’의 공연을 봤다. 그전부터 SNS에서 공연 소식을 계속 보고 있어서 엄청 궁금했다. 대사와 대사 사이가 살짝 뜬다든가 그런 어색한 점도 없지 않았는데, 그래서 조마조마해 하면서 봤는데, 또 캐릭터나 상황을 잘 만들어 놓고 넘어가고 하니까 연극에 엄청 몰입해서 재밌게 봤다. 마음을 쏟으면서 보니까 공연을 함께 만드는 것 같았다. 이제 6년 차 극단이다. 네 편이나 올렸고 그 중 두 편은 ‘노란리본’ 초연작이다. 공연회수도 많다. 기억에 남는 공연이나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박유신: 지금까지 우리가 연극을 하는 건, 우리를 응원해주는 분들이 불러주고 또 방금 말한 것처럼 마음을 다해 함께 봐주니 용기를 내서 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미경: 얼마나 잘하나 보자 이런 게 아니라 관객들이 극장을 찾으면서 응원의 마음을 담아서 왔던 것 같다. 우스개 소리로 우리 극단이 공연회수로는 중견극단이라고 한다.

김소연: 응원의 마음으로 왔다가 무대에 흠뻑 빠져서 봤다.

박유신: 이 질문이 있을 것 같아서 생각해봤는데 광장극장 블랙텐트 공연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관계자 앞이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웃음) 한 겨울이었고 엄청 추웠다. 관객대기실이나 그런 게 없는데, 그 추운 데서 관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거다. 아직 공연시간이 많이 남아있는데. 그때 감동받았다.

김도현: 못보고 가신 분도 있었다. 너무 미안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가 배우라거나 우리 연극이 진짜 연극이다 이런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대학로에서 공연한다고 하지만 그때는 알음알음 지인들이나 우리를 응원하는 분들이려니 했다. 광장극장 블랙텐트는 초청받아서 한 공연이고 거기서 공연하는 팀들은 다 전문단체들이다. 뭔가 연극계에 발을 담그게 되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소연: 따로 예약이나 예매가 없이 선착순으로 티켓을 배부했는데 한 시간 전부터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경: 세월호가족들 앞에서 했던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2017년이었는데 경기도미술관에서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공연할 때인데, 엄마들이 공연한다고 하면 좀 특별하니까 가족들이 보러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몇 분밖에 안 왔다. 너무 실망했다. 그런데 얼마 전 가족협의회 워크숍에서 <기억여행>을 공연하기로 했는데, 그걸 결정하고 그때부터 너무 마음이 힘들었다. 밥하다가 말고 공연할 생각하면 괜히 눈물나고 그랬다. <기억여행>은 우리가 지난 7년간 함께 겪어온 일이다. 여기 우리 엄마들하고. 공연을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냥 가슴이 너무 아팠다. 우리 이야기를 직접 보여준다고 생각하니까.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 공연을 계속해도 그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 제일 힘들고 또 제일 뿌듯한 공연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같이 본 가족들도 다 힘들었을 거다.

김도현: 그 공연을 하기로 결정하기까지도 힘들었다. 가족들한테는 보여주지말자. 우리만 아프면 됐지 가족들까지 아프게 하지 말자 그랬다.

김태현: 나는 가족협의회 앞에서 <기억여행>을 꼭 공연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픈 질감이 있지만 객석에서 가족들이 우리 공연을 보면 위로를 받을 수 있겠다는, 작품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찬성과 반대가 반반이었다. 강하게 반대한 분도 있었지만 다 반대는 아니었다. 질감이 아프기 때문에 가족분들이 보면서 얼마나 아플까 무대에서도 울고 객석에서도 울고 난리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박유신: 끝까지 이거 엎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 가족들은 다 아는데 굳이 아팠던 것을 다시 보여줘야될까 했다. 활동하다가 지금 잠시 멀어진 사람들에게는 보여주고 싶었는데 계속 활동하고 있는 가족들한테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김명임: 그런데 이런 생각도 있었다.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 보면 아프지만 서로 다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해요, 이런 활동도 하고 있어요, 하고 가족들한테 말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다. 아픈 이야기지만 우리가 견디면서 할 수 있으면 우리 가족들도 충분히 보고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보고 이해해줘서 참 감사했는데 좀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이미경: 공연 끝나고 너무 좋았다. 감동받았다, 너무 고맙다, 너무 잘하고 있다, 인사를 많이 받았다. 가족협의회에서 동별로 간담회를 계속 다니고 있는데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김순덕: 나도 잘 모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연극의 힘이 굉장히 크다는 걸 느낀다. 우리 연극은 배우들이 그러니까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로 피해자이고 당사자인 사람들이 연극을 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최지영: 제일 뿌듯한 게 <기억여행> 가족들 앞에서 공연할 때 청심환 먹고 시작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했는데, 더 자신감 있게 더 큰 소리로 했다. 공연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고, 서로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우리가 참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알게 된 거다. 그 공연 후로 우리가 공연 갔다오면 고생했다고 말해준다.

김태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연극이 낯설다.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협의회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지만 세월호 엄마들이 연극을 한다고 하면, 연극을 해? 왜 연극을 하지?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게 어떤 활동인지, 어떤 모습인지 그려지지 않으니까.

김도현: 우리가 네 편의 연극을 만들었다. 이번에 워크숍에서 봤던 부모님들은 한 번 정도는 다 보신 분들이다. 그런데 그전에 봤을 때와 공감이 달랐던 거다. <그와 그녀의 옷장>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는 그냥 연극부에서 연극하는구나 였던 것 같다. <장기자랑>부터 부모님들의 태도가 달라졌었다. 부모님들이 우리 아이들 얘기해 줘서 고맙다 고맙다 했다. 그때부터 우리 연극이 우리 아이들을 알리고 있구나 하고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장기자랑>에 아이들 이름이 들어가는 있는데 우리 아이가 더 깊이 들어와 있구나 했다면, <기억여행>은 누가 봐도 다 우리 이야기다. 연극부 연극이 아니라 우리 얘기를 하고 있구나, 우리를 알리려고 연극을 하는구나, 진실규명을 하려고 연극을 하는구나, 그런 공감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최지영: <장기자랑>은 한 부모님께서 “우리 애들 얘기를 좀 했으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를 하셔서 시작되었다.

김소연: <장기자랑> <기억여행> 다 아이들, 어머님들의 이야기이다보니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기억여행>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순례를 하는데 정체 모를 사람이 계속 함께 하겠다고 따라다니는데 나중에 스스로 밝히는 것이 자신이 이러저러한 혐오 댓글을 달았다, 사과를 하고 싶다고 하니 받아들이는 장면이다. 만약 ‘노란리본’이 아닌 전문극단에서 세월호를 다루면서 그런 장면을 넣었다면, 실재 그런 인물이 있었다 하더라도, 굉장히 설득력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머님들이 그런 장면을 만들고 보여주니까 개연성을 떠나 함께 하겠다면 우리는 받아줄거야 그런 마음이 다가오는 거다. 그 장면 말고도 혐오라든가 말도 안 되는 공격들을 다루는데, 첫 장면도 추모공원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어쩌면 현실은 계속 반대가 완강할텐데 연극에서는 어머님들을 만나면서 슬그머니 피켓을 내린다. 그간의 있었던 갈등을 다루지만 갈등의 교착이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음 더 내딛는 것 같았다. 어떤 일이 있었다에서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가겠다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놀랍고도 감동적이다.

김순덕: 그 장면에서 따라다니는 ‘사내’ 역을 했다. 나는 생존 학생 엄마다.

(이때 김순덕 씨가 잠시 말을 멈추자 옆에 있던 단원들이 “또 우는 거냐” “울지마라” 등등의 말이 오갔다. “아니야 건조해서 그래, 입도 막 트고.” 그렇게 대답하자 누군가 미스트를 꺼내서 뿌려주었다. 김순덕 씨는 인터뷰 답변을 하다말고 미스트를 톡톡 두드려 발랐다. “여기 되게 웃기죠” “배우라서 그래요”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등등 한바탕 까르르 웃음과 수다가 이어졌다.)

김순덕: 아이를 잃은 가족과 아이가 살아돌아온 가족들이 처음에는 함께 하는 게 힘들었다. 내가 극단에 들어오게 된 계기도 엄마들 하고 뭔가 함께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었을 때다. 그때 동수 엄마 김도현 씨가 손을 내밀어줬다. 처음엔 공연이 아닌 스텝으로 들어왔다.

김태현: 15분짜리 공연할 때 용역깡패 역을 맡았다. 스태프인데 최선을 다해서 연기했다.

김순덕: 엄청 최선을 다했다. 엉덩이가 다 까질 정도였다. 어쩌면 댓글을 달았던 분도 찾아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 내가 왜 이랬을까 막 이렇게 갈팡지팡하다가 어머님이 가는 길을 따라다니다가, 뭘 하는지 계속 봤을 거다. 그러면서 이건 아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나는 함께 가야 할 것 같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사내의 대사 중에 “저 함께 갈게요 어머니” 그 대사는 나의 진심이다.

이미경: 알고 나면 제대로 알면 그렇게 비난하고 손가락질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김도현: 여기에 있는 에피소드가 거의 99.9% 사실이다. 혐오 발언 많았다. 계속 법적 조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엄마까지 같이 사과하러 오신 분도 있다. 뉴스만 보고 잘못 알고 있었다고 하신 분도 있었다. 고소 회피하려고 거짓 사과하는 분도 있었지만. 가까운 친척들 중에도 돌아다니는 이야기만 보고 너네 그러면 안 된다는 분들도 있었다. 역할로 무대에 서야 하는데 역할이 아니라 그냥 유가족 엄마로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러다보니 아마 진실규명을 바라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김미경: 처음 <기억여행> 대본을 읽으면서 너무 많이 울었다. “오래 걸릴 거예요. 아주 오래” 그런 대사가 너무 아프다. 집에서 연습할 때 감정을 넣고 하지 않는데도 매일 한번도 울지 않은 적이 없다. 그 대사 연습하면서.

김도현: 한 명이 울면 사실 다 운다.

김태현: 관객들은 작품을 볼 때 인물도 보지만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도 같이 본다. ‘노란리본’의 공연은 엄마들의 힘이 굉장히 크다. 세월호 엄마들로 무대에 서지만 배우의 역할도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 가족협의회 워크숍 공연 때는 어떤 공연보다 집중해서 연기했다. 대사에 쌓여 있는 감정들이 있는데 가족들 앞에서 공연을 하면서 잘하고 싶고 무너뜨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굉장히 집중해서 연기를 하니까 대사에 쌓여 있는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거다. 또 최근 공연이 많았다. 계속 공연을 하면서 무대에 서는 경험이 축적된다.

김소연: 울지 않겠다는 것이 세월호 유가족이 아니라 캐릭터로 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건데, 그게 ‘노란리본’이 연극하는 이유, 아이들을 잊지않겠다는 그리고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배우이면서 아이들의 엄마라는 두 정체성이 맞물려 있다.

최지영: 가족들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은 울컥울컥 올라온다. 청심환 먹고 공연하고 눈물콧물 흘려도 일어나서 다시 나는 배우야, 지금은 나는 배우야, 울면 안 돼, 그러면서 일어나서 다시 시작하고 그랬다. 내가 첫 대사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진짜 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다. ‘납골당’이라는 그 대사가 입에서 나오지를 않는 거다. (<기억여행>에서 생태안전공원 조성에 반대하는 ‘선글’ 역을 맡았다. 반대측 구호인 “납공당이 웬말이냐! 안산시는 각성하라!”라고 외친다.) 이게 뱉어지지를 않는다. 그걸 말해야 다음 대사를 연결하는데 말이 나가지를 않으니까 너무 힘들어서 막 가고 막 짜증도 내고 막 도망가고 싶었다. 누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폭발할 것 같았다. 지금은 그래 나는 이 순간은 배우니까 우리가 보여주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줘야된다는 생각을 많이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김소연: 연극을 만드는 과정이 반복 훈련이 아니라 함께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 과정 같다.

김도현: 우리를 비난하던 그 사람들을 연기해야 하니까 많이 힘들어했다. 내 아이가 와야 할 생명안전공원인데 내 입으로 그걸 반대하는 말들을 내뱉어야 하니까. 그 힘겨움을 이겨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최지영: <기억여행> 연습할 때 우리 다 상담받았다.

이미경: 연습하면서 너무 울고 맨날 울고 연극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서 연출님이 조치를 취한 것이 한 사람씩 상담을 받았다. 우리를 상담했던 선생님이 우리 대본에 대한 조언을 주셔서 대본도 수정했다. 에필로그를 추가했다. 잘 다녀와 하면서 아이들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이 마지막 장면이었다. 연극이 끝나면 막 답답하고 아아프고 슬펐다. 우리도 그렇고 관객들도 그런 의견이 있었다. 그 장면에 이어서 노란리본이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에필로그를 추가하면서 좀 부드럽고 따뜻하게 끝나니까 우리도 좀 덜 힘들다.

김도현: 처음 공연했을 때 호흡 곤란까지 왔다.

박유신: 에필로그에서 노란리본이 이게 현실인지 연극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대사가 있다. 우리 자신이 그렇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아직도 현실감이 없다. 연극에 그런 우리 모습이 다 들어있다. 그리고 관객들은 잘 모르겠지만, 연습하면서 연출님이 중간중간 부드럽게 많이 정돈했다.

최지영: 근데 이번에 우리 아빠들도 들어올 때 엄마들이 얼마나 잘하겠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그러고 있었는데 보면서 계속 빨려들어갔다고 하더라. 왜 이렇게 빨리 끝나, 1시간이 이렇게 빨랐어, 그러더라.

김명임: 앞에 이야기했던 장면에서 내가 ‘사내’와 대화를 한다. 사내가 아이가 16시간 진통하고 태어났다고 하는 장면에서, 사내가 말하는 중에 나의 모습이 보이는 거다. 내가 우리 아이를 이렇게 만났어 이게 느껴지니까 그때는 배우라기보다는 엄마로서 우리 아이도 그렇게 내게 왔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객들은 연극 대사인 줄 알고 듣고 있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하다 말고 많이 울었다. 울면 안 되는데. 우리는 그냥 보통 엄마들이다. 훈련된 배우가 아니다. 그래서 많이 울었다. 하지만 내가 이거를 정말 잘 해야 사람들이 우리 아이에 대해서 알겠구나 하니까 최대한 담담하게 한다. ‘사내’가 말하는 것이 아이를 힘들게 얻고 그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 우리를 따라오겠다는 거다. 그래 이 정도면 앞에 무슨 잘못을 했든 간에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동지가 되겠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나중에는 그래요 함께 가요 하면서 그 장면이 끝난다. 둘이 마음이 딱 통하는 거다. 그리고 다음 장면이 경찰과 대치하는 장면인데, 그 순간까지도 앞 장면의 느낌이 진정이 안 되어서 힘들었다. 우리는 진상규명을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연극도 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 얘기를 사람들한테 끊임없이 할 수 있는 그런 계기도 되어서 좋다. 또 이번 작품은 우리 엄마들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을 같이 공유할 수 있어서 이번 연극이 굉장히 좋았다.

김소연: 연극적으로 재미있게 잘 만든 장면도 있지만 또 나라는 존재를 지우고 캐릭터로만 서 있는 것이 아닌, 엄마라는 존재가 드러날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게 어색하지가 않았다. (“너무 좋게만 봐주는 거 아닌가”) 관객의 진솔한 감상이다. 배우 자신과 캐릭터를 너무 구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스며드는 것이 ‘노란리본’ 연극의 매력인 것 같다. 그래서 <기억여행>의 노란리본 역할은 현실에 있는 인물이 아닌 추상적인 역할이다. 어렵지 않았나.

이미경: 처음에 어려움이 되게 많았다. 연출님은 사람 아니고 요정 같은 느낌이라고는 얘기를 하는데 그게 감이 잘 안 왔다. 내가 원래 성격이 발랄하고 까불까불 하고 그렇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하면 되나 했다.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연출님이 늘 이야기하는 건 밝게 하라는 거다. 2014년 어느 봄날 사람들이 메모장에 나를 그리고 돌아와 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감정을 넣어가지고 말하면 연출님은 거기를 늘 밝게 하라고 한다.

김도현: 세월호하면 노란리본이 떠오르는데, 노란리본은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다. 시민들이 만든 거다. 20일만에 동수가 팽목에서 올라왔는데 그전에 이미 사람들이 노란리본을 달고 있었다. 연극에서 노란리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시민들은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아직 우리 애들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경: 이 이야기도 꼭 하고 싶다. <기억여행>을 하면서 극단 엄마들하고 훨씬 더 끈끈해진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갈등도 있고 티격태격 하고 그러는데 이 작품 하면서는 서로 더 많이 끈끈해졌다. 작품이 너무 아프니까 서로에게도 상처를 주면 못 견딜 것 같은 거다. 그러니까 서로 더 따뜻하게 더 보듬어주고 더 토닥여주었다.

김소연: <기억여행>을 보고 이 아픈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인터뷰를 부탁했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아픔을 피하지 않기 때문에 얻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이미경: 연극을 하면서 맞닥뜨리고 부딪치고 그래왔던 것 같다.

김소연: ‘노란리본’은 항상 공연 끝나고 나면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이제 여러분들에게 위로를 드리려고 이 작품을 합니다 라고 이야기한다. 그말을 들으면 내가 위로 받았는데, 도리어 내가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박유신: 진짜 위로가 되나. 우리 연극이.

김소연: 예를 들면 앞서 이야기했던 ‘사내’ 장면이 감동적인 것이 갈등 속에서도 서로 손잡을 수 있는 뭔가를 끄집어내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갈등이 심하다. 세월호에 대한 혐오발언 등도 그런 갈등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가족분들이 여전히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데, 사실 지지하지만 미약하다. 또 까먹었네, 이러고 사는데 어느 날 극장을 갔더니 그 칼날 같은 말들에 가장 큰 게 아프셨을 분들이 그 말을 꺼내셨는데 이 칼날 같은 말들 속에서 나는 쓰러지지 않을 거고 손잡아야 하고 손잡을 수 있어 이런 이야기를 건네는 거다. 이건 용서와 화해의 문제가 아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이미경: 그런 생각이 든다. 진상규명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감사하고 기쁘다. 그래서 연극을 하는 게 더 뿌듯하고 무대에 오르는 게 벅차고 그렇다. 엄마들은 아이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하고 또 가장 슬프다. 아이 이야기할 때 제일 기쁘고 내 얼굴이 가장 밝게 빛난다. 그리고 슬프다. 무대에서는 그걸 동시에 이야기할 수 있다.

김도현: <장기자랑>을 할 때는 예쁜 거보면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고 서로 바르려고 하고, 예쁘게 보이려고 그랬다. 내 아이 이야기니까.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온갖 관심을 모두 노란리본에게 준다.

박유신: 공연을 하면 누가 주인공이다 이런 말을 하는데, 나는 모든 인물이 다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김명임: 무대에 선 모두가 그 역할의 주인공이다.

캘리그라피: 유진규

인터뷰 현장 사진: 이노아

<장기자랑> <기억여행> 공연 사진: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2015년 10월 치유목적의 연극모임으로 시작하여 2016년 3월 극단을 창단하고 공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소중한 생명들을 끝까지 기억, 추모하고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며 세월호 이후 달라져야 할 우리 사회의 면모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연극작품을 창작하고 공연하고 있다.

2016년~2017년 <그와 그녀의 옷장> 40여 회, 2017년~2018년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80여 회, 2019년~2020년 <장기자랑> 70여 회, 2021년~현재 <기억여행> 30여 회 공연했다.

(아래 사진은 인터뷰 현장 사진이다. 인사말은 <기억여행> 리플렛의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말”을 옮겼다. 인터뷰에 참여하지 못한 박혜영은 공연사진으로 대신한다.)

김명임(2-7 곽수인 엄마) 참사 초기 우리는 그저 자식을 잃은 슬픔에 잠긴 부모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되었죠. 결국 우리 부모님들이 사랑하는 아이들을 떠나보내게 된 모든 이유들을 직접 밝혀내야 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우리는 싸우고, 외치고, 투쟁하고, 바닥을 구르고, 내팽겨 치고, 뼈를 깎는 시간을 보내면서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지면서 ‘부모’라는 이름의 무게를 이겨내기 위한 변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많은 응원과 격려가 저희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도현(2-7 정동수 엄마) 항상 같이 옆에서 함께해주신 우리의 동반자 여러분! 여러분들이 없었으면 7년을 한자리에서 지키지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함께 울고, 웃고, 함께 걸어온 길 끝까지 함께 해주실거죠? 여러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순덕(2-1 장애진 엄마) 여러분들과 우리의 기억여행. 그날의 기억. 힘들지만 함께 가야할 우리의 몫. 엄마들은 힘들지만 그래도 잊지않고 함께 기억여행을 동행해주신 여러분들이 있끼에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 갈 겁니다.

박유신(2-3 정예진 엄마) 7년이 지난 지금… 기약 없는 앞으로의 시간도 평생 흘릴 눈물보다 몇 곱절 많은 눈물을 흘릴 수 있지만 어느 순간 목소리는 단단해지고 힘이 생겨 싸우는 법을 알게 되고 두렵지 않은 건 우리아이들과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미경(2-6 이영만 엄마) 여느 때와 다름없는 2014년 4월 15일 아침을 매일 꿈꾸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일상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진실을 찾아가는 미로처럼 긴 여정에 여러분들이 함께여서 용기를 내어 또 한걸음 내딛습니다. 여행에 동반자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란리본의 여행은 계속됩니다.

최지영(2-6 권순범 엄마) 7년이 넘는 시간동안 머나먼 여행을 떠난 우리 순범이와 친구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기억여행이 여러분의 삶에 큰 의미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박혜영(2-3 최윤민 엄마) 모든 진실이 다 밝혀지고 잘못한 인간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벌 받고 내가 우리아이한테 떳떳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노란리본의 말처럼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함께 해주시는 모든 우리 세월호 가족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리며 잊지 않겠습니다.

김태현(4.16가족극단 노란리본 상임연출)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면서 연극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예술인들이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어떻게 하다보니 세월호 어머님들과 함께 연극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내가 세월호 이후 할 수 있는 최선이겠다 싶었다. 만약 다른 분이 오셨다면 또 다른 새로운 질감으로 어머님들과 연극작업을 했을 텐데 어쨌건 지금 하고있는 사람이 나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연극으로, 책임감 있게 그러면서도 재밌게 잘해보자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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