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 신념이란 허상

이주영(연극평론가)

추억의 세운상가가 차근호 작가와 최원종 연출을 경유하여 2022년 대학로 무대에 폭로의 공간으로 다시 세워졌다. 그간 이 연극인 콤비는 <세기의 사나이>, <타자기 치는 남자>, <깐느로 가는 길>, <패션의 신> 등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극화한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였다. 이들 작품과 연장선상에 놓여 있으며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메이드 인 세운상가>에서는 1980년대 한국 상황에 주목, 극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1968년에 완공된 주상복합건물이자 최초의 종합전자상가인 세운상가와 그 안에서 일어났을 법한, 그리고 맹목적 신념이 낳은 비극의 결과를 무대화한 작품이다.

맹목의 과정

<메이드 인 세운상가>가 주목한 공간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세운상가이지만, 오히려 이 작품은 그 안에서 일상적 삶을 지속하고 있는 인물들에 초점이 가 있는 작품이다. 특히 극 전개의 중심축을 담당하고 있는 인물인 차석만(김동현 분)의 반공과 애국을 향한 맹목적 태도는 세운상가를 무한한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는 공간으로서, 그리고 이 실현을 통해 일상이 국가와 만나 충돌하고 끝내 비극을 맞이하게 만든다. 국가를 위한, 그리고 국가에 의해 학습된 일방향적인 가치관과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그는 신군부가 만들어내고 조종하는 우매한 애국 사이보그에 다름 아니다.

신군부는 북한의 금강사댐 건설을 이용하여 서울의 물바다설을 유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였고, 이 거짓되고 과장된 조작들은 평화의댐 건설과 그에 따른 국민 성금 모금 운동으로 이어졌다. 국가에 의해 학습된 애국과 반공으로 점철되어 있는 차석만은 세운상가 동지회 회장으로서 평화의댐 성금 모금 운동을 적극적으로 실천, 상가 입주민들에게 이 운동에 함께 동참할 것을 주장/강요한다. 이 국가를 위한 연대적 움직임에 반기를 드는 인물, 예를 들어 컴퓨터 가게를 운영하는 신입회원 장 사장(김늘메 분)은 애국가 4절 암송이라는 애국 미션을 통과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국가에 반하는 불순분자로 분류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차석만의 국가를 향한 애국에 대한 맹목적 신념은 그의 욕망을 확장시킨다. 그가 투척한 천만 원이라는 성금의 이면에는 종로구청장, 서울 시장, 내무부 장관에 이은 표창의 최종 도착지이자 표창 그랜드 슬램을 완성시킬 대통령 표창이 자리한다. 그가 왜 이토록 표창들을 욕망하는지에 대해서는 표면적으로 논리적 설득이 힘들 수 있으나, 대한뉴스에 등장한 그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함께 오히려 이보다 더 달콤한 결과물인 전과자이자 현 포르노 비디오 장사를 하고 있는 그를 양지의 사회로 이동시킬 역할을 한다.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회적 일꾼에게 뒤따를, 마패와 같은 표창이 안겨줄 이후의 영광과 이익을 생각한다면 차석만의 표창에 대한 욕망은 간첩 및 간첩선 신고로 얻을 경제적 이익처럼, 혹은 그보다 더 큰 이익이 보장된 그의 현재적 위치와 삶에서 가장 빠른 성공의 길을 보장한다.

차석만이 대통령 표창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놓기 직전이다. 이때 애국의 세운상가 밖에서 들여오던 독재타도의 외침과 이 기운, 그리고 이를 탑재하고 있는 미국으로 입양 갔으나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한국으로 온 MIT 공대생 피터 존슨(오민석 분)에 의해 차석만의 애국 퍼즐 완성이 지연된다. 비록 퍼즐 완성은 이 지연되었으나, 이로 인해 일상의 세운상가를 무한한 상상력이 실현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한다.

불온한 상상력

천만 원으로는 부족했다. 차석만은 피터 존슨을 주축으로 세운상가의 사람들과 함께 북한에 대항할 잠수함을 제작할 계획을 한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차석만이 갖고 있는 국가를 향한 일방향적이며 맹목적인 신념과 표창에 대한 강력한 욕망이 작동되었다고 한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맹목적 신념이 이토록 위험함을 <메이드 인 세운상가>의 차석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메시지 전달과 함께 이 맹목성은 작품 내에서 희극적 상황을 만들어 관극의 즐거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메이드 인 세운상가>의 주 분위기인 희극성은 세운상가의 사람들의 희극적 캐릭터 설정 및 이에 대한 배우진들의 탁월한 연기력, 그리고 한국인이지만 영어에 능숙한 피터 존슨이(한국말 또한 능숙함)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세운상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상황들이 관극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천만 원이란 상금은 차석만에 의해 잠수함 제작이란 더 큰 욕망으로 이동한다. 단, ‘잠수함=무기’가 성립되면서 세운상가의 애국은 남한을 위협할 불온한 행위로, 그리고 이 불온한 행위로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서서히 비극의 길을 걷게 된다. 타 작품들에서도 많이 봐왔던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간첩’이라는 내러티브이다. 하여, 어찌 보면 이 이동 과정 혹은 상황 설정이 관객들에게 단순하거나 너무 쉽게 읽힐 수 있는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메이드 인 세운상가>는 세운상가의 무대를 잠수함 제작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전환함으로써, 이로 인한 분위기 변화 및 영상 활용을 통한 나름의 볼거리 제공, 그리고 앞서 언급한 관극의 주 분위기인 희극성을 유지하면서, 즉 극작과 연출, 그리고 연기력의 합일이 성공하면서 느슨해질 수 있는 관객들의 시선을 무대에 고정시킨다.

차석만의 애국은 환상이었다. 상가 식당 주인인 박연희(문상희 분)가 간첩임이 드러나면서, 그리고 세운상가의 잠수함 제작이 국가적 반역 행위로 조작되면서 세운상가 및 사람들은 비운을 겪게 된다. 차석만의 맹목적 애국을 환상으로 만드는 존재는 차석만에게 애국과 반공을 강력하게 주입했던 국가이다. 멸공을 위한 잠수함의 제작 성공으로 차석만은 모두에게 환영을 받는다. 그리고 이 풍경 속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차석만은 환상/고문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중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보고도 애써 외면한, 국가에 의해 조작되고 세뇌된 애국과 반공은 언제든 고문으로 이동할 수 있는 허상이었다.

<메이드 인 세운상가>에서 세운상가는 극을 전개하기 위해 선택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세운상가는 다른 상가로, 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으며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확장은 작품의 시간적 배경인 1980년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여전히 그때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은 사람들은 지금/여기에 존재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맹목적 신념에 빠진 제2의·제3의 차석만이 존재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이는 <메이드 인 세운상가>가 2022년도에 공연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 기사는 한국연극 3월호에 실린 비평문을 재수록한 글입니다. <오늘의서울연극>(TTIS)은 좋은 글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재수록 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독자가 연극비평을 접해서 건강한 관극문화가 꽃피길 기원합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