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다르도의 상처

<반쪼가리 자작>(이탈로 칼비노 작, 박성찬 각색/연출)

윤서현

ⓒ보통현상

제43회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 창작조직 성찬파(前 극단 프로젝트 하다)의 <반쪼가리 자작>은 이탈로 칼비노의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인형 및 무대 디자이너로서 활동해온 연출가 박성찬의 이력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2017년 초연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수정과 보완을 거쳐 온 이 작품은 무대와 조명은 물론 의상과 분장, 배우 움직임과 인형 및 오브제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형식 요소들 간의 유기적 결합이 이상적이다.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를 우화 형식에 담아낸 칼비노 원작의 매력이 성찬파 배우들의 익살을 통해 완성도 높은 희극으로 탄생하면서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관객을 맞는 건 몸 풀기가 한창인 무대 위 광대들(김선권, 이경민, 장원경, 전민영, 최예경, 백효성 분)이다. 이들은 곧 메다르도 자작의 이야기를 펼쳐 보일 배우들로, 관객입장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심각하게 독백을 중얼거리거나 두셋씩 장면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수 세기 전 유럽의 유랑극단을 연상시키는 의상과 광대 분장이 인상적이다. 이 때, 알과핵 소극장의 공연 전 안내 멘트가 울려 퍼지고 이에 놀란 광대들이 이 소리가 어디서 나는 것인지 갸우뚱 거리며 무대 곳곳을 뒤지기 시작한다. 유랑극단의 시공과 대학로 관객의 시공이 만나는 순간이다. 광대들은 연사가 되기도 하고 역할을 바꾸어 연기하기도 하며 때로는 역할에서 빠져나와 작품 내용에 대한 개인적 의문을 제가하면서 다채로운 연기 톤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매순간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광대들의 모습은 인간 또한 한시적인 정체성을 부여받은 유한한 존재라는 오래된 암시이다. 나무칼과 종이왕관이 무대 위에서만 칼과 왕관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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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투르크인들을 상대로 하는 전쟁에 참전하게 된 테랄바의 청년 메다르도 자작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다. 낯선 전장의 풍경에 아이 같은 질문을 던져대던 메다르도는 곧 여느 귀족들처럼 지휘관이 된다. 전쟁은 그의 내면에서 잔인함을 이끌어냈고 그는 곧 자기 효능감에 도취된다. 영웅이 될 것만 같았다. 적어도 정면으로 날아오는 포탄에 맞아 몸이 세로로 두 동강 나기 전까지는. 겨우 숨이 붙어 반쪽짜리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영지에 있는 모든 것을 두동강 내고 마을 사람들을 핍박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메다르도의 또 다른 반쪽이 나타난다. 이 메다르도는 자발적으로 타인을 도울 뿐더러 모두가 이타주의적인 삶을 살도록 독려한다. 폭압적인 메다르도에 지쳐있던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선한 메다르도를 따르기 시작하지만 곧 그의 이타주의 설파에 질력이 난다. 두 메다르도가 의식적으로 서로를 피해 다니며 활동하자 마을사람들은 이 두 메다르도 중 적어도 하나라도 피해보자는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파멜라라는 한 소녀를 미끼로 그녀를 사랑하는 두 메다르도를 만나게 만든다. 그리고 드디어 결투가 벌어진다.

성찬파의 성공적인 작업은 중편소설인 원작이 지닌 매력적인 설정을 보존하면서도 시간적 제약을 고려하여 원작의 상당 부분을 생략하고 압축하는 과감함, 극단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장면들에 대한 선택과 집중으로 가능하였다. 예를 들면, 원작의 화자이자 주요 등장인물 중의 하나인 메다르도의 조카 ‘나’를 비롯하여 의사 트렐로니, 유모 세바스티아나, 두 메다르도의 결투를 위해 컴퍼스 다리를 만들어준 장인(匠人) 피에트로키오도 같이 자신만의 에피소드를 지니고 있는 인물들도 모두 ‘마을사람들’로 대체되었다. 이 과정에서 의사 트렐로니의 치유 능력은 파멜라가 가진 것으로 수정되었는데, 이로 인해 원작과는 달리 작품의 피날레에서 파멜라의 의미가 새롭게 부각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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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이 생략되고 내러티브가 압축되는 대신,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에 있어서는 반복도 피하지 않았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반복이 익살스러운 형식적 변주를 통해 더욱 풍성한 장면으로 연출된다. 사실 이 작품은 원작부터가 착한 메다르도의 전사를 악한 메다르도의 이야기가 한참 진행된 이후에야 다소 갑작스럽게 제시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를 무대화하기 위해 성찬파가 선택한 방식이 인상적이다. 성한 몸이었던 메다르도가 전쟁터에서 포탄을 맞고 수술대에 눕는 인형극 장면이 광대들에 의해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 번 펼쳐진다. 여기에, 고향으로 돌아온 착한 메다르도의 선행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간단한 그림자극으로 덧붙여지면서 관객들의 웃음은 배가된다.

악한 메다르도와 선한 메다르도는 서로 정반대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에게 실망한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점에서 같은 처지다. 악한 메다르도는 어린 나이에 집안의 위신 때문에 떠밀리듯 전쟁에 나왔다가 불구가 되었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 겉모습 때문에 환영받지 못했다. 세상을 향한 복수심이 들끓는 그는 인간의 선함을 믿지 않기 때문에 통치 방식으로 폭력과 억압을 선택했다. 한편, 선한 메다르도의 실망감도 만만치 않다. 그는 모든 인간들이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더 이타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선한 메다르도를 악한 메다르도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미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보통현상

메다르도가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영혼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더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그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일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온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이들은 ‘악’에는 엎드려 절하고 ‘선’에는 비아냥거리며 이중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악’에 정정당당하게 맞서지 않으며 ‘선’의 설득 또한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들이 ‘악’이나 ‘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행하는 유일한 선택이라곤 또 다른 희생자-파멜라-를 찾아내는 일 뿐이다.

청년 메다르도가 대의명분 때문에 전쟁에 보내졌듯이 소녀 파멜라 또한 두 메다르도의 결투 앞에 재물처럼 던져졌다. 메다르도가 전쟁에서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처럼 파멜라 안에서도 힘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생기기 시작한다. 두 메다르도를 연기한 백효성, 김선권 배우가 신체의 한 쪽 측면만을 부조처럼 써서 표현한 인상적인 결투 장면이 끝난 후, 부상당한 두 메다르도를 붙여 온전한 남편을 만들어낸 파멜라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분위기는 고향으로 돌아온 반쪼가리 메다르도가 느꼈을 인간에 대한 복수심과 실망감을 연상시킨다.

이 공연은 ‘순삭’이고 해를 거듭할수록 더 재미있어질 것이 분명하다. 모두 놓치지 않길. ‘창작조직 성찬파.’ 유쾌한 그 작명만큼 대학로 일대를 주름잡는 강력한 조직으로 거듭날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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