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김지하 시인 추모문화제

6월 25일 오후 2시 안국역 옆 천도교 수은회관 대교당에 서 열린 김지하 시인 추모문화제에 참석했다. 미리 와 있던 이근배 시조시인이자 예술원 회장, 명배우 최불암과 권병길이 필자를 반갑게 맞이해 그들과 나란히 착석했다.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소리꾼 임진택 등 주로 시인의 서울대 미학과, 문화운동 후배들이 주축이 돼 마련한 김지하 시인 추모문화제에는 시인 신경림, 소설가 황석영,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등 범 진보진영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추진위원으로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시인과 결별을 선언했던 가톨릭 함세웅 신부, 시인의 대표작 ‘오적’을 일본 사회에 실시간 소개해 세계적인 구명 운동을 불러일으킨 일본인 편집자 미야타 마리에가 추모제에 참석해 시인과의 ‘애증 관계’를 고백했다. 손학규·유인태 등 정치인들도 얼굴을 비췄다. “공이 9라면 과는 1인 인생이라며, 맺힌 응어리를 풀고 명복을 빌어주자는 취지대로, 흠결은 지적하더라도 성취는 객관화하려고 마련한 자리라서였는지, 김지하 시인 추모문화제가 열린 수은 천도교 대교당에는 700여 명의 인파가 몰려 일부는 바닥에 앉아야 했다. 참가자들의 발언이 길어지면서 오후 3시에 시작된 추모제는 7시를 넘겨서야 끝이 났다.

김지하 시인 약력 소개가 있었고,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의 개막 발언에 이어 김사인 시인이 추모시 ‘해월신사께 한 줄 祝(축)을 올립니다’를 낭독했다. “심술 궂고 미운 데도 적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릇이 크니 소리도 컸겠지요 “. 애증이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해월은 천도교 2대 교주 최시형. 생전 시인이 누구보다 흠모했었다고 한다. 추모식 사회를 맡은 유홍준 이사장은 “시인의 말년에 평소와 다른 언행으로 감정 상하고 척지는 일도 있어, 원주 장례식장에는 발걸음을 주저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그렇다 해도 쓸쓸히 보내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추모제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함세웅 신부는 처음에는 49재 참석 제안을 거절했었다고 밝혔다. 신문 칼럼이 커다란 상처를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은 화해의 과정”이라며 “시기를 나눠 김지하를 평가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미야타 마리에는 ‘오적’을 처음 접하고 압도적 말의 힘에 매료됐으나 박근혜 지지 선언을 편들 수는 없었다고 소개한 다음 “상냥한 누나로 시인의 모든 행위를 받아들이는 게 좋았을지, 나는 마지막 날까지 후회하며 살 것”이라고 했다. 후배 문인들을 대표해 시인의 신문 칼럼에 대한 반박글을 썼던 김형수 시인은 “선생님의 생명운동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됐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했다”며 경위를 설명했다. 유홍준 이사장은 진보 문학진영의 좌장 격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지하 시인과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시인이 백낙청 선생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지만 ‘김지하 선생은 병중이라 몸과 마음이 고통받고 있다’는 백 선생의 이해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7년 가까운 수감 생활 후유증 등으로 시인은 몸과 마음이 아팠다는 것이다.

김지하 시인을 일본에 소개하고, 전 세계적인 구명운동에도 앞장섰던 미야타 마리에 일본 전 중앙공론사 편집장은 “1991년 김지하는 젊은 생명을 사랑한 나머지 고통의 말을 던졌는데, 그 이후 ‘김지하의 변절’ 풍조가 한국 사회에 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2012년 박근혜 지지선언을 한 시인에 대해서는 ‘실망하고, 우려했다고 했다.

유홍준 이사장은 시인의 생전 활동을 크게 6갈래로 구분했다. 민주화, 문학, 노래, 생명운동, 그림, 민중예술운동이다. 생명운동 등 시인의 후반기를 회고하는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소설가 황석영은 추모사 속 우화를 통해 시인의 ‘흰 그늘’ 미학을 이렇게 해석했다. “누군가를 저 세상에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에 겨워 몇 날 몇 밤을 실컷 울고 나서 피시식 하고 저절로 나오는 희미한 웃음 같은 것.” 그늘이 희다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문학은 논리로 재단할 수 없다는 의미다.

김지하 시인의 대학 시절 친구인 염무웅 문학평론가는 “김지하 시인은 아직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라며 “김지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면 그의 세 권짜리 회고록 『흰 그늘의 길』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지금 당장의 잣대로 시인 김지하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25일 서울 종로구 천도교 대교당에서 불교식인 49재를 맞아 진행한 추모제에는 함세웅 신부의 추도사가 더해지며 세 개 종교가 공존하는 현장이 됐다. 추모제는 김지하 시인의 앉은 모습을 조각한 작품을 공개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날 행사에는 시조시인 이근배·문정희·김정환·김기택·이진명·이승철·임동확, 화가 김정헌. 임옥상, 언론인 임재경, 정치인 김정남·김덕룡, 윤정모 소설가, 명배우 최불암과 권병길,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서예가 김영복 그리고 필자가 참석했다.

추모제를 참관하면서 문득 최희준(1936~2018, 가수 국회의원)이 부른 영화 하숙생의 주제가 “인생은 나그네 길”의 가사가 떠올랐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없이 흘러서 간다
소리없이 흘러서 간다
소리없이 흘러서 간다

7월 23일 박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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