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과 놀이의 한 마당: 연극 <달을 묻을래> 

박연숙(연극평론가/숭실대 교수)

극단: 창작극단 이야기양동이

연출: 천정명

작: 박지선

관극 일자: 2022년 7월 17일 3시 공연

장소: 종로 아이들극장

사진 출처: 극단 제공

캐나다의 작가 앙드레 풀랭의 그림책 <달을 묻다>가 창작극단 이야기양동이에 의해 <달을 묻을래>(박지선 작, 천정명 연출)로 무대에 올랐다. 인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화장실이 없어 겪는 어려움을 어린 소녀가 해결해 가는 이야기를 네 명의 배우(김은정 정문선 박훈규, 한선영)와 세 명의 악사(이서연, 안혜리, 안준서)가 재미있는 놀이연극으로 발전시켰다. 그림책에서 느낄 수 없는 연극적 재미와 음악극의 흥겨움을 더해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도 즐길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다.

네 명의 이야기꾼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서 자신이 맡게 될 여러 역할을 소개하면서 시작하는데, 객석의 어린이 관객을 향해 “인도 인도 하면?”을 묻는 방식으로 어린이 관객들의 참여를 이끌었다. 객석 이곳저곳에서 “카레”, “갠지스 강”, “수학”, “소”, “힌두교” 등이 나오고 잠잠해지자, 이야기꾼들은 “당신 안의 빛에 인사합니다.”라는 의미의 “나마스테”를 인도 남부의 민요를 편곡하여 춤과 노래로 소개하며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하였다.

어린이극답게 생동감 있는 대사로 리듬을 살려냈다. 이야기의 시작을 네 명의 이야기꾼들이 번갈아 가며 “나는 라티카 됐다, 여자 어른 됐다, 할머니 됐다, 홱홱! 달이 됐다, 사미르 됐다, 이장님 됐다, 삭삭! 라티카 됐다, 란지니 됐다, 물동이 됐다, 척척! 라티카 됐다, 오줌보 됐다, 물동이 됐다, 휙휙!”하며 어린이가 좋아하는 어감과 움직임(변영미 움직임 지도)으로 리듬을 만들었고, 세 명의 악사들이 생소한 악기와 소리로 경쾌함과 신비로움을 더해 주었다. <달을 묻을래>는 음악(이서연 음악감독)이 특히 돋보였는데, 세 명의 악사들이 이 작품을 위해 인도의 음계와 리듬을 공부하며, 우리나라 정서에 잘 맞는 인도 남부의 카르나틱 지방의 음악을 참고하여 작(편)곡했다. 특히 극 중 마을 여인들이 물을 기를 때 부르는 노래 ‘물동이’는 인도 전통 음계를 사용한 멜로디에 전통 악기인 스루티 박스, 만지라, 우드 드럼 등을 사용하여 인도 특유의 분위기를 살려냈다. 악사들은 이야기꾼들의 노래와 춤을 위한 연주뿐만 아니라 무대 배경의 분위기, 이야기꾼들의 미세한 움직임, 낮과 밤의 시간 흐름 등의 효과를 30여 가지의 악기로 표현했다.

이처럼 <달을 묻을래>가 인도의 악기와 춤을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문화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어린 소녀의 성장이다. 화장실이 없는 마을에서 성폭력의 위험 때문에 남자들처럼 아무 데서나 볼일을 볼 수 없는 여자들이 온종일 참아온 ‘볼일’을 늦은 밤 ‘창피한 들판’에 가서 봐야 하는 상황에서 이 마을의 소녀 라티카가 용기를 내어 이 문제를 주체적으로 풀어가는 이야기이다. 라티카는 볼일을 볼 때 달빛 때문에 마음이 졸여 달을 묻어 버리겠다고 말하는 당찬 아이이다. 그러나 달을 묻는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달빛이 없으면 전갈이나 뱀을 피할 수도 없을 테니 달을 묻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정부에서 파견된 엔지니어 사미르가 찾아온다. 사미르는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데, 라티카가 화장실을 만들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와 언니가 그런 창피한 것을 말하면 안 된다고 하여 말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사미르에 의해 마을에 우물도 생기고 전기도 들어오게 되지만 화장실은 생기지 않았다. 여자들이 창피해서 필요한 것을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티카는 당당하게 화장실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그 대신 곡괭이를 훔쳐 스스로 직접 화장실을 만들기로 마음먹는다. 라티카가 사미르에게 ‘엔지니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물어보았을 때 “필요한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알려준 덕분에 스스로 엔지니어가 되어 화장실을 만들 계획을 세운 것이다.

라티카가 곡괭이를 훔친 것이 이장님께 발각되었을 때, 라티카는 곡괭이가 필요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곡괭이는 창피한 들판에서 볼일을 보다 전갈에 물린 할머니를 위해, 어린 아들이 오염된 강물을 마시고 죽어 슬픔에 빠진 이모를 위해, 생리를 시작하게 되어 학교에 갈 수 없게 된 언니를 위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을 묻고자 하는 자신을 위해 필요했다고 답하는데 이 부분의 장면이 연극적으로 잘 표현되었다. 이장님께 꾸중을 듣는 상황에서 마침 사미르가 나타나자 라티카는 용기를 내어 창피함을 무릅쓰고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게 되고, 사미르의 도움으로 마을에 화장실이 지어지게 된다.

<달을 묻을래>에는 여러 대비가 있다. 화장실이 없어 불편을 겪는 여자와 이러한 불편을 느끼지 않는 남자, 궁금한 것을 자유롭게 묻는 라티카와 말문을 막는 고루한 마을 이장님, 화장실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라티카와 그런 창피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엄마와 언니의 대비이다. 이러한 대비가 남자 여자의 갈등으로만 일괄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 이 연극은 사유할 거리를 풍성하게 담고 있는 철학적 연극이다. 누구나 다 볼일을 보는데 왜 여자들만 유독 창피한 들판에 갈까? 왜 여자들만 볼일을 창피하다고 할까? 정말 필요한 것을 창피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옳을까? 어떤 것이 진짜 창피한 것일까? 창피함을 느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달을 묻게 되면 어떤 일이 생겨날까? 만약 이 작품으로 철학 수업을 한다면 어린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풍성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사미르와 이장님의 변신이다. 빨간 물방울무늬 나비넥타이를 매면 사미르로, 주황색 터번을 쓰면 이장님으로 변신하는데 그 변화의 폭이 크고 성격이 대조되어 관객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배우의 연기력도 좋았고, 인물 변환의 리듬도 좋았다. 라티카의 고민을 들어주고 도움을 주는 인물이 정부에서 보낸 엔지니어 사미르라는 점도 흥미롭다. 사미르가 라티카에게 곡괭이를 왜 빌려 갔는지를 물었을 때 라티카가 나비넥타이를 맨 높은 분에게 창피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엄마의 말을 들려주자 사미르가 넥타이를 풀고 “나비넥타이를 맨 높은 분은 어디 가고 나만 남았네”라고 하는 대사가 특히 좋았다. 어린 소녀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하고자 하는 사미르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유롭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사람은 그가 어디서 일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성별이고, 나이가 얼마나 많고와 무관한 것이다. 다른 누군가의 말에 진심을 담아 귀 기울이고 상대에게 수치심을 주지 않으면서 좋은 점을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무대는 간결하고 소박했지만 조명(우수정 조명 디자인)과 소품(서현제 오브제 디자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무대가 꽉 찬 느낌이었고, 의상(임은주 의상 디자인) 역시 간편하면서도 변신이 쉽게 디자인되어 효과적이었다. <달을 묻을래>는 예술교육자료(김서희, 강주성 공연예술교육)를 마련하여 교육용 연극으로도 활용되었다. 공연 이후에는 활동 안내서를 교사용과 학생용으로 만들어 배부하였다. 학생용 활동지는 포스터 그리기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글, 그림으로 표현하게 하였고, 교사용 자료에는 인도의 환경과 인권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시하였다. <달을 묻을래>는 2021년 11월 시범 공연을 시작으로 2022년 5월(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 어린이 극장), 6월(성균관대학교 새천년홀), 7월(종로 아이들극장)의 3번의 공연을 마쳤다. 앞으로도 공연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고, 철학적 사유를 담은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어린이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오랜만에 어린이와 어른 모두 즐길 수 있는 연극, 생각을 키울 수 있는 연극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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