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십(幾十)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Faust)’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2)

– 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외계 공작소, 동맹, 아레떼 연출부 드라마투르그

 지난 7월호에 언급했던 베를리오즈가 5악장에 써 놓은 프로그램을 다시 한번 읽은 후, 아래 오케스트라 사진 밑의 링크로 들어가 음악을 들어보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로 곡이 시작된다. 불길한 저음과 낄낄대는 고음의 대조는 누가 들어도 깊은 브로켄 산 속, 마녀들의 밤이다.

 1분 18초(악보1)에 Bb 클라리넷이 ‘연인의 선율’인 고정 악상(Idée fixe)을 연주하지만, 곧바로 오케스트라 총주에 결딴이 난다. 그리고 1분 34초(악보2)에 Eb 클라리넷이 ‘연인의 선율’을 연주하는데 어딘가 이상하다. 주인공의 이상이었던 연인은 어느새 추한 마녀가 되어 경박하고 기괴한 춤을 미친 듯이 추는데, 마치 메피스토펠레스의 절뚝거리는 말굽 소리 같다. 구애에 실패한 베를리오즈는 여신 스미드슨을 악마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Bb조 클라리넷을 Eb조 클라리넷으로 바꿔, 등장인물의 변신을 연출한 이 부분은 ‘연극 연출가 베를리오즈’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2분 26초에 장면 전환이 있다. 베를리오즈는 흐름이 끊기지 않게 이곳에 뒤에 본격적으로 전개될 ‘광란의 론도(Rondo; 일종의 돌림노래)’ 주제를 파편처럼 삽입한다. 2분 48초(악보3)에 불길한 종이 울린다. 광기와 음산이 서로를 물은 채로 대치하는 긴장된 시간은 3분 16초(악보4) 느닷없이 등장하는 ‘진노의 날(Dies Irae; 레퀴엠에 쓰이는 선율)’에게 시선을 넘겨준다. 이제 주인공도 죽어가는 것이다. 마치 죽음의 행진 같은 효과를 내는데 여기에 조금씩 악기가 붙으면서 그 느린 발걸음에 점점 속도가 붙는다. 드디어 5분 7초(악보5)에서 본격적인 ‘광란의 론도’와 함께 마녀들이 원무를 춘다. 형식은 푸가(fuga)인데 여러 악기와 여러 성부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광기와 죽음, 혼란과 축제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7분 4초 잠시 소강상태였던 분위기는 더 큰 절정위해 상승을 준비한다. 베를리오즈는 지금까지 등장했던 ‘연인의 선율(Idée fixe)’, ‘진노의 날(Dies Irae)’ 그리고 ‘광란의 론도(Rondo)’를 한데 섞어서 거대하고 짜릿한 장면을 연출한다. 8분 17초(악보6)에는 활등으로 현을 때리는 콜레뇨(col legno)기법이라는 특수 효과까지 얹어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장면까지 만들어낸다. 이후 총주로 연주되는 음표들이 파국을 향해 질주하면서, 무대를 가득 메운 마녀들이 막을 내린다.

 파우스트의 브러켄 산을 묘사한 5악장은 ‘연극 연출가 베를리오즈’와 ‘교향곡 작곡가 베를리오즈’가 맞붙은 도박판에서 서로에게 던진 승부수였다. 승패의 결과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악보1 (1분 18초)

악보2 (1분 34초)
악보3 (2분 48초)
악보4 (3분 16초)


악보5 (5분 7초)


악보6 (8분 17초)

 좌절된 사랑으로 갈기갈기 찢긴 젊은 베를리오즈의 삶은 연극 그 자체였다. 그는 자신의 비극을 파우스트라는 거대한 비극에 빗대, 한 편의 교향곡으로 만들어냈다.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은 서양 음악사상 가장 ‘연극적인 교향곡’일 것이다.

 빼어난 연출자이자 날카로운 음악 감독인 베를리오즈의 연극에 대한 심취, 특히 셰익스피어와 괴테에 대한 사랑은 평생 지속된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결국 ‘4부의 극적 이야기’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완성한 대작 ‘파우스트의 겁벌(La Damnation de Faust)’에서 결실을 본다. (이 곡은 이어질 연재 ‘백 명 이상이 연주하는 파우스트’에서 다룰 예정이다)

 베를리오즈의 연극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극과 음악을 결합하려 했던 그의 독창성을 좀 더 알아보자.

 ’어느 예술가의 생에 대한 에피소드’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환상 교향곡’은 베를리오즈의 대표작이자 서양 음악사에서 ‘낭만주의’와 ‘표제 음악’의 포문을 연 매우 중요한 음악이다. 하지만 이 곡은 베를리오즈가 구상했던 거대한 아이디어의 1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교향곡에 이어지는 2부로 ‘렐리오, 삶으로의 귀환’이라는 ‘서정적 독백극’을 만들었다. (Lélio, ou Le retour à la vie; Monodrame Lyrique) 이는 베를리오즈가 창안한 완전히 새로운 형식으로, 연극과 음악을 한데 섞은 형식이다.

 무대부터 독창적이다. 무대 앞부분에는 배우가 연기하고 성악가가 노래한다. 뒷부분은 얇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데 이 뒤에 오케스트라가 자리 잡고 음악을 넣는다. 음악은 배우의 대사와 완벽하게 연동되며, 적재적소에서 환상 교향곡의 주요 주제들이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지금 생각해도 기발한 구상인데,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내용은 1부 환상 교향곡의 주인공(작곡가 렐리오)이 환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다. 현실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연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내내 독백으로 셰익스피어와 괴테의 오마주를 표현하던 렐리오는 뚜렷한 결론 없이 ‘앙코르, 영원히!’라는 마지막 대사를 중얼거리며 무대를 떠난다. 어찌 보면 렐리오의 이야기는 발푸르기스 밤 이후의 파우스트 전개와 맞물린다.

베를리오즈와 스미드슨 그리고 결혼 입회인 리스트

 렐리오 공연 이후, 베를리오즈는 자신의 여신 해리어트 스미드슨과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 결혼은 둘을 병들게 했다. 여담으로 베를리오즈와 스미드슨의 결혼식 입회인은 또 다른 ‘파우스트 매니아’ 프란츠 리스트(F.Liszt)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혁명적인 작곡가를 꼽으라면 바그너 다음으로 베를리오즈를 뽑고 싶다. 베를리오즈는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심상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이라는 틀을 벗어나 문학, 연극으로 영역을 넓혀간 정복자였다. 두려움 없던 그에게 ‘우주 모든 것을 무대 위에 올릴 수 있다’는 괴테의 파우스트는 성경과도 같은 예술 지침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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