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백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Faust)’

리스트 – 파우스트 교향곡

– 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외계 공작소, 동맹, 아레떼 연출부 드라마투르그

<괴테와 베토벤>

 프란츠 리스트(F. Liszt; 1811~1886)는 늘 가장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 했던 야심가였다. 이미 탁월한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 그 자리에 앉아보았기 때문에 더 높은 곳, 더 절대적인 자리를 갈구했다. 리스트가 목표로 삼은 두 지점은 바로 ‘교향곡’이란 장르의 예술성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악성 ‘베토벤’과 대문호 ‘괴테’의 최고 역작인 ‘파우스트’였다. 1854년, 리스트는 음악과 문학이라는 두 왕국을 통일한 ‘파우스트 교향곡(Eine Faust-Symphonie)’을 완성한다. 자신을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를 합쳐 놓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리스트에게 이 곡은 필연이었다.

<R. Schumann / H. Berlioz>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은 지난 10월에 소개한 슈만의 ‘괴테 파우스트의 정경 Szenen aus Goethes Faust’, 11월에 소개한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La Damnation de Faust’과 인연이 깊다.

 1849년 리스트는 바이마르에서 열린 괴테 100주년 기념 연주회에서 슈만의 ‘괴테 파우스트의 정경’ 중 일부분을 지휘했다. 그는 슈만의 대규모 음악으로부터 강한 영감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파우스트 작업에 섣불리 돌입하지는 않았다.

 리스트에게 파우스트라는 불을 지핀 것은 베를리오즈였다. 연극광이었던 베를리오즈는 발푸르기스의 섬뜩한 밤을 묘사한 걸작 ‘환상 교향곡(TTIS 2022년 7월, 8월호 참조)’ 작곡 후 짝사랑하던 여배우 스미드슨과 결혼에 성공한다. 그 결혼식의 입회인이 바로 리스트였고, 베를리오즈는 이후 자신의 파우스트적 사상을 집대성한 ‘파우스트의 겁벌’을 리스트에게 헌정한다. 1852년 바이마르에서 베를리오즈가 자신의 작품을 지휘하자 리스트는 베를리오즈와 슈만처럼 자신만의 대편성 파우스트를 완성하기로 결심한다.

<파우스트 교향곡 총보 표지>

 마침내 1854년, 리스트의 파우스트는 베를리오즈나 슈만처럼 ‘오라토리오’ 형식이 아닌 ‘교향곡’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세상에 나왔다. 각 악장에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1악장은 ‘파우스트’, 2악장은 ‘그레트헨’, 3악장은 ‘메피스토펠레스’다. 리스트는 주연 인물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희곡의 주요 장면을 묘사한 베를리오즈와 슈만의 작품과 차별화를 둔 것이다.

 25분이나 되는 1악장은 늙은 파우스트와 젊은 파우스트가 번갈아 묘사된다. 보통 교향곡의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이지만 파우스트 교향곡의 1악장은 다양한 주제가 난립하는 자유로운 교향시 형식이다. 모든 주제는 파우스트의 내면이다. 늙은 파우스트는 고뇌와 우울을 느린 저음으로 표현하며, 젊은 파우스트는 빠른 템포와 금관의 팡파레같이 장대하고 저돌적인 음으로 묘사된다.

 가장 아름다운 2악장은 희곡 속의 그레트헨을 시간순으로 묘사한다. 우선 플룻, 오보, 클라리넷의 목관이 순결한 처녀를 화사하게 묘사한다. 슬며시 1악장의 파우스트 주제가 들어와 그레트헨의 청초함과 엮이고, 격정적으로 변한 음악은 사랑의 절정을 이룬다. 이후 버림받은 그레트헨의 애절한 모놀로그로 악장을 끝맺는다.

 3악장 메피스토펠레스는 리스트가 가장 많이 다루었던 소재다. 스케르초 형식 안에서 피치카토와 스타카토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발굽 소리를 괴기스럽게 표현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메피스토펠레스의 주제는 1악장에서 나왔던 파우스트의 주제를 살짝 비튼 것이다. 리스트는 자신 안에 있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를 동일시하여 음악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주제의 변형은 작곡가 자신만의 음악적, 문학적 지론이 가장 많이 투영된 음악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점점 파우스트는 사라지고 메피스토펠레스가 승기를 잡아간다. 현란하고 기괴한 음들이 파국을 향해 돌진할 때, 2악장의 그레트헨의 주제가 구원자처럼 등장하면서 이 모든 상황이 정돈된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리스트는 이렇게 곡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함을 느꼈는지, 1857년 바이마르에서 자신의 지휘로 이 곡을 초연할 때는 3악장의 끝부분에 테너 독창과 대규모 합창이 등장하는 피날레 부분을 추가했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텍스트는 괴테 파우스트 2부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신비의 합창(Alles Vergänglische ist nur ein Gleichnis)’이다.

 이 거대한 합창 피날레는 3악장 끝에 붙어 있지만, 3악장의 주제인 메피스토펠레스와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완전히 결이 다른 음악이기 때문에 차라리 분리된 4악장으로 보는 편이 낫다. 그렇다면 왜 리스트는 자신의 파우스트 교향곡에 거대한 합창 피날레를 추가했을까?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자신보다 앞서 파우스트를 완성했던 슈만과 베를리오즈의 작품에 성악과 합창이 들어갔기 때문에,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리스트도 대규모 합창을 추가했을 거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슈만과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는 원래 성악과 합창이 들어가는 ‘오라토리오’ 형식이고, 리스트의 파우스트는 기악으로 연주하는 ‘교향곡’이다. 선배들을 따라 했다는 가정은 설명이 불충분하다.

 리스트는 그리 단순한 야심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복잡하게 생각해 보면, 명료한 답이 나온다.

 리스트는 대중들이 자신을 ‘끝내 주는 피아니스트로’만 인식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는 ‘철학적인 예술가’로 인정받길 갈구했다. 리스트는 위대한 예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반열에 오르고 싶어 끊임없이 작곡에 경주했다. 리스트가 생각하기에 가장 위대한 예술의 경지에 오른 두 사람은 괴테와 베토벤이고, 괴테의 대표작은 ‘파우스트’이며 베토벤의 대표작은 ‘교향곡 제9번 합창’이다. 잘 알다시피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합창의 마지막 4악장에는 성악과 합창단이 등장하여 인류의 구원을 환희로 노래한다. 리스트는 자신의 파우스트 교향곡의 마지막에 합창을 추가해서 악성 베토벤의 영원불멸의 교향곡의 형식에 올라타려 했다.

<만년의 리스트 / 괴테의 파우스트 표지 / 베토벤의 교향곡 9번 악보>

 괴테와 베토벤을 자신의 작품 안으로 집대성하려 했던 리스트. 그 야심이 너무 컸을까? 파우스트 교향곡은 슈만,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처럼 지난 150년 동안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자신 안에 꿈틀거리던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를 통합하면서, 늘 동경하던 대문호와 악성의 경지에 이르고자 했던 리스트의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괴테와 베토벤이 넘어섰던 임계점은 형식의 모방과 내용의 차용으로는 결코 뚫을 수 없는 천장이었다. 이후, 서양 음악사에는 ‘파우스트를 주제로 쓴 음악은 대성(大成)할 수 없다’라는 웃지 못할 징크스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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