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글_박정기

산울림 소극장에서 극인단 이치의 나스메 소세키 작, 윤영성 각색․연출․출연의 <이백십일>을 관극했다.

사진 제공: 극인단 이치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는 일본에서 소위 ‘국민 작가’로 불리며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는 도쿄(東京) 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문부성이 임명한 최초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2년간 영국 런던에 머물며 영문학을 연구하였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소세키는 도쿄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는 한편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다』를 발표하여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거의 불혹에 가까운 나이로 소설 창작을 시작했지만, 소설가이기 전에 그는 이미 뛰어난 하이쿠(俳句) 시인이었고 영문학자였다. 다망한 교직 생활과 소설 창작을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 데에 고충을 느끼던 소세키는 아사히(朝日) 신문사의 전속 작가 초빙을 받아들여 교수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이후 그의 소설들은 대부분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다. 그는 초기의 경쾌하고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에서 출발하여 점차 인간의 심층 심리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구메 마사오 등의 일본 작가들에게 그는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16년 소설 「명암」을 연재하던 중 위궤양 악화로 숨을 거두었다. 소세키의 대표작으로는 『행인』을 비롯, 『나는 고양이로다(吾輩は猫である)』 『도련님(坊っちゃん)』 『산시로(三四郞)』 『그후(それから)』 『문(門)』 『마음(こころ)』 『명암(明暗)』(미완) 등이 있다. 특히 『행인』에서 그는 동양적 윤리성과 서양 문학에서 습득한 고도의 지성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에 깃들인 에고이즘의 추구라는 근대적 테마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사진 제공: 극인단 이치

작품의 배경은 일본의 잡절기인 ‘이백십일’ 구마모토의 아소산의 한 온천 여관이다. 2개의 방과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하나의 방에는 게이와 로쿠가 묵는다. 게이는 스모선수처럼 움직이고 큰 소리로 웃는다. 그는 두부가게의 아들로, 화족과 부자들을 경멸한다. 두부상인 이상의 존재가 되고 싶은 그는 이백십일의 나쁜 날씨에도 아소산을 정복하려 한다. 그와 동행하는 로쿠는 종종걸음으로 움직이고 조금 위축되어 보인다. 그는 현실의 이치에 밝은 인물로, 게이와의 우정이 아니었다면 아소산을 오를 일이 없을 인물이다.

다른 방에는 도련님이 지낸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동경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다. 그는 고구마와 밤을 판매하는 사업을 하려다 처절하게 실패했다. 그는 도쿄로 돌아가는 대신 여관에서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그는 근대화된 시대에서 돈의 의미를 성찰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있지만 무언가 나라를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도 없이 요양을 핑계로 여관에 눌러앉는다. 그는 주변인에게 돈을 빌리지만, 그가 빌릴 수 있는 돈은 하루치 숙박비인 1엔뿐이다.

사진 제공: 극인단 이치

여관에는 할아버지와 하녀가 산다. 할아버지는 느긋하게 수염을 깎고 여관을 관리한다. 도련님은 가끔 그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걸지만 도통 대답하는 일이 없다. 하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다소곳이 남성에게 내조하는 여성이지만, 돈을 내지 못하는 도련님과 이해할 수 없는 제안에 대해 막힘없이 대꾸하는 등 똑부러진 성격이다. 하녀는 반숙이라는 조리 방식도, 맥주와 아사히를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도시의 상식에 밝지 않지만, 근대에서 지향하는 여성상의 모습을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다. 게이와 로쿠는 아소산에서 죽을뻔한 고생을 하지만 다시 아소산을 오르고, 도련님은 방세를 내지 못해 이들을 시중드는 고용인으로 일한다는 것이 이 연극의 전체적인 내용이다.

연극은 ‘도련님’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연극은 전면에 두 개의 방을 세팅하고 후방에는 아소산과 아소산의 등산을 표현하기 위한 계단을 설치했다. 이 작품에서 도련님의 방은 전면의 반을 차지한다. 그만큼이나 연극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도련님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진 제공: 극인단 이치

도련님은 게이와 로쿠와 정반대 편에 서있는 인물이다. 게이와 로쿠는 반반씩 돈을 내고 똘똘한 하녀에게 돈을 챙겨주지만, 도련님은 항상 돈에 쪼들리다 고용인으로 써달라고 무릎을 꿇는다. 게이는 호탕한 두부가게 아들이지만, 도련님은 병약한 지식인이다. 로쿠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앓다가 다시 밖으로 나가는 데 비해, 도련님은 요양이라는 명목으로 여관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 게이와 로쿠는 산을 오른다는 목적을 위해 여관에 머무르고 다시 떠난다. 도련님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여관에 머무른다.

도련님은 게이와 로쿠와 다르게 구속된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감기에 걸렸으면서 폐병에 걸렸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고, 1엔이라는 자본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미래와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고 그에게 조언하는 하인의 말에도 제대로 대꾸하지 못한다. 생각과 자본에 구속되어서 어떤 열정이나 동기도 없이 단순히 요양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도련님의 모습은 산을 오르는 두 청년과 꿋꿋하게 여관을 운영하는 하녀와 대조된다. ‘제국대학을 나온 병약한 도련님’ 캐릭터는 소세키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면서 환상과 가상성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다.

정통 연극과 이야기 중심의 순수성 회복을 내세운 극인단 이치의 창단 기념 공연이다. 대표인 윤영성이 각색 및 연출을 맡았다. 그는 ‘한국 연극계의 대부’인 산울림의 임영웅 연출가의 제자다. 그 아래에서 연구단원으로 시작해 조연출, 무대감독, 배우까지 두루 거치며 연극을 익혔다.

배우 윤진희, 윤영성, 남광우, 윤성우, 김장훈 등이 출연해 진지한 성격창출에서부터 감성표현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하여 연극을 이끌어가고 관객의 갈채를 받으며 극인단 이치의 창단공연 나쓰메 소세키 작, 윤영성 각색․연출의 <이백십일>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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