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백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Faust)’

브람스 ‘겨울의 하르츠 여행’

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외계 공작소, 동맹, 아레떼 연출부 드라마투르그

하르츠(Harz) 산맥의 겨울 풍경

멘델스존의 하르츠(Harz)산맥과 브로켄(Brocken)산에 관한 음악 ‘첫 번째 발푸르기스의 밤; Die Erste Walpurgisnacht (op.60)’을 알아본 김에 브람스가 그린 쓸쓸한 하르츠산맥도 알아보자.

 브람스가 1869년에 작곡한 Harzreise im Winter: Rhapsodie für eine Altstimme, Männerchor und Orchester op.53이다. 제목이 복잡한데, 그대로 번역해 보면 ‘겨울의 하르츠 여행: 알토 독창과 남성 합창단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광시곡(Rhapsody)’이다. 보통은 ‘겨울의 하르츠 여행’ 또는 ‘알토 랩소디’라고 줄여 부르는 곡으로 브람스의 합창 음악을 대표하는 명작이다.

 브람스 음악의 가사는 물론 괴테다. 하지만 희곡 ‘파우스트’가 아니라 시(詩) ‘겨울의 하르츠 여행’이다. 음악의 내용은 파우스트와 관련이 없지만, 독일인이 생각하는 하르츠와 브로켄의 광적인 정서를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곡이다.  

괴테의 ‘겨울의 하르츠 여행’ 내지

 1777년 겨울, 28살의 괴테는 홀로 하르츠산맥의 브로켄산을 오르면서 이 시를 구상했다. 마법의 기운이 짙게 드리워진 겨울 산을 온몸으로 겪은 젊은 시성(詩聖)은 독과 같은 쾌락, 허무한 사랑, 적막한 자연, 영웅의 고뇌 그리고 구원을 노래했다. 이렇게 88행의 시가 된 성찰, ‘겨울의 하르츠 여행’은 1789년에 출판된다.

이 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있다. 바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깊은 우울증에 빠진 청년 플레싱(F. V. L. Plessing)이다. 신학과 법학을 공부한 플레싱은 자신의 절망을 편지에 담아 여러 번 괴테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시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를 따라 자살하는 청년들이 많던 시기여서, 괴테는 하르츠 여행길에 플레싱을 만났다. 하지만, 그를 도울 수 없었고 플레싱의 처참한 절망은 ‘겨울의 하르츠 여행’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홀로 떠난 겨울 산의 모험 그리고 청년 플레싱의 고뇌로부터 탄생한 ‘겨울 하르츠 여행’은 괴테의 질풍노도 시기를 집대성한 명작이다.

요하네스 브람스 (1833~1897)

1869년 36살의 브람스는 괴테의 시 중 5~7절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죄인의 영원한 번뇌’를 음악화했다.

알토 독창과 남성 4부 합창단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편성이 큰 합창곡으로 콘서트홀에서 연주할 경우 100명이 훌쩍 넘는 연주 인원이 필요한 대곡이다.

곡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중간에 멈추지 않고 연주하며 총 연주 시간은 약 15분이다.

 1는 c단조의 Adagio로, 천천히 가라앉는 저음 현으로 시작한다. 홀로 눈 덮인 산을 오르는 나그네의 좌절과 고뇌를 침울하게 표현한다. 알토 독창이 나그네를 흐릿하게 묘사하면서 ‘아! 세상을 버린 가련한 사람!’이라고 울부짖는다. 여기서 실제의 청년 플레싱과 소설의 베르테르, 더 나아가 발푸르기스를 즐기는 젊은 파우스트를 감지할 수 있다.

 2는 c단조의 poco Andante로 1부의 늘어지는 선율에서 빠져나와 고뇌하는 자의 불안정한 심리를 잦은 변박자와 화성 변화로 표현한다. ‘향유가 독으로 변한 고통을?(dem Balsam zu Gift ward?) ‘, ‘Der sich Menschenhaβ(인간 혐오자)’에서 그 번민과 불길은 클라이맥스에 닿는다.

 3는 C장조의 Adagio로, 내내 춥고 무거웠던 고통의 무게가 남성 합창의 두꺼운 울림을 쿠션 삼아 그나마 가볍고 포근해진다. ‘사랑의 아버지여 (Vater der Liebe); 44행’에서 절정을 이룬 음악은 왠지 파우스트의 대단원이 떠오르는 ‘그의 흐려진 시야를 맑게 하시어 수천의 샘물을 발견하게 하소서. 사막에서 목말라하는 그에게! (öffne den umwölkten Blick, Über die tausend Quellen. neben dem Durstenden in der Wüste!); 47~51행’ 으로 조용히 곡을 끝맺는다.

브람스의 ‘겨울의 하르츠 여행’ 연주 장면
(알토 독창과 남성 합창단 그리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보인다.)

브람스의 ‘겨울의 하르츠 여행(알토 랩소디)’은 연극과 시의 장면의 표면적인 묘사라기보다는, 괴테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가 창조해낸 죄 많은 영웅 파우스트와 좌절에 빠진 베르테르에 집중한다. 그래서 느린 음악은 15분 내내 천천히 침강한다.

괴테와 브람스. 두 점잖은 예술가는 마녀의 산을 오르는 두 점잖은 예술가는 경이로운 시각적 심상을 내적 성찰이라는 문학과 음악으로 담아냈다.

덧) 브람스는 괴테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겨울의 하르츠 여행’과 비슷한 형식으로 여러 합창곡을 남겼는데, 하나같이 중후한 명작들이다. 괴테와 파우스트에 직접 연관되는 것은 아니지만, ‘겨울의 하르츠 여행’을 만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중 몇 작품의 목록을 덧붙인다.

 ∙ 횔더린의 시에 붙인 ‘운명의 노래’ (op.54)

 ∙ 실러의 시에 붙인 ‘애도의 노래’ (op. 82)

 ∙ 신약 성서에 붙인 ‘승리의 노래’ (op.55)

 ∙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 붙인 ‘운명의 여신의 노래’ (o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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