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을 믿는가

글_최석훈(연극평론가)

<누구와 무엇>(The Who & The What)의 작가 아야드 악타(Ayad Akhtar)는 1970년 미국 위스콘신 주 밀워키의 한 파키스탄계 가정에서 태어나 브라운대학교와 콜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하였고 이태리에서 폴란드의 연출가 저지 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의 조수로 일한 경력도 있다. 악타는 뉴욕의 한 무슬림계 남편과 백인 아내 간의 갈등을 9/11 테러와 연관지어 조명한 2013년 퓰리처상 수상작 <수치>(Disgraced)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까지 극작가와 소설가로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제공: (재)국립정동극장

2014년에 뉴욕 링컨센터에서 초연을 가진 <누구와 무엇>은 한 파키스탄계 미국인 무슬림 가정의 보수적인 아버지와 진보적인 사고를 지닌 딸 사이에 일어나는 종교적 가치관의 갈등을 다룬 희극이다. 아내를 암으로 잃고 애틀랜타에서 큰 택시회사를 운영하며 홀로 두 딸을 키운 아프잘(Afzal)은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소설가를 꿈꾸는 첫째 딸 자리나(Zarina)가 하루 빨리 좋은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녀 몰래 그녀의 사진과 프로필을 무슬림 중매사이트 무슬림러브닷컴(Muslimlove.com)에 올리고 괜찮은 후보들을 직접 물색한다. 자리나의 결혼에 절박함을 보이는 또 다른 인물은 미혼인 언니 때문에 어릴 때부터 교제해온 정혼자가 있음에도 아직 시집을 가지 못한 여동생 마위시(Mahwish)이다.

하지만 자리나 본인은 앞선 이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이다. 대학원에서 만난 아일랜드계 카톨릭 백인남성과 결혼을 꿈꾸었으나 아프잘의 극심한 반대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 또 딸로서 자신이 겪어야 했던 억압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녀는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의 가르침과 여성의 처우에 관한 의구심 그리고 그녀의 진보적인 사고가 담긴 소설 『누구와 무엇』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자리나는 아버지의 중개로 다시 만나게 된 백인 무슬림 이맘 엘리(Eli)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만 무함마드를 인간적인 욕망의 소유자로 적나라하게 묘사한 그녀의 소설이 우연히 아버지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소설의 내용에 큰 충격을 받은 아프잘은 자리나와의 절연을 선언한다. 2년 후 임신소식을 갖고 찾아온 자리나와 아프잘의 재회와 용서의 에필로그로 극은 끝을 맺는다.

극의 내용 자체는 어떻게 보면 진부해 보인다.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딸과 그러한 딸을 사랑하지만 그녀의 ‘일탈’을 용납할 수 없는 부모 간의 갈등. 악타는 인터뷰에서 작품에 대한 영감을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에서 받았다고 밝힌 바 있으나 극의 중심에 있는 종교적 가치관으로 인한 세대 간 갈등은 셰익스피어보다는 근현대 미국연극에서 더 직접적인 선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식민시대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한 청교도 마을을 배경으로 억압적인 목사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조명한 제임스 바커(James Nelson Barker)의 <미신>(The Tragedy of Superstition; or, the Fanatic Father, 1824), 제정시대 러시아를 배경으로 유태인 아버지와 딸들의 갈등을 극화한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자>(Fiddler on the Roof, 1964), 딸이 아닌 아들이라는 점은 다르지만 유태인계 미국인 부자의 오랜 갈등을 다룬 도널드 마귤리즈(Donald Margulies)의 <브루클린 소년>(Brooklyn Boy, 2004) 등이 공연을 보고 즉각적으로 떠오른 작품들이다.

앞서 언급한 예시들이 잘 보여주듯 미국 연극사에서 이러한 세대 간 종교적 갈등은 주로 미국사회의 전통적인 주류라 할 수 있는 기독교인과 유태인들의 관점에서 다루어져 왔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인’ 소재를 악타가 시의성과 설득력을 갖춘 하나의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창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러한 갈등이 지금까지 미국무대에서 소외되었던 무슬림 인물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점, 그리고 미투(MeToo) 운동으로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여성의 인권문제를 직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데 있다. 아울러, 희극이라는 틀을 적절히 활용하여 경박하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설정과 유머를 통해 소재가 지니는 무게와 부담감을 덜어내면서 갈등의 본질은 진지하고 날카롭게 다루는 악타의 극적 센스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 제공: (재)국립정동극장

이번 그린피그의 공연은 위에서 언급한 작품의 강점들을 잘 살린 원작에 충실한 공연이었다. 미국연극의 전통과도 같다고 할 수 있는 사실주의적 무대구성과 연출이 깔끔하고 무난하였고 무대 우편에 위치한 자리나의 방이나 아프잘이 주로 등장하는 좌편의 거실처럼 인물들마다의 공간을 분리하는 방식의 설정은 인물들 간의 단절과 역학관계를 보여주는 데에는 효과적이었다. 다만,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공간이 너무 명확히 분리되다보니 공간사용이 제한적이고 단조로운 인상을 주어 특정 순간에는 경계를 넘어 상대방의 공간에 침입하거나 혹은 공간의 주인이 바뀌는 식의 동적인 연출이 시도되었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무대의 뒷부분을 장식한 여러 커텐은 극에서 자주 언급되는 히잡을 상징하는데 무대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융화되었고 극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작품의 핵심적인 상징물인 커텐과 배우들 간에 특별한 상호작용이 없었던 점은 아쉽다. 이슬람의 선지자가 커텐 너머로 본 며느리의 실루엣에 흥분을 느꼈다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직접적으로 재현하지 않더라도 금지된 것 혹은 감추어진 것을 파헤친다는 작품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기재로 활용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배우들의 대사와 감정은 대체적으로 잘 전달된 편이었고 진지와 유머를 오가는 전반적인 극의 리듬과 템포 또한 적절하였다. 여주인공 자리나 역을 맡은 조은원의 경우 당찬 신여성보다는 아버지에게 다정한 착한 딸의 모습을 잘 재현하였고 아버지가 자신을 지웠다고 원망하며 외치는 대사에는 적지 않은 호소력이 있었다. 둘째 딸 마위시는 극에서 가장 어리고 발랄하며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보수적인 가면 뒤에서 아버지 몰래 약혼자와 항문성교를 즐기고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 키스를 할 만큼 일탈을 꿈꾸는 인물인데, 박수빈의 연기에서 느껴진 푼수 끼에 천방지축 소녀의 통통 튀는 에너지가 더해졌다면 무대에 좀 더 활력을 불어넣지 않았을까 한다. 문화적 이질감 혹은 외국어가 포함된 대사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조은원과의 자매 간 대화는 자연스럽기보다는 조금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 엘리 역의 이승민은 건실하고 바른 청년 종교인의 이미지를 잘 재현하였고 후반부에 자리나의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감정표현을 통해 입체적인 인물상을 보여주었다. 아프잘 역의 정연종의 경우 딸에 대한 애정과 분노, 좌절과 슬픔을 오가는 다양한 감정을 유머와 진지를 섞어 잘 표현하여 풍자의 대상이면서도 딸을 진심으로 아끼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사진 제공: (재)국립정동극장

감동과 웃음을 안겨준 이번 공연을 통해 작품의 독특한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리나의 소설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극의 제목 <누구와 무엇>은 말 그대로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대한 질문 그 자체이다. 나는 누구이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누가 제시하는가?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이고 그러한 믿음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반드시 종교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가정과 사회의 특정한 가치관 속에서 자란 우리들 모두 한번쯤 고민해볼 문제이다.

미국연극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늘 아쉬운 부분이지만 수입된 외국작품의 캐스팅 문제는 늘 안타깝다. 극이 표방하는 다양성이라는 주제는 배우의 존재감 그 자체로 직접적으로 전달되어야 하는데, 이민자 국가인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백인과 파키스탄계 무슬림 역할을 자연스럽게 재현할 수 있는 외국계 배우들을 찾는 것은 현 시점에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결국 의상과 분장의 간접적인 제시를 통해 한국배우가 타 인종의 인물을 연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데, 이것은 기술적으로 어렵기도 하고 ‘블랙 페이스’의 역사적 논란처럼 정치적으로도 바람직한 방식이라 할 수는 없다. 한국연극의 발전과 세계화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한국어 대사를 능숙히 처리할 수 있는 외국계 배우들을 양성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된다. 시각매체인 연극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문화적 영향력을 생각할 때 한국의 연극무대도 다양한 배우들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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