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함께사는세상 <괜찬타! 정숙아>

_조훈성 (연극평론가)

 

1. ‘정숙의 소풍과 사과나무 심기

여성장애인의 홀로서기를 다룬 연극, <괜찬타! 정숙아>가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11일까지 대구의 소극장함세상에서 올려졌다. 이 작품은 2015년 ‘극단 함께사는세상’이 초연을 올린 후 해마다 작품을 수정 보완하고 있는데, 올해는 장애인 인터뷰를 재구성해 관객과 만났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 ‘정숙’ 역에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출연하는데, 중증장애인 연극패인 ‘놀노리패’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정희’가 극중 주인공 ‘정숙’ 역을 맡아 그 험난한 자립과정을 보다 진실하고 생생하게 전달해내고 있다.

 

 

작품 포스터를 보면, 발가락으로 키보드를 치는 ‘정숙’의 화면에 “배낭과 물통과 햇살-초록별로 소풍가기 좋은날- 사과나무를 심어볼까”라는 화면이 보인다. ‘정숙’이 발가락으로 누른 ‘소풍’과 ‘사과’는 바로 이 연극이 전달코자 하는 주된 메시지를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는 더 이상 골방구석이 아닌 바깥세상과의 소통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함께 장애를 가진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과나무 심기’라는 실천적 행위야말로 ‘정숙’의 사회적 태도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차별적 태도는 이 연극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가족구성원과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 장애인의 자립을 가로막는 수많은 제약 환경이 이 연극에서는 명시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그 기이한 시선과 함께 장애를 가진 신체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가치평가 역시도 그대로 드러나 보일 참이었다.

 

<괜찬타! 정숙아>는 일반 장애인 연극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장애인의 자립 포기나 자기부정감 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장애인의 사회적 억압에 대한 대응으로서 그 내면화 과정에서의 장애인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을 우선에 두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비장애 보조자와 함께 작품에 등장하여 당사자로서의 ‘발화’를 중요시 여기며 장애인의 실제 일상생활과 그 감정을 형상화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참신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장애인의 제도적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차별에 대한 어떠한 규범, 준칙의 준수를 강하게 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도적 차별에 대한 강박적인 투쟁심을 부각시키지 않으면서 오히려 자기억제력을 통해 장애인 연극에 대한 지나친 무게를 덜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당사자가 운동성이 있는 현장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도 특색있게 바라볼 수 있다.

 

 

2. 함께 사는 연습 : 우리도 좀 같이 살재이

이번 작품에는 특히 ‘몸’의 언어가 눈여겨봐진다. 장애, 비장애인 배우가 함께 출연하는 연극으로서 장애인의 사회적 차별, 잣대로서 ‘몸의 정상성’에 대한 질문은 이 극장에서 힘들게 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으로서의 ‘정숙’의 ‘몸’과 내면의 ‘완벽한 몸’의 대비가 자칫 정상과 비정상의 대비로 관객에게 낯설고 어색하게 보여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몸’의 언어는 일반적인 획일화된 몸의 언어가 아닌 서로 다른 차이의 ‘몸’들이 섬세한 소통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비장애인 배우의 몸짓·소리와 말은 이 연극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의 장을 제공해준다. 그러므로 무대공간의 역할은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객석 입구와 무대 후면에 객석을 배치하고 소극장임에도 휠체어 이용 객석을 만들어 쌍방향 객석을 디자인해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무대 방위가 달라지면서 무대 중앙을 중심으로 쌍방향으로 배우들의 동선이 구획된다. 극중 정숙의 내면은 다양한 정서를 가진 다른 네 역의 출연자가 일인다역을 소화하면서 인물을 창조해낸다. 이러한 개방적 객석의 배치는 배우 시선에서든 관객의 시선에서든 극장과 공연에 대해 훨씬 자유로운 감각과 접근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작품의 내용은 어릴 적 황달을 앓고 뇌병변 중증장애를 갖게 된 정숙이 가족들의 보호로 집안에만 갇혀 생활하는데,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동생의 뒷모습만 바라보던 정숙이 라디오를 통해 음악과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게 되고, 서서히 집밖으로의 외출과 자립을 꿈꾸게 되면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 인식과 사회적 장벽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극은 기본적으로 수어와 움직임을 중심으로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는 정숙의 성장과정과 차별 상황을 보여주면서 자유롭지 못한 ‘정숙의 몸’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을 보여주면서 ‘정숙’이 경험하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장면화한다. ‘정숙’의 자립에 대한 열망을 의미있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가족구성원에 한정된 정숙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립의 노력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배우들은 장애배우의 대리자가 아닌 보조자로서 틀에 구속되지 않은 비정형화되고 우연성의 기초한 몸짓을 통해 소통하려 한다. 그래서 이들의 다양한 몸짓과 소리, 말 등은 이 연극에 대한 신선함을 갖게 한다.

 

<괜찬타! 정숙아>에서 극 후반부의 ‘장애인차별철폐’거리행진의 연출은 인상적이다. 이는 객석의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한데 섞여 손을 잡고 무대를 행진하기까지의 ‘정숙’의 골방 탈출의 투쟁이 비일상적인 것이 아닌 일상적인 데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인 ‘차별’, ‘소외’에 대한 표피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인의 삶, 생활, 희망 등을 진솔하고 담담하게 들을 수 있었다는 것, 비록 비장애인 등의 대리인의 말과 몸짓을 통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하더라도 이 소극장의 무대에서 참여 장애인이 배제되거나 숨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번 작품은 장애인을 비장애인이 얼마나 장애인의 경계를 잘 연기했느냐를 목적에 두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 장애인의 제도화된 차별 인식과 그 사회적 장벽을 체득하기 위한 방법적 접근으로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장애인을 보호하자는 게 아니라, 동행, 함께하자는 무대에 대한 인상이야말로 이 극장의 목표, 즉 함께 사는 연습에 대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3. 그것은 우리 모두의 경험이어야 한다

극단 함께사는세상이 주관·주최한 <2022모두페스티벌>(10.28.~11.9.)1의 표제가 떠올랐다. ‘모두가 동행, 모두의 행동, 모두다 연결’, 그 ‘모두’를 과연 이 극장에서 만날 수 있을까를 기대하며 찾았던 무대였다. ‘장애인연극제’가 ‘장애인’이란 단어가 없이 모두의 축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장애예술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선 어떠한 기획이 있어야 하는가, 나는 그 ‘차이의 사이’를 감각하고자 노력했지만 하루 이틀의 바라봄으로 그간의 과정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싶어 무척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장애예술에 대한 무관심보다는 그러한 ‘포용적 접근’에 머무르는 내 시선에 대해 스스로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으로서의 시선에 대한 또 다른 걸림돌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장애인이 참여한 프로그램에 대한 실행과정만으로 이에 대한 무의식적인 관용적 평가의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도 하다. 사실, 이러한 장애인에 대한 불평등, 차별적인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작품을 우리가 이제껏 만날 수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장애로 인한 경험의 의미 변화가 작품을 통해 얼마나 진실하게 공감 가능한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 참여자의 내러티브를 토대로 희곡을 만든다는 것은 당사자 자신이 그 이야기의 주체로서 직접 연기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작품의 의미 구축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장애를 가진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과제가 무조건적인 긍정적 장애정체성의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제를 접근하는 방식과 그 내용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괜찮다‘와 ‘괜찬타’의 목소리는 엄연히 다르다. 그것은 장애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 ‘정숙’이라는 자아가 사회인으로서 비장애인 집단에서의 제 ‘역할’을 찾아가는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기 때문이다. 연극에서 보여지는 ‘장애로 인한 경험의 의미’는 장애로 인한 제약과 억압 경험을 의미한다. 과거의 장애인 당사자의 억압 경험을 무대 위에서 이야기하든, 사회구성원들과 상호관계에 있어서 의존의 경험을 통해서든 연극은 그 과거의 부정적인 관계 경험을 극복해내고자 시도한다. 그래서 장애를 가진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삶의 태도의 변화를 목적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애인 출연자에게서 발화된 메시지의 전달과정이 비록 그 해독과 의사전달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하더라도 장애인 당사자의 발화는 충분히 객석에 잘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약간의 사이- ‘기다림’이었다. 그 차이와 사이를 건너오는 시간의 체득만으로도 이 무대를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장애인 연극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어떤 작품의 장애인 참여에 대해 장애예술인들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거나 비장애인 예술가들처럼 작품이 훌륭하다거나 하는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장애 예술로 인해 비장애인이 갖는 장애에 대한 인식의 한계와 왜곡에 저항하고, 이를 구현하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로서 자리 잡는 데 사회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박연희, 「발달장애인의 연극 공동창작에 대한 참여적 실행연구」(대구대 석사논문, 2021, 6쪽 참조) 예술경험의 장을 발견할 수 있다는 데 있어서 이 무대를 공감하는 것이다. 함께 사는 연습은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이 우선 체득해야 하는 과제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오늘의 이 연극이 “그것은 우리 모두의 경험이어야 한다.”라는 것을 완곡히 전해주고 있다.

 


 

  1. 극단 함께사는세상은 2015년부터 진행해온 <함께사는 장애인연극제>를 2021년 <모두페스티벌>로 새롭게 시작했다. ‘모두페스티벌’은 다양한 예술이 어우러지고 장애당사자의 축제를 넘어, 지역에서 활동하는 장애, 비장애 예술가와 지역 장애인 단체들이 함께 준비하는 축제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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