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작당모의 <싸움의 기술, 졸(卒)>

_ 김건표(연극평론가)

 

연극 <싸움의 기술, 졸(卒)>(김풍년 연출, 작당모의,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은 장기판을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이자 삶과 전쟁의 모형으로 본다. 연출이 바라보는 세계는 전쟁, 기후 위기, 육아 전쟁, 코로나 19등 삶의 생존에서 전쟁을 치르고 살아야 하는 세계다. 무대로 전진하는 연출의 미학적인 싸움의 기술도 특별하다. 온전한 텍스트를 배치하지 않고 연극적인 질서를 전복한다. 무대장치는 오브제로 대체되고, 극적인 흐름도 친절하지 않다. 무대는 줄자를 매달아 놓고 한쪽 장면에서는 장기판을 두다가도, 대형 장기판을 들고 나와 해설을 곁들이고,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장면의 2배속을 표현하는 식이다. 무대는 텍스트를 읽어내는 상징적인 암호처럼 오브제로 이미지화되고 배우들의 수행적인 움직임과 표현으로 텍스트를 연결해 극의 메시지를 투영하는 김풍년 연출기술의 방식으로 그 기술이 표현된다. 표현방식은 간결한 텍스트로 극의 윤곽(輪廓)을 그리고 장면의 확장성은 배우들의 수행적인 놀이성으로 대체된다. 무대 의미의 전달 체계는 텍스트를 미학적 구현 방식으로 일정하게 배치하는 것보다 ‘보는 방식’의 놀이판 과정을 통해 김풍년 연출의 무대 텍스트를 읽게 된다. 연출적인 발상(發想)이 설치미술 같으면서도 놀이적이다. 배우들도 탈 극중인물적이며 극과 장면 사이의 배우는 오브제로, 메시지의 기호로 작동되고 수행적인 극 중 인물로도 분하게 된다. 김풍년은 연극 <싸움의 기술, 졸(卒)>에서 장기의 행마법으로 삶과 죽음의 찰나가 될 수 있는 ‘졸’을 전진시키며 인간을 전쟁터의 병(兵)과 졸(卒)로 아는 세상을 그려낸다. 연출이 연극판 ‘싸움의 기술’에서 이겨내는 연출병법도 특별하다. 무대는 행마법 규칙으로 뛰고, 달리고 병사를 넘고 전진하는 장기판이 되고 장기(將棋)의 기물(棋物)들은 줄자로 치환해 무대는 줄자를 달고 놀이로  종횡하는 병법으로 무대를 전진시키고 있다.

 

 

사진 제공: 작당모의, ©박태준

 

뒷방 늙은이의 <싸움의 기술>장기판 같은 세상과 세계의 은유

 

기봉(이미숙 분)은 “ 물가 가재는 뒷걸음질 치고, 다람쥐 앉아서 밤을 줍는데 먼 산 호랭이 술주정하네 그려” 판소리 <심청가> 곽 씨 부인의 상여소리를 내며 양 씨(노희석 분)와의 장기판에서 뒷방 늙은이의 화려한 행마 병법으로 동네 장기의 전장(戰場)에서 무패를 달리는 인물이다. 장기판 싸움의 기술만큼은 따라올 병사가 없는 기봉에게 설 명절 제사상에 올린 탕국 한 그릇은 백석의 <여우난곬족> ‘무이징게국’ 되고 장기대국의 결투를 벌이는 양 씨에게 ‘무이징게국’은 행마 싸움판에서 16개의 장기의 기물들을 규칙적으로 움직여 싸움을 이겨내고 비로소 얻게 되는 평화의 식사다.

 

무대는‘설맞이 장기대국’을 곁들이며 전쟁 같은 생존의 기술에 해설을 덧붙이고 무대에 매달린 줄자를 활용해 기봉의 싸움기술을 풀어내는 방식도 연극적인 싸움의 기술에서 김풍년이 이겨내는 방식으로 소환된다. ‘ 이것은 학습지가 아니다’라며 공연을 소개하는 재생 종이 몇 장(리플릿)은 중국역사박물관에 입장하는 것처럼 초나라· 한나라 행마 전투기술을 설명하는 교과서가 되면서도 연극 < 싸움의 기술 졸卒>을 무대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싸움의 기술, 자판기 연기법, 어떤 싸움, 시인 백석의 무이징게국, 싸움의 연료, 사면초가, 싸움의 명분, 싸움꾼 뒷방 늙은이, 싸움판 춤추는 사각형 등으로 연출과 극단 작당모의 출발 과정의 병법으로 소개한다.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의 모호한 대피 안내 문자는 싸움의 신호탄이 되고 연출은 “잘 살기 위해서는 잘 싸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어떻게 싸우고, 왜 싸워야 하는지 무대를 통해 무패 기봉의 행마 병법으로 돌진하며 라벨의 <볼레로> 음악과 줄자를 들고 김풍년은 비장한 놀이로 전쟁 같은 세상에 놀이판을 깔고 말한다.

 

사진 제공: 작당모의, ©박태준

 

무대로 배치된 연출병법을 살펴보자. 공원에 출몰하는 뒷방 늙은이(기봉, 이미숙 분)는 전장에서 죽어도 그만인 ‘졸’(卒)을 좌우로 전진시키며 그만의 행마법으로 장기판 대국에서 장기판 파이터들을 이겨낸 인물이라 얼굴도 세상 풍파와 싸움을 이겨내고 살아난 협객 시라소니 처럼 싸움으로 단련된 얼굴이다. 무대는 장기(將棋)의 기물(棋物)들이 움직이는 장기판이고 배우들의 놀이판이다. 무대 상단에 매달린 16개의 기물을 줄자로 표현한 것도 발칙한 발상이다. 노란색 몸체(통)로 매달린 줄자는 (將 ·車 ·包 ·馬 ·象 ·士 ·卒)들이 전쟁 같은 싸움에서 한, 초나라 궁을 쳐내고 살아남기 위한 병사들이다.

 

줄자 몸통은 인간으로 형상화되고 기봉의 장기대국에서는 줄자를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매고, 잇고, 연결하며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 같은 치열한 사투를 표현하면서도 줄자로 형상화되는 감각은 칼싸움에서 진검승부를 벌이는 것처럼 ‘퉁퉁, 칭칭’ 거리는 미세한 쇳소리를 내며 꺾기고 섞이고 부딪치며 죽음과 생존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하는 세상과 닮음이다. 싸움의 기술을 최양락의 알까기 대국처럼 불쑥 기물 행마법을 소개하고“장기곽 안에서 뒷방 늙은이로 사시려우 싸워서 길을 찾으려우? 왜, 우리가 뒷방 늙은이지 뭐야. 거슬려? 그 말이 거슬려? 그 말이 거슬렸다면 한판 둬. 뒷방 늙은이가 어떻게 싸우는지 보여줘.” 기봉의 대사로 무대는 ‘설맞이 동네 장기 대잔치’로 전환된다. 초나라 궁을 치기 위한 뒷방 늙은이 싸움의 졸 기술을 생중계하듯 장기판은 한·초나라의 싸움판이 된다. 무대 좌측면 모퉁이서 동네 대국 첫 장면이 열린다. 기봉과 양 씨의 파이터들 대국 장기판을 둘로 나눴다. 마주 봄이 아니라 어긋남으로 연결해 전쟁 같은 대국의 비장한 전류를 형성한다. 마치 고립된 전쟁의 산속처럼 말이다.

 

사진 제공: 작당모의, ©박태준

 

 

김풍년 연출의 행마법과 무대의 파이터

 

무대는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등장해 장기판 모형을 들고나와 행마법의 기초부터 알고 넘어가자며 대국 예절 규칙을 설명하고 장군으로 치고 멍군으로 막아내며 장기대국 해설의 절정을 이루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행마의 기술들이 쏟아지면서 줄자를 올리고 내리며 대국판을 형성하고 배우들은 전장에서 생존의 결투를 벌이는 기물들로 車(차), 包(포), 馬(마), 象(상), 卒· 兵(졸, 병)으로 줄자를 매달고 돌진하며 달리는 말이 되고 적진을 초토화하는 병이 된다. 해설자는 기봉의 기술을 한 번 더 살펴보자며 2~3배속으로 돌리고 배우들은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무대를 롤러장처럼 달리며 배속의 분위기를 내는 신선함도 보이고 라벨의 볼레로는 치열한 전투의 격렬한 리듬을 형성하고 진공청소기 전동 바람으로 하모니카 소리를 내기도 한다. 진공청소기의 소음은 연출이 싸움의 신호탄으로 느꼈던 전쟁 같은 세상의 소음이 되면서도 소음을 받아 삶의 평온함을 노래하는 멜로디는 평화와 행복을 갈망하는 인간의 처절한 울음소리로 환유 된다. 세상은 장기판의 장군으로 돌진하고 멍군으로 받아칠 수 있는 인간의 세상을 넘어 핵무기를 만지작거리며 미사일을 쏘아대는 전시체제의 세계에서 인간은 패권국가의 거대한 진공청소기를 언제든 빨아드릴 수 있는 병사이자 ‘졸’ 같은 인생 아닌가.

 

사진 제공: 작당모의, ©박태준

 

그래도 뒷방 늙은이 기봉이처럼 실눈을 치켜뜨고 졸로 궁을 쳐 내는 싸움의 기술만큼은 배워야 하고 시인 백석이 북간도의 한 바람벽에서 ‘여우난곬족’의 명절날을 떠올리며 고립되고 사면초가인 삶에서도 ‘무이징게국’ 한 그릇으로 평온한 가족을 그리 낸 것처럼 전쟁 같은 세상에서 이겨내려면 살아가는 대인의 여유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백석의 시 한 구절이다. “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중략) 샛문 틈으로 장지 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라고 시인이 세상을 향해 말한 것처럼 연출은 백석의 무이징게국’ 설명을 이렇게 말한다“ 백석도 무이징게국이 사면초가 상황에서 자신을 살게 한 힘이라 걸 알게 된다. 자신을 여태껏 살게 한 힘이 무엇인지 아는 것, 이것이 싸움의 기술이다” 다양한 연출적인 기법들이 현존하는 연극판에서 백석의 무이징게국을 떠올리며 김 풍년만의 ‘싸움의 기술’로 이겨내는 방식은 텅 빈 무대에 줄자를 올려 때로는 줄자 몸통이 장기판의 병사가 되어 늘어나고, 좁혀지고, 구부려서 초를 다투는 전쟁 같은 시간의 연속성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이번 작품의 ‘무이징게국’이다.

 

그러나 기봉의 행마법 싸움의 기술을 ‘설맞이 동네 장기대국’으로 해설을 덧붙인 건 백석의 무이징게국처럼 연극적인 맛도 우러나지만, 기봉의 생존법은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세상과 세계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상황과 중·일·미 들의 치열한 셈법에도 눈치를 봐야 하는데도 기봉의 기술까지 배워야 하는 동시대의 분위기가 씁쓸하다. <터키행진곡>부터 김풍년 무대를 봐 왔지만, 기존의 연극 형식을 뒤집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무대를 풀어가는 김풍년이 무대를 배치한 이번 <싸움의 기술, 졸卒>을 판단하는 것은 연출기술의 암호를 푸는 평론적인 분석과 해석의 방식이 아니라 관객들이 싸움의 기술을 통해 한 수 배우려고 극장에 온 관객들 시선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연출도 세상을 바라보는 내공도 한 수 있어 보인다. 작품을 보고 백석의‘여우난곬족’무이징게국‘과 무대 행마법을 떠올리며 기봉의 ‘명절장기대국’을 풀기 위해 복기(復棋)해도 아쉬운 것은 이번 연극을 통해 확실한 ‘싸움의 기술’을 전수 받지 못한 것이다. 확실한 무대 생존 병법이 안 보였다는 점이다. 장점은 김풍년의 싸움의 기술을 터득해야 할 만큼 극 중 인물 기봉이 ‘한 판 더 둬’ 하며 사투를 벌여야 살 수 있는 세상이 아프다는 것이다. 어수선한 장기판 무대도 장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세계가 그렇기 때문이다. 저녁은 ‘무이징게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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