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LG아트센터‧엠피앤컴퍼니 <나무 위의 군대>

글_양세라

 

<나무 위의 군대> 무대에는 푸른 빛이 감도는 아열대의 숲에 있을 법한 오래된 커다란 나무가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듯 큰 가지를 뻗치고 있었다. 이 나무를 중심으로 잔 가지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 듯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이 나무는 그 자체가 하나의 섬이었다. 공연은 나무의 정령을 연기하는 배우(최서희)가 섬과 나무 주위를 거닐며 첨벙거리는 낮게 깔린 물소리 와 그 위로 바람소리처럼 구음(허밍; humming)으로 극장과 무대를 채우며 시작한다. 살랑거리는 자태로 온몸을 휘감은 정령의 허밍과 물소리가 낯선 행성 같은 광경의 공간으로 끌어당기는 에너지가 있어,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했다. 객석에 앉아 공연의 시작을 기다리며 마주한 이 상황에서 마치 나무의 정령에게 홀려 섬의 나무까지 떠내려온 것 같았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이 고요와 신비로운 감각을 부수며 무대에서 총성이 울리고 두 군인이 나무 밑둥으로 밀고 들어와 급박한 전세를 알리려 헐떡이며 등장했다. 그래서일까 공연에 대한 첫인상은 두 병사가 적군에게 잡혀 포로가 되는 수치를 피하고자 나무에 숨어들었다기보다 마치 두 군인이 전쟁의 파도에서 밀려온 조난자 같은 이미지가 강렬했다. 그래서 이 공연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쟁서사라는 점, 원작자 이노우에 히사시(井上ひさし, 1934~2010)가 조사한 자료와 메모를 토대로 미완성된 대본을 또 다른 작가 호라이 류타(ほうらいりゅうた, 1976~)가 쓴 대본이라는 사실은 자꾸만 잊어버린다.

사진 제공: LG아트센터

 

<나무 위의 군대>는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일본의 전쟁 기억이 재현된 연극이다. 물론 이 연극에서 일본의 기억은 공식 기억이 아닌 잊혀진 주변부의 기억이다. <나무 위의 군대>에서는 나무 아래에 생존자도, 섬으로 들어오는 외부인도 없다. 이번 공연에서도 나무의 정령 이외에는 두 군인의 생존이나 상부 지시를 따랐는가 여부는 중요하지도 않으며,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두 군인은 전쟁과 군대를 유지하는 관습에 기대어 2년을 상관과 신병의 관계를 유지하며 나무 위에서 시간을 버텼다.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게 흐른 두 군인의 시간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두 군인 역할의 배우들은 실체를 알 수 없는 적군을 상상으로 대치하는 연기를 한다. 이마저도 시간이 흐르며 이들의 관계는 함께 생존하는 동료에서 상관과 신병의 관계를 위태롭게 오간다. 지원군이 오기를, 적의 야영지가 점점 밝고 커져가는 것을 인지하고, 하루하루 연명을 위해 죽은 적군의 시체 더미에서 식량을 구하는 과정은 마치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는 장난 같다. 그 장면을 비집고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중첩된다. 그리하여 상관이 되뇌는 대사는 전쟁 속에서 공포와 불안, 고독이 느껴진다.

상관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수 있는가, 돌아갈 것이다

 

사진 제공: 엠피앤컴퍼니

 

나무 위에서 엄습하는 불안감, 상관은 이 전쟁에서 패배할 것을 알고도 신병에게 군대와 국가를 내세우며, 자신들을 구하러 올 것이라는 확신과 이 전쟁에 참여한 대의를 설파하지만, 신병은 배가 고플 뿐이다. 신병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시체를 뒤지는 일에 동참하며 상관은 자신의 위선과 수치심을 들키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나무 위의 군대>에서 두 군인의 대비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신병은 자신의 나고자란 섬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 이야기부터 유년 시절 친구를 도운 이야기를 꺼내며 상관과 가까워지고, 상관을 위해 잠자리를 봐주며, 급기야 상관의 위선까지도 알아차리게 된다. 이번 공연에서 순수한 신병(손석구)은 상관의 위선 정도는 간파한다. 전쟁과 국가에 대한 상관의 신념은 스스로를 속일만큼 강박적이다. 이들의 상하관계의 균열은 그리하여 이런 의문을 불러온다. 두 군인이 기다리는 것은 종전인가? 불가능한 승전인가? 아니면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것인가?

이번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이 실화는 전쟁 경험을 재현하는 우화(偶話)나 판타지(Fantasy)를 떠오르게 한다. 전쟁의 혼란 그 가운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공포와 불안을 잊고자 자신들의 경험과 기억을 왜곡하는 판타지를 만들기도 한다. 가령,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들을 지키려고 수용소 생활을 점수따기게임이라고 속여 현실을 꾸며 말하는 아버지의 판타지부터 <나무 위의 군대>처럼 6.25 한국전쟁에서 남과 북의 대치 중인 군인들이 ‘동막골’이라는 공간에서 공식 기억과 결이 다른 판타지로 전쟁을 재현한 영화 <웰컴투 동막골>이 떠오른다. 또한 나무 위로 숨은 두 군인이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주고받을 때는 독일의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오랜 내전에 휩싸인 스페인의 암울한 전쟁 경험과 기억은 오필리아라는 심약한 어린 소녀의 판타지 영화 <판의 미로>가 떠올랐다.

 

사진 제공: 엠피앤컴퍼니

지원군을 기다리고, 적군을 살피며,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최후의 방어공간으로 활용된 신비로운 나무는 이들이 전쟁에서 몸을 숨기고 생존할 수 있었던 공간이자 이곳이 아닌 다른 공간을 살필 수 있는 망루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가 나무는 긴 팔을 그들에게 내어준 것 같다. 배고픔, 그리움, 수면욕, 불안과 공포 등 두 군인의 욕망은 나무 위에서 나무를 통해 재현된다. 이를 직접적으로 제시하고자 이 연극은 나무의 정령을 극의 해설자로 활용한다. 극장 LGU+스테이지에서 두 군인의 욕망과 불안이 커지면 나무도 정령도 요동치는 듯했다. 나무와 섬이 붉은빛으로 물들기도 하고 두 군인의 반복되는 일상 뒤로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을 보여주듯이 마치 달 같은 조명이 기울어지다 차오르기를 반복했다.

극장에서 두 군인이 함께 동거하는 나무는 기이하면서도 기묘한 편안함을 준다. <나무 위의 군대>와 세 영화들은 전쟁의 혼란과 폭력, 공포상황보다는 전쟁 속에서 생존하려는 인간의 처절함과 욕망을 동화처럼 재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전쟁에 대한 재현 자체가 매우 환상적이어서 아름답기도 하지만, 이 환상적 재현을 통해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치뤄지는 전쟁에 반박하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어 슬프고 아름답다. 전쟁을 피해 나무 위의 군대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낸 실제 이야기는 이번 공연에서는 전쟁으로 치환된 현실에 대한 공포와 인간 욕망의 극대화를 판타지로 재현하였다. 그래서인가 나무의 정령 여인(최서희)이 ‘지켜주고 있는 것이 무섭고, 무서우면서도 거기에 매달리고, 매달리면서도 미워하고, 미워하면서도 믿는 거다’라고 말한 이 대사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우리가 삶을 지속하기 위해 만들어낸 판타지는 무엇인지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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