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백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외계 공작소, 동맹, 아레떼 연출부 드라마투르그

 

프랑스의 작곡가 샤를 구노 (Charles Gounod; 1818~1893)

 

 2년에 걸쳐 연재한 파우스트의 음악 중 역사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품을 소개한다.

 작곡가 샤를 구노가 대본 작가인 쥘 바비에와 미셸 카레와 함께 1859년에 완성한 오페라 ‘파우스트’다. 아이러니하게도 세 명은 모두 독일인이 아닌 프랑스인이다.

 

 

제라르 드 네르발(Gérard de Nerval; 1808~1855) 프랑스의 작가, 번역가

미셸 카레(Michel Carré; 1821~1872) 프랑스의 극작가, 리브레티스트

쥘 바비에(Jules Barbier; 1825~1901) 프랑스의 리브레티스트

 

 

 1839년, 21살의 청년 구노는 제라르 드 네발이 프랑스어로 번역한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고 큰 감명을 받는다. 그는 이를 오페라로 만들 구상을 하지만 햇병아리 작곡가에게는 너무 버거운 과제였다.

 1855년, 극작가 미셸 카레가 파우스트 1막을 모티브로 만든 연극 ‘마르게리테(Marguerite)’를 발표했는데, 이를 관람한 리브레티스트(오페라 대본 작가) 쥘 바비에는 작품의 흥행을 직감했다. 바비에는 카레와 함께 이를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오페라 대본 극작에는 반드시 작곡가가 있어야 하는데, 둘과 여러 작업을 함께 했던 구노가 가세하여 ‘프랑스 오페라 삼총사’가 완성된다. 삼총사는 하늘에 떠다니던 아이디어를 대본과 오선지 그리고 무대 위로 착륙시킨다. 그리고 1859년, 마침내 5막의 오페라 ‘파우스트’가 완성된다. 구노가 처음 파우스트 오페라를 상상한 지 20년 만이었다.

 

1859년 테아트르 리리크에서 오페라 초연 당시 제3막의 디자인

 

 1859년 3월에 ‘테아트르 리리크’에서 열린 작은 초연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당시 파리에는 화려한 무대와 긴 상영 시간 그리고 중간에 발레가 삽입된 ‘그랜드 오페라(Grand opéra)’가 유행이었다. 구노는 발 빠르게 대사 부분을 모두 레치타티보(Recitativo; 대사를 단순한 반주에 맞춰 노래하듯이 읊는 기법)로 바꾸고 총 7곡의 발레를 삽입하여 대세였던 그랜드 오페라의 대열에 합류한다. 이후 그랜드 오페라 ‘파우스트’는 흥행 가도를 달린다. 괴테의 나라 독일에서는 물론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욕에서도 공연이 되었다. 그리고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노-카레-바비에 삼총사의 ‘파우스트’는 비제의 ‘카르멘’과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페라가 되었고, 전 세계 오페라 극장의 주요한 레퍼토리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5막 오페라 파우스트의 표지. 메피스토펠레스, 마르게리테(그레트헨), 파우스트의 캐리커처가 삼각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바비에, 카레, 구노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대성공의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바비에와 카레의 대본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구노의 음악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삼총사의 시너지가 제대로 발휘된 것이었을까?

 먼저 바비에와 카레의 오페라 대본을 살펴보자. 괴테의 비극 1부를 기반으로 많은 장면을 쳐내고 축약했는데, 인물 측면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그레트헨의 오빠인 발렌틴(Valentin)이다. 원작보다 그의 비중이 매우 높아서, 군인 발렌틴은 여동생에 버금가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가족을 사랑하고 선이 굵은 발렌틴의 선(善)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악당 파우스트에 의해 끝장난다. 두 대본 작가는 군인의 비극을 전면에 내세워 악마와 악당의 악(惡)을 극적으로 부각하려 했지만, 평면적인 발렌틴은 너무 진부한 인물이 돼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는 지벨(Siebel)이다. 괴테 원작에서 지벨은 라이프치히 아우어바흐 지하 술집 장면에서 잠깐 나오는 조연 중의 조연이다. 하지만 오페라에 등장하는 지벨은 괴테 원작의 인물과 이름만 같을 뿐 바비에와 카레가 만들어 낸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다. 그레트헨을 연모하는 지벨은 젊어진 파우스트와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당시 오페라의 단골 소재는 꼬이고 꼬인 애정의 화살표였다. 관객의 취향과 흥행을 의식한 바비에와 카레는 무거운 비극에 지벨을 삽입하여 대중의 요구에 화답했다. 삼각관계 형성으로 갈등을 고조시키는 역할 이외에도 다른 인물을 도드라지게 하는 촉매 역할도 한다. 그는 꽃을 시들게 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흑마법에 농락당하고, 그레트헨에게 값비싼 보물을 선물하는 파우스트에게 애정 전선에서 밀리기도 한다. 이로써 지벨은 메피스토펠레스의 악랄함을 강조하고, 그레트헨의 속물성을 암시하는 촉매제가 된다. 구노가 남장을 한 여성 성악가가 지벨 역을 부르게 한 것으로 보아, ‘프랑스 오페라 삼총사’에게 원작에 없는 등장인물인 지벨에 많은 공을 쏟은 듯하다. 셋은 지벨의 존재를 활용해 새로운 파우스트의 특이점을 찍고자 했다.

 세 번째이자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마르게리테(그레트헨)의 뚜렷한 강조다. 괴테 원작의 비극 1부에서는 세 주인공 – 파우스트, 메피스토펠레스, 그레트헨이 거의 동등하게 극을 이끌어 간다. 하지만 오페라 파우스트에서는 그레트헨 비극에 모든 초점이 집중되어 있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파우스트의 철학적 고뇌와 메피스토펠레스의 악마성은 마르게리테의 가혹한 운명과 내적 갈등의 조미료일 뿐이다. 마르게리테의 격렬한 비극 때문에, 대학자 파우스트는 욕정의 노예로 전락하고, 대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비루한 사기꾼으로 강등된다. 이 점이 원작과 가장 큰 차이점이자 오페라 파우스트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오페라 파우스트의 리브레토(대본)

오페라 파우스트의 리브레토(대본)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바비에와 카레의 리브레토는 클리셰인 발렌틴, 원작 훼손인 지벨 그리고 세 주인공 간의 균형 붕괴라는 파행을 저질렀다. 문학인 희곡을 음악이 주인 오페라로 옮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작이 담고 있는 깊은 철학과 신비한 신학을 얕고 통속적인 치정 수준까지 떨어뜨린 점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최악인 건, 이러한 파행과 비난을 감수하고 무대 예술적으로 얻어낸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페라 파우스트의 성공에 바비에와 카레의 대본이 기여한 바는 매우 적다. 그렇다면 구노의 음악 덕분에 대성공을 거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이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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