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여성창작집단페이즈 <제 1강: 거절하는 방법>

글_김충일(연극 평론가)

 

 연극은 항상 우리가 사는 지금의 삶 속에 내장된 문제를 진단하고 드러내는 고밀도의 확대 렌즈이다. ‘사람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담지 않으면서 여성의 시선(視線)과 목소리로 문화 예술 창작과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대전의 전위적인 ‘여성창작집단페이즈(femalegaze)’의 <제 1강: 거절하는 방법>(강윤지 작, 김단비 연출)이 지난 8월 9일부터 13일까지 드림아트홀에서 공연되었다.

 우리는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의 상호연결은우리가 누구인지(Who are you?)를 결정한다. 그 확인된 ‘정체성’속에는 함께, 차별화되고, 더 체화된 다양한 관점이 녹아들어 있다. 그 중 작품 <제 1강: 거절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결(정체성 세우기)하기 위해 “거절”이라는 행위로 표출된 무대언어가 주머니가 많은 바지 속의 송곳처럼 ‘기억 속의 현재’가 되어 살아 움직인다.

 

사진 제공: 여성창작집단페이즈

 

 무대중앙의 칠판에 붙어있는 시간표와 몇 개의 책걸상이 있는 고등학교 1학년 교실, 화장기 별로 없어 보이는 민낯의 분위기로 캐릭터성을 보여주는 서른 네 살의 배우들, 똑 같은 교복에 슬쩍 변형된 스타일에 비춰지는 주름 잡힌 조명, 다소 침울해지기는 하지만 편안하게 들리는 조임과 풀림의 음악. 그 속에서 ‘나를 몰랐던 선주’, ‘내가 없었던 리아’, ‘내가 싫었던 미소’, 진짜 나만의 곳(공간)을 찾았던 현‘. 34세가 된 리아, 선주, 미소, 현은 ’거절에 대한 방법‘을 알기 위해 나약하고 초라했던 교실에서 내 자신이 중심이 아닌 다른 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중심이었던 17세의 나에게 ‘그렇게 내가 원했고, 하고 싶었고, 알고 싶었던 몸부림의 편지’를 쓴다.

 사회 속의 관계(연결)는 우리가 가진 생명력(청소년기의 순수와 생기발랄함의 힘)을 주고받음에 다름 아닐 터인데 작품은 이곳에 ‘송곳’을 들이댄다. ‘거절’이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들에게 가해지는 ‘거절이란 몸의 언어’는 힘을 잃거나 갈 곳을 찾지 못해, 운동장에서 ‘페이스’를 찾지 못해 숨이 차 헉헉대거나, 교실 안 시간표를 자기들 마음대로 바꿔보거나, 노래방 노랫소리는 의미와 멜로디가 뒤 바뀐 키스로 희화화 된다. 그 과정 속에서 17세의 여학생들은 ‘거절하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고, 거절을 거절당하기도 하고, 거절을 거절한 걸 거절하기도 하고, 거절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모두가 거절당한 운동장을 뛰어보기도 하면서’ 긴 성숙의 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하여 ‘거절’이란 언어감각적인 몸놀림‘은 또 다른 기억의 흔적 속에 새롭게 진화하면서 어떤 연결지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함께 잘 지내면 좋은 수락(受諾)의 발생인자’가 관객의 몸속에 스며들었음을 의미한다.

 

사진 제공: 여성창작집단페이즈

 

 17세의 과거를 회상하는 대사를 길게 늘어놓지 않고 34세의 현재적 대사를 적절하게 구사하는 ‘방백’을 통해, 거절의 갈등목록(성 지향성, 동급생간 격차, 한 부모 가정)을 상징하는 시간표를 바꾸는 무대작업과 분리되었던 세 공간(운동장, 선주 방, 교실)을 하나로 합쳐 사용하면서 동선을 크게 씀과 동시에 교차 시키는 선을 활용한 연출기법은 이 작품의 생존력을 돋보이게 하는 메마른 땅을 촉촉이 적시는 감우(甘雨)로 내리고 있다. 또한 연출은 배우들의 연기 디테일(감정, 톤, 몸 쓰임)에 약간의 차이를 주고 있고, 4명의 배우가 뿜어내는 대화의 밀도는 촘촘하고 그 전달 역시 생생하며 여운을 안긴다. 그러나 이 작품 속의 연기는 극 중 인물에 생명을 불어 넣으면서 등장인물에게 배정된 대사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기 보다는 등장인물들이 왜 그 대사를 말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두께가 넓다보니 타입캐스팅(typecasting)이 될까하는 혹 평균화된 닮은꼴의 동체이형(同體異形)의 인물을 연기하는 굳어버린 닫힌 무대가 된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17살이었던 나의 입장과 감정은 34살의 나의 입장과 감정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삶 속을 유영(遊泳)하는 사람들은 ‘거절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통해 기억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과거를 미화하지 않고, 세상을 자기 식으로 이상화시키지 않으면서 어떤 유형에 갇히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무대 위를 뛰어다녔던 4명의 배우들은 벌써 땀에 젖은 교복을 원피스로 바꿔 입으면서 “당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는가?”라고 묻고 있다.

 청소년/여성/퀴어 등 소수자들의 삶에 ‘우리가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대전의 ‘여성창작집단페이즈’. ‘인생의 순간마다 곁에 있었던 익명의 당신들에게, 새로운 스침의 작품’을 보내 준 작가 강윤지, ‘다음’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연출의 밭에 첫 삽을 밀어 넣은 김단비, 이미 가족이 되어 버린 듯 앙상블로 무장한 배우 신주현, 이한희, 조민오, 한은성, 그리고 무대 안과 밖에서 많은 도움을 준 스태프, 이 작품 탄생의 길목을 뚫어주신 텀블럭 후원자님들, 특히 맨 땅에 헤딩하는 생소한 연극에 자리매김 해준 관객 여러분께 리뷰어로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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