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백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외계 공작소, 동맹, 아레떼 연출부 드라마투르그

 

 

 

 

 페루치오 부조니. (Feruccio Busoni)

어디선가 들어본 옛 피아니스트의 이름, 아니면 종종 문화계 뉴스에 등장하는 피아노 콩쿠르의 이름. 부조니는 우리에게 그런 고유 명사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작곡가 부조니는 오페라 ‘파우스트 박사’를 쓰다 죽었다.

 

 

 

 

페루치오 단테 미켈란젤로 벤베누토 부조니(Feruccio Dante Michelangelo Benvenuto Busoni).

일단 중간 이름에 최고 문화 훈장처럼 박혀 있는 단테 (알리기에리),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벤베누토 (첼리니)에서 알 수 있듯이 부조니는 1866년 이탈리아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1894년부터 베를린에 완전히 정착했고 주로 독일어로 작곡했기 때문에, 음악사적으로는 이탈리아계 독일 음악가로 분류된다.

 

 

 

 

오페라 ‘파우스트 박사’는 부조니 작품 중에서 가장 대작(大作)이지만, 안타깝게도 작곡가의 죽음으로 끝을 맺지 못했다.

1911년 45살의 부조니는 매우 특별한 형식의 ‘실험 오페라’를 계획했다. 주인공 후보로 이탈리아의 파우스트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유력했다. 여기에 영국의 마법사 ‘멀린’ (원탁의 기사에서 아더 왕을 돕는 마법사), 또는 스페인의 전설적인 호색한 ‘돈 주앙’도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결국 독일의 ‘파우스트’로 주인공을 낙점했다. 예술적 열광에 휩싸인 부조니는 단 6일 만에 대본의 초고를 완성했다.

부조니는 1차 세계 대전의 혼란 속에서도 ‘파우스트 박사’에 천착했지만, 1924년 안타깝게도 작품을 미완으로 남긴 채 심부전으로 사망한다. 이듬해인 1925년, 부조니의 제자 필립 야르나흐가 오페라의 마지막 부분을 보필하여 완성했고, 부조니 최후의 대작이자 미완성작 ‘파우스트 박사’가 드레스덴에서 초연된다.

초연 직후 터져 나온 박수는 타계한 음악가에 대한 추모나 동정이 아니었다. 20세기 초, 새로운 형식, 미래의 음악을 염원했던 눈과 귀들을 열광케 한 박수였다.

 

 

(좌로부터)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쇤베르크: ‘기대’, 스트라빈스키: ‘병사 이야기’, 알반 베르크: ‘보체크

 

 

20세기 초 오페라를 포함한 음악극 형식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다. 1902년에 초연된 드뷔시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대본: 모리스 마테를링크 – TTIS 2020년 7월호 참조)’를 필두로 쇤베르크가 1909년에 작곡한 단막 모노드라마 ‘기대(대본: 파펜하임)’, 1918년 스트라빈스키가 완성한 무용을 곁들인 음악극 ‘병사 이야기(대본: 라뮈)’, 쇤베르크의 제자인 알반 베르크가 1922년에 완성한 문제작 ‘보체크(대본: 뷔히너 ‘보이체크’) 같은 혁신적인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1925년 초연된 부조니의 ‘파우스트 박사’도 위의 작품들과 같은 ‘혁신의 조류’에 속해 있지만, 이들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유는 자명하다. 작곡가 부조니는 본인이 직접 대본을 썼다.

 

 

 

이 오페라의 정식 명칭은 “DOKTOR FAUST – Dichtung für Musik in zwei Vorspielen, einem Zwischenspiel und drei Hauptbildern”라는 긴 독일어인데, 번역하면 ‘파우스트 박사 – 2개의 프롤로그와 하나의 막간극 그리고 3개의 주요 장면으로 구성된 음악을 위한 시(詩)’다.

가장 눈에 띄는 단어인 “음악을 위한 시(詩) – Dichtung für Musik”. 바로 이것이 바로 부조니가 생각하는 오페라라는 장르의 미래였다.

시인이 시를 쓸 때, 심상과 주제만 쓰고 운율은 작곡가에게 맡기지 않듯이, 작곡가 부조니는 ‘파우스트 박사’라는 시의 운율(음악)에 얹을 심상과 주제(대본)를 다른 이에게 맡기지 않았다. 게다가 부조니는 극작과 작곡을 동시에 했던 바그너를 마음 깊이 존경했다. 그런 그가 극작을 놓칠 리 없다. 부조니는 ‘음악의 새로운 미학(1907)’을 출판할 정도로 필력이 좋았고, 후세에 피아니스트보다는 작곡가, 작곡가보다는 사상가나 철학자로 기억되길 원했다. 그런 그가 세상에 남길 마지막 역작으로 시(詩)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조니가 각색한 괴테의 파우스트는 거의 재창작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우선 그레트헨이 나오지 않고, 비극 1부와 2부의 내용이 혼재되어 있다. 괴테 원작에는 없는 ‘파르마 공작 부인’이 등장하는데, 여러모로 비극 2부의 ‘헬레나’에 대응된다. 파우스트가 파르마 공작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원작 1부에서 그레트헨이 낳은 아이 그리고 원작 2부에서 헬레나가 나은 아들 ‘오이포리온’과 운명의 궤를 같이한다.

원작과 다른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알라딘의 램프 같은 마법의 책 ‘Clavis Astartis Magica’의 등장하고, 파우스트의 학생들은 구교와 신교 간의 갈등으로 논쟁한다. 학자 파우스트는 폭력적이고 냉혹하며,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이성적이고 신사적이다. 결정적으로 파우스트는 구원받지 못하는데, 이는 괴테의 파우스트와 ‘파우스트 박사 전설’을 합친 결말이다.

 

극의 구성도 일반적인 오페라와 확연히 다르다.

‘음악을 위한 시(詩)’답게 서곡 연주 후 내레이터가 시를 읊은 후 본격적인 막이 오르며, 마지막 3막에도 내레이터가 마무리 시를 낭송한다.

무대 구성은 매우 변칙적이다. 위의 표에서 보듯이 일반적인 ‘프롤로그’라고 하기에는 너무 묵직한 1시간 정도의 서막이 2개나 있고, 본막에 들어가기 전에 배치된 15분 정도의 인터메조는 단순한 간주곡이 아니라 연기와 내용이 진행되는 세 번째 프롤로그로 보아도 무방하다. 본막이라 할 수 있는 Scene 1, 2, 3과 프롤로그 1, 2, 3(intermezzo)의 중량 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총 6막의 시극(詩劇)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부조니는 왜 이렇게나 복잡하고 특이하게 장면을 구성했을까? 단순히 기존의 오페라와 차이를 두고 싶은 욕심에 그랬을까? 아니다. 오로지 시극(詩劇)의 연출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부조니의 연출은 바로 ‘음악’이다. 그래서 그는 시와 극에 방해가 되는 전통적 요소는 가차 없이 쳐냈다. 위에서 언급한 드뷔시,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알반 베르크가 ‘새로운 음(音)’에만 기대어 오페라를 만들었다면, 부조니는 ‘시와 음과 극의 융합’으로 아예 새로운 장르를 지향했다.

 

 

 

철학자와 극작가를 지향한 작곡가 페루치오 부조니.

다음 호에는 부조니가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 어떤 음악적 연출을 이식했는지 자세히 짚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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